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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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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不汗黨). (7)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선배였어? 그 쓰레기들이?”


가재는 게 편이라고.

고우찬이 발끈했다.


“쓰레기는.... 너무 한 거 아냐?”

“태권도 배워서 메달까지 딴 인간이 탈세에다 건달입네 지역사회에서 압력을 행사해 온갖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권 챙기는 게, 그게 정상이냐?”

“그래도.... 이미 돌아가신 양반도 있는데.... 이거 방송 나가면 태권도 하는 어지간한 사람은 드라마의 캐릭터가 누군지 다 눈치 깔 걸?”

“그러라고 티 나게 에피소드에 넣은 거야.”

“그 양반들은 건달들하고만 놀았지, 민간인은 안 괴롭혔대.”

“말 같은 소리를 해라.”


고우찬은 격투기 종목으로 유명한 대학 출신이다.

태권도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격투기판에 선후배가 많았다.

경호·경비회사 임원이기도 하다.

양지와 음지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격투기 관련 학과 동창회에 가면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현직 경찰과 사업가 행세하는 조폭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60~70년대에는 일부 대형 태권도장 관장이나 지역 협회장 등이 암암리에 조폭들과 연루되기도 했다.

홍 관장 제자 중에도 현직 조폭 두목이 있으니 말 다한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체육관과 동호인을 보유한 체육 종목이 태권도다.

얼마 안 가서 축구에 빼앗기게 되지만, 저변이 매우 넓다.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고, 승단(승급)·용품·도장 경영 등 이권을 챙길 부분이 제법 많다.

다른 경기종목과 비교해서 대회도 자주 열린다.

실업팀·도장 운영·경호 회사 등 진로가 다양하다는 점 또한 조폭들이 꼬이는 주된 이유다.


“우찬아, 나는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장기 집권 중인 대한태권도협회장이자 IOC위원인 양반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어.”

“허물이 있긴 하지만... 30년 동안 태권도계와 한국 체육계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올려놓은 장본이시잖아.”

“인정해. 근데 태권도계에 조폭들이 활개치고 있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왜 방치할까?”

“그거야....”

“너처럼 옳은 소리하고 툭하면 반대의견을 내는 정통 태권도인보다 조폭출신들이 수족처럼 부리기 쉽고 편하기 때문이잖아.”


대태협회장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특유의 친화력과 인맥으로 스포츠 외교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체육계 위상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안일한 본가 관리(대태협)와 정적들의 공세로 인해 말년에는 크게 이미지가 실추되고, 그간의 공까지도 폄하되는 상황에 처했다.

한때는 그와 각을 세운 진영에 최선두에 류지호의 스승인 홍 관장이 있었다.

태권도계의 타락을 지켜보면서도 인천에만 틀어박혀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대태협회장과의 대립과정에서 태권도인들이 분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세와 명성을 등에 업고 제자들이 정치놀음을 하는 것도 꼴 보기 싫었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재욱이 끼어들었다.


“가온그룹이 관여하는 협회들은 많이 깨끗해지지 않았냐?”


피겨와 설상종목(스키, 스노보드, 철인3종), 썰매 종목(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빙상구기 종목(아이스하키, 컬링) 등 경기단체는 가온그룹의 영향력 아래 있다.

본래 피겨 스케이팅은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을 주관하던 빙상경기연맹에서 관리했는데, 가온그룹이 따로 분리·독립시켰다.


“재욱이 말처럼 체육단체들 수뇌부 몇 명 물갈이 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빙상구기 종목처럼 판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돼.


가온그룹이 관여하기 전 아이스하키연맹은 파벌들로 곪아있었다.

실업팀에 참여한 가온그룹이 손을 써서 파벌을 일소시켰다.

대표적인 적폐 체육단체인 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피겨 종목만 따로 분리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사회나 조직을 무조건 맑은 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깨끗한 척 하는 사람의 문제가 뭔 줄 알아. 다른 사람도 깨끗해야 한다고 믿는 고집이야. 깨끗하지 않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심이 부족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을 더럽힌다고 생각해 무조건 밀어내려고 하거든. 너무 맑고 깨끗한 물에 물고기가 없는 것처럼. 그런 조직에는 사람이 모일 수가 없어.”


