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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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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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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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풍운록(맹주 盟主 2)

DUMMY

무맹주 제갈천의 죽음이 불러온 파장은 결코 작을 수가 없었다. 천하가 술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들 입장이 달랐다. 세상이 바뀜에 따라 자신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런 반응은 크게 세 부류로 나타나고 있었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현재의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맹의 고위층들을 비롯해서 각 파벌을 이끄는 수뇌부와 중추들이 그러했다. 또한 그런 고위층과 수뇌들에 붙어 콩고물이나마 얻어먹던 자들 역시, 덩달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기득권층과 관계를 갖고 생활을 영위해 왔던 자들은 모두가 전전긍긍(戰戰兢兢)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맹주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결국 이들은 불안해했을 것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던 자가 그것을 손에서 놓고 난 뒤, 어떻게 되었는가는 익히 알고들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이번의 경우에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뒤집어엎은 것이다. 힘을 가지고 현재의 체제를 전면 부정한 채, 머리를 잘라낸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잘려버린 머리에 붙어있던 팔과 다리 등을 처단하는 일일 것이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부류인 것이다.

두 번째는 중간층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맹의 대주급 이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누가 맹주가 되느냐 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다. 어차피 자신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끼니 걱정을 해야만 하는 하층민들 까지도 이에 해당되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들로, 그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가는 그런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 설령 피해가 온다 하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상대일 경우 그냥 회피하며 손해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사람들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층민들의 경우는 먹고 사는데 급급(汲汲)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였던 까닭에, 관점자체를 달리 놓고 봐야 했지만 어쨌든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기존의 권력에 극심한 반발을 하는 자들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자들로 제갈천의 집권으로 인해, 이전의 자신들이 누려왔던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파벌에도 들지 못하고 숨죽인 채 웅크려 있던 자들. 의외로 그런 자들이 많았다. 이십년 전만해도 세상을 좌지우지하며 위세를 떨치다, 제갈천의 집권과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본의 아닌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던 자들이었다. 각종 부정과 부패척결이라는 미명하에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했던 아픔이 있는 만큼, 그들은 검왕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었다. 검왕으로 인해 현재의 기득권층이 몰락하게 되면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나 앉힌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경험을 지닌 자들이 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며 검왕을 지지하게 되는 까닭이었다.


무맹의 각료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이다. 제갈천과 모용강을 제외하고 동원령에 의해 출정한 몇몇을 뺀 모든 각료들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은 당황스런 사태에 대해 어찌 대응할 것인지 결정을 못한 불안함으로 인해, 하나같이 어둡기만 했다. 검왕이 무맹으로 들어오고 나서 자신들에 대한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지 알 수 없는 까닭에, 그것은 더욱 그들의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이번의 일은 국가로 따지면 황위찬탈(皇位簒奪)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범위를 더 넓혀 생각한다면 왕조가 바뀌는 상황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뀌게 된 제왕이 선택하는 다음의 일은, 수순이 정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존의 체제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자들의 숙청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국가와는 다른 개념이라 하겠지만, 무맹은 무림이라는 곳을 지탱해 온 기둥이었다. 그곳의 수장이 바뀐 것이다.

선출에 의해 맹주가 바뀌게 되더라도 기존의 각료들은 대부분 교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데 이번의 사태는 선출이 아니었다. 맹주를 무력으로 제거하고 새로운 맹주로 등극하려는 것이다. 자신들의 자리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는 각료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대로 당하고 말 수는 없습니다.”

감찰단주 구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격하게 말을 쏟아냈다. 어차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서로들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말을 꺼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젊은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각료들이 모두 오십이 넘은 반면, 호광과 구완만이 이제 사십 중반인 까닭이었다. 허나 호광이 구완보다는 조금 나이가 많았다.

“맞습니다. 검왕이 들어오기 전에 무슨 수를 내야합니다.”

