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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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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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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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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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Act 41.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 (2)

DUMMY

“마침 회사에서도 슬슬 팬미팅을 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윤 작가님을 포함한 팬카페 임원진들과도 말을 맞춰서 언제로 할지 시기를 고르고 있었는데···”


김수아의 입가에 고소(苦笑)가 번졌다.

박아영의 말에 혹시나 하는 기분에 물어본 것인데, 설마 진짜 계획이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수아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지금 한창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일단 홀드해놓고 있던 건이에요.”

“홀드요?”

“팬미팅이라는 게 그냥 팬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지혁 씨도 팬들을 위해 뭔가 보여주는 게 필요하거든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콘서트처럼요!”


옆에 있던 박아영이 김수아의 말을 보충한다.

콘서트라···

그렇다면 아이돌처럼 노래나 춤 같은 것도 보여줘야 하는 걸까?


“준비할 게 많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빨라도 이번 드라마가 종영하기 전까지는 홀드할까 했던 거예요.”

“하긴 당장 팬미팅을 한다고 해도 장소도 그렇고 선물이랑, 수용 인원은 얼마나 할 것인지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겠네요.”

“그렇지.”


박아영의 눈동자에 진한 아쉬움이 스친다.


“마침 홍보대사에 드라마까지 잘 되고 있으니까. 여기서 팬들 충성도 다지고 반응 더 키우면 좋을 것 같았는데 아쉽네요.”

“확실히 조금 아쉽긴 하지.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긴 하지만, 반응은 괜찮을 것 같으니까.”


김수아 역시 마찬가지다.

곰곰이 생각을 곱씹던 그녀는 못내 아쉬운 기색을 떨쳐내지 못한다.


기회는 다가왔다.

다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너무 빠르게 다가왔을 뿐이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우화하여 나비가 되는 순서는 정해져 있는데, 번데기가 되는 과정은 지나가고 애벌레가 바로 나비가 된 것처럼 너무 빠르게 다가왔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내 성장이 빠르다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항상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땐 주변부터 살펴보는 것이 답이다.

두 여자의 말을 들으며 턱을 매만지던 나는 이윽고 차분히 입술을 떼었다.


“만약 준비한다고 하면 뭐가 좋을까요?”

“일단 가장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혁 씨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죠. 이를테면 지혁 씨가 만든 수제 쿠키라거나 아니면······”


탁!


“역시 노래죠!”

“노래?”


박아영이 돌연 탁자를 내려치며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나는 물론 김수아 역시 흠칫 몸을 떤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여 지혁 씨가 직접 불러주는 사랑의 세레나데라거나 그런 거요.”


박아영은 자기가 내뱉은 말에 감탄한 것처럼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과하게 몰입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촬영 중에서도 틈틈이 연습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김수아 역시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 방법이에요. 실제로 다른 분들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지혁 씨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네요.”

“어라? 그러게요. 대기실이나 차에서도 한 번도 부른 적 없는 것 같은데.”


김수아를 시작으로 퍼져나간 의문이 금세 박아영 덮친다.

확실히 노래를 자주 부르는 편은 아니다.

군에 있을 때야 구보 중에 군가를 부르긴 했지만, 그거와는 궤가 전혀 달랐으니까.

특히 가요의 경우 불러본 노래도 많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아는 노래도 적다.

그 때문일까?

의문으로 시작된 여자들의 표정이 금세 호기심으로 물든다.


“오빠, 노래 한 번만 불러 봐요.”


박아영이 대뜸 고개를 들이밀며 눈을 흘긴다.

당장 말은 안 했지만 김수아도 비슷한 표정이다.

그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인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정작 지목받은 나는 당혹감으로 가득 찰 뿐이지만.


“···지금?”

“네.”

“여기서?”

“뭐 어때요. 여기 있는 거라곤 저희뿐인데.”


촬영도 마치고 바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인근 카페에 와서 커피 한잔하고 있는 와중이라 그녀의 말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충분히 구석진 자리에 손님도 우리밖에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카페에서 노래라니.

하지만 기대감 넘치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 차마 거절하기도 애매하다.


“···나 아는 노래 몇 개 없는데.”

“군가랑 애국가, 동요만 아니면 되니까 그 외에 아무거나요!”

“그래요, 한번 봐야 다음 일을 정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두 여자의 독촉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거나라고는 해도 마땅한 노래가······

아, 딱 하나 있다.


“그럼 짤막하게 하나만.”

“와아.”

“크흠!”


익살스럽게 손뼉을 마주치는 박아영을 뒤로하고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는 등하굣길에 몇 번 부르던 노래긴 한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배에 힘을 꽉 주었다.