너무 깨끗한 물은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오지 못하게 막는다.

물이 더러워져서 부패하고 악취가 풍겨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맑고 깨끗해도 문제다.


“그래서 가온그룹이 관여하는 단체에 때가 묻은 인사들을 앉힌 거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 나와 래리 아저씨는 흠결이 조금 있더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히려고 했던 거지.”


그렇다고 형편없는 사람을 단순히 말을 잘 듣는다고 고위직에 앉히지는 않았다.


“짬 좀 차면 네가 태권도협회장 돼서 화끈하게 갈아엎어 보든가.”


그것은 또 싫은 모양이다.

고우찬이 말을 돌릴 겸 대화상대를 류지호로 바꿨다.


“경호팀을 늘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

“드라마가 방송될 때는 미국에서 지낼 텐데?”

“그래도 약 빨고 회칼 하나 쥐어주면 미친 짓 벌일 놈도 있고. 미국에서는 총 구하기도 쉽잖아.”

“정 걱정 되면 러셀 팀장과 의논해봐.”


설마 류지호에게 해코지할 자가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예상치 못하는 별의 별 미친놈들이 다 있다.

만일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암튼 현직 태권도인 고우찬에게는 기분이 썩 좋지 못하겠지만, <불한당>에는 70~80년대 태권도협회 요직을 차지했던 조폭들의 에피소드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된다.

최양동과 김대천의 화해를 중재했던 인물도 실존인물이며, 최양동이 형님으로 모셨던 전 태권도협회 전무 역시 관계자들이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밖에도 조폭수사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몇 명의 검사도 공과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이다.

김대천의 부하들이 저지른 사건이었는데,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이권과 관련된 청부폭력사건이었다.

청부폭력을 사주한 부장검사는 이 시기에는 검사복을 벗었다.

드라마에서는 가공의 인물인 한동준 검사가 저지른 청부폭력으로 바꾸고 부하 검사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은 빠져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김대천은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되는데, 한동준 검사가 무사한 것에 앙심을 품고 수하들에게 테러를 지시하게 된다.

광진파 특공대의 습격에 칼침을 맞은 한동준은 이를 언론플레이에 적극 써먹으며 조직폭력배 일제 소탕 명분으로 삼으면서 이야기가 확장된다.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마, 개XX야 마, 다했어!]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중에서 부패비리 세관원 출신이 어떻게 로비의 신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명대사다.

불한당(不汗黨)을 한자로 풀이하면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이다.

떼거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강도짓이나 파렴치하게 남의 재물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는 족속을 불한당이라 지칭했다.

유래를 대략 두 가지로 풀이하는데, 하나는 아무리 나쁘고 포악한 짓을 벌임에도 양심이 없고 냉혈적인 질 나쁜 무리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족속이라는 의미로도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불한당이 생기는 이유는 대체로 먹을 것이 없어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특수 절도집단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후로는 굶주림이 그런대로 해결되니 돈과 욕망을 얻기 위해서 패거리를 이뤄 나쁜 짓을 일삼고 있다.

고려시대 이래로 불한당은 대체로 사회의 밑바닥 계층이 주를 이뤘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회 전 계층에서 ‘당(黨)’을 이뤄 행패가 이만저만 아니다.


❉ ❉ ❉


2010년부터 교도소 수용자 인권이 더욱 악화되었다.

전국 50여개 교도소·구치소 창문과 시찰구 쇠창살 안쪽에 이쑤시개도 통과 못하는 촘촘한 철망을 설치한 탓이다.

또한 자살을 방지한다며 밥상까지 없앴다.

난방도 잘 안 되는 것은 기본이다.

교도소 시설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인권의식은 1990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죄인들에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인권 타령이냐!”


그렇게 따지는 사람들도 많다.

