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172,637
추천수 :
7,117
글자수 :
428,485

작성
07.05.27 21:02
조회
13,643
추천
87
글자
11쪽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DUMMY

해남의 문도들이 그렇게 두려움에 젖어들고 있을 때, 홍일루의 후원에서는 남명과 곽치가 여유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빗소리와 더불어 술기운이 오르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허허, 장문은 그때 생각이 나시오?”

“언제 말씀이신지요?”

느닷없이 나온 그때라는 말에,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남명이 의문을 가득 담아 되묻고 있었다.

“열 서넛쯤 되었을 때였지요, 아마? 사부님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금구의 배를 가른 것이? 내단을 꺼낸다면서, 허허.”

“허어, 사형은 별 걸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긴 참으로 철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았지요. 내단은 구경도 못하고, 허허.”

소싯적 얘기를 하는 둘의 모습에선 전장의 긴박함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담을 나눌 정도로 여유로운 것이다.

수하가 다급하게 달려와 보고를 할 때까지 그들의 분위기는 좋기만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가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장문, 속하 탈백입니다. 폭풍단이 궤멸 당했다 합니다.”

탈백의 보고내용이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 그들이었다.

“무슨 말이냐? 폭풍단이 궤멸 당했다고?”

그간의 좋았던 분위기가 이어지며, 중후함과 여유로움이 물씬 배어나오는 남명의 말이었다.

“출동했던 폭풍단이, 이백도 채 안 되는 인원만이 돌아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도대체 폭풍단이 궤멸 당하다니, 그것도 이백이 채 안 되는 인원이란 말이냐? 너는 지금,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천하의 폭풍단이란 말이다!”

남명의 호통소리에 탈백이 다급히 말을 잇고 있었다.

“주익 단주가 황망히 들어와 한 말입니다. 적의 실체도 파악 못하고 당했다 합니다. 돌아온 자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곽치가 남명에게로 몸을 돌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보고 있었다.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하들이 농을 할리는 업겠지요.”

“주익은 지금 어디 있느냐!”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기루 본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후원에서 본관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비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명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곽치가 황급히 뒤를 따르자 탈백 역시 본관으로 향했다. 한가하게 풍류를 읊으며 한담이 오가던 홍일루의 여유로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주익의 모습을 본 남명은 말을 잊고 있었다. 해남 폭풍단주라는 자리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주익은 결코 저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굴욕과 패배감, 그리고 두려움이 그에게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익의 주변에 널브러진 채, 숨을 헐떡거리며 짙은 공포에 잠겨있는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듯 곽치의 중얼거림만이 빗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거센 바람까지 동반한 폭우는 아직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연휘는 소혜가 머무는 객잔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머리에 작전에 대해 설명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들이 홍일루로 퇴각하게 되면 쫒지 말고 돌아와야 해요.”

“퇴각하는 적들을 쫓아 아예 박살을 내야 하는 것 아니오?”

연휘의 반문을 소혜는 차분히 받아 넘겼다.

“피해를 줄이려는 것이지요.”

“적들이 전열을 정비하게 되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지 않겠소?”

“생각의 폭을 조금 더 넓혀 보세요. 문주님이 적들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시고 지금 얘기한 상황을 가정해 보시면 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 보던 연휘였지만 마땅히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떠올릴 수 없었다. 그의 한계였다.

“글쎄...”

“홍일루로 퇴각한 잔당들이 전투상황에 대해 설명하게 되면, 남명을 비롯한 수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될 거예요.”

해남파는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자신들을 추적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또한 언제 공격을 당할까 하는 염려로 인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경계를 설 것이다.

그러다가 날이 밝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니 잔뜩 긴장할 것이며 그런 상태로 날을 세우게 되는 까닭이라고 설명까지 해주던 소혜였다.

그리고 그녀는 적당한 기회를 봐서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의혈문의 공식적인 등장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작전대로 되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도 그녀가 말한 대로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작전에 있어서 전혀 허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달리면서도 소혜의 차분한 모습을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띠고 있는 연휘였다.


광도는 침울한 모습으로 연휘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삼십 명 정도가 당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죽은 자는 스물둘 이었다. 요행히 여덟은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자신의 자만과 부주의로 애꿎은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광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연휘도 그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광도의 심중이 결코 편할 수만은 없었다. 그가 침울한 까닭이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대원 하나가 이상한 기척을 감지하고는 십여 명의 대원들과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었다. 객잔 맞은편 건물을 향해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은밀했다. 그곳에 있던 자가 전혀 눈치를 챌 수 없는 은밀함이었다. 이미 자신들이 서있던 곳에는 다른 조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정면만 주시하고 있던 안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안윤을 제압해왔다. 이들에 대해 궁금함이 많았던 안윤이다. 굳이 저항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순순히 제압을 당하게 된 까닭이었다.

저항을 포기한 대가로 안윤은 연휘 앞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충! 삼조장 유건, 수상한 자가 있기에 잡아왔습니다. 맞은편 건물에서 저희 쪽을 정탐하고 있었습니다.”

작전을 다시 검토해보며 휴식을 겸하던 연휘가 안윤을 보고 있었다.

