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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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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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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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4)

DUMMY

저항을 포기한 은하장 무리들은 남충의 객잔 한 곳에 억류되었다. 물론 객잔 비용은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것으로 장만했다. 곱게 넘어갈 연휘가 아닌 것이다.

“군사가 뜻했던 바대로 했소. 이제 어찌해야 하오?”

“저들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혹여 권절의 몸이 회복되면서 문주님과 사생결단을 내려고 들 수가 있겠지만, 도천 어른이 계시니 크게 불거지지는 않을 거예요. 권절이 비록 손자의 일로 인해 이성을 잃었다 하지만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사욕에 물든 사람은 아니니까요. 팔숙 역시 마찬가지지요. 나름대로 성정이 올바른 사람들입니다. 굳이 그런 자들까지 해를 입힐 수는 없지요.”

언제 권절과 팔숙에 대해 조사를 한 것인지 그들에 대한 소혜의 평가는 좋았다. 수하들은 문제가 많았지만, 권절과 팔숙은 소일거리 삼아 그저 텃밭이나 일구면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했던 것이다.

물론 손자를 비롯해서 식솔들을 다스리지 못한 것은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본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절을 도발하고 싸움 없이 끝낸 까닭이었다.

아무리 연휘가 요즘 들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존장에 대한 예는 지킬 줄 알았다. 그런 그가 권절과 팔숙에게 그리 도발을 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결국, 소혜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제 당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들과는 전면전이 불가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두 아시겠지요?”

소혜의 말에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침묵을 고수한 채,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니 답변을 피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다들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괜히 소혜와 눈빛을 마주치게 되어 답변도 못한 채 안절부절 할 바에는, 차라리 눈길을 피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답변을 해서 소혜의 말이 넘어가게 되면 다시 원상복구 하고는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남궁기만은 달랐다. 그 만큼은 생각이 있는 자였던 것이다. 이들 중에서 유독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독 때문이겠지요. 당가의 독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남궁기의 말에 그때서야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뱉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들을 구해준 남궁기에게 질시를 보내고 있었다.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자신은 못하면서도 누군가 그걸 해결하게 되어 그것으로 인해 난처한 상황이 모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사람을 질시하게 마련이었다. 이들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남궁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당가의 독에 대항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그런 상태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열에 아홉은 당하고 말 것 이예요. 해서 당가와의 일전은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소혜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녁 무렵 시작된 회의가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난 뒤의 모습들은 한결 밝아 보였다. 원래부터 근심걱정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었지만, 얼굴 한 구석에 어두운 면이 있던 것을 부인 할 수는 없었다. 헌데 그런 어두운 부분이 모두 가시기라도 한 듯 개운한 표정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혜의 긴 얘기를 듣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권절은 억류된 방안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이를 갈아댄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부서진 채 안돈(安頓)되지 않은 마음 상태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남욱이 그런 권절에게 다가가 앉았다.

“형님, 놈들이 왜 우리를 사로잡은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살려둬야만 하는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 했겠지. 결코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야. 놈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지 쉽게는 안 될 것이지.”

“게다가 이렇게 방치하듯 내버려두는 것은 또 무슨 심사랍니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놈들입니다.”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죄다 막아 놨을 것이야. 어차피 금제를 당한 것도 아니니 몸을 추스른 후에 나가봐야겠다.”

허나 그들이 그렇게들 얘기하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휘가 권절을 찾은 것이다. 팽완과 소혜도 동행하고 있었다.

“깨어났으면 얼굴 좀 봅시다.”

“......”

연휘의 말에 짐짓 모른 척하며 기척을 죽이는 권절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 온 연휘를 어찌 대해야 할 지 판단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위선배, 팽완이오. 어지간하면 나와 보시오. 얘기 좀 해 봅시다.”

이번엔 팽완이었다. 그가 연휘의 뒤를 쫓았다는 것과 둘이 대결을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권절이다. 허나 그런 팽완이 연휘와 나란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들 둘이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생각외의 일이었던 것이다. 남욱이 권절을 보며 어찌할 것인지 답을 구하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위선배, 할 얘기가 있소. 좀 나와 보시구려.”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고심하던 권절이 결국, 다시 재촉하는 팽완으로 인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얼굴에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불안한 내심을 모두 감출 수는 없었던 권절이다. 한편으로는 팽완의 등장에 의아함도 들고 있었다.

“도천이 어이해서 무림공적과 같이 있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는 상황이구먼, 설명 좀 해 주겠는가?”

