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
히틀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초간 한스를 바라보았다.
'...'
한스는 식은 땀이 흘렀다. 이 침묵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했다.
"전선은 저에게 맡기고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히틀러는 전선에서 시찰을 하며 병사들을 격려하고는 자신의 포케불프 전용기를 타고는 후방에 늑대굴로 돌아갔다. 한스는 시시각각 전방으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총 취합했다.
"항공 정찰 결과는 언제 오는가?"
잠시 뒤 정찰기가 항공에서 촬영한 사진이 한스의 사령부로 도착했다. 부관 프란츠가 한스에게 보고했다.
"소련군 1충격군 선두 69 전차 부대가 1차 방어선을 돌파했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중장비들은 모두 챙기고 철수했는가?"
"네!!"
한편, 소련군 1충격군 선두에서 독일군의 1 방어선을 뚫은 것에 성공한 69 전차 부대는 독일군 포병대를 찾아서 진격했다.
"놈들 포병대와 예비대를 찾아서 모조리 섬멸해야 한다!!!"
표도르는 스탈린 전차에 남은 연료를 점검했다. 조종수 드미트리가 외쳤다.
"10분 정도 밖에 못 버틸 것 같습니다!!"
표도르가 외쳤다.
"파시스트 포병대를 격파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고폭탄 3연속 장전!!!"
스르륵
"장전 완료!!"
그렇게 69 전차 부대는 독일군의 포병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군은 모든 중장비를 가지고 퇴각한 상황이었다. 표도르는 스탈린 전차의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드미트리가 외쳤다.
"아하하!! 멍청한 파시스트 놈들! 다 도망갔군!!"
69 전차 부대원들은 모두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먹을 휘둘렀다. 연료 보급 차량들이 오고 있었고, 연료가 보급되는 즉시 독일군의 예비대를 찾아내서 섬멸해야 할 것 이었다. 독일군은 상당히 멀리서 소련군을 향해 포격을 쏘고 있었지만 포격은 상당히 부정확했다.
'대구경 포들까지 모조리 챙겨서 이렇게 빨리 퇴각했다고?'
소련군 기계화 군단 또한 뒤따라오고 있었다. 표도르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동료들과 서둘러 연료를 보급하고 탄약을 체크했다. 69 전차 부대가 뚫어 놓은 돌파구를 따라서 소련군 기계화 군단이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파시스트 놈들의 예비대를 찾아서 섬멸해야 한다!!"
"우라!!!"
그렇게 69 전차 부대는 연료를 보급 받고 빠른 속도로 전진하였다. 하지만 이미 독일군의 예비대도 모조리 퇴각한 상황이었다. 드미트리가 외쳤다.
"이런 기열 찐빠를 보았나!"
표도르가 말했다.
"적이 강하다고 생각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 방심하지 마라!!"
"하지만 놈들은 다 도망갔는데요?"
이제 독일군의 2 방어선이 남은 상태였다. 파벨이 말했다.
"우리가 계속 선두로 가는건가?"
글리에르가 말했다.
"부대 전환 되겠지?"
하지만 상부에서는 이 때를 놓치지 말고 69 전차 부대에게 계속해서 독일군의 2 방어선을 향해 돌파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미 소련군의 포병대가 지원 포격을 시작했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펑!! 퍼벙!! 퍼엉!!
글리에르가 외쳤다.
"연료도 없는데 어떻게 더 전진하라는 말입니까!!"
하지만 이미 연료 트럭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69 전차 부대는 연료를 보급 받고 다시 2 방어선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지금 전차병들에게는 마약 따위가 필요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차 부대의 폭풍 돌격만큼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것은 없었다. 69 전차 부대의 뒤를 이어서 소련군의 기계화 군단 차량들이 똥구멍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달렸다. 나타샤는 T-34 전차 뒤에 타서 포탑 위에 총을 올려놓고는 벌벌 떨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일이 너무 잘 풀려!!!'
나타샤는 눈치를 보다가 전차 옆으로 털썩 뛰어내리고 독일군이 쓰던 식량 창고로 달려갔다. 이 식량 창고에는 온갖 통조림이 있었다.
'좋았어!!!'
독일군은 중장비를 우선적으로 챙기느라 식량을 모조리 남겨둔 것 이었다. 나타샤는 가방에 통조림을 모조리 우겨 넣고는 먹기 시작했다.
한편, 한스 파이퍼의 4군 사령부에 이 소식이 전달되었다.
"소련군 충격군의 선두 부대가 2 방어선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74 포병대의 중장비는 모두 철수 완료되었는가?"
한스의 부관 프란츠는 지금 도대체 어떻게 되는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제정신인가!!!'
한스는 그저 항공 정찰 사진을 보고 자료를 취합할 뿐 이었다. 소련군의 포성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프란츠가 귀를 기울였다.
'설마 전차 부대가 여기까지 오는 것은 아니겠지!!!'
현재 소련 1 충격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 독일군의 2 방어선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령부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졌기에 들려오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정치 장교 안토노프는 지금 들려오는 소식에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30km 전진에 3일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15km를 전진한 상황이다!!'
소련군은 1개 충격군, 1개의 군과 2개의 기계화 군단을 모조리 투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토노프가 블라슈크에게 외쳤다.
"한스 파이퍼 그 작자가 현재 4군 사령관이라더군! 파이퍼는 자신이 만들었던 전술로 오늘 대패를 겪게 될 것 이다!!"
블라슈크가 말했다.
"잘 진격하고 있는 것은 다행인데 연료 보급이 걱정입니다."
안토노프가 외쳤다.
