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5 그라운드에 서다
이글은 픽션입니다. 설정상 현대와 다른 점은 양해바랍니다. 이름이나 기타 회사명이 같은 것들은 우연입니다.
세린에게 동영상이 첨부된 문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 막 샤워를 하러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우우웅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그가 해성물산 박성일이라고 찍힌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문자를 열어보니 다소 황당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조세린 동영상이 배포 준비 중입니다. 원하시면 연락 바랍니다.
“...뭐야? 이건? 이것도 스팸인가?”
세린이 첨부 파일을 보니 조세린 김희정 동영상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도대체....”
불안한 마음에 파일을 클릭하니 잠시 뒤에 화면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질이 HD급으로 선명한 화면엔 그와 희정이 장난을 치고 키스를 하고 서로 진한 애무를 하는 것까지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놈이....”
화질이나 화면의 완성도로 보아 일반인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은 아니었다. 누군가 전문 촬영장비를 이용해 찍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화면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한동안 치솟는 화를 삭이려고 애쓰던 그에게 다시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리우 파라다이스 호텔 1204호, 오후 8시
“나를 보고 오라는 소리인 건가?”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풀리거나 방송에 나가게 되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올 게 뻔했다.
무엇보다 희정이 타격을 받을 것이고 할머니나 세라가 보면 또 충격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세린이 일행들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호텔을 찾아 방에 들어서자 50대 초반의 남자가 방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게 문자를 보내신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박 성일이라합니다.”
동영상을 빌미로 돈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노리고 협박을 하려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고 왔던 세린의 생각과 다르게 상대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중년의 신사였다. 나름대로 연륜에 걸맞는 포스를 풍기는 게 아무리 보아도 협박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절 몰래 촬영하신 목적이 뭡니까?”
“하하..이거 초면에 좀 남사스럽군요...그건 내가 찍은 동영상이 아니오, 웬 방송국 기자가 찍고 있는 걸 내가 보낸 사람이 다행히 유포되기 전에 발견하고 빼앗은 것뿐이오.”
자신을 박성일이라고 소개한 중년 신사가 멋쩍게 웃으며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해성 물산 남미 지사장이라면...’
“나도 개인적으로 조세린 선수의 팬이오. 내 아들놈은 나보다 더한 광팬이지만....어쨌든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단순히 동영상에 대해 말씀하시려는가 같지는 않으신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잘 알겠지만, 오늘 기자가 찍은 영상이 풀리기라도 하면 한동안 한국을 떠들썩하게 할 겁니다.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열애에 빠져있다면...경기 결과에 따라 치명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치명적이라니....무슨...”
“이런 영상이 공개되면 조 선수는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긴 하겠지만, 육상에서 금메달만 따면 그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남겠지요. 하지만 조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이 영상이 풀리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무슨 말입니까?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여자친구를 사귀는 게 불법행위라도 된다는 건가요?”
“물론 그건 아니지요, 하지만 여자한테 빠져서 메달을 놓쳤다고 비난받게 될 겁니다. 더구나 조 선수보다 그 아가씨는 더 큰 비난을 받을거고....”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니, 난 이 영상을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조 선수가 이 영상의 가치는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불한 영상의 가격도 적은 금액이 아니니까.”
“공개할 생각이 없으시면 원하시는 게 뭡니까? 설마 기념으로 보관하시겠다는 건 아니시겠죠?”
“훗...그것도 나쁘진 않군요, 보기 드문 미인은 분명하니까.”
“확실히 말씀하시죠, 원하시는 게 뭡니까?”
“허허...이거 참, 잘못하면 오늘 아들뻘 되는 사람한테 봉변을 당하겠구만. 내가 여기 회장님 명 때문에 나오긴 했지만, 자네한테 이런 대접 받자고 자넬 불러낸 건 아닐세. 나이 먹은 사람이 정중하게 대접하는데 어찌 그렇게 불손한 언사와 태도를 계속 보인단 말인가? 자네가 내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선수라니 실망이구만.”
