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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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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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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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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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사령부에 6+1 TOP TEAM 선발대회. 과학실험실처럼 군장 검사한다. 특전식량 숫자는 물론, 꼬질대까지 3단으로 조립해서 써보란다. 식량을 안 먹는 건 뭐라지 않아도 버리는 건 감점 팍팍. 중간중간 계속 검사하고 쓰레기 처리까지 점수를 먹인다.


그렇게 전술훈련 직전 저울로 잰 내 군장은 45kg. 나눠 지었지만 통신은 분명 50kg 넘고. 모든 물품을 FM으로 넣은 특전조끼와 총까지 하면 기본 60kg. 이걸 지고 적진에서? 3박 4일 측정 동안 서너 시간 잤다. 정찰감시 때 슬쩍슬쩍 졸았지만, 사실 내가 존지도 모르게 졸았다. 고참들이 정신 차리라고 계속 퍽퍽 갈긴다.


원수 같은 군장. 산악. 산 산 산 풀 풀 풀.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통제관들의 끊임없는 감시, 채점. 사람을 이렇게 죽이는구나. 이 선발대회로 군 생활 시작부터 무릎 고장 난 사람이 생겼다. 보병에서 온 중대장들이 그랬다. KCTC 뛰고 나면 다른 훈련이 재미가 없다고. 아드레날린이 안 나온다고. 군인의 능력은 어떤 최고치 훈련을 해봤는가다.


탑팀은 시작부터 죽인다. 기초 체력 측정(각 팀에서 특급 안 나온 사람이 몇 명인가의 싸움. 모두 특급으로 통과해야 기본 통과. 문제는 부상), 이어서 무장 급속행군, 사격, 주특기 등등 측정하고 무박 3일 전술훈련에 돌입한다. 짧은 시간 그 작전계획을 달달달 외웠다. 모든 팀원이 외우지 않으면 낙오자 생겼을 때 측정 작살난다. 암기해야 전술을 지속할 수 있다. 팀원 1명이 낙오하고 전술이 지속되지 않으면 거의 꼴찌다.


중간이 기억 안 난다. 정신이 반쯤 나갔다.


그때 모두가 생각했다.


‘전시에 살려면 군장부터 버려야 돼. 뒤에서 총 쏘는데 이런 군장으로 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묻어야 한다. 살려면, 살려면...’


‘오늘이 며칠이었지?’


움츠러든 몸. 야전 나와서 시간이 갈수록 하의가 넓어진다.


출발, 오르막, 코에서 김 나오고 숨 거칠어지고, 눈에서 불똥이 튀고, 단전까지 숨이 내려가 내장까지 쥐어짜고, 눈에서 레이저가 뿜고, 벗어날 수 없는 대열에 화도 나고 짜증이 나고 고통스럽고, 그러다 슬슬 눈이 풀리고, 부풀었던 허벅지 장딴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춥기 시작하면서 몸의 열이 증발하고, 그때부터 몸을 누르는 군장 무게가 가중되면서, 관절과 뼈가 아프면서 새벽이슬을 맞는 반복의 반복. 오르막, 고갯길, 내리막, 평지, 다시 오르막... 그렇게 하루 행군이 끝난다.


‘정작. 얼마나 남았어?’


‘다 왔습니다.’


‘이 자식이 헛소리는.’


‘정작이 정작 지도를 못 봐.’


‘(동기) 정작 놈은 어느 비트지? 저쪽에서 팠는데 관측이 안 되네. 불침번 안 쓸라고 위장에 쎅을 썼구만 쎅을.’


오늘 어깨와 상체가 유난히 뻐근하다.

비트는 왜 파나? 사람에게 왜 텐트가 필요한가?

이슬을 맞으면 사람 기가 빨리고 기력을 잃어서지.


기온보다 새벽이슬 맞으면 사람이 안 좋다. 행군 거리 때문에 잘 시간 부족해서 판초만 깔고 침낭을 열어서 덮고 잔 적이 있는데, 그때 새벽이슬의 문제를 정말로 몸이 경험했다. 그렇게 자면 몸이 안 풀리고 피로 누적이 심하다. 인간은 뭐라도 지붕 아래 자야 한다. 그래서 텐트 치고, 반-비트를 만들고 온-비트를 판다. 거기에 하나 더, 불. 모닥불. 여러모로 필요하다. 간절하다. 모닥불이 겨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일단 밥도 해 먹어야 하고.


“예전에는 나무 좀 해다 때웠는데, 요즘은 법 무서워서 깊은 산 아니면 나무에 손대겠냐. 지도에 사유지 공유지 표기되는 것도 아니고. 군장도 무거워 죽겠는데 끼니 계산해서 고체연료 쟁여 넣으면 무게도 솔찮아. 나무 좀 편하게 때고 싶다. 겨울에 이게 뭐야. 깊은 산으로 훈련 떨어지길 두 손 모아 빈다. 고체연료에 핫팩 졸라 쟁겨서 훈련나가는 거 뭐냐, 고딱 덩어리, 영 맛이 없어.”