내무전주 옥현진인이었다. 허나 그들의 말은 궁극적인 대책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팔천이나 되는 대부대가 있습니다. 그가 몰고 들어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지요.”

“인원수로는 어찌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그리 안하면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집법전주 허광헌이 구완의 말에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무맹을 봉쇄하고 검왕과의 일전을 벌이겠다고 해봐야 가용 병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동원된 무인들은 모두 출정했던 것이다.

예비대라도 두었더라면 어찌 버텨본다 하지만, 예비대는커녕 전투를 할 수 있는 부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경비단이 있을 뿐인데 그래봐야 오백의 인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무위는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일선 부대에 비해 한참 손색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검왕의 진입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무슨 대책이 따로 있겠습니까. 같은 십대고수라 하더라도 검왕을 좀 더 우위에 놓고 보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동원된 팔천의 부대까지 끌고 오는 그를 누가 막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대책이 없으니 그냥 이대로 있다가 다 같이 죽어 버리자는 말이오!”

아미의 속가출신 어머니로 인해, 아미파를 등에 업고 외무전주까지 오른 호광이었다. 그가 비관적인 말을 해대며 분위기를 어둡게 끌고 가자, 총당주 모용척이 급기야 핏대를 세워가며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점차 험악해지기만 하는 회의 분위기인 것이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불안감만 가중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보시오 총당주! 당신은 지금 말 할 자격이 있다 생각하시오! 누구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이리도 얼굴 두껍게 나설 수 있단 말이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 저럴 수가 있는지, 허어. 참으로 모를 일이로다.”

호광이 모용척의 핏대 올린 말에 분기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아예 모용척을 외면한 채 자리에 앉으며 혼자 중얼거리듯 했던 말이었다. 허나 그의 말을 듣지 못할 모용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뜩이나 심난한 각료들로 하여금 더욱 암담(暗澹)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다.

“이놈! 나이도 어린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내가 시켰더냐! 그리고 우리 모용가가 이번 분란을 일으킨 것이냐! 나도 피해자란 말이다! 그 놈 때문에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어진 나란 말이다. 헌데, 네놈이 감히 그 따위 말로 나를 매도하려는 것이냐!”

“참으시구려, 심기가 불편해 어쩌다보니 헛소리가 나왔을 것이오. 그래도 선배 되시는 총당주께서 참으셔야지 어떡하겠소. 그보다도 급한 사안이 있지 않소. 자, 이만 진정 하시구려.”

옥현진인이 그나마 같은 연배인 관계로 모용척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허나 이미 회의실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상태였다. 서로들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어찌하면 이번의 위난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통에 갑작스런 적막이 찾아든 것이다. 모용척만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허어,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고수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 적막에 답답함을 느낀 것인지 누군가 탄식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자 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정보전주 제갈문이 모처럼 한 마디 하고 있었다. 조금은 의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옮겨지게 되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고수를 모아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검왕을 상대할 고수들을 말하는 겁니다. 십대고수 중에 서너 명만 모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 사람들이 검왕을 놓고 합공을 할 것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허나 된다는 생각보다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각료들이었다. 어떡하면 좀 더 편안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찌해야 물의(物議)를 일으키지 않고 욕심을 채울 것인가 하는 것에 몰두했던 그들의 머리가,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제갈문이 모처럼 가능성이 보이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곱게 봐주지 않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감찰단주 구완이었다. 그런 구완을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일별한 제갈문이, 그를 무시하는 듯싶어 보이는 태도로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만들어야지요. 그들이 합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저히 그리 안 하고는 배겨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찌어찌해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다 해도 언제 그들을 불러 모은답니까. 검왕은 늦어도 사나흘이면 들이닥칠 것입니다. 아니 조금 더 늦춰 잡는다고 해도 거기서 하루 이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동안 언제 고수들을 수배하고 모아서 대응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제갈문의 눈빛에 기분이 상한 구완이 여전히 그를 걸고 넘어갔다.