세린이 협박을 하려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그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이자 그동안 정중하게 말하던 상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투마저 바꿔 말하며 엄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엄한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는 것 같은 모습에 세린이 내심 움찔할 정도였다.
세린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로 그를 대하는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내심 당황하던 그를 박성일이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참...내가 어린 친구에게 못 보일 꼴을 보였구만. 자네 입장에선 그렇게 들을 수도 있었겠지. 어쨌든 내가 동영상을 보낸 건 단지 자네를 조용히 보고 싶어서 그런 거뿐이야, 더 이상 그 문제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설령 자네가 내 제의를 거절해도 동영상을 공개할 생각은 없네. 아니 이미 지워버렸다는 걸 알려주겠네.”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었습니다.”
“아니, 서로 비긴 걸로 하지. 그보다 오늘 자넬 불러낸 용건을 말하겠네.”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길을 대한 세린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지만, 우리 회장님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더군, 우리 회장님이 전임 축구협회장을 지내신 분이라는 건 알지?”
“네.”
“그래, 우리 회장님이 조 선수가 축구경기에 출전해주길 바라시고 계시네. 자네가 아르헨티나를 꺾어줬으면 좋겠네”
“....아르헨티나를 꺾어달라니....혹시 저더러 축구경기에 나서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축구대표팀이 8강에 올라가지 못할 처지에 놓인 건 알겠지. 최소한 아르헨티니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1승 1무는 거둬야 골 득실이나마 따져 볼 수 있을걸세. 아니면 두 경기에서 다 이기던가 말이지, 하지만 그건 지금 전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지. 무리가 따르는 요구라는 건 잘 아네. 그래서 거기에 걸맞은 보상도 제시하셨네.””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보상을 떠나서 자신도 축구경기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오동철이 생각나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대표팀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네, 자네가 결심만 하면 바로 출전할 수 있을걸세.”
“그래도 육상대표팀 감독님과 회장님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건. 자네에게 달렸다고 말할 수밖엔 없겠군. 아직 육상경기는 시간이 있으니까 출전한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 않은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전 경기에 나가면 육상경기까지 시간이 이틀밖에는 없습니다. 이틀 동안 체력이 회복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자네라면 가능한 걸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가 한국을 4강에만 올려놓으면 강원 FC 전용구장의 개보수 공사를 회장님이 책임지고 해주신다고 하셨네.”
“....공사 전체를 그냥 해주신다는 겁니까?”
“그러네, 내가 알기에는 공사금액만도 100억이 넘는 걸로 알고 있네만.....보상으로 작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박성일의 말대로라면 사실 엄청난 보상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같은 강호를 이긴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은 아닐 터였다.
세린의 가슴이 서서히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보상으로 구장 개보수를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후우~, 쉽지 않은 얘기구나. 현실적으로 두 팀을 이긴다는 것도 그렇고 오 회장을 설득한다는 건 더 힘들테고....”
“그래서 작은아버지한테 의논드리는 거잖아요.”
“우선 하나 묻자, 네가 만약 두 경기에 참가하게 되면 경기 후 이틀 뒤에 있을 육상경기에 지장이 없겠느냐?”
“....아주 지장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예선 통과 정도는 무난할 겁니다.”
“흠...그럼 한 번 해보자. 내가 오 회장을 설득해보겠다.”
“....그게 가능하겠어요? 차라리 몰래 나가면 어떨까요?”
“그건 안된다, 그동안 오 회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런 행동은 하면 안 되지. 아무리 큰 보상이라고 해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보다 크진 않다고 생각한다.”
“...알았어요, 그럼 제가 같이 갈게요. 그런 큰일을 작은아버지 혼자 떠맡으시게 하는 것도 도리는 아닌 거 같네요.”
“하하, 녀석. 그래 같이 한번 설득해보자.”
“저...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뭐냐? 그것 말고 또 곤란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그게....작은 아버지, 희정이 아시죠?”
“이 집 딸 말하는 거야?”
