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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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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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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不汗黨).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주요 공항에는 항공사마다 VIP 라운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프라이빗 항공기 전용 시설은 아직 없다.

또한 공적업무를 보기 위해 출입국 하는 고위공직자들과 재벌들이 이용하는 VVIP 서비스는 있지만, 그 외 VIP가 이용할 전용 시설은 따로 없다.

그렇기에 해외 유명연예인의 입국 같이 인파가 많이 몰릴 때는 사고 위험이 존재했다.

간혹 류지호에게 지인들이 한국의 출입국 수속이 불편하다고 지적하곤 한다.

심지어 중동 부호 중에 한 명은 한국 공항에 비즈니스 항공기 전용 시설이 없는 것에 실망해 도착 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린 경우까지 있었다.

이런 불편에 대한 개선 요구가 있지만, 공항공사는 섣부르게 비즈니스 항공기 전용 터미널 을 계획할 수가 없다.

자칫 언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전용 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


타당한 지적일 수 있다.

한 달 평균 뜨고 내릴 비즈니스 항공기가 과연 몇 번이나 된다고.

이 시기 대통령 전용기와 국내 대기업 소유 항공기를 포함해봐야 전용기 숫자가 10대도 안 된다.

수백억 원을 들여 전용 터미널을 만들어봐야 한 달 수입이 1억 원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국민 정서상 대통령 전용기 구입과 관련한 사안에도 찬반이 갈리는 상황에서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특혜라고 여겨질 전용 터미널은 말도 꺼내지 못한다.

게다가 국회의원들이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이다.

여야를 떠나 입법부가 찬성할 리도 없다.

인천공항은 출입국 시스템이 매우 훌륭한 편이다.

VVIP 전용 터미널과 관련 서비스가 없다 뿐이지, 류지호는 10분도 안 걸려서 출입국 심사와 세관신고까지 마칠 수 있었다.


‘외국인이 되니 조금 번거롭긴 하네.’


해외를 제법 자주 돌아다니는 류지호는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항공기 터미널이나 VVIP 전용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불편함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인천공항 서비스가 불만이 나올 정도로 나쁘진 않았다.


퍼퍼펑!

찰칵찰칵!

짝짝짝짝!


난리도 아니다.

어떻게 류지호의 입국 시간을 알았는지, 취재진을 물론이고 팬클럽 회원들과 환영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해외 팝스타라도 내한했나 싶었다.

아니었다.

비서진에서도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당황하는 태가 역력했다.


‘영화제에서 대상을 타고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들 난리야?’


기자들이 방송국 로고가 박힌 마이크와 각 신문사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 시기는 공항 취재 포토라인이 정립되어 있었다.

언제나 인터넷 언론 소속 무개념 기자들이 문제다.

포털사이트가 보편화 되면서 인터넷 언론이 난립하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XX야! 너 어디서 나왔어! 안 비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화면 가리지 말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욕설과 호통이 터져 나왔다.

웬일인지 사진기자들이 필사적이었다.

아마도 지난 번 류시아 파파라치 사진 때문에 상사들에게 호되게 혼이라도 난 모양이다.

비서진이 공항의 협조를 얻어 급하게 기자회견장을 만들었다.


- 최근 반도체 회사를 연이어서 M&A 하셨습니다. 최근 Kojak의 OLED 사업까지 인수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 의장님! JHO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가온그룹으로 넘겨준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별 의미 없습니다.”

- 이번 M&A에 사용된 총금액이 수 조원에 이른다고 하던데, 모두 의장님이 조달하셨습니까?

“1조가 넘는 자금을요?”


류지호에게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붙여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아예 세계 최고 부자로 류지호를 확정해 버렸다.

일부 실리콘밸리 기업의 지분율이 창업자보다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기업들의 주가가 Rehman 사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숨만 쉬어도 재산이 불어나고 있다고 표현할까.

