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부록
[신조선건국기]
병자년 이후,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이 청국으로 끌려가고,
청국에 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은 정절을 버렸다는 이유로 조선에서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녀들은 환향녀라고 불려졌고, 조선 조정은 홍제천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면 죄가 씻겨준다는 면책부를 주었지만 사실상 실용성은 없었다. 조선 사회는 그토록 청국에서 돌아온 여인들에 대한 멸시와 전쟁에서 패한 분노를 이들에게 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심양에서는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상거래를 허용하여, 노예시장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는 포로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1638년 세자와 대군보다도 어린 조창원의 딸이 왕비가 되니, 그가 바로 장렬왕후이다. 장렬왕후와 인조 사이에는 후사가 없어, 둘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돈다.
야사에 따르면, 소용 조 씨는 빈궁을 그토록 이간질했다고 전해지며 투기가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조는 그런 그녀를 총애했다고 한다.
청은 병자년 때 청에게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던 윤집, 오달제, 홍익한 세 사람을 청국으로 끌고 갔고 그들에게 청국에게 충성을 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끝까지 응하지 않아 청에서 처형당한다. 청국 또한 그들의 기개에 감탄했으며, 조선에서는 그들을 '삼학사'라고 칭하며, 기렸다.
임경업은 명과의 전투를 위해 청국으로 파견되지만, 그는 명과 비밀리에 내통하며, 명과의 전투를 소극적으로 응하는 자세를 고수했다. 이는 이후, 청이 조선이 비밀리에 명과 내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심을 사게 한다.
[신조선건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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