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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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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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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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맹주 盟主 5)

DUMMY

뒤를 쫓는 의혈문의 사람들 중에서 유독 검마의 모습이 두드러져보였다. 눈을 가늘게 좁혀 뜬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었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나기라도 한 듯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움직임은 거칠었다.

‘사부... 드디어 원한을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켜보세요. 저승에서나마 웃으실 수 있도록 반드시 제자의 손으로 놈을 처리할 것입니다...’

검마라는 명호를 얻기 전에 사부를 잃었던 기억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흥분을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문에 의해 사부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당문을 치는 입장에 서게 된 터였다. 앙다문 입술이 그의 의지가 얼마나 굳은 것인지 말해주는 듯싶었다.

그런 검마를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양위다. 아픔을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양위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물며 눈빛을 독하게 가다듬었다. 검마 진여송은 남다른 사람인 것이다. 같이 일을 도모해 왔던 때문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게나. 잠시 후에는 그간 쌓아뒀던 분을 원 없이 풀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참도록 하세.”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그래, 수하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중할 줄도 알아야지.”

진여송을 다독여 준 양위가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원한을 볼 수 있었다. 당문에 원한을 가진 이는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눈빛에 깊은 원한을 담은 채 놈들을 쫓는 대원들이 반 수 가까이 되어 보였다. 진여송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적을 향한 살심을 가슴에 깊이 숨겨놓고 뒤를 쫓는 대원들이다.

양위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도대체 파벌들의 패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심어줬는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밤 습격에서 잡아 온 놈들은 모두 뒤편에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부림 치고 있을 터였다. 목적은 하나였다. 해독제를 강탈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놈들을 뒤에서부터 차근차근 해치우는 임무가 남아있었다. 모두가 해독제를 복용했다. 마음이 더욱 든든해진 그들이다.


당결은 돌아가는 길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떤 놈들인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 편으로 기필코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더욱 세밀히 찾아라! 분명 멀리 못 갔을 것이다. 어딘가에 은신한 채 우리가 지나치기를 기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가 내뱉는 말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인한 짜증이 왈칵 묻어나왔다. 수하들이 바짝 긴장하고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전보다 더욱 세심하게 주변을 살폈다. 허나 그들이 찾는 사람들은 결코 보일 리가 없었다.

“나무 꼭대기도 살펴라. 분명 숨어있을 것이다!”

당결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하던 수하들을 자극했다. 그들에게서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이제는 나무를 발로 차기까지 하며 성질을 부려댄다. 수풀을 헤치는 걸음 역시 거칠기만 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 정도로 뒤졌으면 지레 겁먹어서도 나오고 말았겠다. 에이 진짜.”

수하 하나가 당결의 영향을 받았는지 거칠게 수풀을 헤쳐 대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놈들은 없는 것 같은데 적당히 시늉이나 하다가 돌아가자고. 힘들게 찾아봐야 고생밖에 더 하겠어?”

그런 모습을 보던 옆에 있는 동료가 은근한 어조로 그의 푸념을 받아줬다. 처음에 불퉁거리던 사내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춘 그가 동료를 보며 말을 뱉어냈다.

“지금은 놈들보다도 대주가 더 위험해. 저러다 성질 제대로 나게 되면 누군가 뼈 하나쯤은 쉽게 부러지고 말 걸세. 그러니 눈에 띄지 않도록 행동 을 잘해야지.”

“콰앙! 후두두두!”

“여긴 없네. 저 쪽으로 가보세.”

일부러 소리 나게 나무를 후려친 그들이 자리를 옮겨갔다. 당결에게 열심히 수색하고 있다는 시늉을 보이는 것이다.

양위와 팽호는 그들을 빤히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조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광도나 검마 역시 서너 발짝 옆에서 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빤히 보며 이동했다.

“허어, 정말 대책이 안서는 놈들일세.”

“그러게 말이야. 애꿎은 나무는 왜 패고 저러는지, 허어. 당가도 명이 다한 듯싶네. 저런 꼴을 가주 놈이 봤어야 했는데.”

“그럼 난리가 나겠지. 허허. 그나저나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뒤에 떨어지는 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네.”

팽호와 양위가 당문의 움직임을 보며 한담이라도 나누는 사람들처럼 허허 거렸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시작하라!”

팽호가 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수하들에게 모두 전달되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당결의 수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삭, 큭!”