단적인 예로 최근 Fortune에서 R & GP 금융투자그룹 특집기사를 연재하며 류지호의 지분율의 따른 가치평가액을 추산한 적이 있었는데, 상장폐지 직전의 Rehman Bros 주가 7.79달러로 계산했을 때의 류지호의 지분 가치 평가액은 대략 91억 달러, 최고 전성기 주가인 68달러로 계산했을 때는 대략 830억 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낮게 잡았을 때 10조 원이 넘고, 가장 크게 잡았을 때는 무려 100조 원에 가깝다는 계산이다.

R & GP 금융투자그룹 지분만으로도 이미 세계 최고 부자다.


“이번에 마무리 된 몇 건의 M&A 일부 계약에서 비밀유지 조항이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비밀이라고 하면 더욱 집요하게 구는 것이 기자의 속성.

슬쩍 넘겨짚으며 유도질문을 던지는 기자도 더러 있었지만.


“따로 보도자료가 나갈 것이고 그룹에서 정식으로 회견을 할 텐데. 그것 때문에 일부러 공항까지 마중 나온 겁니까?”

- Kojak 인수전에서 금성전자와도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요? 금성과 사이라도 나빠졌을까 봐요?”

- 가온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데는 의장님 의중이 반영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온에서 자동차를 만들잖습니까. 거기 반도체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국제적으로 반도체 대란이라도 벌어지면 큰 낭패를 당하지 않겠습니까?”

- 가온이 전장사업에도 진출하는 겁니까?

“모릅니다.”

- ......?

“가온그룹에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룹 경영진이 판단을 잘하겠죠.”

- SANYO 일부 사업을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온그룹도 기회가 있습니까?“

“경영과 관련해서는 그룹에 물어보세요.”


소용없었다.

기자들은 작정했는지 경영 관련한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 혹시 반도체 분야에서 오성이나 하이닉스와 합작할 의사는 없습니까?

“그룹에서 고려하겠죠.”

-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들었으면 그렇게 해석하십시오."


류지호가 말을 멈추자, 비서들이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고우찬의 지휘를 받은 경호팀이 한쪽을 뚫었다.


“감독님! 따님의 돌 축하드려요!”

“시아 돌 축하합니다!”

“예쁘게 키우세요!”


팬클럽 회원들이 딸 류시아의 돌을 축하해주었다.

류지호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어쩌다 공항 입국 풍경이 저렇게 된 겁니까?”


김우영 비서실장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언론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난립하고 있다고 하더니.... 통제가 잘 안 되는 모양이죠?”

“죄송합니다.”

“오늘 몰려온 기자들이 죄다 경제부인 모양이에요? 영화 이야기나 <불한당> 관련 질문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저희 그룹이 경일자동차그룹을 따돌리고 기업순위 3위가 확실시 되는지라...”

“언제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하더니. 미국 경제잡지에서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니까 국뽕이라도 차오르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의장님. 제가 국뽕이 뭔지 잘...”


이제 막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신조어다.


“좋은 말 아니에요. 몰라도 됩니다.”


이 시기 언론진흥재단에 등록된 기자의 수는 대략 3만여 명이다.

한국 인구의 2,318명 당 기자가 한 명이다.

참고로 미국은 7,400명 당 기자가 한 명이다.

인구 대비 기자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언로(言路)가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 기자들이 그만큼의 역할을 할 경우에만.


“언젠가부터 친분이 있는 기자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똑같습니다.”

“개나 소나 기자한다는 소리죠?”

“그것도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자신들의 정체성이 기자가 아니라 회사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아마도 매일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내기 바쁜 상황에 회의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 핑계다.

안 그런 기자들도 많다.


“세상에서 날로 먹으며 고연봉을 받는 대표적인 직업군에 기자도 포함되죠. 특히 한국과 일본의 메이저 신문사 기자들.”


한국 언론계의 안 좋은 것들이 어디서 왔을까?

대부분 일본물이 든 것이다.

출입처라는 시스템이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가온그룹은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출입처기자단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고유현 대통령 임기 중에 청와대 출입기자실을 폐쇄할 때 가온그룹의 예를 들기도 했었다.


