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풍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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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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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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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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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강호풍운록(욕망 慾望)

DUMMY

놈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혈을 짚었던 모두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모용강이 놈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네 명의 고수들과 제법 이름이 나있는 자들 역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이미 정주를 벗어난 놈들이었다. 어떤 상황을 만들던지 아이들을 떼어놓게 해야만 했다. 그것도 다른 이들의 눈이 없어야만 할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일에 바빠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할 것인 까닭이었다.

모용강은 마차의 전복을 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아이들을 뒷전으로 팽개치고 몸을 움직이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고수들만이 필요했다. 어중이떠중이 숫자만 많아서는 곤란한 일이다. 놈들이 아무리 썩었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제법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었다.

놈들이 기척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고수들만이 필요했다. 달리는 와중에 그런 생각을 모용관에게 전했다.


모용강의 뒤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넓게 포위하는 형국으로 놈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제 적당한 위치만 찾으면 마차를 전복시키고 놈들이 우왕좌왕할 때 아이들을 구출하면 되는 것이다.

허나 그가 생각하는 적당한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놈들이 가는 방향을 알았기에 우회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놈들을 앞서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하루가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약간의 조작만으로도 자연적인 장애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놈들은 지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하남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그가 발견한 곳은 급격한 꺾임이 발생하는 곳이었다. 길이 급하게 오른쪽으로 꺾여 있는데다가 경사가 심한 내리막이었다. 또한 주변에 바위들이 많아 몇 개만 굴려 놓아도 길을 막을 수 있었다.

놈들은 급하게 말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바위를 치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소홀 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한두 놈은 아이들을 지킬 것이라 생각 되었지만 그쯤은 문제 될 바 아니었다.

모용강의 뒤를 따른 십여 명의 고수들이 작업을 마치고 양쪽에 은신했다. 완벽히 기척을 죽인 그들을 놈들의 무공으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었다. 수준 차이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마차 안은 의외로 넓었다. 다섯 놈이 아이들을 하나씩 옆에 앉히고 있었음에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여유를 부리며 포위망을 빠져 나올 때와는 달리 놈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마냥 아이들을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당한 곳에서 풀어주고 자신들은 사라져야만 했다. 허나 그럴만한 여건이 과연 만들어 질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다.

부지런히 달리는 마차 안에 제갈문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그는 인질로 잡은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아이는 두려움에 떨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이제 세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아였다. 굶주림과 공포에 아이는 힘겨워했다.

제갈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갑자기 손녀 생각이 났다.

그러자 한없는 자괴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헌데 계속 몰리다 보니 어느새 자신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제갈문이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마구 문지르며 정신을 일깨우려 했다. 허나 이미 솟아나기 시작한 자괴감은 쉽게 사르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하게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머리를 마구 헝클어 가며 자신을 부정하려 애 썼지만 그것은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점점 그의 눈빛이 변해가고 있었다. 광기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머리는 완전히 풀어 헤쳐졌다. 그런 머리를 두 손은 그냥 두지 않았다. 이제 손으로 움켜쥔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이다. 눈빛에 실린 광기가 더욱 심해졌다.

입이 벌어지며 허연 침이 흘렀다.

눈자위가 뒤집어 지고 있었다.

“크...”

흘러내리는 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싶은 그에게서 기괴한 소리가 뱉어졌다. 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자괴감에 빠져들던 그를 호광이 보았다. 잠결에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뜬 것이다. 놀란 눈이 의아함을 표현하기도 전에 제갈문의 핏빛으로 물든 눈이 호광을 보았다.

“크크크크”

다른 이들이 눈을 뜨면서 심상치 않은 제갈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그들은 그저 그렇게 인상만 썼을 뿐이었다. 누구도 지금의 상황이 심각하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곧 그들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피곤에 지친 것이다.

허나 호광만은 그럴 수 없었다. 제갈문의 눈빛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었다. 뭔가 불길함이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호광의 눈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제갈문의 표정은 갈수록 기괴하게 변했다.