영문도 모른 채 숨이 넘어가는 놈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흘렀다. 하지만 당문도 중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놈들은 없었다. 죽어가는 놈이 워낙 뒤에 처져있던 까닭이다.

“사사삭, 크윽!”

“스슥, 뚜두둑!”

풀숲을 거칠게 헤쳐 대며 수색을 하던 놈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명을 달리했다. 놈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입을 막음과 동시에 목을 돌려버린 것이다.

“뒤에 처진 놈들은 뭐하고 있는 것이냐! 이놈들이 농땡이나 부리면서 퍼질러 있지는 않겠지.”

“설마 대주님 성질을 알면서도 그러지는 않겠지요. 이 잡듯 뒤지다 보니 늦어지나 봅니다.”

“이놈이 뭐라고! 내 성질!”

“하이고 아닙니다. 말이 잘못 나온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대주님.”

말 한 번 잘못한 수하가 연신 손바닥을 비벼대며 용서를 구했다. 당결이 그런 수하의 모습에서 위신을 세웠다고 생각했는지 슬며시 말을 돌렸다.

“아니야, 그래도 한 번 확인을 해 봐야해. 가서 놈들을 다그쳐야겠다.”

수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당결이다. 그가 몸을 돌려 뒤를 향해 달려갔다. 주변에 있던 수하들의 눈빛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들어났다. 전전긍긍하며 당결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었다.

“휘유, 이제 좀 살 것 같네. 저놈의 화상은 어째 조금만 짜증이 나도 이렇게 사람을 들들 볶는지 몰라.”

“원래 그렇잖아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순전히 입만 가지고 살아가는 놈이잖나. 그러려면 우리 같은 것들을 닦달해야만 하는 법 아닌가.”

수하들 둘이서 당결을 놓고 시부렁거렸다. 옆에 있던 동료가 이들 틈에 끼어들더니 체념했다는 듯 한소리 늘어놓는다.

“그렇거니 하며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괜히 불만을 입에 담았다가 혼쭐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자네들도 입 조심하게.”

“맞아, 조심해야지. 어쩌다 저놈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으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

“자, 그만들 하고 찾는 시늉이라도 하세. 언제 올지 모르는데 이러다가 정말 경을 칠 수도 있음이야.”

“쿵! 후두두둑!”

마지막으로 말을 맺은 자가 옆에 있던 나무를 후려쳤다. 화들짝 놀란 나무가 잎을 흩뿌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당결은 달려가면서 수하들이 눈에 띌 때마다 한마디씩 퍼부어 댔다.

“이놈들아! 제대로 못하나! 그것도 수색이라고 하는 것이냐! 빨리들 움직여라! 네놈들 때문에 전체가 늦어진단 말이다!”

성질을 부리기는 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불안했다. 뭔가 잘 못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커지는 불안함으로 인해 당결은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저놈이 왜 이리 오는 것이야? 일 났군.”

“혼자 인 것 같은데요.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잘됐네, 허허. 놈을 잡아라.”

광도가 당결을 발견하고는 놀랐다가 수하의 말에 다시금 살펴봤다. 이윽고 혼자 달려오는 것이 확실해지자 오히려 반색을 하며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수하들 몇이 넓게 퍼져 놈의 뒤를 향해 돌아들었다.

“쉭! 쉬식!”

“끄아!”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놈이 비명을 지르다가 멈췄다. 순간적으로 뒤에서 덮친 의혈문도가 놈의 입을 틀어막은 때문이었다. 불현듯 당한 일격으로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공포에 질렸다. 눈알만 굴려대며 광도를 쳐다보는 놈에게 무식한 주먹 한 방이 날아갔다.

“큭!”

당결은 짧은 신음을 뱉어내고 축 늘어졌다.

“셋만 남아라. 놈을 잘 구슬려서 이것저것 챙겨봐. 고급스런 것들이 꽤 많이 나올 것이야. 사용법과 해독제도 충분히 확인하도록.”

상급자인 놈이니 아무래도 수준 있는 독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광도가 모처럼만에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허나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던 그는 금방 돌아서야만 했다.

“우앗! 이게 뭐야!”

당결을 족치려던 수하가 기겁을 하며 놀라 자빠진 것이다. 놈의 품에서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나온 때문이었다. 여인네의 속곳이었다. 독이나 해독제는 일반 당문도들이 갖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직위에 비해 형편없는 놈이었던 것이다.