“흠... 무슨 일로 우리를 정탐한 것이지? 해남문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안윤은 연휘를 보고 그가 수장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의외로 젊다는 것에 놀랐다. 해남파를 손쉽게 몰아붙이는 세력의 수장치고는 너무 젊었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고민스러워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가고 있었다.

“안윤?”

광도였다. 내내 침울한 모습을 보이며 자책에 빠져있던 그가 용케도 안윤을 알아본 것이다. 무맹에서 백인대주로 있을 때, 조장을 맡고 있던 안윤이었다. 십여 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조대주님? 어찌?”

생각도 못했던 조찬의 모습이 보였다. 놀람과 더불어 반가움이 한꺼번에 찾아드는 안윤이었다.

“허어, 자네가 이곳엔 어쩐 일인가? 더구나 우리를 정탐하고 있었다니, 어찌된 것인가?”

“그게...”

연휘가 광도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는 자인가?”

광도가 급하게 몸을 움직여 안윤의 곁으로 다가서며 대답하고 있었다. 혹여, 안윤이 잘못 되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마음에 다급했던 것이다.

“예, 제가 데리고 있던 조장이었습니다. 헌데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광도의 말에 이어 안윤의 얘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홍일루 본관이다. 전장 얘기를 들은 듯, 모두들 경악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폭풍단의 생존자들은 한 쪽 구석에서 무릎에 머리를 묻은 채,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남명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사실입니다. 그들 앞에서 폭풍단은 어린아이보다 못했습니다.”

주익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가 적과의 전투에 대한 얘기를 마치자, 남명을 비롯한 해남의 수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재차 묻는 남명에게 주익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폭풍단이 어떤 존재인지는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정체도 알 수 없는 적들은, 마치 고양이가 쥐새끼 가지고 놀듯이 데리고 놀았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폭풍단주인 주익의 말이었다.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그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주익의 얘기대로 라면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인 것이다.

“허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남명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해남의 문도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하기만 했다. 허나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곽치가 남명을 보며 머뭇거렸다. 뭔가 얘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저... 원군을 청한다면...”

“원군을 어디다 청한단 말이냐! 가까운 곳이라 하더라도 열흘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 안에 결말이 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어찌 대 해남파가 정체도 모르는 자들한테 밀려 원군을 청한단 말이냐!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허어...”

탈백이 조심스럽게 원군 얘기를 꺼내봤지만 초라해진 해남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 뿐이었다. 남명의 한숨만 더해가고 있었다.


이도 저도 못하고 골머리만 싸매는 수뇌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공론만 되풀이 할 순 없었다. 그리고 결국, 결론이 내려졌다.

“일단 경계를 강화하기로 한다. 경계서는 병력을 두 배로 늘리고 적의 습격에 대비하라. 또한 경계조가 아닌 자들도 수시로 몸을 풀어, 하시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날이 밝더라도 그 상태를 당분간 유지하도록 한다.”

남명이 결국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홍일루를 보루삼아 버텨보자는 것이었다. 비가 그치면 적의 화살 공격에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취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때까지는 경계를 강화하고 적의 습격에 대비하는 외에 달리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홍일루에 있는 해남의 수뇌부는 소혜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폭우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풍운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4 강호풍운록(욕망 慾望) +27 07.06.26 16,356 49 21쪽
73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8) +17 07.06.24 10,324 61 21쪽
72 강호풍운록 (맹주 盟主 7) +12 07.06.22 9,715 64 17쪽
71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6) +13 07.06.21 10,057 63 19쪽
70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5) +13 07.06.19 10,484 66 19쪽
69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4) +12 07.06.18 10,940 66 21쪽
68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3) +12 07.06.17 11,664 65 20쪽
67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2) +15 07.06.15 11,549 65 20쪽
66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1) +12 07.06.14 11,156 74 20쪽
65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8) +17 07.06.13 11,493 71 19쪽
64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7) +12 07.06.12 11,060 73 19쪽
63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6) +12 07.06.11 11,162 68 19쪽
62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5) +15 07.06.08 11,656 66 20쪽
61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4) +13 07.06.07 11,072 70 19쪽
60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3) +11 07.06.06 12,035 69 20쪽
59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2) +10 07.06.05 11,763 67 19쪽
58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1) +13 07.06.04 12,348 70 19쪽
57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5) +15 07.06.03 12,680 76 19쪽
56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4) +15 07.06.02 12,519 73 16쪽
55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3) +12 07.06.01 12,666 81 16쪽
54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2) +11 07.05.31 13,972 73 16쪽
53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1) +12 07.05.30 13,779 73 14쪽
52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5) +8 07.05.30 13,809 73 12쪽
51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4) +11 07.05.30 16,144 99 14쪽
50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3) +10 07.05.29 13,489 82 13쪽
49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2) +14 07.05.29 13,271 81 15쪽
48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1) +17 07.05.28 13,904 81 12쪽
47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8) +14 07.05.28 13,390 80 12쪽
46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7) +9 07.05.28 13,387 86 13쪽
»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11 07.05.27 13,644 8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