“많을수록 좋겠지만 일단 십대고수 가운데 셋 정도만 있어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셋이 아니라 넷이나 바로 지척에 있지요.”

“아, 맞습니다. 그들이 있었지요. 그렇다면 한 번 해볼 만합니다.”

허광헌이었다. 제갈문이 십대고수를 언급하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던 듯, 얼굴이 밝아지며 끼어든 것이다. 허나 곧이어 다시 안색이 굳어지더니, 역시나 대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해결을 하겠습니다.”

제갈문이 명쾌하게 말을 마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자신감이 팽배해 보였다. 뭔가 대책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 것이다. 각료들이 그런 제갈문을 보며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 담긴 한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각 지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반응은 각기 처한 입장에 따라 대응방안이 달랐다.

제갈천을 따르며 승승장구하던 자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벌써 행장을 꾸리고 도피하려는 자들도 보이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제갈천에게 대항하던 자들의 경우에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가고 있었다. 검왕의 성향을 봐서 그에게 붙을 것이냐 아니면 방관으로 갈 것이냐를 결정하려는 생각인 것이다.

호북이야 이미 의혈문으로 인해 성향이 바뀐 곳이었으니, 검왕의 말을 따르자는 쪽으로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휘로 인해 어느 정도 정신적인 변화를 겪었던 그들이었다. 패악과 강압을 용서치 않겠다는 검왕의 말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섬서 역시 이번의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검왕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뇌부들이 보따리를 싸고 줄행랑을 치려고 준비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그들을 수하들이 그냥 두지만은 않았다. 수하들에게 제압된 채 연금을 당하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지부들이 그런 홍역을 앓고 있었다. 또한 문파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왕과의 인연을 저울질 해보며 어느 쪽에 서야 유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느라 서로 간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등, 혼란함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무력충돌까지 발생한 문파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이었지만 당문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의혈문으로 인한 때문이었다. 사천으로 들어온 연휘를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당문이었다. 자신들의 안방에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게다가 무림공적인 것이다. 검왕에 대한 소식이 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의혈문의 다음 일이 되어버렸다. 이미 전 인원을 동원해서 출정을 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당문은 검왕의 일에 대해서 관여치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도적이 안방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남의 집 불난 것이 먼저냐 집 안에 든 도적이 먼저냐의 문제다. 불난 것 구경하다가 몽땅 털리고 난 뒤에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휘를 칠 것이다.”

당문주 암제(暗帝) 당가량이 출정을 앞두고 수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에 한껏 고무된 당문의 문도들이었다. 물경 칠천에 달하는 이들이다. 각종 암기와 독으로 무장한 채 열띤 모습으로 당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남충까지는 사흘 거리였다.


남충에 있는 객잔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후원에는 객실이 열 개밖에 되지 않았다. 연휘를 비롯한 의혈문의 수뇌들이 그 중 하나의 객실에 모여 있었다.

“형님, 잘 오셨습니다. 사내란 자고로 비빌 언덕을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로원은 형님한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지요. 허허.”

“네 녀석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좋기는 하구먼. 허허. 그래 진전은 좀 있었느냐?”

“한 판 붙어볼까요? 이젠 쉽지 않을 겁니다. 옛날 생각하시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될 겁니다.”

“어디서 몇 수 재간이라도 얻었느냐? 거들먹거리는 것이 어째 시답잖은 재주라도 몇 가지 배웠는가 보구먼. 당장 나갈까나?”

팽호가 팽완을 만나면서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팽완 역시 모처럼 만나는 막내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이들 둘은 형제였던 것이다. 팽완이 맏이였으며 팽호가 막내였다. 둘 사이에 있는 둘째가 현재 팽가의 가주로 있는 팽환이었다.

“양위가 도천 선배를 뵙습니다. 먼 길에 노고가 크셨습니다.”

“허어, 신창이 아니시오? 진즉부터 신창의 호협함을 듣고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참이라오. 헌데 예서 보게 되다니 정말 반갑기 그지없소이다.”