침은 이제 내처럼 흐르고 있었다.

붉게 변한 눈빛이 기괴함을 강조했다.

“크크크크”

묘한 괴소를 짓던 그가 갑자기 구완의 머리를 잡아챘다.

뇌전이 무색할 만큼의 빠름이었다. 고수라고는 하지만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피곤에 지친 몸으로 잠이 들었던 구완이었다. 제갈문에게 머리가 잡힘과 동시에 눈을 떴지만 그는 이내 후회해야만 했다.

제갈문이 손에 힘을 주어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그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별히 내기를 운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는데도 어째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손으로 제갈문의 팔뚝을 잡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발이 떠 있는 상태라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탓에 더 했다. 이미 대항할 능력을 상실한 구완이었다. 그저 발버둥을 치며 제갈문의 팔뚝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암담했다. 절망스러웠다. 머리가 터지려 하고 있었다. 허나 구완의 죽음은 아직 이른 것으로 보였다. 계속해서 제갈문을 눈여겨보던 호광이었다. 그가 결국 제갈문의 팔뚝을 후려친 것이다.

“쾅!”

“크흑!”

“크크크크”

구완의 옆 자리에 있던 호광이었다. 순간적으로 후려친 까닭에 큰 힘이 실리지 않았다지만 능히 바위도 부술 수 있는 위력이 담겨있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제갈문은 구완을 놓아주지 않았다.

신음은 오히려 구완이 흘렸다. 짓눌린 머리에 충격이 와 닿은 것이다. 호광이 다시 장을 날렸다. 이번엔 내기를 운용했다.

“파앙!”

“끅!”

“끄으”

구완의 눈이 튀어나오려 기를 썼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갈문이 신음을 흘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완을 잡고 있는 손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게 힘을 주고 있었다.

이미 첫 번째 장력이 발출되었던 상황에서 깨어났던 모용척과 옥현진인이 제갈문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광기에 휩싸여 괴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비슷한 실력의 고수 삼 인이 달려들자 결국 구완이 풀려나게 되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머리가 터져 죽었을 것이었다.

“끄으아아아아!”

제갈문이 비명을 질러댔다.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뭔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가득 담겨있는 소리였다.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꽉 붙들어 매는 그런 참담함과 어둠의 비명이었다.

호광이 그런 제갈문의 혈을 짚었다. 힘없이 쓰러지는 제갈문이다.

“으애애앵!”

“앙앙앙앙앙!”

소란으로 인해 아이들이 깨어나 울어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이들이었다. 호광이 아이들의 혈을 일일이 짚어 재워버렸다.

모용척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호광을 바라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호광이라고 별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제갈전주가 갑자기 실성을 한 것으로 보이오. 눈빛이 변하고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괴소를 흘렸소. 그러더니 갑자기 달려들었던 것이오. 구단주가 대응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소. 어찌된 연유인지...”

“허면 이제 어찌해야 하오. 제갈 전주가 저모양이 되었으니 우리 행보에 영향이 많지 않겠소.”

모용척이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오. 모든 계획은 그가 만들었는데 저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외다.”

“정신이 들면 달라지겠지요. 그간 쌓였던 것들이 갑자기 터져 나온 듯 보입니다. 한 숨 자고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오. 기다려 봅시다.”

옥현진인이 모용척의 말을 받아 걱정을 더 하자 호광이 자신에게 당부 하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갈수록 어둡게 변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모용강이 준비한 장소에 마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마부가 급히 말을 세워댔다. 허나 워낙에 빨리 달리던 마차였다. 달리던 탄력에 마차는 주르르 미끄러지고 있었다. 말들도 바로 설 수가 없었다. 마부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을 질끈 감았다.

“히히히힝!”

“콰다다당! 끼기기긱!”

“끼히히히힝!”