비록 신체적인 속박은 없다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하의 권절이 연금 비슷한 상황에 빠졌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어넘길 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무림공적이었다. 권절의 말투에는 그런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민망함인 것이다.

“허허, 성미도 급하시오. 허나 그만큼 마음이 급할 것이니 내 얘기를 해 드리리다. 일단 저쪽 정자로 가십시다.”

팽완은 권절과 단 둘이서만 정자로 향했다. 연휘와 소혜 그리고 팔숙 등은 권절에게 있어서 부담스럽기만 할 뿐인 까닭이었다.

의혈문이 일어선 연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함과 동시에 귀주와 언가를 비롯해서 해남파 그리고 호북지부의 일에 이르기까지 장황한 얘기를 마친 팽완이었다. 그런 와중에 위진에 대한 부분을 꺼낼 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팽완을 노려보기만 하던 권절이다.

“그래, 의혈문의 행사가 옳다고 칩시다. 도천이 보기에도 그랬다면 강호의 홍복이라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아는 내 혈육이오. 혈육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해결했어야 할 일이지 남의 손을 빌릴 이유는 없는 것이오.

더구나 그냥 훈계정도로 끝내지도 않았잖소. 아이들을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부족해서 빈민촌에 버렸다는 일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오.

자고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소. 그렇게까지 심하게 대했어야만 하는 까닭이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이미 저항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너무 한 처사가 아닌 가 싶소.

모든 것을 떠나 할애비로서 손자를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뿐이오. 의혈문은 차치하더라도 연휘 만큼은 내 손으로 똑 같이 만들고 말 것이오.”

권절의 긴 얘기가 끝나자 팽완의 말이 이어졌다.

“그들의 흉악한 심성은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았지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욕망의 대상이 되어 죽어 갔습니다. 은하장 역시 다를 바가 없을 것이지요. 선배를 비롯한 팔숙들이야 어차피 장원 깊숙한 곳에서 소일이나 하며 지냈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가 않지요. 한 번 확인해 보시구려, 그러고 나서 판단을 해야 될 듯싶소이다.

그리고 우리 문주와의 대결에 대한 것은 꿈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소. 내가 이미 비무를 해봐서 잘 알고 있는 일이오. 만일 제대로 붙는다면 나는 백초를 버티지 못할 것이오. 예전의 검왕을 생각나게 하는 무위요.

그러니 그보다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무창에 가서 손자를 데려다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외다. 죽은 것은 아니니 말이오.”

팽완의 말은 권절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연휘의 무위가 자신들을 능가한다는 때문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손자에 대한 복수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었다.

권절의 얼굴이 낭패감을 이기지 못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지 한 번은 붙어봐야 할 것이었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권절의 모습은 어쩐지 힘이 없어 보였다.


모용강은 정주까지 이틀이 채 남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처음과는 달리 그다지 급하게 서두르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제갈천을 처리한 이상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들어서고 있는 곳은 낙촌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백호(百戶)는 되는 곳이다. 지나는 곳마다 그를 보려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던 터였다. 당연히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민초들에게 있어서 희망이 되는 까닭이었다.

크게 관심이 없는 자들마저도 그를 보기위해 나서고 있었다. 연유야 어찌됐든지 지금은 모용강이 승자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사람들이 현재의 무맹에 식상한 탓도 있었던 것이다.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무맹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각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을 터였다. 결코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무맹입성을 막으려 갖은 수단을 동원할 것이 틀림없었다. 허나 그런 것조차도 모용강에게는 흥밋거리가 되고 있었다.

“맹주님, 잠시 쉬시는 것이 어떨지요. 다들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마을에서 쉬게 되면 민폐가 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쉴 만한 곳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용강이 쉴 것을 허락하자 모용관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지시를 내리려는 것이다.

“선발대 몇을 뽑아 쉴만한 곳을 찾아보도록 하라. 서두를수록 휴식이 늘어날 것이니, 빨리들 움직여야 할 것이다.”

“대주님 말씀대로 빨리들 서둘러라! 늦을수록 손해다! 하하!”

선발대로 지명된 수하들이 우르르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화음현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식이었다. 모두 팔천오백의 인원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민초들의 원성을 사게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마을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하들이 활기들 띠고 달려 나가는 까닭이었다.