군내.


군내란 말 모르는 사람 많을 거다.


요즘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구들장 안 쓰고 보일러, 나무 안 때우고, 화목을 만들어서 구들장 덥혔던 연령대도 돌아가시거나 그럴 이유가 없다. 그래도 그 세대는 화목 하는 요령과 불 관리가 안다. 그럴 기력의 노인이 없으니 LPG 쓴다.


검은 화목 기럭지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주황색. 불 피우면 여름에도 사람이 모인다, 는 사실이다. 묘하다. 그중 최고는, 떠나기 전에 반 비트 천장에 사용했던 마른 작대기들을 마지막으로 태우는 것. 상태 좋으면 지팡이처럼 들고 다니는 고참도 있었다.


군내. 가 난다. 나무를 오랫동안 태워 찌든 냄새. 나는 어렸을 때 경험했다. 안 깔린 도시가스를 군청에서 설치해 줄 마을도 아니고, LPG도 배달 힘들고, 본인들조차 바라지 않아서 소소히 나무 해다 때우던 곳에서 나던 냄새가 군대 와서 부활했다. 군내는 옷에 깊이 배긴다. 군복을 오랫동안 연기로 훈제하면, 깊이 배겨서 어지간히 세재 뿌리지 않고는 빨아도 냄새가 난다. 내가 부모 세대 같이 아는 이유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 겨울 너무 덥고 너무 추웠지만, 벼 이삭도 불탈 것 같은 여름 땡볕에 홀딱 벗고 반 얼음 계곡물, 슬러시 같은 물, 뒷골이 띵할 정도의 차가움, 그 맛이 있었다. 그렇게 뒤집어쓰면 한여름 땡볕이 잠시 ‘따사’하다. 누구 보는 사람 없이 아무 때나 산골 물을 몸에 퍼붓고 너무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겨울 별미는 아궁이에서 뭐 구워 먹는 거.


군청에서 개보수 해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LPG도 돈 든다고 거부하셨지. 태울 것이 지천에 널렸다고. 요즘 아무도 가져다 안 태우니 나무 깔렸다고.


‘쌀밥은 정말 맛있었지. 반찬은 죄다 죽도록 짰고.’


추억,

이제 또 라이터를 켠다...


“아... 냄새 참.”


흑백영화 같던 그림에 생명력을 부가, 점점 커지는 주황색 불꽃에 컬러 영화로 화면이 바뀐다. 왜 있지 않은가, 컬러 영화인데 과거는 흑백으로 나오고, 주인공이 회상에서 빠져나오면서 컬러로 변화하는 그런. 야전훈련으로 힘든 군인에게 자신과 자연은 회색이다.


군내, 시골집의 군내, 할아버지 할머니, 밭뙈기도 별로 없는데 뭘 먹고 사시는지 상경하지 않으셨다. 아궁이가 밤하늘보다 짙고 검은 불 때가 두껍게 묻었다. 군내는 석탄 태운 냄새 비슷하면서 또 다르다. 그 군내를 자세히 표현하느니 화학 공식을 쓰는 게 편할 것 같다.


다시 맡아야 떠오르는 것. 그전에는 기억도 안 나던 것. 이 군내를 군대 와서 자주 재현된다. 거기에 약간 쉰 듯하면서 싱그러운 풀 냄새.


불과 담배, 군내.


이렇게 불을 피우면 유인원에서 고등생명체로 변모하는가?


이제 곧, 으어어어어억 땅 밑에서 기지개 소리가 들릴 거다.

가끔은 그런 소리가 언어다.


‘밖에 누구 나와 있냐? 불 피웠냐?’ 같다.


‘나의 언 몸을 이대로 나가서 부실하게 할 셈이냐?’


조선시대 문간에서 선비가 ‘게 누구 없느냐!’ 그런 거.


기침하소서. 여기 흙탕물에서 갓 건진 중사 노비가 있으니, 나는 하사 왕고에서 중사 초보로 전락하여 어중간한 구천을 헤맨다. 목에 V가 하나 더 얹힌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는 널리고 널린 존재. 팀의 모든 중사는 나를 중사 졸병으로 대하고, 나의 부하였던 하사 후배들은 ‘이제 신경 좀 꺼주시죠? 중사답게!’ 자기네 조직이 아니라고 밀어내는 것 같다.


야전삽도 부러진다

둘이 진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때는


다른 비트에서 기지개 소리.


‘저거 담당관 비트 맞지?’


지시 사항처럼 들린다.