맨 앞에 있던 말 두 마리가 바위에 부딪치고 말았다. 미처 멈출 수 없었던 뒤의 말 두 마리도 앞의 말을 들이받고 말았다. 이어서 마차가 말들을 사정없이 덮치고 있었다.

육중한 마차가 한 쪽으로 쏠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말들의 고통어린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튼튼하게 만든 마차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삐거덕 거리게 마련이고 결국, 달려오던 탄력과 압력을 이기지 못한 마차가 부서지고 말았던 것이다.

부리나케 마차를 벗어나 땅으로 내려서는 놈들이었다. 허나 제갈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혈을 짚인 까닭에 깨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검왕의 수작이 아닌가 싶어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다급한 기색을 보이던 놈들이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는 듯싶었다.

아이들을 한 쪽에 내려놓고 부서진 마차의 잔해에서 제갈문을 끌어내는 놈들이었다. 제갈문은 여전히 혼절해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바위가 왜 길 복판에 놓여 있단 말이오.”

“원래가 암석지대인 곳이니 굴러 내렸을 수도 있지요. 그나저나 이제 어찌해야 할 지 참으로 막막하기만 하구려.”

이미 마차는 소용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다음 마을이 나올 때까지는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탄식하며 제갈문을 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모용강과 고수들이 등장했다.

놈들의 수준으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고수들의 움직임이었다.

가장먼저 아이들을 품에 안은 네 명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들의 몸을 연신 주물러 대고 있었다. 허약해진 아이들에게 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의 눈빛이 보였다. 허나 눈빛은 어느새 분노로 점철되어 갔다.

놈들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떠졌다. 그리고 검왕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사방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허나 이미 그들이 달아날 길은 없었다. 악에 받친 놈들이 대항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끄아악! 끄으!”

“흐으, 살려줘...”

놈들의 사지가 모두 부러졌다. 종리격을 위시한 친우들에 의해서였다. 모용강은 단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놈들의 살려달라는 말이 너무도 역겹게 들렸다. 아이들은 모두들 탈진과 두려움으로 정상이 아니었다. 두 아이는 평생 한 쪽 팔을 못 쓰게 되었다.

놈들의 몰골이 어육이 되어가고 있었다. 허나 이들의 분풀이는 놈들의 목숨을 질기게 붙여놓았다. 아직 죽음을 내리기에는 쌓인 원한이 너무나 많았던 까닭이었다.

“흐으, 끄으으”

놈들은 이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단지 목구멍을 비집고 간간이 신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연휘가 드디어 무맹에 들어섰다. 팽완을 비롯해 동행했던 수하들의 얼굴에 감회가 서렸다. 다들 무맹을 떠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듯싶었다. 쫓겨나듯 떠난 무맹이었다. 그랬던 곳을 당당하게 들어서는 것이다.

경비대원들은 이들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이들 중에 한 사람은 알아 볼 수 있었다. 팽완이었다. 십대고수 중의 한자리를 차지한 강자인 데다가 장로였던 사람을 몰라본다면 무맹 경비대에 있을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팽완을 보던 그들이 연휘와 일행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맹주께 의혈문의 연휘 문주가 뵙기를 청한다고 말씀 좀 전해주게.”

팽완이 조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연휘의 방문을 알렸다.

잠시 후 맹주전으로 안내 된 연휘 일행이다. 안내되어 오는 동안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활기를 느끼던 이들이었다.

모용강은 그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통보를 받자 바로 자리를 준비해 놓고 기다렸던 것이다.

이미 맹주 등극을 한 모용강이었다. 지금은 한참 각료들을 임명하고 체제를 정비하느라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할애해 연휘를 맞이하는 모용강에게 연휘는 고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휘라 합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포권하며 단지 이름만을 밝혔을 뿐이었다. 허나 장부는 장부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그 전에 이미 연휘에 대해 짙은 호감을 갖고 있던 모용강이다. 연휘의 인사에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모용강이오. 익히 연문주에 대한 소문은 들었던 터였소. 이제 보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소.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일행이 모두 자리를 하고 잠시 장내가 정돈되기를 기다렸던 모용강이 팽완등과 마저 인사를 나누었다.

