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고양이 테러 사건(3)
그 큰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모두 휴가를 떠난 것일까?
운전하며 신나하는 인한의 목소리에 즐거움과 자신감이 가득 찼다.
“요-호! 아우, 해피해요!”
- 너, 구경꾼이 필요했냐?
“아, 당연하죠. 제가 누구한테 자랑을 하겠어요! 고등학교 동기들도 다 취직해서 지금은 만나기도 어려워요. 거기다 다들 휴가 떠났으니 지금 연락하면 욕먹죠. 도로가 이렇게 한산한데 그냥 둬요? 또 혼자만 즐기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관객이 있어야지. 인생 뭐 있어요? 이런 게 사는 거죠.”
인한이 차를 산 순간부터 말이 정말 많아졌다.
인한이 말 많아진 것은 순덕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인한은 충분히 순덕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운전은 다른 문제였다.
- 너 아무데서나 이렇게 달리면 안 되는 거 알지?
“아이 참,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제가 바보예요?”
인한은 제 소원대로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럴 때 옆에서 오빠, 달려! 해줘야 하는데···. 쩝.”
- 왜? 옆구리가 시려? 이 더위에?
“헤헤헤헤헤. 이게 저만의 피서법입니다.”
인희는 인한이 내려준 곳에서 조금 더 걸어갔다.
길 우측에 제법 큰 핸드폰 가게와 세탁소 사이에 있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자 수영이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이 골목길에는 사람은 드물었다.
커다란 나무 밑에 수영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 밥그릇이 몇 개 보였다.
수영은 그 작은 몸으로 밥그릇마다 다니며 바쁘게 사료를 부어주고 있었다.
다가간 인희가 수영을 불렀다.
“수영아, 내가 좀 도와줄까?”
“어, 왔어? 거기 물병 보이지? 물 좀 따라줄래?”
인희는 수영이 시키는 대로 물그릇마다 물을 따랐다.
사료주기를 마쳤지만 수영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이상하다. 금손이하고 앙고라가 계속 안 보여.”
“응?”
“금손이라고 꼭 호랑이 같이 금색 얼룩무늬가 있는 고양이인데, 꼬리가 무지 짧아. 앙고라는 흰토끼 마냥 털이 하얘서 붙인 이름인데, 얘도 계속 안 보여서···. 금손이는 열흘쯤 전부터 안 보였고, 앙고라는 삼사 일 된 거 같아. 혹시 누가 해코지 한 거 아니겠지?”
수영의 얼굴에 사라진 길냥이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수영이 길냥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있다가 보자.”
몇 몇 길냥이가 마치 수영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야옹거렸다.
둘은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수영아, 너 대단하다. 이걸 아침마다 한 거야? 언제부터 한 거야?”
“우리 학교 들어오면서부터 한 거야.”
“그럼 3년 다 되어 가는 거잖아?”
“헤헤헤. 나 고양이 좋아하는 거 알잖아. 집에서는 못 키우게 하시는데, 마침 쟤네들 길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헤매는 거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
“허참,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빼고 한 거야?”
“그건 아니고, 그냥 모임이 있어. 나는 수요일과 목요일 이렇게 이틀 동안 아침과 저녁을 챙기고, 다른 요일은 다른 사람들이 또 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이번 주 주말까지 피서 간다고 해서 내가 챙기기로 했어.”
“수영이 너는 나보다 성적이 좋으니까 이다음에 동물병원 의사 되는 거 아냐? 너랑 나랑 이다음에 동물병원 차릴까? 둘 다 동물을 좋아하니까, 헤헤헤헤헤.”
“그럴까?”
동물 이야기를 하는 수영과 인희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러나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아무리 좋은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결국 운전한지 3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인한의 얼굴에 채워진 만족감만큼 쉬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반면 순덕과 검둥이는 차 안에 오래 있었던 탓에 좀이 쑤신 판이었다.
검둥이는 내리자마자 순덕에게 산에 가자고 졸랐다.
어제 고양이 사건이 있었지만 검둥이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인한도 순덕과 검둥이를 따라 산에 올랐다.
어제 고양이 시체를 발견했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달리 산책할만한 곳이 근처에서 없기도 해서 그냥 올랐다.
앞서가던 검둥이가 멈춰섰다.
- 왜? 왜 또 그려?
- 아저씨, 여기 또 있어요. 고양이 시체. (월월, 워워월, 월.)
- 인한아, 고양이 시체가 또 있단다.
“예? 또요?”
검둥이가 멈춰 선 곳에 가니 거의 몸이 분리되다시피 난도질이 된 고양이 시체가 보였다.
고양이는 전신이 다 하얀 털로 덮여있어서 피로 물든 부분이 더 선명하게 대비가 되어 그 잔혹함을 더했다.
“아이씨, 어떤 새끼야, 이거 순 미친놈이네.”
인한이 다시 사체의 사진을 찍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사이 순덕은 고양이 시체에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개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 고양이는 훼손된 지 하루도 안 된 시신 같았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 살아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순덕은 그 틈에서 지난번과 같은 냄새를 맡았다.
‘자연적인 냄새는 아녀. 이게 무슨 냄새지? 어딘가 익숙헌디.’
순덕은 어제 죽은 고양이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국 순덕은 그 냄새가 지하방에서 자주 나는 냄새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경찰이 왔고, 고양이 시신을 수습해가는 일이 반복됐다.
경찰은 주변을 다 돌았지만 CCTV도 없었고, 다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순덕과 검둥이 역시 킁킁거리며 냄새를 추적했지만 이곳에 머물거나 만진 물건은 없는 것인지 흔적을 찾는데 실패했다.
순덕은 저도 모르게 신경이 팽팽해지며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저보다 약한 동물도 이따구로 해치는 놈이면 사람은 못 해치겄어? 이거 생각보다 큰 일 아녀?’
순덕이 인한에게 말했다.
- 일단 인희 데리러 가자.
인한은 차에 다시 순덕과 검둥이를 태우기 전에 물티슈를 꺼냈다.
“할머니, 발 닦고 들어가세요.”
- 잉? 아까는 그 소리 안 혔잖어.
“그건 집에서 바로 나와서 지금처럼 흙은 안 묻었죠.”
그랬다.
순덕과 검둥이의 발에 흙이 잔뜩 묻었다.
결국 순덕과 검둥이는 물티슈로 인한이 만족할 만큼 닦아내고서야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인희네 학교 앞에서 20여분을 기다리자 수업을 끝낸 인희가 교문 밖으로 나왔다.
차를 끌고 온 인한을 보고 인희의 친구들이 인사하고, 순덕과 검둥이에게도 아는 체를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보조석에 들어서는 인희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어났다.
“오빠, 달려!”
인한이 장난스럽게 받았다.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 너그는 나는 안 보이냐?
“에이, 할머니, 왜 그러세요···. 가장 먼저 보이죠. 그래도 이런 때는 저를 위해 차를 끌고 나온 사람한테 먼저 립 서비스하는 거죠. 헤헤헤헤헤.”
인한이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건 있어?”
“그러면 뭘 해. 거의 다 문 닫았을 거야. 그리고 할머니랑 검둥이 먹으려면 집이 최고지.”
“알았어. 집으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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