거의 하루를 그렇게 꼬박 행군했던 이들이다. 쉴 곳을 찾으라는 말에 서두르는 수하들의 마음이 전해진 때문인지, 가볍게 웃음을 떠올릴 수 있었던 모용강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에게 반(反)하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심 조급함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늦어도 이틀이면 무맹에 들어서게 될 것이고 그로부터 역사는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무맹을 이끌겠다는 그의 원대한 포부만큼 밑에서 잘 따라 줄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자신이 잘 할수록 수하들 역시 잘 따라 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듯이 자신은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결과는 하늘이 내릴 까닭이었다.

제갈문이 준비한 십대고수 넷의 합공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모용강이었다. 가장 큰 난관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구는 적들의 기척이 모두 사라지고도 이틀이나 더 은신해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탓이었다. 허나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수하들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는 날이면 그들 열 명의 목숨은 그것으로 끝나는 때문이었다.

풀숲으로 뒤 덮인 곳의 땅거죽이 살짝 들렸다가 곧바로 내려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또다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게 모두 세 번의 같은 현상이 일어난 뒤에 이구를 비롯한 수하들이 은신처에서 나오고 있었다. 은신처를 잘 갈무리한 그들이 곧 그 자리를 떠나자 수풀은 또다시 적막만이 남게 되었다.

무맹원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검왕의 일로 인해 모두들 철수한 상황이었다. 허나 이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정보를 수집할 여력이 없었다. 홍구까지는 능선을 탈 수밖에 없는 그들인 것이다. 최소한 열흘은 걸리는 거리였다.

산길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구의 눈에 얼핏 불안함이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추적당한 것처럼 사천으로 향한 연휘의 일행도 추적을 당해 곤경에 처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허나 지금 그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최대한 빨리 홍구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능선을 날 듯 하는 것처럼 달려 나갔다.


암제 당가량이 이끄는 칠천의 당문도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진군하고 있었다. 마치 소일거리라도 하러가는 양 긴장감이 보이지 않고 있는 이들인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인원이면 일반 무인들 삼만 정도와 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전력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자부심과는 또 다른 자만이 깃들어 있는 것도 모두 그런 까닭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허어, 이놈들아 어지간하면 조금은 숙연한 모습도 좀 보여줘 봐라. 어찌된 놈들이 그저 밖에만 나오면 살판이라도 난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냐. 적당히 좀 해라, 이놈들아. 하하하.”

“대주님, 매일같이 안에서 수련만 하다가 이렇게 한 번 나와 보시고 말씀하십시오. 저는 성도를 벗어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이, 아린 우리가 얼마 만에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나나?”

“이년 하고도 칠 개월만이네, 대주님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쯤은 나들이 삼아 좀 데리고 나와 주십시오. 건수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하하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렇듯 화기애애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당문의 문도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당문도들의 행렬을 얼마 전부터 따르고 있었던 의혈문도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들은 그저 손쉬운 사냥감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만큼은 철저히 조심해야 하는 까닭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 것들, 어째 파벌에 속한 놈들 치고 제대로 된 것들을 볼 수가 없는 것 같네.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저 인원수만 믿고 설쳐대는 꼴이라니, 저러다가 한 번 당하고 나면 꽁지를 말게 될 거면서, 허허.”

“대부분이 그렇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몇 놈만 모이면 온 세상이 자기 것인 양 설쳐대고는 하지. 참으로 한심한 군상들이야.”

양위와 팽호였다. 당문도들의 뒤를 따르는 의혈문을 인솔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런 그들의 눈에 비친 당문은 한 마디로 오합지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차피 놈들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인해 사주경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방만한 무리였다. 독만 아니라면 그저 단숨에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고 뒤를 따라야만 하는 심정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갈수록 놈들이 한심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양위와 팽호였다.

그리고 그런 당문의 고난은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수녕이라는 소읍을 반나절 가량 앞에 두고 곡성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지만 칠천의 당문도들을 수용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모두 합해야 삼백호가 될까 싶은 마을에 칠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쳤다.

방을 모두 합해봐야 천개가 될까 싶은 곳에서 마을사람들은 방을 비우고 밖에서 밤을 지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말 한 마디 할 수가 없었다. 언짢은 기색이라도 비쳤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이 달아날 까닭이었던 것이다.

좁은 방안에 보통 대여섯의 당문도들이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방이 부족하자 일천 가까이 되는 인원이 마을 주변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시가 지나는 즈음해서 의혈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는 가장 외곽에서 노숙을 하는 당문도 들이었다. 십인대 단위로 노숙을 하던 놈들은 노숙하던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사사삭! 스스슥!”