한동안 강호 정세며 여러 가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던 중 모용강이 연휘에게 넌지시 제안을 해왔다.

“연문주,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그간 있어왔던 패악의 원흉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요. 대부분 파벌의 중추였던 자들인데 놈들의 터전에서 만큼은 아직도 위세를 부리고 있다는 얘기요. 그들을 잡아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터인데 아직 본 맹의 정비도 미흡한 상황이라 손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라오. 도와주시오.”

연휘가 팽완을 돌아보았다. 이어서 수하들을 둘러보고는 모용강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당장 말씀을 드리기에는 부담이 갑니다. 잠시 시간을 주시면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말씀 하시오. 경청하리다.”

연휘가 말끝을 흐리자 궁금해 하는 모용강이다. 상체를 바짝 앞으로 끌어당기며 연휘의 얘기를 듣기위해 귀를 기울였다.

“맹주로 취임할 당시 하셨던 말씀에 대해 감히 묻고자 합니다.”

“허어, 그래 어떤 말이 궁금하셨던 게요.”

“다름 아니라 십년 뒤 강호에 혈란이 오지 않는 이상은 맹주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말씀이 진심인가 궁금합니다.”

그랬다. 연휘가 정주로 오는 동안 모용강이 맹주로 취임하면서 했던 취임사에 분명 언급했던 말이었다. 연휘는 그것의 진위가 궁금했던 것이다.

“허허, 지금이라도 맹주직을 물러나 초야에 묻히고픈 심정이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맹주가 되었지만 파벌들을 잠재우고 강호가 평안해 지면 바로 물러날 것이오.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되겠소. 검왕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리다.”

“권력에 초탈하셨던 분이 갑자기 등장하셔서 놀란 까닭에 잠시 걱정이 되어 드렸던 말씀입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허허, 알겠소. 강호를 걱정하는 연문주의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소. 그리고 원로에 노고가 많을 터이니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다시 봅시다. 내 피곤한 사람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가 보오.”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맹의 척사단주라는 신분으로 파벌의 중추들을 정리해 온 연휘와 수하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무리가 된 상황이다.

“그만 운남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허어, 어찌 그리도 매정한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네.”

“의혈문도 중에서 무맹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남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없는 자들이 살만한 강호를 만들어 주십시오.”

“허어, 정녕 가려는 것인가...”

“이제 좀 쉬려는 것이지요. 너무나 많은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지쳐버렸다고 말씀 드려야겠지요.”

지친 기색을 보이는 연휘였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워낙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모용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수하들이라도 많이 좀 남았으면 좋겠네...”

“그리하도록 얘기는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강요 할 수는 없지요.”

“그렇게라도 얘기 해 준다면 더 없이 고마울 따름이지. 모쪼록 운남에 가거든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한 번 들리도록 함세. 부러우이.”

대부분의 의혈문도들이 무맹에 잔류하기를 희망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무맹생활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욕구들이 생겨난 것이다.

씁쓸한 감정을 굳이 비치지 않은 연휘가 운남으로 떠났다. 그의 곁에는 광도와 검마 만이 남았다. 물론 곽우와 하륜 등은 운남에 있었다. 그래봐야 모두 이십여 명이었다. 허나 연휘는 그들만으로도 고마웠다. 의외였던 것은 유택이었다. 무맹에 남을 법도 하건만 그가 운남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단출해진 일행이 무맹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다. 벌써 십년이 지난 것이다.

들려오는 풍문에 맹주의 덕으로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그런 소문을 접할 때마다 연휘는 검왕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사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검왕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연휘다.

운남의 오지인 옛 의혈문의 둥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하,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능히 강호에 나가도 되지 않겠는지요.”