성대로 배에서부터 폐의 날숨을 타고 올라온 소리를 조율하며 나는 천천히 소리를 내었다.

가사와 함께 떠오르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몰입하며 우수에 가득 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고도 짧은 노래가 마친 순간.


“······”


카페는 정적에 휩싸였다.

···역시 노래는 영 별로인 걸까?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는 사이.

한참 동안 이어지는 정적을 부수고 김수아가 입술을 떼었다.


“지혁 씨.”

“네, 역시 팀장님이 듣기에도 노래는 별······”

“팬미팅 가죠!”

“···예?”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한 마디가 카페 가득히 울려 퍼졌다.


***


팬미팅은 일사천리로 준비되었다.

김수아와 마찬가지로 강석호 역시 처음 팬미팅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반대했다.

촬영 중에 팬미팅은 피로가 가중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김수아의 강력한 어필과 더불어 내가 부르는 노래 한 번에 그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 노래 실력이 좋으니 노래 위주로 준비하면 연기의 피로를 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김수아를 필두로 회사에서 장소와 수용 인원 등 세부 사항을 준비하고 팬카페에 이벤트를 열어 팬미팅에 참여할 인원을 조율했다.


덕분에 신경 쓸 것은 없었다.

내가 준비할 것이라곤 김수아와 박아영이 골라준 노래를 틈틈이 연습하는 것뿐.

그렇게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


“세상에 벌써 이렇게 빨리 준비될 줄이야.”


제대로 흐름을 탄 것일까?

한 거라곤 대본 탐독, 노래 연습, 촬영이 전부인 것 같으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준비가 끝나 있다.

새삼 한국인의 단합력과 추진력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어때요?”


박아영이 뿌듯한 표정으로 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 그녀가 골라주는 옷을 입는 것도 꽤 적응이 되었다.


“뭔가 제복 같기도 한데, 아이돌 무대 의상 느낌도 나고.”

“그게 컨셉이에요. 오빠가 슈트랑 제복이 진짜 잘 어울려서 일부러 그런 느낌으로 스타일링 해봤어요.”


박아영이 살포시 실소를 터뜨렸다.

어떻게 보면 차분한 제복이기도 하면서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걸 생각하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아영이랄까?

옷 고르는 센스는 진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다.


“이대로 나가면 될까?”

“이따가 박바위 님이 신호 주신다고 했어요.”


오늘의 MC는 고맙게도 연주가 맡아주었다.

저번 인터뷰 영상에서 좋게 봐주신 분들도 많고 실제로 반응도 좋았기에 회사에서 정식으로 요청한 것이다.

분명 자신의 스케줄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연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MC자리를 맡아주었다.

나중에 따로 연주 채널에 올릴 영상이라도 한편 같이 찍어야겠다.


“노래는 준비 잘 됐죠?”

“조금 부족하긴 한데···”

“···어휴 연습 벌레.”

“뭐라고?”

“아니에요.”


방금 뭔가 들린 것 같은데.


“자자, 오빠 준비!”


제대로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박아영이 다급히 손짓한다.

기분 탓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녀의 손짓에 따라 앞으로 향했다.


“···정지혁 배우님입니다!”


미리 맞춰두었던 신호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무대는 캄캄했다.

객석도 나도 어느것하나 보이지 않을 뿐.

허나 이어지는 조명과 동시에.


“꺄아!”


순간적으로 고막이 아플 정도의 우레와 같은 함성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객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 규모가 큰 무대는 아니지만, 객석을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 한명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와준 것이라니.


두근두근.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심장이 마구 뛴다.

촬영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다.


“간단히 팬분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배우 정지혁입니다.”

“꺄아!”

“오빠아!”

“최고다 정지혁!”


단순한 인사 한마디뿐이지만, 쏟아지는 함성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대부분이 여성분들이기 때문일까?

소프라노의 하이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옆을 바라보니 박아영은 물론 연주도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정지혁 배우님과의 팬미팅에 앞서······”

“···응?”


앞서?

본래라면 바로 질문과 함께 팬들과 소통을 하는 흐름이 아니었던가?

분명 소통을 하고 막간의 추첨 이벤트와 선물 증정 등 그런 흐름으로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앞서라니.

희미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바로잡고 연주를 바라보는 사이.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사실 몰래 온 손님······은 아니고 초청하려던 분이 한 분 계시는데요. 아쉽게도 그분은 일정이 맞지 않아 찾아주시지는 못했습니다만 대신 이렇게 선물을 보내셨어요!”