“한번은 연예부 기자들과 함께 대학로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이 꽤나 난해했습니다. 몇몇 기자가 공연 후기를 써야 하는데 내용 모두를 이해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연극을 올린 기획사에 전화를 걸어 관련자를 술자리에 불렀습니다. 기획사 직원이 몇 가지 문장을 불러주었는데, 다음 날 기사에 그대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기자는 낯짝이 두꺼워야 해먹는다고 하죠. 베껴도 안 한 놈이 바보라는 식으로 당당할 걸요?”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홍보팀 직원이 불러준 몇 마디 말이 다른 기사에도 똑같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현실이 기자의 문제인지 언론환경에 문제인지...“


새로운 사실이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취재의 결과물이 뉴스가 되는 시절은 점점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 언론계는 뉴스가 뉴스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는 시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안도 언론에 의해 논란이 되는 시대다.

정작 논란이 되어야 하는 것에는 침묵하면서.

뉴미디어에 완전히 밀리게 되면 사건과 현상에 대한 해석이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춰내는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충성 독자층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잘 쓰면 된다.


“백원일보에서 광고 뺐던 것처럼, 레거시 미디어 마케팅 비중을 줄이고 그 여력으로 CSR에 투자하는 것이 남는 장사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대응을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 뉴스화시켜 돈을 버는 자들이 언론입니다. 또 무대응 가지고도 뉴스화 되고.”

“큭. 그렇긴 하죠.”


이제 더 이상 뉴스를 한자 한자 탐독하는 시대가 아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고.

곧 SNS를 통해 시민 스스로 언론이 되기도 하는 시대가 온다.

신문기자로서 전문성을 가지고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시대가 온다.

본래부터 기자에게 전문성이 있었는지 류지호로서는 의문이었지만.

이 시기는 포털뉴스기사 자체보다 그 밑에 달리는 댓글을 읽는 시대로 변질되었다.

즉 포털뉴스 댓글난이 공론의 장이 아닌 불특정 유저의 배설의 장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YNTV는 한 눈 안 팔고 초심을 이어가고 있대요?”

“회사 내부적으로 파벌과 사내정치가 좀 혼란스럽긴 하지만, 정파적으로 변질될 조짐은 없습니다.”

“파벌?”

“메이저 신문 쪽에서 넘어온 이들이 주도권을 쥐려고 방송기자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솎아내라고 하세요.”

“예.”


다울재단이 YNTV의 주요 주주이긴 하지만, 경영에 간섭하진 않는다.

가온그룹(류지호)이 필요할 때 활용하긴 하지만.

미국과 한국에 언론사를 가지고 있으니 쓸모가 참 많았다.

특히나 기자들 중에 마당발이 많아서 로비를 할 때 활용할 여지가 많았다.

The Wall Street Journal의 편집장을 통하면 백악관 고위관료나 상하원의 유력 정치인과 쉽게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YNTV 정치부 청와대 출입기자, 검찰 출입기자 등을 통해 권력자 누구와도 부적절한 거래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류지호는 왜 기업들이 그렇게 언론사를 가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가온그룹이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류지호가 막강한 금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언론사를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부모님은 지금 어디계세요?”

“한남동에 계십니다.”

“그럼 한남동으로 갑시다.”


류지호는 여주 가온타운이 아닌 한남동 주택으로 향했다.

<불한당> 프로덕션 동안 여주 부모님댁이 아닌 한남동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큰아들이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심영숙이 직접 집안을 점검했다.

몇 백 조 부자라고 해도 부모에게는 그저 챙겨줘야 할 자식일 뿐.


“며느리가 없으니까 엄마라도 챙겨야지.”


덕분에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 손맛이 듬뿍 담긴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류지호는 좋았다.

어머니에게는 번거롭고 수고스럽겠지만.


❉ ❉ ❉


성수동, 다솜미디어 본사.

픽셀을 연상시키는 듯한, 혹은 직물의 패턴을 연상시키는 그리드 콘셉트의 건물의 알루미늄 패널이 정오를 지나 태양이 서쪽으로 약간 기울자 색상이 변했다.