어린 아이가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내며 양위의 대답을 구하듯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허, 이제 일곱의 나이에 강호행이라...”

“이 녀석, 꼬추에 솜털이라도 난 다음에 강호행을 들먹여라. 하하.”

양위가 웃으며 말끝을 흐리자 팽호가 웃어댔다.

연휘의 아들이었다. 소혜와의 사이에 얻은 아이로 이름은 성이라 했다. 연성. 아비의 근골과 어미의 머리를 닮아 일곱의 나이임에도 둥지내의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아들의 그런 모습에 모처럼 무맹이나 한 번 들러볼까 생각이 드는 연휘다. 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얼마 전 모용강이 맹주 직을 십년 더 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소식을 접한 까닭이었다. 말려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안 될 일 이었다.

세상에는 자신 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다. 헌데 지금의 검왕이 그러했다. 무맹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하는 모용강이다.

애초에 십년 뒤에는 혈란이 없는 이상 자리를 물러나겠다고 했던 모용강이었다. 스스로 했던 약속을 이제 자신이 어기려 하는 것이다. 약속은 지켜져야만 했다. 그리되면 결국 제갈천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할 지도 몰랐다.

비록 지금은 자신의 뜻대로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있다지만, 다시 십년의 집권이 이어진다면 어찌 변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는 없었다. 사부와의 연이 있는 모용강이었다.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까닭이었다.


일행은 모두 다섯이었다. 연휘와 연성 그리고 유택 곽우 무진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둥지에 있겠다고 했다. 강호행 자체가 귀찮다는 이유였다. 저들의 그런 마음이 한 없이 부러워지는 연휘다.

둥지를 나서는 연휘의 머리에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가 끝일까...’

연성의 입이 연신 벌어지며 귀를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

연휘의 생각을 끝으로 일단 마무리를 합니다.

모용강이 변심하는 과정은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려고 생각중입니다.

당분간 새로운 글에 집중하려는 것이지요.

조만간 연재하게 될 대하연가(大河戀歌)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연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어디까지나 무협입니다.

초우님이 쓰신 호위무사의 사랑을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물론 호위무사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설정과 스토리 역시 다르지요.

나름 고심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고 하시는 일마다 흡족한 성취가 있기를 빌며 송담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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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7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7.06.26 18:18
    No. 1

    잘 보고 갑니다..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 묵검사
    작성일
    07.06.26 18:55
    No. 2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여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작에서 뵙겠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엿l마법
    작성일
    07.06.26 19:35
    No. 3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8 박촌
    작성일
    07.06.26 21:14
    No. 4

    대하연가, 걸작의 탄생인가요.? 응원아끼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자류
    작성일
    07.06.26 21:53
    No. 5

    그동안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따뜻한세계
    작성일
    07.06.26 21:54
    No. 6

    이런..이런...모용강이 드뎌 변심을...권력의 맛인란...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 주죠. 우리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 많이 보고 경험했던 일인데...그래도 그 때의 향수를 느끼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는 걸 보면, 과연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 가는 구나...하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연휘와 연성, 풍운록의 중심이 되겠군요. 어쩌면...연휘는 죽고 연성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초짜관객
    작성일
    07.06.26 22:04
    No. 7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호위무사는 정말 재미 있게 읽은 책인데 읽은지 몇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요 대하연가 많이 기대 하겠습니다,
    선작 안지울테니 연재 시작하시면 쪽지좀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뚜레박
    작성일
    07.06.26 22:24
    No. 8

    참 아쉽네요 그동안 너무 재미있게 잘 보았읍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큼니다
    꾸준한 연재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읍니다
    내내 평안 하시기를 빌며
    대하연가를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이 드는군요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청학
    작성일
    07.06.26 22:55
    No. 9

