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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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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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0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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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호북 湖北 5)

DUMMY

“단목우! 네놈의 식솔들을 내가 사야겠다. 마침 종복도 필요하고 수하들 노리개로 쓸 만한 여인네도 있어야 하던 참이니, 열 냥씩 쳐서 모두 삼백 냥을 주마. 어때 괜찮은 조건이지 않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단목우가 연휘의 말에 가뜩이나 구겨진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허나 그의 말은 끝을 맺을 수 없었다. 연휘가 놈의 대답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끌려온 식솔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냐! 네 놈은 그렇게 해왔지 않은가! 동호에 있는 작은 어촌에서, 소녀들이 마음에 든다고 이렇게 흥정을 하지 않았나! 게다가 흥정을 거부하자 어떻게 했나! 그들을 어떻게 했냐는 말이다!”

“그, 그건... 그들은...”

단목우가 말을 못하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도대체 그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른가! 네놈의 식솔들과 그들은 다르다는 것이냐!”

“그, 그렇소. 그들과는 신분이 다른 것이오. 어찌 그들과 내 식솔들을 비교할 수 있겠소.”

궁색한 변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다르다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 단목우의 입장에서는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인 것이다. 이미 쏟아진 말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막상 말을 하고는 사색이 되어 버린 단목우였다.

“퍼억! 퍽! 퍽!”

“끄아아악! 끄으으.”

“무엇이 다르냐! 신분은 누가 정한 것이더냐! 이제부터 네놈의 신분을, 식솔들의 신분을 네놈이 말한 그대로 만들어 주겠다. 만일 흥정에 응하지 않고 거부한다면, 동호의 어촌과 똑같은 모양이 되고 말 것이다!”

연휘의 분노에 모두들 말을 잃고 있었다. 지금까지 직접 손을 대지 않았던 연휘였다. 그랬던 그가 단목우의 말로 인해 더는 참지 못한 것이다. 그가 단목우의 전신을 무자비하게 다지고 있었다.

“크헉! 그만. 그만하시오. 그만, 내가 잘못했소. 제발 그만 때리시오. 으허헝! 제발 그만해 주시오.”

“아프더냐! 네놈이 이리 맞는 것은 아프고, 남들이 맞는 것은 재미있더냐! 나도 재미 좀 느껴보련다. 네놈이 그렇게 좋아했던 재미를, 나도 느껴 봐야겠다는 말이다!”

“크흐, 허헝! 그만요. 제발 그만해요. 나리 제발 그만 때려요. 으으헝!”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망가져있던 몸뚱이였다. 헌데도 연휘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단목우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이젠 아이들 마냥 사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신마저도 완전히 망가져 가고 있는 까닭이었다.

“모두 들어라! 이제부터 단목우와 그의 식솔들이, 무맹 호북지부에서 누려왔던 모든 권리를 박탈하겠다. 이들은 집도 절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살아갈 능력도 없다. 해서 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쓸모가 있을 터이니, 필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고 선택하라!”

중인들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경악할 말을 쏟아내는 연휘였다. 단목우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식솔들, 또한 호북지부원들 마저도 제대로 영문을 모른 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단목우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보복을 당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헌데 느닷없이 식솔들을 노예마냥 처분한다는 것이다. 놀랄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네놈은 열 냥이 맘에 안 드는 것이냐! 그렇다면, 삼십 냥씩 쳐주겠다. 거기에 덤으로 일백 냥을 얹어 주겠다. 이래도 싫으냐!”

연휘가 다시 단목우를 보며 식솔들의 몸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단목우는 그저 고개만 젓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것으로 보였다.

“네놈은 이미 모든 권리를 잃었다. 동호의 어촌보다 못한 상황이란 말이다. 헌데도 네놈의 식솔들을 사겠다는 흥정을 거부한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뜻대로 해야겠다. 그들처럼 똑같이 만들어 주마.”

“자, 자 잘못했소. 죽을죄를 지었소. 그러니 제발 나 하나로 끝내주시오. 식솔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부디 나를 죽이고 저들을 풀어주시오. 제발.”