과거 칙칙했던 성수동 공장지역은 어느새 밝고 화려해졌다.

다솜미디어타운을 중심으로 일대가 현대적인 감각과 레트로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각종 광고와 뮤직비디오의 단골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때마침 류지호가 탑승하고 있는 차량 차창 밖으로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이 스쳐지나갔다.


“분당에 있는 올미디어는?”


함께 타고 있는 김재욱이 대답했다.


“방송 시설은 여전히 퍼스트타워를 사용하나봐.”

“오피스가 부족하대?”

“그런 건 아니고.”

“방송센터를 세울 때부터 부지를 넉넉하게 매입해 놔서 문제는 없을 텐데?”

“그러지 않아도 건물을 하나 더 올릴까 고민 중인가 봐.”


한국에서 법인이 자산 증식하는데 부동산 즉 건물만한 것도 없다.


“당장 올미디어 전체가 본사로 옮겨와도 크게 문제는 없는데, 기존 직원들 업무 공간이 좁아진다나 봐.”


가온그룹은 일찍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열린 사무실 인테리어를 추구했다.

즉 파티션이 둘러쳐진 폐쇄형 사무실을 과감하게 탈피했다.

무조건 개방형 사무실만 존재하진 않는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폐쇄형 데스크도 함께 인테리어에 넣고 있다.

때문에 다른 기업보다 사무실 공간의 면적이 더 필요했다.


“지금도 인사팀에서 설문조사나 개별 인터뷰 하고 있나?”

“개방형 사무실에 대해서?”

“응.”

“하고 있지. WaW만 해도 개방형 사무실이 의도치 않은 문제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개방형 사무실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소음, 사내 정치, 사생활 침해, 일할 의욕 저하라는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같은 문제들로 인해서 현재는 개방형과 폐쇄형이 혼합되고,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한 다양한 공간 배치를 시행하고 있다.


“WaW는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개방형이냐 폐쇄형이냐 선택할 수 있게 했더니 뜻밖에도 개방형이 더 많더라고. 요즘 애들은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분위기가 더 좋은가봐.”


아무 때나 업무공간을 변경할 순 없지만,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또 그 반대로 원할 때 변경도 가능했다.

류지호는 근무환경을 사원복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업문화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의장비서실은 물론이고, 그룹 자체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고 있다.

다솜미디어 본사에 도착한 류지호와 김재욱은 곧바로 9층으로 올라갔다.

층 전체가 시원하게 뚫려 있는 공간에는 파티션은 없고 팀별로 자리가 구분이 되어 있었다.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사무실 풍경을 연상시켰다.

드라마국은 대체로 한산했다.


똑똑.


두 사람은 국장실 명패가 걸려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나준규 사장이 인사하고, 이어 파마를 했는지 원래가 곱슬머리인지 모를 보글보글한 헤어스타일의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드라마국을 맡고 있는 김영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영표 국장이 류지호가 내민 손을 깍듯이 잡아 흔들었다.


“앉으시죠.”


나준규 사장이 류지호에게 상석이랄 수 있는 자리를 양보했다.

류지호가 자리에 앉자, 남은 이들도 각자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잠시 스몰토크가 이어지고... 여직원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로는 커피를 서빙하고 물러났다.


호로록.


커피를 한모금 마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던 김영표 국장이 말을 받았다.


“예. 총 12부작... 내년 7월 말 편성이 잡혀 있습니다. 그 일정에 맞춰 주시면 됩니다.”


김영표 국장이 한쪽 손으로 안경을 살짝 올리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의장님께서 드라마 제작이 처음인 만큼 서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일일 드라마처럼 제작 호흡이 아주 빠른 것도 아니고. 백 퍼센트 사전 제작이라 크게 어려운 것은 없을 것 같네요.”


나운규 사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물론 감독님의 영화팀이 합류하긴 하지만, 배우들 대부분이 무명이지 않습니까?”

“무명이라고 연기 못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잘하는 친구들이에요.”


김재욱이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대본이야 국장님도 읽으셨으니까 패스하고. 여기 회차별 예산서 뽑아봤습니다. 한번 살펴보세요.”