"전쟁에서 자잘한 것을 신경쓰다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꿀 기회를 놓치게 되네! 오늘을 기점으로 소련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될걸세!"
한편, 선두에 있던 69 전차 부대는 기계화 군단과 함께 독일군의 2 방어선을 향해서 총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티잉!! 쿠광!! 티잉!!
퍼벙!! 퍼버벙!!
전투하면서 계속 기동을 했기 때문에 스탈린 전차의 연료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다.
표도르가 외쳤다.
"저 건물 뒤로 엄폐한 다음 사격한다!!"
'조만간 연료 보급이 올 것 이다!!'
하지만 69 전차 부대는 연료를 보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69 전차 부대는 독일군 88미리 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지 뒤로 은엄폐했다. 파벨이 외쳤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일까요?"
그 때, 우측면에서 엄청난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티잉!! 터엉!!!
이건 야포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티거 전차의 88미리 거근이 불을 뿜어내는 소리였다.
"티거다!!"
소련군의 우측면에 독일군의 기갑 부대와 기계화 전투단이 나타나고 있었다.
"전투 배치로!!"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이용하여 69 전차 부대는 우측에 나타난 독일군 전차 부대를 상대로 교전하기 위하여 전투 배치로 전환했다.
"적 중전차 수!!! 최소 30!! 35!! 아니 40대!!!"
"철갑탄 연속 장전해!!"
"장전 완료!!"
"발사!!!"
소련군의 연료를 운반하는 차량들이 독일군 전차의 포탄을 맞고는 폭발하였다.
퍼벙!!! 퍼버벙!!!
여기저기 뒤엉켜있는 소련군 전차들의 포탑이 날아가고 불을 뿜었다.
"으아아악!!!!"
한 소련군 전차병은 몸에 불이 붙은 채로 탈출해서 흰 눈밭에서 몸을 굴렸다. 어떤 녀석들은 해치를 열고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이 검게 그슬린 상태로 사망했다. 표도르,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 또한 불 타오르는 스탈린 전차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드미트리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으아아...으아아아아..."
주위에 있는 소련군의 전차들은 대다수가 포탑이 날아간 상태로 궤도, 차체 내부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적어도 춥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표도르는 검뎅이 묻어서 완전히 시꺼매진 얼굴로 주저앉아서 멍하니 독일군의 기갑부대와 기계화 전투단이 전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연료가 타오르면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드드등
빠른 속도로 돌파구를 따라 침투하던 소련군의 우측과 좌측이 모두 독일군의 기갑군에 의해서 포위당하는 중 이었다. 독일군 루프트바페 항공기들이 하늘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표도르는 눈 밭에 엎드렸다. 항공기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머리 위에서 들렸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놀랍게도 루프트바페와 독일군 기갑부대, 기계화 전투단은 69 전차 부대를 내버려두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글리에르가 중얼거렸다.
"하...함정에 빠졌어. 놈들이 포위망을 닫으려는거야."
표도르가 외쳤다.
"일어나!! 튄다!!"
그렇게 표도르 일행은 불이 붙은 전차 사이를 가로질러 포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튀기 시작했다.
한편, 독일군 폭격기들은 뒤따라오던 소련군의 기계화 군단과 연료 보급 차량에 폭탄을 투하했다.
쿠궁!! 쿠과광!! 쿠구궁!!!
소련군 전투기들이 날아왔고, 독일군 전투기들은 도그 파이팅을 준비하기 위해 편대 양쪽에 있던 전투기들이 방향을 틀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뒤늦게 이 소식이 소련 군부에 전달되었다.
"당장 퇴각하라고 해!!"
하지만 이 명령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소련군은 독일군의 포위망 속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나타샤는 식량 창고에서 뛰쳐나와서 쏜살같이 도망갔다.
'안돼!!!'
하늘에서 독일군의 전투기와 소련군의 전투기가 구불거리는 비행운을 남기며 뒤엉켜서 도그파이팅을 하고 있었다. 소련군 전투기 한 대가 비틀거리며 점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 전투기는 흰 눈밭에 가까스로 착륙한 다음 엄청난 눈을 뿌리며 앞으로 전진했다.
콰과광!! 쿠궁!!
눈밭에서 계속 나아가는 소련군 전투기는 작은 눈보라를 만들며 숲 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다가 결국 거대한 침엽수에 들이박고는 방향을 틀었다.
쿠궁!!
나타샤가 이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저...저거!!"
꺾어진 침엽수가 소련군 전투기 위에 떨어졌다. 다행히 조종사는 살아서 조종석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광경을 보고 나타샤는 독일군 전차의 포성이 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숨이 멎을 듯이 뛰었다.
'헉...허억...허억...허억...'
이렇게 한스 파이퍼의 4군은 구데리안의 기갑군과 함께 소련군 포로 2만 6969명을 잡고, 소련군 보병 3만 7474명을 사살했으며, 소련군의 전차 69대와 각종 중장비를 노획하는 전공을 세웠다. 한스는 이번 승리를 자축하며 4군 사령부에서 축배를 들었다.
"독일 제국을 위해!! 건배!!!"
하지만 한스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의 승리를 위하여!! 건배!!'
이제 한스의 머리 속에는 독일 제국을 위한 애국심이라던가 황실, 히틀러를 향한 충성심 따위는 전혀 없었다. 17살부터 뒤지게 고생했는데도 육군 참모 총장에서 해임되고 야전 사령관이 되었다는 것이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한스가 외쳤다.
"바그너 틀어!!"
사령부의 축음기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스가 말했다.
"소련은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우리보다 군 동원력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지금 땅을 덜 뺏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나중에 뒷탈이 없도록 놈들을 모조리 분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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