“선배께서는 너무 금칠을 하십니다. 허허.”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 보였다.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들의 말투에서는 전혀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자, 이제 수인사는 대충 나누셨을 터이니 당면한 문제에 대해 얘기들을 해 봅시다. 모두 자리를 해 주시지요.”

연휘가 운을 띄우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바로 정돈되고 있었다.

“문주님, 지난 일이야 어차피 벌어진 것이니 말 할 계제(階梯)가 될 수 없겠지만 앞으로 어찌 하실 생각이신지요?”

소혜가 반가움을 뒤로 미루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고 있었다. 지난 일이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던 연휘였다. 허나 소혜가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자 괜히 무안해지며 고마운 마음이 들고 있었다.

“당가를 치려 생각하고 있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말씀이세요?”

연휘가 당가에 대한 생각을 꺼내보이자 소혜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놀란 듯이 반문하고 있었다.

“왜 그리 놀라시오? 안 되는 것이오?”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휘가 되묻고 있었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 채 연휘를 향했다.

“문주님은 지금 상황을 알고 계시기나 한지요?”

“상황?”

“동원령이 선포되고 우리가 무림공적으로 몰리게 된 것은 알고계시겠지요? 또 그로 인해서 수많은 무인들이 의혈문을 쫓고 있다는 것도 물론 아시고 계실 터이고요?”

“흠... 그거야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오만...”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을 물어온다는 듯이 연휘가 말끝을 흐렸다.

“헌데 지금 당가와 일전을 벌이겠다는 말씀이세요?”

“애초에 그리 계획이 세워져 있던 것 아니오?”

연휘의 말투가 상당히 퉁명스러워지고 있었다. 소혜의 말이, 자신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져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변수가 발생했잖아요. 무창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여놓는 바람에 행적이 모두 들통 난 마당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초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시면 어찌하시겠다는 것인지요. 당문을 치는 계획은 우리의 행적이 가려져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 지금은 어찌해야 하오?”

“일단 권절부터 해결을 해야지요. 그런 후에 이곳 남충을 사수하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지요.”

“.....”

속에 품은 뜻을 모르니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연휘였다. 허나 답답하기로 따지자면 오히려 소혜가 더 할 것이었다. 어찌 이리도 머리 굴리는 것을 싫어하는지 안타까울 뿐인 것이다.

“지금 권절이 문주님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어요. 늦어도 두시진이면 남충에 들어오게 될 것 이예요.”

“허어, 손자도 안 만나보고 나를 쫓았단 말이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겠지요. 권절이야 수하들도 얼마 안 되고 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요. 게다가 도천어른께서도 합류하셨으니 더욱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가 되는 것 이예요.”

“또 누가 쫓아오는 것이오?”

연휘의 반문에 잠시 말을 멈추고는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던 소혜였다. 그러던 그녀가 이윽고 한 숨을 내쉬더니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체념하고 만 것이다.

“당문이나 청성, 아미등에서 이미 출정을 했을 것입니다. 사천이 터전인 까닭이지요. 게다가 사천지부마저도 동원령으로 불어난 인원을 이끌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거예요.”

“헉! 그렇다면 대충 잡아도 삼만이 넘는 인원인데...”

검마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광도의 눈빛이 그런 검마를 질책하고 있었다.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의 경망스러움을 탓하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일당백이라 하더라도, 워낙 숫자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허어, 문제가 있군요...”

남궁기가 탄식을 하며 소혜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허나 다른 이들은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허어, 놈들이 이리 오게 된다면 한 바탕 붙어서 혼쭐을 내고 쫓아 버리면 될 것을 뭘 그리 고민하고 그러시나?”

팽완이었다. 또한 그의 말에 팽호와 광도 등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고 있었다. 도무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이었다. 연휘 역시 팽완의 말에 공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아!”

소혜의 안색은 갈수록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답답해하는 소혜의 한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가운데, 권절은 이제 한 시진 거리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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