김영표 국장이 예산서를 살펴봤다.


“회당 제작비가 9천?”

“많습니까?”


김영표 국장이 손사래까지 치며 격렬히 부정했다.


“아니요.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습니다.”

“우리 감독님이 워낙에 칼 같으셔서. 그리고 그 예산서는 감독님 개런티는 뺀 겁니다.”


이 시기 지상파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회당 2억 원 선.

BS ENM에서 제작해 영화채널에서 방영한 <신의 퀴즈>의 회당 제작비는 1억~1억 3천만 원 사이였다.

그 절반 수준에서 시대극인 <불한당>을 찍겠다는 것이다.


“몸값이 가장 비싼 감독님의 개런티가 1만 원이잖습니까? 세트를 따로 제작할 필요도 없고. RED에서 카메라 협찬도 해줬고.”


김영표 국장이 슬쩍 류지호의 눈치를 살피며 김재욱에게 물었다.


“PPL은 어느 정도 선까지 고려하고 있는지....”


일부 특급 작가들은 작품에 방해가 된다면서 PPL를 거부하기도 한다.

류지호가 PPL를 넣지 말라고 하면 넣을 수가 없다.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으세요. 그런데, 시대극이라 PPL이 될지 모르겠네요.”


김영표 국장이 호언장담했다.


“됩니다! 그 부분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할리우드에서는 당연한 것이라서 류지호는 PPL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특히 TV시리즈 PPL은 제작비와 협찬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영시간 앞뒤로 붙는 광고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론 톱스타가 출연하거나 시청률이 잘 나올 때나 그렇지만.


“영 생뚱맞은 PPL만 아니라면 상관이 없어요. 나중에 PPL만 따로 추려서 논의 한 번 해봅시다.”

“감사합니다.”


Product placement(PPL)는 협찬을 대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끼워 넣는 광고기법이다.

기업은 화면 속에 자사의 상품이나 브랜드를 배치해서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상품을 인지시킬 수 있고, 방송사나 프로덕션은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윈윈전략이다.

초창기의 PPL이란 용어는 소품담당자(Prop Men)가 영화에 사용할 소품(Property)들을 배치하는 업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영화의 소품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협찬을 부탁해도 기업들로부터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협찬이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소품으로만 활용되었다.

브랜드 노출을 꾀하는 마케팅 기법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젠 PPL이 스토리까지 좌우할 정도로 도를 넘고 있었지만.

<불한당>에서는 기획 단계부터 PPL이 정해진 제품이 있었다.

60~70년대 시대극에 빠질 수 없는 지프, 바로 코란도가 그 주인공이다.


“회당 9천만 원이면 드라마 제작비로 아주 넉넉하지 않지만, 케이블 쪽에서는 평균 이상입니다. 보통은 그것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제작이 진행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호가 1.5억 달러짜리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을 그 기준에 맞추지는 않는다.

한국의 드라마 시장은 고예산 작품을 제작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금전적으로까지 대박을 치는 것은 아니다.

<태황사신기>는 무려 43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드라마 시청률도 높았다.

해외에도 많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실제 수익은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

만약 트라이-스텔라TV가 <태황사진기>급 대작을 가지고 있다면 제작비의 수십 배의 수익을 거웠을 것이다.

그 만큼 한국은 영화와 드라마 모두 시장과 영업력이 너무 약했다.


‘그 정도에 만족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류지호는 마음만 먹으면 <불한당> 제작비에 1,000억 원도 쓸 수 있다.

그렇게 자기만족적인 드라마를 제작하면 뭐할까.

제 아무리 초대박 시청률을 기록해도 손익분기점조차 맞출 수가 없을 텐데.

한국의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대략 2억~3억 원이다.

한국 드라마 시장의 지상파 시간당 최고 광고비는 3억 원 수준이고.

시청률 대박을 쳤어도 광고 수익으로 겨우 본전치기를 하는 수준이다.

