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당한 망나니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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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저녁밥
작품등록일 :
2021.07.2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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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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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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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적응기

DUMMY

주머니를 한참이나 뒤져봐도 여권은 도저히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거기다 눈 앞에서 조소하고 있는 마이크가 왠지 깨름칙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후우.. 줘요."

"뭘?"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더 가증스럽다. 하지만 이 사람과 놀아날 시간이 없었다.


"저 곧 있으면 비행기 타야하거든요? 당장 내놔요 내 여권!!"

"뭔가 오해를.."

"사람 그만 바보 만드시고 얼른 내놓으라고!!"


공항에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그치만 이미 내게 더 이상 챙길 채신머리따위는 없었다.


"잘 들어요. 전 당신 얼굴을 단 1분 1초라도 보고싶지 않으니까 좋은 말로 할때 내놔요. 저보다 어른한테 욕하고 싶지 않습니다."


-삐빅!!


공항경찰이 신속하게 나와 마이크에게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내게 있지도 않은 본인 여권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거 아니겠소!? 아이고 무서워라.."


'저 미친 영감탱이가..!!'


이번에도 그 가증스러운 얼굴로 어설픈 연기를 하는데, 의외로 공항경찰은 믿는 눈치였다. 내게 소란 피우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마이크를 밖으로 안내했다.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되어버린 신세 휴대폰의 배터리도 다 떨어졌고, 비행기는 못 타게 되었다.


'거지같네 아니 나 지금 거지 맞구나 하하..'


아버지에게 받은 비자카드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실카드로 변해있었고, 내게는 돈 한푼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난 다시 그 지긋지긋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구장으로 가야한다. 차비? 그런거 없어도 된다. 어차피 차로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조금만 뛴다면..


-꼬르르륵!!!!(밥내놔!!)


볼살이 떨릴정도로 배가 고프다. 엊그제 저녁에 먹었던 기내식 이후로 한끼도 못 먹었다. 순간 난 어제 제이미가 던지고 간 샌드위치가 문득 생각이 났다. 벤치로 돌아가니 어제 날 위로해 주셨던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제이미가 준 샌드위치를 먹고 계셨다. 순간 침을 꼴딱 삼키며 어깨에 힘이 풀린 내가 뒤돌아서는데, 언제 따라온건지 마이크가 내게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뭡니까? 내가 거집니까?"

"먹어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아사해서 뒤지는 한이 있어도 당신이 주는 건 안 받아"


내 눈에는 이제 독기만 있을뿐이었다. 설령 다이아몬드 백스 구장인 '체이스 필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쓰러진대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힌 난 곧바로 달려 나갔다. 순간 마이크도 당황한 모양인지, 서둘러 차에 올라타고선 날 뒤따라왔다. 그리고 가는 내내 타라며 설득했지만, 내 고집은 꺾이질 않았다.


"후우..후우..."


눈 앞에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더위 때문도 있지만, 계속된 공복과 탈수 증상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직 중간밖에 오지 못했는데..


-풀썩,


결국 난 아슬아슬하게 잡고있었던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덩치가 큰 내가 갑자기 쓰러지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 무리를 뚫고 들어온 마이크는 얼른 날 부축했다.


***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병원인 줄 알았으나, 아쉽게도 이곳은 체이스 필드 내에 있는 의무실이었다. 그리고 오른 쪽에는 완충 되어있는 내 휴대폰과 여권이 놓여져 있었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봤더니, 아버지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수십통이 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문자를 보는 순간 울컥했다.


-아들 갑작스럽게 미국에 가게되서 당황스러울꺼야 그치만 우리 아들에게만 찾아올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니까 꼭 붙잡아야해! 규환이도 그걸 바라고 있을꺼야!


-아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본으로 돌아온다니? 무슨 일 있어?"


-마이크씨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어린 우리 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인가보구나, 네가 정 힘들다면 일본에 오는 걸 말리지는 않으마, 대신! 거기서 비행기 표값 정도는 벌어서 오거라!