“허어, 어찌 이런 놈이 다 있냐? 속곳은 뭣 하러 넣고 다니는 거야?”

“저, 단주님. 놈의 취미가 나름대로 고상한 것 같습니다.”

“속곳 가지고 다니는 것이 고상한 취미냐?”

광도가 수하를 돌아보며 솔깃해 물었다. 그런 광도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수하가 당황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곧 신색을 회복하고는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광도를 몰아갔다.

“그럼요, 아직 그걸 모르셨습니까? 단주님 수준이면 벌써 몇 장 정도는 갖고 계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수하로 인해 뭔가 고심하던 광도가 이윽고 결심을 한 것처럼 당결에게 다가섰다. 정확하게는 속곳을 향한 걸음이다. 그러더니 그것을 집어 자신의 품에 쑤셔 넣었다. 수하들의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다.

차마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동료 하나가 생매장을 당할 수도 있는 까닭인 것이다. 그런 이들의 눈에 눈물이 찔끔거렸다.

“설마 놈이 돌려달라고는 안 하겠지? 혹시라도 놈이 찾거든 모른다고 해라. 절대로 내가 가져갔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알아들었느냐?”

“아, 예. 알겠습니다. 절대로 입도 뻥긋하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단주님 말씀 들었지? 이 일에 대해 우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럼요. 우리는 이놈도 처음 보는데요, 하하하하.”


계속되는 기습에 당문도들은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다. 얼추 오백에 가까운 이들이 사라진 것이다. 헌데도 당결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심을 하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더욱 풀어지는 놈들이었다. 아예 돌아갈 때까지 이대로 당결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결집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움직인다는 것과 애초부터 워낙 숫자가 많다보니 인원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당가량이 있는 본대에 가까워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놈들이다. 부리나케 당결을 찾아 나섰지만 이미 흘러간 강물이었다. 가장 선두에서 이들을 지휘하던 놈이 급하게 수하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모인 것은 이천의 인원이 다였다. 일천이나 되는 자들이 당한 것이다.

당가량의 분노를 생각한 놈은 본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삼천의 인원이 적들을 쫓다가 그림자도 못 본 채 일천을 잃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모두 본대로 복귀한다. 가주님께 일천의 인원이 당했다고 보고해라. 나는 놈들을 찾으러 돌아갈 것이다. 우리도 소수정예로 놈들의 길목을 차단한다. 서둘러라.”

놈은 그렇게 돌아섰다. 그의 뒤에는 오십 정도의 수하들만이 남았다. 그리고 놈은 복귀하는 수하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움직였다. 그러나 방향은 전혀 엉뚱했다. 본대와 의혈문의 사이를 지나는 서북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가량은 수하들이 돌아와 하는 보고를 듣고 노발대발 난동을 부렸다. 일천의 수하들이 당했다는 말에 도저히 진정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네놈들은 그냥 돌아왔다는 말이냐!”

“.....”

“이이익!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모두 출정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라. 놈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라!”

당가량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당문도들은 온 산을 헤집듯이 설쳐댔다. 그들이 지나가는 틈새로는 토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사람 살려! 누가 좀 구해 줘요!”

누군가 제법 가까운 곳에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당가량을 비롯한 모두의 관심이 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한 결 같이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그곳으로 향했다. 당가량은 어느덧 당결이 광도에게 걸려 혼쭐이 났던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꽥꽥거리며 발버둥치고 있는 놈을 보았다. 당가량의 눈에 분노와 함께 수치스러움이 떠올랐다.

“허헉! 가주님! 살려주세요. 제발, 흑흑!”

“이이 이노옴!”

당가량의 격노한 호통이 산을 뒤 흔들었다. 당결의 모습에 치미는 노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놈은 벌거벗겨진 채 칡넝쿨로 손발을 꽁꽁 묶어 높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투둑! 쿠당탕!”

“아이고오!”

누군가 손을 썼는지 칡넝쿨이 끊어졌다. 당결은 미처 아무런 대비도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하이고, 가주님. 일각쯤 전에 저 쪽으로 갔습니다. 그대로 쭉 가시면 될 겁니다. 어휴, 이거 원 창피해서.”

“놈들을 쫓는다. 서둘러라.”

