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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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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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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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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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야전에 오래 있으면 평범한 식당 밥이 그립다.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게 지겹고 짜증 나고 부담스럽다. 끼니마다 돌겠다 정말. 그나마 전투식량이 시간이나 일손이 편하긴 하지만 군장 무거워지고, 계속 먹다 보면 불을 피워서 만든 쌀밥이 당긴다. 밥 온기부터 다르다. 더 최악은 특전식량 먹으랄 때. 특전식량이 좋을 때는 천리행군처럼 행군량 겁나 걸린 시기. 중간에 밥해 먹기 피곤하기 때문인데, 그거 먹어서 기운 내기 어렵다. 칼로리고 좆이고 특전식량은 위장을 그냥 가볍게 채우는 간식 느낌. 위장에 기별이 안 간다는 소리가 확연하다. 충분히 고려된 고열량이긴 하나, 사람 ‘힘쓰는 음식’은 아니다. 한 끼 식사란 생각이 안 드니, 훈련 출발 전에 특전식량 안에 맛있는 것만 간식처럼 고참들이 까먹는다.


이래저래 구관이 명관 전투식량 쇠고기비빔밥이다.


이 여단은 줄로 당겨 데우는 신형 전투식량 애매하다. 군장에 넣기에 부피가 너무 크다.


‘된장국에 밥 한 사발.’


불. 불가. 어제 밥해 먹은 자리.


‘자, 그냥 얹자고.’


타오른다. 가지를 더는 부러트려 퍼즐놀이 할 필요 없다.

드디어 흑백영화가 주황색 천연색영화로 변한다.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얼어 죽을 것 같고 쪄 죽을 것 같은 것이 [고향]이지.

고향은 고향집과 하나로 묶인다.

집이 없으면 이제 자고 올 고향은 아닌 거다.

친가 외갓집 일반적이지 않다. 이제 사람들은 도시에 사니까.

도시 빈민이 될지언정 시골은 피하려 한다.


흙, 돌, 풀, 산.


충청도의 산. 남도인지 북도인지 모르겠으며 관심도 없다. 어차피 지나갈 것이기에 – 뒤로 밀려 사라질 걸 기억하지 않는다. 이정표 아래 사진도 찍으면서 많이 지나간다. 지명보다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 중요하다. 소소한 사건이 장소를 상징한다. 우연히 버섯밭을 만나 맘껏 먹었다든지, 인삼 캐먹었다던지, 맛 좋은 김치를 얻어먹었든지, 독수리훈련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 입에서 방부제 냄새 나서.


남도와 북도가 남북이 아님을 피부로 알게 되는 충청도. 충청서도 충청동도 아닌가? 하여간 충청남도에서 북도로 넘어가는 이정표를 서너 번 본 것 같다. 강원도 경상도 경기도로 이어지는 이정표도 많았지만, 부대들이 충청남북도 경계를 넘어야 이 좁은 한반도에서 400km를 억지로 쟁여 넣을 수 있다. 아니면 뱅뱅 돌거나, 부대 반대편인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꺾어 북상해야 한다. 충청도에서 경기도 이정표를 만나야 부대 냄새가 난다.


강원도는 훈련이 적게 잡혔고, 강원도와 경상남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돌아다닌 것 같다. 제주도 한라산도 등반인 코스로 올랐다. 등반가용 루트의 한라산은 꽤 험난한 산이며, 화산섬이라 조금 기괴한 산이다. 대형 동굴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흥미로운 이벤트를 즐기는 브라보장 때문에 막사에서 백록담까지 선착순도 해봤다.


군인의 산은 관광지 명승지도 아니며 유명한 트래킹 코스도 아니다.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산도 군인에게 정말 다르다. 관광지를 피해 행군로를 잡아 다녀야 했다. 여기가 그 산이라고? 봉우리가 어디야? 보여?


가보면 안다, ‘악’ 자 들어간 산이 죽이네 어쩌고 저쩌고... 이 산 저 산 다 지긋지긋하다. 지명만 다른 비슷한 산이다. 다만 토끼 척추 높은 쪽으로 붙으면 험난하며 겨울에 훨씬 춥다.