범죄자를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그래서 인권 운운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국가나 사회든 인권에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강제한다.

그 합의를 넘어서는 것에는 언제나 공론화가 되면서 치열한 논쟁이 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다.

공론화 과정에서 설득과 이해가 이루어지니까.

암튼 2010년의 교정시설과 70~80년대 교정시설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WaW종합촬영소 교도소 세트는 크게 일제강점기, 70~80년대, 현재 등 시대별로 세 개를 준비해두었다.

드라마 <불한당>은 주로 70~80년대 세트를 사용했는데, 세 명의 조폭 두목들이 실제로 전국 교도소에 한 번씩은 다 지내봤기 때문에 각기 사동을 다르게 디자인해서 촬영했다.

류지호는 교도소를 구별하기 위해 설정한 관물대까지 일일이 지적을 했다.

수시로 교체하며 촬영했다.


“하여간...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니까....”

“그게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야.”

“네가 지나치게 디테일한 거야.”

“아니지. 시청자의 눈을 따라가지 못했던 텔레비전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 PPL을 더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내러티브는 미장센으로 완성되는 거야. 앞으로 TV드라마는 더욱 정교해져야 돼. 그래야 경쟁력이 생겨.”

“업계에서 뭐라는 줄 알아? 네가 제작비를 상승시키는 주범 중에 하나래.”

“맞는 말이구만.”


류지호는 매작품 A급 스태프들과만 일을 한다.

미술, 컴퓨터 그래픽, 등장인물 숫자 등 항상 최선을 선택한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망한 것이 있다면 지탄을 받아야 하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류지호는 지금까지 단 한 작품도 손해를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류지호가 될 수 없잖아.”

“그러니까 너 같은 프로듀서들이 잘 해야지. 류지호처럼 했다가 망하지 않도록.”


이전 삶보다 무려 7~8년을 앞당겨 1조 원 영화 시장을 형성했다.

물론 그 시장 대부분의 파이를 할리우드 영화가 가져가고 있지만, 한국영화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영화에서 다양한 장르적 시도들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안타까운 점은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하는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매번 똑같은 이들란 점이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트렌드를 따라 하기 급급했다.

창작자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픈 것이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선구안과 뚝심 그리고 실력까지 갖춘 프로듀서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류지호다.


"왜들 WaW에서 독립들을 안 하는 거야?“

“따뜻한 집 놔두고 추운데 나가서 고생하고 싶겠냐?”


WaW가 한국영화의 전 부분에서 기여를 한 것은 맞다.

한편으로 부작용도 낳았다.

그 중에 하나가 실력 있는 프로듀서들이 모두 WaW에만 몰려 있다는 점이다.

WaW가 사관학교 역할을 하고 그곳에 배출된 인재들이 충무로로 나가서 영화계를 살찌울 것으로 기했는데... 그냥 눌러 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이 야망이 없어.”


재계순위 2위의 대기업 가온그룹의 모태가 영화사업이다.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독립하기란 쉽지 않다.

해고 당해 회사를 그만 두면 몰라도.


“나도 모르겠다, 이제는.... 한국영화도 이제 제 앞가림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멀티플렉스, 투명한 투자와 회계, 영화인 노조, 각종 표준계약, 스태프 재교육 등.

류지호는 WaW를 통해 산업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한국영화사에서 90년대까지가 유아기였다면, 2000년대는 청소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청년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드디어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우쭈쭈’ 하던 시기를 진즉에 벗어났다.

이전 삶보다 제작 환경과 여건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그것이 창작으로 온전하게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WaW가 시스템과 산업을 선도할 순 있지만, 한국영화 전반의 수준까지 책임질 수 없기에.

“한국영화판이나 방송판 걱정하기 전에 <불한당>에 집중 하시지. 영웅이한테 다 떠넘기고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냐?”

“이런 방식을 쇼러너 시스템이라고 하거든.”

