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이선미 살인 사건(5)
- 아니면, 그 죽일 놈이 이선미 남편 놈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어? 내가 이선미가 그렇게 흉한 모습으로 서럽게 울면서 그놈 옆에 딱 붙어서 노려보는 게 아니었으면 아무리 개래도 그거 알겄냐?
“정말 기겁했거든요.”
- 애를 구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원귀가 되서 애먼 사람까정 해쳤을 거여.
“아···, 원귀가 되면 복수만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해쳐요?”
순덕이 인한을 물끄러미 보다 답했다.
- 너는 눈이 완전히 뒤집히면 요놈은 나쁜 짓 했으니 열 대 패주고, 요놈은 착한 일 했으니 상주고 뭐 이렇게 잘 되야? 이성을 잃으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패고 보는 거지.
왠지 모르게 수긍 가는 답변이었다.
- 너는 팔은 괜찮은 거여?
“아까 들으셨잖아요. 괜찮아요. 할머니 덕분에 저 살았어요.”
인한이 순덕을 안으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 네 목숨 구했으면 그거로 된 거여. 근디 인희는?
마침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할머니, 저 왔어요.”
- 그려, 욕 봤어. 어여 들어와.
방에 들어선 인희 얼굴이 온통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 애는 어뗘?
인희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며 울먹거렸다.
“세상에, 애를 얼마나 팼으면 온몸이 멍투성이에요. 갈비뼈가 두 개 부러지고, 왼쪽 팔도 부러졌더라고요. 아직도 의식은 안 돌아왔어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춘천에 사신다는데 조금 전에 병원 도착하셔서 제가 아이 상태 알려드리고, 열쇠도 드리고, 박 경사한테 연락해주고 왔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 인희, 너는 괜찮은 겨?
한참 울먹거리던 감정이 가라앉은 인희가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뭐, 제가 일을 겪었나요? 안 괜찮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요. 그런데 할머니, 나이 드신 두 분이 잘 견디실지 모르겠어요.”
인희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순덕이 인한에게 말했다.
- 인한아, 네가 내 대신 좀 챙겨야겄다.
“어떻게요?”
- 일단 지금 가서 위로부터 하고, 근처에 깨끗한 모텔 좀 알아보고, 잘 곳 좀 챙겨줘. 너도 힘들지만 워쩌겄냐.
“아, 생각을 못했어요, 할머니. 지금 가서 챙기고 올게요.”
- 잉? 혼자 가려구? 같이 가.
결국 인한은 팔이 아파 끙끙대면서도 제 차를 끌고 병원을 갔다.
인희는 인한이 걱정된다며 탔고, 검둥이는 저 두고 가는 거 싫다고 끼었다.
당연히 순덕도 탔고, 순덕의 잔소리가 스테레오로 따랐다.
차 안에서 인희가 수영에게 전화했다.
“수영아, 길냥이 밥 주는 거, 며칠간 못 할 거 같아. 식당에 좀 큰 일이 생겨서···. 그래, 미안해. 나중에 다 말해 줄게.”
통화를 마친 인희가 인한에게 말했다.
“수영이한테 길냥이 밥 주는 거 며칠 못 할 거 같다고 말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잘했어.”
병원으로 올라간 것은 인한과 인희였다.
한참 만에 내려온 인한과 인희가 잠깐 기다리라며 어딘가를 다녀왔다.
차에 오른 인한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 어쩌고 있어?
“두 분이 다 넋이 나갔어요. 애가 중환자실에 있거든요. 아직 따님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에요. 식사는 못 하겠다고 하셔서 일단 물 종류로 된 거 몇 캔 사다 드렸고요. 병원 입원생활에 필요한 물품 좀 사다 드리고 왔어요.”
- 잉? 입원물품은 왜?
“아까 인희가 집에 오고, 경찰이 왔대요. 할머니는 딸 시신 보시고, 기절해서 병원에 입원하셨더라고요. 본래 심장이 많이 약하다 하시네요. 할아버지가 부검 해달라고 하셨고요. 그놈 평생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안쓰러워 죽겠어요.”
- 이선미 장례식은 어떻게 되는 거여? 그럼 장례식도 못 하는 겨?
“부검 끝나고 해야 할 것 같다는데 시간이 한참 걸릴 거예요.”
- 세상 참··· 팔자도 기구허지. 어째 그런 놈을 만난 겨. 에그에그, 불쌍혀서 우쩐디야.
순덕의 탄식에 끝이 없었다.
그러나 다들 공감했던 터라 아무 소리도 않고 집으로 향했다.
- 내일 아침 일찍 가서 뭐가 필요헌지 확인부터 혀. 병원비도 좀 해결해주고.
“예, 그럴게요.”
집에 돌아온 인한이 진통제부터 먹었다.
“오빠, 많이 아파?”
“많이는 아닌데 아파. 야! 너 같으면 칼에 찔려서 꿰맸는데 안 아프겠냐?”
“오구오구, 그러셔요? 뭐 도와줄까? 세수 씻겨줄까? 발 닦아줘?”
“됐어. 그냥 나도 짜증낼 수 있다 이거야. 알아?”
“피이, 할머니, 오빠··· 상담치료 필요한 거 아닐까요?”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 인한을 보고, 인희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순덕에게 말했다.
- 인한이, 너 상담치료 필요혀? 마음이 마구 아퍼? 아니면 심장이 후들거려?
“에이, 그건 아니고요. 그냥 한 번 해봤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 칼을 막아냈을까요? 평소에 뼈해장국 만드느라 근육이 생겨서 그랬나? 아까 칼이 제 심장을 향해 들어오는 그 순간에 세상이 막 이렇게 슬로우비디오로 보이더라니까요. 심장이 막! 응? 막! 쫄깃한 게, 어후···.”
인한이 당시 상황을 재현해보이자 가만히 보고 있던 순덕이 걱정스럽게 몇 마디 보탰다.
- 인한이, 너 쬐끔이래도 이상한 느낌 들면 바로 치료 받어. 칼에 찔린 거, 그거 뭐시냐, 나중에 후유증 남을 수도 있댜. 괜히 무시했다가 요리할 때마다 그 칼 생각나서 요리 못 허면 어쩔 거여.
인한은 순덕의 말을 듣고 오늘 제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 뒤 인한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 다행히 칼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칼이 엄청 날카로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제 팔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면도날에 베인 것처럼 처음에 통증이 별로 없었고요. 결정적으로 할머니가 옆에 계셔서 그랬을까요? 사실 제가 죽을 거 같지 않았어요.”
인한이 순덕에게 시선을 맞춘 채 말을 이었다.
“박 경사님한테 한 말 중에 그 자식이 식당에서 뼈해장국 다 먹고 일어섰을 때 제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고요. 죽을 거 같았단 말은 반쯤 거짓말이에요. 그렇지만···.”
인한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순덕에게 미소를 보였다.
“할머니가 계셔서 제가 산 건 틀림없어요. 만약 안 계셨다면 저 틀림없이 죽었어요. 그 새끼 눈빛이 그랬어요. 그게 살기란 건가 봐요. 그런데 할머니가 그 새끼 팔뚝을 무는 순간 그 살기가 싹 사라졌어요. 신기하죠?”
인한의 말을 다 들은 순덕이 앞발로 인한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장하다, 내 손주. 이뻐, 이뻐.
***
구급차에 실려 간 전승민의 몸 상태는 의사가 혀를 찰 정도로 엉망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의식은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선미의 소식을 들은 부모는 농사짓던 춘천에서 한달음에 인천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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