-미련한 놈! 왜 주는 밥을 안 먹어!? 거기서 그렇게 땡깡만 부릴꺼냐!....


"아휴 문자 톤이 확 달라지시네 그러게 누가 사전 설명도 없이 사람 고생시키래?"


여권이 있다 한들 이제는 다시 비행기 표를 예약할수가 없다. 이곳 마이너리그에서는 한달에 한화로 약 80만원 정도 나오니까 2달만 빡세게 훈련하고 가면 얼추 여름방학이 끝날때쯤 테이쿄에 합류할 수 있을것이다. 목표가 생겼으니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난 맞고 있던 링거를 강제로 빼고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샌드위치를 전부 먹어 치웠다. 그리고 다시 락커룸으로 돌아가 옷을 환복한 뒤 어제 어색하고 창피했었던 웨이트 트레이닝 장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대기열에 합류했다.

대략 2시간을 운동했을 때쯤 스미스 감독이 모두를 집합시켰다. 그리고 오늘 경기 출전 멤버를 호명하려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쭈? 안 갔어? 어제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만?"

"...."


더 이상 이 남자와 말도 섞기 싫다. 가급적이면 연습경기에도 뽑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여기 남아서 전지훈련 왔다는 감각으로 체력이나 기르다가 조용히 2달 채워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니까 잘 던지더만 오늘은 네가 선발해라"

"예?"


'해달라할 때는 버티더니 하여튼 청개구리 같은 양반이네'


짜증이 났지만, 뭐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았다. 듣자하니 경기출장일수가 부족한 선수들은 월급도 삭감된다고 하니, 기회가 있을때 벌어두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스미스 감독은 나머지 인원을 전부 호명하고 다시 그 지옥같은 버스에 올라타게 되었다.


-덜컹!덜컹!! 콰과광!


오늘도 미친듯이 흔들린다. 에어컨? 그딴건 없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은 민상현에게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귀여운 손 선풍기로 이리저리 자신의 얼굴을 식히고 있었다.


'하여튼 이 사람도 덩치에 안 맞게 은근 취향 확고하다니까.. 핑크에 키티라니..'


오늘 3루수로 들어가는 민상현이 내게 선풍기를 건네며 '너도 쓸래?'라며 물었지만, 어차피 이미 땀범벅인 상태인지라, 그냥 낮잠을 선택했다.

경기장에 도착한 난 서둘러 몸 상태를 체크하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민상현이 신기하다는 듯 내 글러브를 보며 물었다.


"이 글러브는 왜 구멍이 6개가 뚫려있어? 결함품인가?"

"아~ 그거요? 양손 글러브에요."


순간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날 주목했다.


"뭐라했냐? 애송이"


갑자기 눈빛이 변한 스미스 감독이 내게 되물었다.


"양손..글러브.."


그러고 보니 어제 내가 성질나서 던졌던 공들은 죄다 왼손, 이들은 아직 내가 스위치 피처인지를 모른다.


"오른 손은 얼마나 던질 수 있는데?"

"비슷한데요."


'어쩐지 마이크 그 영감이 이런 고등학생을 내게 보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니까! 거기다 오늘 토레이 로불로 감독이 직접 와서 확인한다더니... 에이씨! 이러다 나한테도 불똥 튀는 거 아닌지 몰라!'


"다니엘!"

"예~"

"다저스 놈들 정보 전부 머리속에 잘 박아뒀겠지?"

"예 뭐 대충은?"

"이 자식은 메이저에서 여기까지 떨어졌으면 성실하게 올라갈 생각은 안 하고 매일 뺀질뺀질하냐!!"

"뭐 아쉬우면 그쪽에서 다시 콜업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오늘 나와 배터리 호흡을 맞출 다니엘, 어제 보니 프레이밍도 그렇고, 처음 받아보는 내공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포수는 간만이었다.


'아무래도 프로니까 당연한걸까?'