“큭! 커컥! 끅!”

외곽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십인대 하나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곧이어 그 옆의 십인대 역시 뒤를 따르고 말았다. 그렇게 밤사이에 사라진 십인대만 무려 오십에 달하고 있었다. 인원수로 따지면 오백이나 되는 인원이 당한 것이다.

허나 그런 사실은 아침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경계를 소홀히 한 것도 있었겠지만, 누가 감히 사천에서 당문을 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자만이 불러온 결과였다.

날이 밝고도 햇살이 훤히 비치는 아침이 되면서 곡성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나고 말았다. 오백의 인원이 사라진 것으로 인해 당문이 발칵 뒤집힌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이냐! 누가 해명을 좀 해 보거라!”

당가량의 호통이 곡성을 쩌렁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하는 자가 없었다. 모르는 것을 어찌 말할 수가 있을 것인가.

“네놈들은 모두가 밥버러지들만 모였단 말이냐! 밤사이에 오백의 인원이 사라졌는데 어찌 한 놈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더냐! 그러고도 네놈들이 당문도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냐!”

백인대주가 급히 달려와 잔뜩 독이 오른 당가량에게 보고를 올렸다.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흔적은 모두 한 쪽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놈들이 교묘하게 감추려 했던 모습도 보입니다.”

“당장 추적대를 붙이도록 하라. 감히 사천에서 내게 시비를 걸어오다니 어떤 놈들인지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

추적대라 했지만 어찌 생각하면 토벌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인원이 투입되고 있었다. 삼천에 가까운 인원이 곡성 마을 뒤편의 산을 샅샅이 뒤지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 깊은 산은 아니었지만 주변을 수색하며 움직이다 보니 그리 빠른 속도의 이동은 보이질 않았다.

추적대를 인솔하던 천독귀룡(千毒鬼龍) 당결은 답답했다. 놈들은 벌써 멀찌감치 도주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자신들은 수색을 하느라 움직임이 너무 굼떴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인원을 모두 셋 으로 나눈다. 일천씩 해서 제일 앞서는 자들은 빠른 속도로 전진한다. 두 번째는 그보다 조금 뒤에서 역시 빠르게 수색하며 움직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좀 더 자세히 수색하며 이동하도록 한다. 너무 느리게 움직임으로 인해 놈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속히 시행하도록 하라.”

수하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당결 역시 맨 앞에서 서두르며 달려 나갔다. 허나 그들이 그렇게 달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사라진 동료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없었다.

처음엔 곡성 근처를 멀리 벗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두 시진이나 산을 타고 이동해온 당결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그가 급기야 수하들을 멈추고 말았다. 오백이나 되는 자들을 제압해서 데리고 이동했다면 이렇게까지 멀리 오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곡성에서 본 놈들의 흔적은 채 오백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결코 예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옆에 끼고 이동하는 놈들이 두 시진 동안을 줄기차게 달린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모두 돌아간다. 가는 길에는 좀 더 세밀하게 수색을 하도록 하라. 아무래도 놈들이 숨은 곳을 지나친 것 같다. 암습에 주의하고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말고 살펴라.”

결국 당결은 수하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선 당결의 뒤를 다시금 의혈문이 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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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7.06.18 19:05
    No. 1

    잘 보고 갑니다..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엿l마법
    작성일
    07.06.18 19:10
    No. 2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3 자류
    작성일
    07.06.18 19:48
    No. 3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바람난천사
    작성일
    07.06.19 00:30
    No. 4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청학
    작성일
    07.06.19 01:25
    No. 5
  • 작성자
    Lv.99 zio5370
    작성일
    07.06.19 07:48
    No. 6

    건필 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청우도사
    작성일
    07.06.19 13:01
    No. 7

    처음부터 장장 이틀에 걸쳐 열심히 읽었습니다
    정말 재밌게 잘 봤고요..
    간단하게 감상평을 올립니다
    전체적으로 정말 재밌습니다만 조금은 아쉬운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 무맹이 아무리 썩었다고는 하나 묘사가 너무 악랄한것 같습니다
    무맹의 맹주가 권무술수만 가지고 되지는 않다고 봅니다
    더구나 정도를 표방하고 있는 무맹인데...
    맹주와 장로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구성원이 이런식으로 썩었다면
    마교보다도 더한 나쁜 조직인거지요..
    그 밑에 각 대주나 지부장 백인장들도 죄다 썩었던데..
    이래서는 진작에 해체 되었을듯.(무맹이 20년이상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째는 너무 많은 인원의 구성입니다
    천여명 많게는 일만 오천명의 인원이 몰려다닌다면 관이나 정부에서
    보고만 가만히 있었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 지는데.....아마도 역모로 몰리지 싶네요
    그리고 이삼백명이 넘어가면 먹고 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삼사천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무런 보급없이 몇달씩 산으로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먹고 자고 입어야 하는데..)