동호의 어촌처럼 몰살시키겠다는 말에 단목우가 식솔들을 챙기며 사정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연휘에게 맞을 때 보였던 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허나 연휘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네놈의 잘난 목숨하나로 저들을 풀어주라고! 네놈의 식솔들은 죄가 없다고! 동호의 그들이 무슨 죄가 있었더냐! 도대체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마을 하나를 통째로 몰살시켰다는 말이더냐! 네놈의 목숨이 그들의 값진 삶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크흑!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시오. 제발 용서해 주시오. 크흐흐흑!”

“용서라 했느냐! 죄 없는 사람 죽여 놓고 용서를 빌면 다 해결된다는 말이냐! 나도 그리해야겠다. 네놈의 식솔들을 모두 죽이고 네놈에게 용서를 빌어야겠다. 그리하면 네놈이 용서를 할 것이냐! 내 이제 하나씩 죽이고 한 번씩 용서를 빌어주마! 네놈은 반드시 용서를 해야 하느니라!”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단목우의 몸이 꿈틀거리며 연휘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통한의 오열을 터트리며 간신히 움직이는 것이다.

“크흐흑! 제발! 제발 용서해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네놈은 그렇게 애원하며 울어대는 사람들을 죽일 때 어떤 감정을 느꼈더냐! 아이들이 개미를 밟아죽일 때처럼 그렇게 재미있었더냐! 유택! 식솔 중에서 한 놈 끌고 와라!”

마치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연휘의 말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유택이었다. 즉각적인 응대가 없었던 것이다.

“어서 끌고 오지 못할까!”

연휘의 이어진 호통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유택이었다. 후다닥 앞으로 나서더니 초로의 노인을 잡아끌고 있었다.

“끄아아아! 아니야! 나를 죽여줘! 내가 죽을 테니까 저들을 놔줘 제발!”

단목우의 비통한 울부짖음이 보고 있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모두 들어라! 무맹 호북지부 좌호법인 단목우는, 열흘 전 동호의 어촌에서 마을에 있던 소녀들을 보고 음심이 동해 그녀들의 부모에게 흥정을 걸었다. 부모가 거절을 하자 탐욕을 주체하지 못한 놈은, 어촌을 불 지르고 주민들을 모두 몰살시킨 후 소녀들을 강제로 끌어다 욕심을 채웠다. 아이들의 부모를 죽이고, 그날부터 어제까지 무려 열흘이라는 시간을 놈의 노리개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려 한다. 내 방법이 잘못 된 것인가! 그리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그 이유를 설명하라. 그것이 타당하다면 더는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대략 보기에도 수백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지부주를 비롯해서 수뇌부가 몽땅 잡혀있는 상황이었다. 감히 손을 쓸 수가 없는 그들인 것이다. 헌데 적으로부터 엉뚱한 행동이 이어지더니 느닷없이 단목우의 행실을 읊어대고 있었다. 그들도 대충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들에게 사유를 대라고 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네놈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행실을 돌이켰을 때, 단목우같은 놈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지금 이놈처럼, 네놈들의 식솔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보아라. 네놈들에게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어땠을 지를 느껴보라는 말이다!”

연휘의 울분이 가득한 말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도 말은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렇게 조용함을 보일 수 없었다. 단목우와 그의 식솔들이 눈앞에서 당하는 것을 봄으로 인해 현실감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위진의 죄과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머지 놈들도 마찬가지이며, 이것이 지금 무맹이 처해있는 현실인 것이다. 말로는 협의를 부르짖고 정의를 표방하는 네놈들이지만, 실제로는 힘없는 자들에게 흉신악살보다도 더한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전체가 썩었다. 나는 그래서 칼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힘없는 자들의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칼을 든 것이다. 허나 이제 더는 의욕이 없다. 네놈들의 지난 죄과를 들춰내면 낼수록, 내 심장이 감당을 못하는 것이다. 너무 더럽고 악취가 나서 숨을 쉴 수가 없단 말이다. 네놈들 따위에게 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원한을 어찌해야 하겠느냐! 도대체 어떤 위로를 해야 그들의 원한이 풀어지겠냐는 말이다!”