연주의 신호와 함께 무대 양 끝에서 있던 스태프들이 팬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바로 연하윤 님인데요. 아쉽게도 촬영 일정이 있어 함께해주시지는 못했지만, 항상 지혁 씨를 아껴주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연하윤 님께서 지혁 씨의 사진이 들어간 조그만 선물을 주셨답니다!”

“꺄아!”

“와, 대박! 지혁 오빠 보려 왔는데 이게 다 뭐야?”

“팬미팅인데 팬이 조공을 받는데?”

“모두 모두 정말 감사드려요!”


연하윤이?

여명의 후예의 포상 여행 후, 곧바로 작품 활동에 들어가 요새 한창 바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선물을 보냈을 줄이야.

거기에 이 많은 사람들 몫을 전부 준비해주다니.

미안함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가슴 깊이 차오른다.


“자, 그럼 몰래 온 손님의 선물과 함께하는 정지혁 배우와의 첫 팬미팅 시작하겠습니다!”


나보다 더 뿌듯해하는 연주의 진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팬미팅이 시작했다.

첫 시작은 바로 카페 임원진들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코너로, 바로 명장면 재현이었다.

내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장면을 투표를 통해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이 장면에는 바로 그 장면이 뽑혔다.


“굉장히 화제의 장면이었죠? 바로 여명의 후예 리태홍이 마상범과 병원에서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와아!”

“리태홍! 리태홍!”


객석에 있던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며, 극 중 이름인 리태홍을 연호한다.

팬미팅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 1위로 손꼽힌 장면답게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다.

미리 준비된 간이침대에 몸을 뉘이며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


이전과 똑같은 흐름.

병실에서 정신을 차린 것으로 시작하여, 탈출을 모의하던 찰나.


“어딜 기렇게 가십네까?”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무 몰입한 건가?

여기서 들릴 목소리가 아닌데···


“기대로 가시기엔 뭔가 잊으시지 않으셨습네까?”


대본에 없던 대사.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곧바로 시선이 등 뒤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비어 있던 무대 옆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야생의 갈색곰 한 마리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덩치와 그에 맞지 않는 상냥한 성격의 주인공.


“······김필성이?”


너무 놀란 탓에 하마터면 실제 이름을 부를 뻔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의 모습은 객석에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친 대박! 마상범이다!”

“와, 리태홍에 김필성이라니 진짜 명장면 재현이잖아!”

“두 분 정말 잘생기셨어요!”


쏟아지는 환호성과 함께 여명의 후예에서 선보였던 연기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도 훨씬 더 능숙하고 기술적인 연기가 상범이에게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상, 오늘의 주인공 정지혁 배우님과 몰래 온 손님 마상범 배우님이었습니다!”

“꺄아!”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환호성.

나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겨우 누르며 그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여긴 또 언제 왔어?”

“형, 첫 팻 미팅이라길래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아니, 요새 눈코 뜰 새 없을 만큼 바쁘다며!”

“에이, 그래도 형 도와드리는 일인데,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와야죠!”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순수한 표정과 함께 마상범이 씨익 웃어 보인다.

분명 자기 일로도 정말 바쁘다는 것을 아는데도 여기까지 와주다니 가슴 한편이 시큰거린다.


“여러분 팬미팅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지혁이 형 잘 부탁드려요!”


정말 곰을 연상시키는 우렁찬 한 마디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한 한마디에 팬들의 입가에 더욱 미소가 번졌다.

상범이의 도움 덕에 이후의 행사는 더욱 재미있고 유쾌하게 흘러갔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Q&A 시간부터.

상범이와 함께하는 가벼운 만담까지.

중간중간 게임으로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유쾌한 모습 속에 팬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찰나를 비추는 무지개처럼 빠르게 흘러간 시간은 어느덧 하나만을 남기고 말았다.


“어느새 팬미팅도 하나의 코너만을 남기고 있는데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코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우리 정 배우님이 모여주신 팬분들을 위해 그동안 갈고 닦은 노래를 불러주신다고 하는데요···”

“꺄아!”

“오빠! 나 죽어!”


아쉬움은 순식간에 탄성으로 변했다.

윤혜선이 말했던 것처럼 노래의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팬들은 물론 상범이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바쁜 와중에 찾아온 모두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준비하길 잘했다.


“부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예쁘게 봐주시고 잘 들어주시면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이대로 앨범까지 가즈아!”


스태프들이 열심히 준비해준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며 나는 조심히 마이크를 잡았다.

천장의 조명이 내 주변으로 백색의 원을 그린다.

응원과 함성으로 가득 찬 무대가 삽시간에 침묵으로 젖어 든다.