한여름에서 가을까지는 거의 정글에 가까운 곳... 많다. 사람들은 잘 닦인 등산로만 봐서 얼마나 험난한지 모른다. 수목이 너무 울창해서 북한 공작원들도 힘겨워한 산들이다. 부대에 온 전직 정찰국이 그렇게 말했다. 한국 산악에서 늦가을과 겨울 빼곤 북한에서 나오는 주파 기록이 안 나온다고, 수목이 하도 울창해서 독도법이 힘들다고. 산속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여서 나침반 없으면 암기한 지형을 잇기 힘들다고. 오히려 관광지가 도움이 된다고. 관광지 산악은 밤에 불들이 있고, 길이 번듯하면 산 이름과 km가 적혀 있어서 참고 확실하다고.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이 하나도 아니 보입니다. 참고점이 있지 아니합니다. 남조선 깊은 산 계곡에 수목 울창할 때 들어가면 하늘도 안 보입니다. 높은 나무가 울창하게 다 가려서 구름도 안 낀 밤하늘에 북두칠성도 찾기 힘든 곳이 있습니다.’


간첩이나 정찰국이 북으로 빨리 도망가기 위해선, 뛰면서 참고점이 계속 보여야 한다. 참고점이 확실하게 보이면 동서남북 방위까지도 바로 check! 참고점 보이고 나침반 있으면 쉬지 않고 빨리 갈 수 있다.


북한?

‘나무가 있디 않아요. 북조선은!’


나무가 없다! 참고점이 항상 보이는 훈련장은 훈련일 뿐이다. 강릉 사건 때도 특전사 지휘관들은 이틀 정도 지나서 북으로 다 넘어가지 않았나? 추정도 했었다. 북한의 경보 등 특수전부대의 재래식 행군 능력 강하다. 그들은 군장도 가볍고 보잘 것 없다.


인적 닿는 곳은 주민들이 나무와 풀을 싸그리 잘라가는 북한. 화성 표면 같은 공화국 산악에서 뭔 지도와 나침반을 봐! 다 보이는데. 그런 데서 주파 기록 재다가 남조선 산에 들어가면 정찰국이고 좆이고 속도가 안 난다. 특수전 일반교리인 도피/탈출의 핵심은 속도다.


‘여기 생각하고 올라가면 큰 착각입니다. 저 위쪽에선 산에서 먹을 거 못 구합니다. 깊은 산까지 주민들이 들어와 다 잡아먹습니다.’


이걸 생각 안 하고 강릉 무장공비사건에서 착각들 많았다. 남조선은 뛸래야 뛸 수 없는 산악이다. 참고점 없이 뛰면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북한 정찰국이 한 시간에 ‘산악 몇 km’를 주파하느니 어쩌니 찬양 비슷하게 하면서 지도를 보고도 못 깨달았다. 우리나라 지도의 산악 녹색은 진짜 녹색이다. 정찰국의 자랑스런 주파 기록이라면 잠수함 좌초한 해안에서 하루 만에 다 북으로 넘어갔어야 했다. GOP에서 교전이 났어도 승조원까지 거의 다 넘어갔어야 찬양 경외자들에게 정상이다. 남파 잠수함 승조원도 장거리 육상퇴출 훈련한다.


정찰국 육상 해상 공히 육로 비상(북상)탈출을 훈련한다. 대한민국 전도와 모든 고봉을 외우고 있어야 남파 공작원이다. 최후의 탈출을 위해 남파는 다 받는 훈련이고, 루트도 국군 특정 사단 특정 연대 특정 GOP 구역/지형을 암기하고 남파한다. 진짜 남파되는 애들은 돌파할 구역을 인민군 GP나 비무장지대까지 답사 와서 암기한다. 강릉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북한 접선조들이 비무장지대 혹은 그 아래까지 내려와 맞을 준비를 한다. 강릉 때도 접선/안내조 내려왔었단 소문 무성했다.


김신조도 하루 만에 청와대 – 강릉 정찰국들도 하루 만에 GOP 북상 돌파!?


하지만 안 되지. 강릉사건 터진 건 9월 중순. 태백산 줄기가 수목으로 빡빡하던 때. 산세도 험한데 속으로 들어가면 참고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생각 안 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할 가능성까지 있다. 그러다 (그들 명칭) 남조선 괴뢰군 매복에 직면한다. 계곡이 수백 개다. 뛰다가 상공에 헬기 보이면 방향 바꿀 필요가 생긴다. 뛰기만 한다고 답이 아니다.


요점은 정확히 지형을 확인하고 경제적인 루트로 뛰는 것. 그게, 그게, 남파 북파 훈련처럼 쉽지 않다. 훈련 기록은 그 훈련장에서 한 시간 동안 쥐어짠 기록, 게다가 경무장 기록. 원래 기록 수준으로 두세 시간은 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불가하다. 쉬었다 다시 뛰어야 한다. 먹고 뛰어야 한다. 서너 시간 뛰어도 지형이 일치하는 올바른 루트여야 한다.