대작의 경우는 적자를 보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에 비해 미국 지상파 전국 네트워크의 주시청시간대 광고 수입은 대략 120억 원 선이다.

케이블 네트워크의 단가는 조금 적게 책정되지만 그럼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평균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트라이-스텔라TV의 <CSI : 라스베가스 10>이 지상파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먼저 회당 제작비는 대략 한화로 45억 원 선이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을 감안해서 평균 광고수익으로 계산해도 120억 원이다.

한 회당 120억을 벌어들이면 끝까지 시청률이 높다고 가정하면 광고수익만 3,000억 원이다.

물론 드라마 수익은 광고에서만 나오진 않는다.

재방송 시장도 있고 해외에 수출도 한다.

한국에서 드라마로 큰돈을 버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에도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주요 원인은 톱스타의 출연료 상승이다.


“업계에서 저작권 문제나 톱스타의 출연료 문제가 큰 이슈라고요?”

“어느 한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서 뾰족한 대안이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대만이 시장규모와 제작비 문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해 드라마 제작이 붕괴지경에 처하기도 했었다.

비싼 돈을 들여 드라마를 제작하느니 인기 있는 작품을 싸게 사다가 편성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기회를 잡은 것이 한국 드라마였다.

대만에서 한류 드라마가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시청자들이 왜 한국 드라마는 백퍼센트 사전 제작을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저희로서도 고충이 많습니다. 광고비도 적고, 저작권 배분에서 제작사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TV 방영 외에 특별한 수익구조가 없기도 하고. 어떻게 해든 시청률을 올리려면 방영하고 난 후의 시청자 피드백을 다음 회에 곧바로 반영을 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비겁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업계에 몸담고 있는 류지호로서는 그렇기에 무조건 제작사를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최근 들어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사극까지도 외주로 돌린다고요?”

“방송사는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면서 막대한 제작비 부담을 외주제작사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지상파에서 총 75편의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그 중 57편이 외주제작이고, 18편만 방송사 자체 제작 드라마였다.


“물론 외주 제작이 활성화되면서 지상파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만들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재정이 열약한 프로덕션들이 무분별하게 뛰어들었다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거나 최악의 경우 제작이 엎어지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출연료 미지급 분쟁이다.

대략 4~5곳의 프로덕션에서 외주제작 드라마를 독식하는 것도 문제고.


“케이블 드라마로 제작비를 회수하는 시스템 정착이 쉽지만은 않죠?”

“2차, 3차 시장구조가 탄탄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인기가 많았고 수준까지 높은 드라마가 DVD 판매로도 이어지고, 해외로도 제값 받고 팔려나가고, 재방송시장에서도 팔려나가며, 출판물이나 비디오 게임으로까지 만들어져서 IP가 여러 곳에 활용되면 좋으련만.


지상파 드라마 평균 시청률은 2003년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작년에는 11%까지 떨어졌다.

반면에 다솜미디어와 BS ENM의 케이블 드라마들이 선전을 펼치고 있다.

제대로 된 수익을 뽑아내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저희는 인천 유니버스로 명명된 시즌제 드라마들이 일본을 비롯해서 아시아로 수출이 되고 있어서 그런대로 적자는 면하고 있습니다.”

“<불한당>은 수출이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수위가 너무 높아서 수출은커녕 한국 방영도 장담할 수 없다.

<불한당>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저주받은 걸작‘을 예약해 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다솜미디어 입장에서 <불한당>이 망하거나 방영을 하지 못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별로 없었다.

드라마 제작비를 ARAM 프로덕션의 모회사 CA미디어가 끌어왔기 때문이다.

프로덕션도 그들이 책임진다.

다솜미디어는 DCN 채널과 버라이어티 채널에 편성만 해줄 뿐이다.

만약 시청률이 저조하다고 해도 기본 광고는 나가기 때문에 큰 손해는 보지 않는다.

<불한당>이 방송금지를 받게 되면 대체할 프로그램도 궁리 중이고.

류지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불한당> 고사장에서 봅시다.”


작가의말

비축분이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불한당> 편은 연참이 힘들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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