미약한 온기마저 느껴지는 조명 아래서, 격동하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곧이어 간주가 흘러나온다.

몇 번이고 준비했던 노래.

이번 마녀의 남자의 OST로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노래, [그대에게].

본래라면 남녀가 함께 부르는 노래지만, 팬들에게 불러줄 노래이기에 홀로 부를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첫 시작은 여자 파트.

이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렇게 마이크를 잡고 첫 소절을 부르려던 순간.


“그대여.”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상범이 때와 비슷한 상황.


“그대는 무엇을 위해.”


이어지는 두 번째 소절에 결국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환청인가 싶었던 추측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리 힘든 일을 버텨야 했나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간드러진 미성.

무표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도 착하고 여린, 눈부신 미모의 주인공.

서예나.

내가 입고 있는 제복과 비슷한 검은색의 드레스를 입고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무대 앞으로 나왔다.

조명 탓일까?

희미하게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양 볼이 눈동자를 스친다.


“와아!”

“세상에 서예나도 왔잖아!”

“와, 노래 미쳤다. 소름 돋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와중이라 그런지 객석에서 미약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소리는 작지만 그들 눈동자에 담긴 반가움과 동경의 감정은 결코 상범이에 비해 적지 않다.

이윽고 여자 부분의 파트를 모두 마친 서예나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다.


“그대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한 번도 맞춰본 적 없지만, 할 수 있다.

계속 연기로 호흡을 맞추고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그녀의 마음과 공감했었기에 할 수 있다.

나와 서예나는 서로의 가사에 맞춰 조금씩, 조금씩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그대가 있었기에 모두 견뎌낼 수 있었죠.”


서로의 노래가 공명하듯 무대 전체를 휘몰아쳤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며 갯바위를 깎아내듯.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과 노래의 파도가 지켜보던 모두의 귀와 감성을 뒤덮었다.

거센 폭풍의 눈 속에 나와 서예나는 눈을 맞추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혁 씨 일인 걸요. 당연히 와야죠.’


노래에 몰입하며 서로의 감정과 생각이 공유하듯 전해진다.

따스하면서도 상냥한 서예나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폭풍처럼 몰아친 노래는 어느덧 점차 기세 낮추는 간주처럼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예나를 향해 눈인사를 건네고 나는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팬들에게 전해진다.

그와 동시에 팬들은 물론 스태프와 배우들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무대로 향한다.


“여러분이 함께해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홀로 배우의 길을 내딛는 것부터 나의 꿈을 증명하기까지, 쉬운 길은 없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했던 이 길을 무사히 걷게 만들어 준 것은 여기 있는 모두의 덕이다.


나 한 명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기꺼이 여기까지 와준 팬들.

그리고 나를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선물을 보내준 상범이와 서예나, 연하윤.

마지막으로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김수아와 박아영 등등.

어플인 보은을 시작으로 그들은 내게서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사실 정 반대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것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늘 하는 말이면서도, 이 자리를 빌려 제대로 전하고 싶었던 한 마디.


“감사합니다.”


못내 표현하지 못하고 담아두기만 했던 한마디가 전체로 울려 퍼진다.

약동하는 감정과 더불어 가슴 한편으로부터 따스하게 퍼져나가는 온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전신이 따뜻해진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눈시울을 숨기고, 닫혀 있던 입술이 초승달과도 같은 미소를 머금는다.

어스름한 달이 빛날 수 있게 도와준 밤하늘을 수놓은 100개가 넘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껏 전하지 못한 진심을 가득 담아 소리를 내었다.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한마디를 끝으로.


“와아!”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함성이 객석과 무대를 뒤덮었다.


작가의말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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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Act 39. 마음의 치료사 - (3) +19 21.01.02 11,142 308 17쪽
38 Act 38. 마음의 치료사 - (2) +14 21.01.01 11,219 305 19쪽
37 Act 37. 마음의 치료사 - (1) +22 20.12.31 11,714 321 20쪽
36 Act 36. 마녀의 남자 - (3) +24 20.12.30 12,175 289 18쪽
35 Act 35. 마녀의 남자 - (2) +16 20.12.29 12,104 296 20쪽
34 Act 34. 마녀의 남자 - (1) +14 20.12.28 12,897 293 20쪽
33 Act 33. 꿈이 무엇입니까? +12 20.12.27 12,756 304 19쪽
32 Act 32.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4) +13 20.12.26 12,709 294 20쪽
31 Act 31.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3) +12 20.12.25 12,431 286 17쪽
30 Act 30.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2) +20 20.12.24 12,724 308 20쪽
29 Act 29.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1) +18 20.12.23 13,175 30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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