결론? : 거기 직접 가서 해봐야 안다. 남파 북파는 휴전선 서로 돌파해서 퇴출할 때까지 잠 못 잔다.


그러한 전술을 멀리하고 잠시 여유를 가지면,

아름답다.


군인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관광지 명산과 별개다.


우리나라 산이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 별개로, 멋있는 산은 오르는 자에게 험하다. 오를 때는 풍경도 안 보인다. 바로 앞 사람만 보인다. 내 땀과 거친 숨소리만 들리고, 어깨와 장딴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아프다. 이념과 사상은 10분간 휴식의 염불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걸어야 빨리 간다.


“음. 흠!!!” (나오셔도 됩니다)


불은,

야전에서 불 피우는 건, 시작이 힘들다.


라이터나 성냥이 있으면 어렵지 않지만, 서바이벌 부싯돌 스파크로도 불씨 만들고, 라이터 성냥이 있어도 바람이 불거나 젖었거나 큰불로 확대하기 힘들 때는, 불이 타는 기능을 생각하면 된다 : 불은 공기가 통하는 공간과 탈 재료가 적절히 간격을 유지하며 확대해야 한다. 공기 안 통하면 불이 안 커지고 꺼진다. 군대는 작은 불씨에서 중간 불로 확대하는 과정에 가르친다. 어떻게? 강하고 확실하게. 큰불 못 피우면 밥도 못 먹고 비 맞은 군장과 군복 못 말린다. 군장 군화 군복이 젖으면 전투력 급감이다. 평상시는 껌이고 악천후는 직격이다. 방수포가 고생은 하지만, 장맛비 속에서도 밥해 먹고 군장 군복 말린다. 안 말리면 행군이 세 배 고통스럽다.


큰불, 만들기. 짚이나 마른 풀, 태울 마른 가지 있으면 쉽다. 그러나 야전훈련은 그런 시기 그런 재료가 항상 있는 게 아니다. 겨울은 나무 습기까지 얼어 더럽게 안 붙고, 훈련장이 산이라 큰 산 광풍이 온다. 신문지 한 무더기만 있으면 불 피우기 오직 편하겠냐 만은, 야전이다.


악천후가 예상되는 훈련 시기.


담당관은 속삭인다.


‘폭약 냄기라. 알았나!’


‘네.’ (폭파 주특기)


폭약은 강우에도 탄다. 다만, 가지고 있는 폭약이 다 탈 때까지 큰불에 성공해야 한다.

야전의 지옥은 눈이 아니라 비다. 비.


동기는 어디에 있나

동기는 어디 누웠나?


‘불공평해. 놈들은 넘어오면 숨을 곳이 많고 우린 반대야. 놈들만 이득 아냐?’


‘왜 넘어오는 놈들 걱정하냐. 우리가 넘어갈 것만 생각하면 되지.’


‘지금 생각하면 꽤 넘어갔지?’


‘많이 죽었을걸. 그래도 버티는 건 훈련을 잘 받아서?’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잘 받았겠지. 하지만 충분하진 않아. 모든 건 현장에 가봐야 90% 이상이 보여. 최고 조원도 처음에는 개 떨었을 거야. 가다 죽을 것 같아서.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참 궁금해. 그래도 실력이 있어서?’


‘실력 좋아? 좋아. 담력 좋아? 좋지. 하지만 진짜 공포는 끝나고 와. 과정에선 할 것, 판단할 것이 너무 많아. 바빠. 아폴로 조종사 얘기가 비슷해. 지구에서 달 표면까지 왔다 갔다 할 때 안 무서웠냐고. 여차하면 자그만 것으로 삐끗하면 죽는데 안 무서웠냐고. 우주인이 그랬지. 너무 할 게 많고 바빠서 창밖의 달을 쳐다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고.’


‘군인도 그렇긴 하네. 그 사람들이 군인은 아닌가?’


‘이를테면 서커스 비슷한 것 같다. 한 뼘 폭의 외나무다리가 있다고 쳐. 한 뼘이면 어지간해서 떨어져? 떨어지는 건 길이가 길고, 그 중간에 정신이 삐딱선 타면 휘청하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워. 죽으면 바로 죽어. 외나무다리는 밑이 한 50m 벼랑이라고 생각하면 돼. 떨어지면 죽거나 병신이지.’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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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Hard Landing 3 24.06.10 13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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