암울한 현실이었다. 한 개인의 힘으로, 작은 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하기 힘든 것이다. 대부분의 힘 있는 자들이 연휘의 적이었다. 의혈문의 척결대상이었다. 강호의 무수한 문파와 무인들을 놓고 본다고 해도, 무려 이십만이 넘어가는 무맹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빌붙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까지 따지게 되면, 일백 만이 훨씬 넘어갈 것이었다. 그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타오르는 분노와 의기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인간의 심장을 가진 그들로서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연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약한 자신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결코 아니었다. 썩어버린 세상과 그로인해 핍박을 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의혈문도들이 울고 있었다. 호북지부원들마저 같이 울고 있었다.


천수까지는 이제 지척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게 된 까닭에 여유가 생긴 모용강이다. 헌데 그런 그에게, 실로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세가로부터 날아든 소식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하나의 방이었다. 그가 지금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 모용강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의혈문에서 알린다. 나 의혈문주 연휘는 썩어버린 강호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쥐꼬리보다도 못한 힘을 가지고 약한 자들에게 갖은 패악을 부리는 무리들의 행태를, 그저 좌시하고만 있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이제 정식으로 나와 의혈문의 행보를 공개하려 한다.

의혈문은 무맹 운남지부를 주축으로 하여 문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안하무인으로 패악을 일삼고 있던 언가를 처단했다. 언가 삼형제를 비롯해서 가주 언치성과 사천의 수하들을, 놈들에게 당한 원혼들의 제물로 바친 것이다. 또한 무맹 귀주지부의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역시 언가와 같이 처리했으며, 내륙으로 들어온 해남의 쓰레기들을 처단했다. 호북지부의 위진을 비롯한 수뇌 열 놈에게도, 그들이 행한 것과 똑같이 베풀어 줄 것이다. 지금 이렇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은 더는 이들과 같은 패악이 없기를 바라는 까닭인 것이다. 저들과 같은 전철을 밟기 싫은 자들은 좀 더 자중하고 지난 과오를 돌이켜, 자신으로 인해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의 행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드는 자들은, 언제나 목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미 처단한 자들의 죄과를 밝힌다........“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

모용강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강호에 아직도 이런 자가 있었단 말이지... 외롭지는 않겠군... 연휘라는 인물과 의혈문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하도록!”

드디어 모용강이 연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수하가 달려와 다급하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은하장의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족히 일천은 되어 보입니다. 어찌 대응해야 할 것인지, 하명하여 주십시오.”

“허어,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그래, 그들이 뭐라 하며 길을 막더냐?”

수하가 난감한 듯, 머뭇거리다 답을 하고 있었다.

“통행세를 내라 합니다. 이곳은 은하장의 영역이니, 두당 한 냥씩의 은자를 내지 않으면 우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한 듯 얼굴이 굳어진 채, 수하가 말을 이었다.

“허어, 트집이로구나. 은하장이 소림과 연이 닿다보니,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이야. 저들도 의혈문의 일을 알고 있을진대, 어찌 저럴까, 허허.”

“저, 어찌 해야 할 지...”

“가보자. 어떤 자들이 그리도 안하무인인지 한 번 확인해보자. 허허.”

모용강에게서는 강자의 여유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가 말을 서서히 몰아 전방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무리들이 삼엄한 태세로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은하장의 무리들인 것이다. 모용강이 앞으로 나서자 그 중 한 사내가 따라 나서며 다소 오만한 말투로 물어왔다.

“은하장의 총관 고영이라 하오. 이곳 천수는 본 장의 영역인 관계로, 지나기 위해서는 통행료를 물어야 하오이다. 모용세가 분들이라는 점을 참고하여 점잖이 말씀드리는 것이니,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웃음을 머금고 있던 모용강의 얼굴이 다소 굳어지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허어, 천수의 땅을 모두 은하장에서 사들인 것인가? 그렇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이네만, 소유주도 아니면서 통행세를 받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네. 천수 전체의 소유를 확인해 준다면 내 두 말 않고 양보하지.”

대뜸 하대를 하는 모용강이었다. 그의 말에 고영의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까닭이었다.