    즐감..
    무협의 요소
    1.무
    1.협의와 대의등
    1.독
    1.진법
    1.사랑과 진정등
    1.진법
    1.재미와 희망
    1.다양한 소재로 신선함을 유지한 채 음란함이 배제되어야 오래가는..
    1.무공의 체계적인 수련과 설정 시대배경
    1.효웅과 영웅들간의 긴박한 경쟁과 쟁투..
    등등 무협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종합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몇마디 적어 보았습니다..
    무협의 오랜 독자.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한운류행
    작성일
    07.06.26 22:57
    No. 10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짧은시간이나마 재충전 충분히하시고
    다음 작품에서도 큰 기대를 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버드나무
    작성일
    07.06.26 23:44
    No. 11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zio5370
    작성일
    07.06.27 00:33
    No. 12

    건~~필 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엘사령
    작성일
    07.06.27 01:39
    No. 13

    수고하셧어요 건필하세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단디산인
    작성일
    07.06.27 08:48
    No. 14

    즐감이였읍니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피하지마요
    작성일
    07.06.27 10:09
    No. 15

    일단 마무리면 뒷이야기가 더 있다는거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둥지
    작성일
    07.06.27 15:49
    No. 16

    가슴이 시원하게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광월무자
    작성일
    07.06.27 23:48
    No. 17

    욕심이문제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6 한울타리01
    작성일
    07.06.28 10:43
    No. 18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기인영감
    작성일
    07.06.29 16:00
    No. 19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철혈기갑
    작성일
    07.06.30 13:27
    No. 20

    건필하시길~...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뿔따귀
    작성일
    07.07.03 02:19
    No. 21

    잘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一生懸命
    작성일
    07.07.03 05:56
    No. 22

    잘 보았음다..

    차기작도 기대 할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뱃살이랑
    작성일
    07.07.07 03:17
    No. 23

    욕망의 끝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시골아찌
    작성일
    07.08.09 11:42
    No. 24

    재미있게 잘보구 갑니다 . 다음편 기대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마영혼
    작성일
    09.12.16 15:46
    No. 25

    즐감했구요 마무리도 여운이잇어 좋았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음과마음
    작성일
    10.04.17 13:52
    No. 26

    아주 잘 봤습니다
    대하연가 기대가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2.08.12 14:40
    No. 27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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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강호풍운록 (맹주 盟主 7) +12 07.06.22 9,715 64 17쪽
71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6) +13 07.06.21 10,057 63 19쪽
70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5) +13 07.06.19 10,485 66 19쪽
69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4) +12 07.06.18 10,941 66 21쪽
68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3) +12 07.06.17 11,664 65 20쪽
67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2) +15 07.06.15 11,549 65 20쪽
66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1) +12 07.06.14 11,156 74 20쪽
65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8) +17 07.06.13 11,494 71 19쪽
64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7) +12 07.06.12 11,061 73 19쪽
63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6) +12 07.06.11 11,163 68 19쪽
62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5) +15 07.06.08 11,656 66 20쪽
61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4) +13 07.06.07 11,072 70 19쪽
60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3) +11 07.06.06 12,035 69 20쪽
59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2) +10 07.06.05 11,764 67 19쪽
58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1) +13 07.06.04 12,348 70 19쪽
57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5) +15 07.06.03 12,681 76 19쪽
56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4) +15 07.06.02 12,519 73 16쪽
55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3) +12 07.06.01 12,667 81 16쪽
54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2) +11 07.05.31 13,972 73 16쪽
53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1) +12 07.05.30 13,780 73 14쪽
52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5) +8 07.05.30 13,810 73 12쪽
51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4) +11 07.05.30 16,144 99 14쪽
50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3) +10 07.05.29 13,489 82 13쪽
49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2) +14 07.05.29 13,273 81 15쪽
48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1) +17 07.05.28 13,904 81 12쪽
47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8) +14 07.05.28 13,390 80 12쪽
46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7) +9 07.05.28 13,387 86 13쪽
45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11 07.05.27 13,644 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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