당결이 말한 방향은 산이 더욱 깊어지는 곳이었다. 미간을 잔뜩 좁힌 당가량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가 했던 말은 벌써 저만치에서 들려왔다. 당문도들이 당가량을 따라 정신없이 쫓아가고 있었다. 행여나 급히 움직이는 이들에 의해 다치기라도 할까 싶어 당결은 나무 밑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느덧 순식간에 당문도들이 멀어졌다.

“가주니임! 옷이라도 좀 주고가세요!”

당결은 옷에 대해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의 허망한 외침만이 그들이 떠난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허허, 놈들이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마냥 정신없이 달리고 있겠지?”

“하여간 방군사의 지혜가 놀라울 뿐일세.”

양위가 팽호의 말에 소혜를 들먹였다. 감탄 한 것이다. 소혜는 당가량을 비롯해서 당문도들의 움직임까지도 거의 읽어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방법을 일러주며 신신당부했다. 그대로만 하면 당문은 사흘을 못 버티고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제 밤부터 시작 된 작전이었다.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소혜의 말을 믿었다. 상황이 그녀의 말대로 돌아가는 까닭이었다.

“자, 이제 또 다시 시작해야지.”

“다시 한 바탕 어울려 보자고, 허허허허!”

얼마 만에 이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는지 모르는 팽호다. 물론 양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몸을 날렸다. 주위에 은신해 있던 수하들이 그런 둘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신형을 띄웠다.


연휘가 은신해 있는 산 밑에서 놈들이 개미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으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들 준비해라. 철저히 치고 빠져야 한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게 되면 그 만큼 동료들이 죽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행동하라.”

수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잡아갔다.

의혈문은 모두 세 패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제 그물 속으로 당문도들이 들어온 것이다. 정면에서 연휘가 치고 빠지면 정신없이 쫓아오는 적들을 측면에서 팽완이 공격하고 도주한다. 놈들이 당황하며 팽완을 쫓는 사이에 후미를 양위가 친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치고 빠지는 작전이었다. 이미 독에 대한 준비는 끝났다. 놈들로부터 해독제를 강탈한 것이다.

수하들의 모습을 보며 연휘는 전의를 불태웠다. 맨 앞에서 달려오는 당가량이 보였다. 연휘가 손을 올렸다. 그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놈들은 평생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저승으로의 여행을 떠날 것이었다.


아이들이 감금된 곳은 환기를 겸한 출입구가 천정에 달려있는 지하석실이었다. 그나마도 막혀 있는 탓에 한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모두 다섯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가장 커 보였다. 갓 두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유아도 보였다. 울다 지쳤는지 네 아이는 잠들은 상태였다. 혼자 잠 못 들고 깨어있는 아이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캄캄한 곳에서 혼자 깨어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를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울음소리조차도 맘껏 토해내지 못하고 그저 흐느끼고만 있는 아이였다.

“흑흑, 엄마”

아이의 힘없는 울음만이 휑한 공간을 쓸쓸히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무맹에서 반 시진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한적한 이곳에 오래된 장원이 있었다. 그런 장원의 내실에 각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모용강을 기다리는 각료들은 피가 마르는 것을 느꼈다. 매 시진마다 애가 타들어 가는 것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저 놈은 아직도 울고 있네,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그냥 콱!”

감찰단주 구완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는지 인상을 험하게 일그러뜨렸다. 이들이 있는 내실의 지하에 석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구완을 보며 제갈문이 일침을 가했다.

“참으시오. 여기서 그들을 자극 했다가는 집안이 모두 풍비박산(風飛雹散) 나고 말 것이오.”

“그 보다도 놈이 반나절 거리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

공동의 옥현진인이었다. 모용강의 소식을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허광헌 역시 답답한 어조로 탄식하듯 말을 뱉어냈다.

“믿어 봐야지 별 수 있겠소. 그들이 잘 못 된다면 우리도 끝이오.”

“만일 그리 된다면 아이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지요. 인질로 삼아 탈출할 밖에요. 그나마 식솔들을 미리 피신시킨 것이 다행입니다.”

제갈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흑흑, 엄마. 흑...”

아직도 울고 있었던 것인지, 아이의 울음이 석실을 벗어나더니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파고들었다.

“에이, 썅!”

“콰당!”

참지 못한 구완이 일어서며 탁자를 걷어찼다. 거칠게 일어난 그로 인해 바닥을 뒹굴게 된 의자가 요란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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