“문서가 있다면, 좀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갈수록 태산이었다. 모용강의 말은 완곡한 거부였다. 또한 확인이 안 된다면, 그냥 밀고 지나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단지 이들의 발을 묶기 위함이었지만, 자칫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지금 문서를 확인시켜 줄 수는 없소. 허나 이곳 천수의 모든 사람들이 은하장을 그리 대하고 있으니,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오. 허니 어서 통행료를 지불하도록 하시오.”

“그렇다면, 은하장의 땅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그 경계를 벗어나서 지나가도록 하지. 안내해 줄 수 있겠는가?”

계속되는 모용강의 하대였다. 고영의 기분이 좋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모용강이었다. 허나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쉽게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안내를 해 줄 까닭이 없지 않소? 구태여 번거로움을 감내해가며 그리 할 생각은 없소이다. 그리고 말이 너무 짧은 것 같소.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데, 초면에 무례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십대고수라 하면, 나이를 떠나 강호에서는 최고의 자리였다. 모용강의 하대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모른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허나 고영이 자신의 신분을 모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행차를 막을 정도라면 이미 상대의 신분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조사했을 것인 까닭이었다.

“허허, 맘에 안 들면 말을 짧게 하지 그러나?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리 길게 말을 하나?”

모용강의 도발에 결국, 고영이 넘어오고 말았다.

“좋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원망 말도록 해라. 모용세가의 떨거지쯤이야 식후 소일거리도 안 될 터이니, 후회해도 이제 소용없는 일이다. 검왕 이라는 이름에 주눅들 우리가 아니란 말이다.”

“허허, 한 번 해보자는 소리인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 하지만 이들 가지고 될까 싶네만, 이왕이면 권절노사도 부르는 게 어떤가?”

“이이익! 감히 네놈이 노가주님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얘들아 모두 쳐라! 모용가의 떨거지들에게 은하장의 본때를 보여주도록 해라!”

강아지도 자기 집 마당에서는 행세를 하는 법이다. 하물며 권절의 그늘에 있는 그들이었다. 대단한 기세를 뿌리며 달려드는 것이다.

결국, 천수로부터 검왕의 신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단목우와 어떤 관계인가!”

유택에 의해 끌려나온 초로의 사내를 보고, 연휘가 냉엄하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너무도 엉뚱하기만 했다.

“허헉! 나, 나으리 저는 종복입니다요. 나으리.”

“허허, 유택!”

“예!”

“종복들은 따로 구분해라. 그리고 직계로 한 명 데려와라.”

죽을 줄 알았던 목숨을 부지했다고 생각했는지, 유택에 의해 끌려나왔던 종복이 눈물을 흘리며 옆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번엔 제법 건장한 사내가 끌려 나왔다. 이미 반항을 포기한 사내였다. 삼십은 조금 넘어 보였다.

“끄흐흐흑! 준아! 제발! 이보시오. 제발 저 아이만은 놓아 주시오!”

단목우가 끌려나오는 사내를 보고 연휘에게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네놈은 애꿎은 생명을 놀이삼아 죽여 놓고, 지금은 왜 안 된다는 것이냐! 네놈은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내 자식이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란 말이오. 내가 죽을 터이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시오.”

“아직도 네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네놈의 자식이라 해서 목숨이 중한 것이냐! 다른 이들의 목숨은 네놈 자식만 못해서, 그리도 쉽게 죽였던 것이냐! 어차피 네놈은 죽을 것이다. 헌데 네놈의 죽음으로 자식을 살려달라는 것이더냐!”

“어떤 말을 한다 해도 다 받아들이겠소. 제발 저 아이만은 살려 주시오. 이렇게 부탁하겠소. 준이를 놓아주시오.”

“더러운 놈.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로다.”

연휘가 사방을 둘러보며 에워싼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놈들도 같이 만들어 줄까! 세상을 한 번 뒤바꿔 보는 것은 어떤가! 한 번 당해보라는 말이다! 이렇게 약자가 되어서 한 번 당해 보면, 지금까지 네놈들에게 당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이 아니냐! 유택! 하륜!”

“예!”

“이곳 지부를 샅샅이 뒤져라! 그리고 한 놈도 남김없이 끌어와라!”

연휘의 분노에 찬 명령이 호북지부를 울음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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