“네, 제가 그 애하고...사귀는 중이에요.”
“호오~, 그건 반가운 얘기구나. 그럼 서영이라는 아가씨는? 설마 삼각관계라는 건 아니지?”
“서영이는....제가 좋아하는 건 맞는데...그 친구가 절 남자로 좋아하지 않아요.”
“널 남자로 좋아하지 않는다니...그런 아가씨도 있구나. 그럼 문제 될 건 없겠네.”
“.....작은아버지는 제가 여기까지 와서 여자나 사귄다는 게 아무렇지 않으세요?”
“하하, 이 녀석. 여자나라니? 그렇게 말할 정도면 네가 내게 말할 필요도 없다. 네가 좋아서 사귀는 여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도 존중해야지.”
“아..그건 실수고요.”
“네가 아무리 올림픽이라는 큰 경기를 앞두고 있다곤 해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면 사귀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 사회적인 위치라는 게 있으니 행동은 신중하게 해야겠지.”
“저도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어요.”
“내 말은 그게 아니다, 남들 눈을 피해가며 만나는 건 그 아가씨한테도 모욕적인 일이 될 수도 있어. 너희가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숨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네가 이번 올림픽에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필시 그 아가씨도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올림픽 기간 동안에만 조심하도록 해.”
“알았어요, 그런데 오 회장님은 언제 만나실 거예요?”
“시간도 없는데 미룰 필요가 뭐 있겠느냐? 당장 연락해보마.”
“고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브라질 싸우바돌 경기장입니다. 오늘 있을 대한민국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대 대한민국의 축구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게 될 캐스터 이병주입니다. 해설에는 본 방송국 해설위원이신 이영호 위원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영호입니다.”
“네, 지난 세네갈전에서는 우리가 불의의 일격을 당해서 1대0으로 패하는 바람에 8강으로 가는 길에 난관이 생겼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죽음의 조라는 B조 1라운드 경기에서 그래도 가장 만만한 팀이라는 세네갈을 맞아 역습 한방에 무너져서 아쉬움을 많이 남긴 경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아르헨티나 하면 세계적인 선수인 마라도나와 메시를 배출한 축구 강국 아닙니까? 먼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죠.”
“먼저 간략하게 아르헨티나에 대해 설명해드리면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결승에 다섯 번 진출해서 두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야말로 최정상급의 축구팀입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도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아깝게 독일과 연장혈투 끝에 마리오 괴체 선수의 결승골로 1대0으로 패해 우승을 놓치기도 했었죠. 그리고 하계올림픽에서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연속해서 제패하면서 금메달을 따냈던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시작도 하기 전에 기죽을 필요는 없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3.4위전을 치러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항상 8강에 올라가면 결승까지 올라갔던 팀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8강에서 더 오르지 못하고 탈락해버렸던 기록이 있으니까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잡지 못하리란 법은 없는 거죠.”
“하하,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공은 둥그니까 어느 쪽 골대로 굴러 들어갈지 모르는 거죠.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됩니다. 아르헨티나의 전력 분석 좀 해주시죠.”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성인대표팀보단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막강합니다. 특히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뛰고 있는 이카르디 선수를 주의해야 하고요,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셀타비고의 페르난데스와 벤피카의 가이탄 선수를 주목해야 합니다.”
“네, 그렇죠. 그들 이외에도 어느 선수 하나 만만한 선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엔 조세린 선수가 명단에 올라있기는 하는데...현실적으로 출전이 불가능한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세린 선수만 있으면 우리도 승리를 기대해볼 만한데 육상 대표로 나온 터라 현실적으로 축구경기에까지 참가해달라는 건 무리죠.”
“네, 그렇습니다. 양 팀 입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주장 손 경민 선수를 필두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국가대표팀이 입장합니다. 손경민, 이성우, 오대진, 조세린..아! 조세린 선수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조세린 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우와아~~”
경기장 한편을 채우고 있던 붉은 악마를 위시한 교포들로 구성된 한국응원단에서 세린의 모습을 보고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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