‘거 누군지 모르겠는데, 불 좀 싸질러 오르냐??’


산중에 같이 있으면 사람 눈치채는 것이 빠르고 다양해진다. 부대에서 못 보던 것들이 뚜렷히 드러나고, 특히, 감정이 안 좋을 때 공기가 다르다. 야전훈련도 주둔지처럼 꼭 고참 열받는 일이 생긴다. 유독 분위기 무거운 팀은 중대장과 선임담당관 사이가 안 좋은 팀. 둘이 앙숙이면, 길게는 2년간 팀 표정이 더럽고 무겁다. 구리스 안 친 경운기처럼 그 생활관 들어가는 내 마음도 무거워진다. 들어가기 싫어진다.


다시 담당관 기지개 소리...

지시 : ‘좀 더 자도 되냐?’


바로 일어서서 쌍안경 배율 조정, 하향 조준.


‘이거 봐라! 미쳤나?’


골프는 아무도 안 일어났다. 일어나 있어야 할 병도 없다. 모르는 사람의 상상 속 본부? 결론은 비슷한 팀. 전시작계도 똑같이 받는 본부팀이다. 다만 늙은이 - 지역대장과 행보관이 있을 뿐, 다섯 개 팀 안에서 사소한 권력을 누리는 팀, 특전병이 있어도 골프장과 행보가 자기편이라 나름 방어벽이 있다. 우리 팀들은 행정병/본부팀에 슬슬 접근해 뭘 캐내고, 재보급 때 우리 중대 뭐 더 줘라, 신경 더 써줘라, 나름 권세 있는 골프팀만의 느슨한 분위기도 있다.


‘브라보장이 단단히 해놨나. 골프도 전술로 팠네. 위장도 했어.’


나이 먹은 사람 둘이나 있으니 행군 때 구성원들이 더 피곤한 팀이기도 하다. 노인 두 명은 군장 분배에서 적당히 빠진다. 무거운 거 안 준다. 행보는 말로 그렇게 하고 골프장은 알아서 해줘야 한다. 지역대에서 군장이 가장 가벼운 두 명이 골프팀에 있다. 빵빵한 신병 하사가 오면, 대대가 전투팀으로 보내지 골프팀에 보내지 않는다. 골프도 편제상 작전팀 전투팀이긴 하나, 대대가 생각하는 전투력은 골프팀 보강에 있지 않다.


렌즈 사이로 담배 연기가 흐른다.


‘골프장, 행보, 관측상 없음. 기상 전.’


다른 중대? 보나마나. 우리 중대장이 선임이다.

애초부터 다른 중대 서로 신경 1도 없다.


시작 불을 만들기 위해 잔가지를 꺾으며

텅 빈 위장은 담배 연기를 뿜고...


‘반합은 다 씨꺼 놨나!’


은은한 향기가 그립다.

엷고 구수한 된장국.


조식 된장국 냄새는 ‘내가 아침까지 공 들어야 하냐?’ 취사반 담당관의 상습이란 느낌까지 들지만, 그래도 그리운 고압으로 찐 식당 밥내. 반찬은 거기서 거기, 국만 괜찮으면 훌훌 넘긴다.


‘식판. 식기... 아, 진짜 한판만 먹었으면.’


타 부대에서 어쩔 수 없이 밥 얻어먹었을 때, 거기 취사반과 부대원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그 느낌은, 그래도 입이 우리보단 고급 아닐까? 간부 부대잖아? 평소 잘 먹지 않아? 그런데 왜 저러지 들?... 자기 부대 식당 밥이 초라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막상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를 보는 의아한 분위기? 굶겨서 저런가? 사람들이 착한가? 착해서 애써 잘 먹는 척하는 건가? 그건 여단 식당 와보면 바로 답이다. 별것 없다. 특식만 다르게 군지사에서 보병사단과 똑같이 받는다.


사실, 자기 부대 식당을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 있나? 부대 식당에 100% 만족하는 장병이 많아? 군인 식당은 살기 위해서 먹는 용도, 최대한 맞춰줄 뿐이지 재료는 부대들이 거기서 거기. 자기 부대 식당 자랑하는 사람 몇이나 되나. 해봤자 운 좋은 독립 중대 대대 정도? 중대장 대대장이 무척 신경 쓰는 독립 제대? 하긴 군대밥도 고춧가루 고추장 참기름만 있어도 맛 째진다.


‘기껏 뻠핑한 벌크 다 빠지네.’


무럭무럭 김이 오르고 대형 스테인리스 쨍쨍거리는 소리.


아침과 점심에 발걸음 가볍게 식당에 가까워지면서 맡는 냄새. 기대감.


[김태희는 한 명이다. 모든 소개팅은 기대감으로 시작해 실망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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