경기가 시작되고, 다니엘에 사인에 맞춰서 난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며 상대 타자들이 싫어하는 코스로만 골라 공략해댔다. 얼마나 정확한 리드였냐면, 대부분의 타자들이 타석에 망부석처럼 그저 멍하니 미트위치만을 바라보는 장면이 정말 많았다. 그야말로 루킹삼진 그자체! 그가 뻗는 미트에 공만 잘 던질 수 있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굉장히 특이한 포수라고 생각했다. 에이시 선배와는 또 다른 타입, 이 사람과 고작 2경기밖에 치루지 않았지만, 절대적인 신뢰가 생겼다고 느낄 정도로 이 사람의 미트 위치는 그야말로 절묘했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이런 사람들과 계속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했다.


'아안돼!! 현혹 되지마! 정신차려 황선덕!'


반대로 다니엘 역시 선덕을 비슷하게 평가내리고 있었다.


'프로에서도 이 정도 공을 뿌리는 선수는 흔치않아, 기껏해야 단기간에 강력한 투구로 승부를 보는 클로저들 몇명 정도뿐이지, 이정도 구위를 계속 뿌려댈 수 있다면, 이 녀석은 어쩌면..'


-스이이익 파밧!!


"타자 아웃!! 경기 종료!!"


'랜디존슨의 계보를 이을 주니어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이 장면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던 살아있는 진짜 레전드 이제는 前 메이저리그의 야구선수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영웅 랜디존슨이 현 감독인 토레이 로불로와 함께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떤가? 자네도 다니엘과 같은 생각인가?"

"난 또 저 녀석이 관심받고 싶어서 장난치나 싶었는데, 다니엘이 사실을 축소해서 이야기할때도 있군 푸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존슨을 보자, 감독은 안심했다는 듯 물었다.


"간만에 자네가 코치해보겠는가? 말년에 제자하나 키워야지?"

"장난 치지 마시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는 추태는 부리고 싶지 않다네, 다만.. "

"다만?"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던 랜디 존슨이 씨익 웃으며


"선배로써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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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적응기 +1 21.09.13 1,805 21 10쪽
62 61화 안해! 이 사기꾼들아! +2 21.09.12 1,824 21 15쪽
61 60화 산 너머 산 21.09.11 1,774 22 12쪽
60 59화 애리조나는 더워! 21.09.10 1,903 26 13쪽
59 58화 재회의 약속 21.09.09 1,915 25 10쪽
58 57화 용서 21.09.08 1,937 25 11쪽
57 56화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1 21.09.07 1,826 20 10쪽
56 55화 각자의 각오 21.09.06 1,763 19 12쪽
55 54화 냉정과 열정사이 21.09.05 1,796 20 11쪽
54 53화 U-18 에이스의 격돌 21.09.04 1,923 19 12쪽
53 52화 완전체 결승전 21.09.03 1,826 21 15쪽
52 51화 성장 21.09.02 1,782 24 12쪽
51 50화 지원군 두두둥장! +1 21.09.01 1,761 23 12쪽
50 49화 뜻밖에 원석들 21.08.31 1,755 23 12쪽
49 48화 마운드의 주인공 21.08.30 1,840 25 11쪽
48 47화 예열완료! +1 21.08.29 1,838 18 9쪽
47 46화 농락 21.08.28 1,927 23 11쪽
46 45화 균열 +3 21.08.27 1,930 26 11쪽
45 44화 절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21.08.26 1,946 23 12쪽
44 43화 용서받지 못한 자 21.08.25 2,001 24 11쪽
43 42화 개화 (開化) +1 21.08.24 1,942 25 12쪽
42 41화 반격(3) +1 21.08.23 1,888 27 11쪽
41 40화 반격(2) 21.08.22 1,886 21 11쪽
40 39화 반격(1) 21.08.21 1,936 29 12쪽
39 38화 저요? 보결인데요. 21.08.20 1,960 32 12쪽
38 37화 악연 +5 21.08.19 2,025 28 12쪽
37 36화 야 너도? +1 21.08.18 2,061 31 11쪽
36 35화 완벽한 여름의 시작 21.08.17 2,075 29 11쪽
35 34화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야 21.08.16 2,072 30 14쪽
34 33화 낙폭의 달인 21.08.15 2,134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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