    셋째는 정도무인들이 아무리 악랄해도 일반인들을 함부로 헤치지는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물론 개중에 인간이 덜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무맹처럼 버젓이 지부장을 필두로 아무나 죽이고 강간하고 마을을 완전
    히 몰살시키는것은 조금 무리라 생각 되네요
    맘에 안든다고 죽이고 행패 부린다면 그게 흉악한 사파나 마교도지
    정도 무인은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썩었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고수와 고수간 대주급과 대주급등 무력 차이가 너무 나는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삼류,이류,일류,고수,절정,초절정 ,신화경, 현경등
    상대적으로 같은등급이면 둘이상을 이기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너무 간단하게 정리되는군요
    아울러 각 세가및 구파일방(맞나요?)정도의 장로라면
    아마도 왠만한 무인하고는 비등한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무가는 강한자들을 가주나 장로로 임명하는걸로 압니다)

    별볼일 없는 독자가 넋두리 한번 했습니다
    그냥 소설은 소설일뿐이라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재밌게 봤기에 그저 몇글자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송담님께서 보시기에 불편하시다면 죄송하고요
    눈에 거슬리면 물론 지우셔도 상관 없습니다

    더욱 좋은글 부탁드리고요 ^^*

    이 댓글 때문에 기분 나빠하진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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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1 송담(松潭)
    작성일
    07.06.19 13:56
    No. 8

    절대로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진즉부터 이런 말씀을 고대했었지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무맹 전체가 매도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욕심을 부리다 보니 전체적인 면을 보지 못한 탓이라 생각됩니다.
    처음 쓴 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헛점이 너무 많네요.^^;
    다음 작품에서는 그런 면을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직은 햇병아리라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뚜레박
    작성일
    07.06.19 18:43
    No. 9

    잘 보고 갑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철혈기갑
    작성일
    07.06.23 23:35
    No. 10

    건필하시길~..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뱃살이랑
    작성일
    07.06.24 15:45
    No. 11

    물고 물리고...허참 그만한 인원이 숙박을 하는데 경계병하나도 없다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2.08.12 09:21
    No. 12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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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강호풍운록(욕망 慾望) +27 07.06.26 16,356 49 21쪽
73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8) +17 07.06.24 10,325 61 21쪽
72 강호풍운록 (맹주 盟主 7) +12 07.06.22 9,715 64 17쪽
71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6) +13 07.06.21 10,057 63 19쪽
70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5) +13 07.06.19 10,485 66 19쪽
»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4) +12 07.06.18 10,941 66 21쪽
68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3) +12 07.06.17 11,664 65 20쪽
67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2) +15 07.06.15 11,549 65 20쪽
66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1) +12 07.06.14 11,156 74 20쪽
65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8) +17 07.06.13 11,494 71 19쪽
64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7) +12 07.06.12 11,061 73 19쪽
63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6) +12 07.06.11 11,162 68 19쪽
62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5) +15 07.06.08 11,656 66 20쪽
61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4) +13 07.06.07 11,072 70 19쪽
60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3) +11 07.06.06 12,035 69 20쪽
59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2) +10 07.06.05 11,763 67 19쪽
58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1) +13 07.06.04 12,348 70 19쪽
57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5) +15 07.06.03 12,680 76 19쪽
56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4) +15 07.06.02 12,519 73 16쪽
55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3) +12 07.06.01 12,667 81 16쪽
54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2) +11 07.05.31 13,972 73 16쪽
53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1) +12 07.05.30 13,780 73 14쪽
52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5) +8 07.05.30 13,810 73 12쪽
51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4) +11 07.05.30 16,144 99 14쪽
50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3) +10 07.05.29 13,489 82 13쪽
49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2) +14 07.05.29 13,271 81 15쪽
48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1) +17 07.05.28 13,904 81 12쪽
47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8) +14 07.05.28 13,390 80 12쪽
46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7) +9 07.05.28 13,387 86 13쪽
45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11 07.05.27 13,644 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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