“웃기시네. 어디서 구라를. 내가 쇼러너와 프로듀서, 디렉터를 구분 못 할 줄 알고?”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불한당> 촬영현장은 항상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촬영장 한편에서 프로듀서와 감독이 노닥거리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류지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데 <불한당>에서는 그 보기 드문 광경이 종종 연출됐다.

대신 무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최영웅이 두 배로 바쁘게 일하고 있다.


❉ ❉ ❉


1979년 10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인 10.26사태가 발생했다.

대통령이 사망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신군부는 깡패를 소탕에 나섰다.

그 시기에 양동이파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순천의 방계 조직이 반란을 일으킨 것인데.

순천파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처럼 반란에 성공하진 못했다.

다만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양동이 구속됐다.

1심인 보통군법회의에서 범죄단체 수괴 및 조직원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최양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슬 퍼런 군부 통치 하에서 항소와 상고는 기각 당했다.

이 에피소드에 헌병대 시퀀스가 나온다.

류지호는 정치범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드라마에 일부러 넣었다.

그렇다고 깡패들이 정치범들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는 없다.

그저 깡패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정치범을 보여줌으로써 신군부의 폭정을 암시할 뿐.

어쨌든 최양동은 1980년 구속된 이후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

군사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기 때문이다.

나중에 15년으로 감형되긴 하지만.


“부장검사출신이신 최 변호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조폭들이 강력계 형사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에요.”


서울 광역수사대 출신의 나래안전 임원 말을 강력통 검사 출신 변호사가 받았다.


“재판도 마찬가지야. 깡패들이 법의 범위를 벗어나면 조폭인지 몰라도 법정에 들어오면 아주 고분고분하지. 조폭들이 어지간한 잡범들보다 자백도 잘하고. 그래서 재판하기가 아주 쉬워.”


광수대 출신과 검사 출신이 주거니 받거니 현직시절 자신의 경험담을 류지호에게 들려주었다.


“재밌는 게 뭔 줄 아십니까?”


류지호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도 많이 들어본 일화들이라 조폭 관련해서는 어지간한 에피소드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조폭 재판할 때 보면 방청석에 꼭 눈에 확 띠는 미인이 몇 명 앉아있어요. 웬만한 탤런트 저리가라에요.”


최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거의 대부분 조폭 부인이거나 애인인 경우가 많지.”

“맞습니다. 조폭들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 마초 같아서 그런 것인지. 암튼 애인들 보면 기가 막힙니다.”

“조폭이란 이름만 지우면 한창 젊은 나이에 체격도 건장하고 제법 사내 같아 보이잖아. 옷도 잘 입고 돈도 잘 쓰고.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미인을 와이프로 두고 있는 직업은 재벌도 아니고, 검사도 아니고, 영화배우와 조폭 둘뿐이라는 말도 있지.”

“그래서 그런가? 유독 졸부하고 검사가 세컨이 많습니다. 조강지처가 평범해서 그런지.”

“예끼 이 사람아! 그런 소리 어디 가서 하지 마. 무슨 세컨을 검사들이 많이 두고 있다고 그래?”

“솔직히... 스폰이 검사들에게 텐프로 에이스 언니들 오피스텔 얻어주고 세컨으로 붙여주잖아요. 제가 아는 검사 세컨만 해도 봉고차 하나 꽉 채웁니다.”

“일반화 시키지 말게. 대다수의 일선 검사들은 세컨은커녕 밥 먹을 시간도 놓쳐가며 일해. 몇몇 때문에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


광수대 출신 나래안전 임원이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최 변호사님. 그저... 일부 그런 검사도 있다는 걸 의장님께서 참고하시라고.”


일개 검사 출신 변호사였다면, 나래안전 임원이 물러설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다온로펌의 최 변호사는 대검 강력부 출신이다.

검사복을 벗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한창 전관 끗발이 셀 때다.

그의 체면을 봐서라도 사과를 하는 것이 옳았다.

류지호는 최 변호사를 통해 최양동과 김대천 수사를 맡았던 당시 경찰과 검사 여럿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자기 위주다.

걸러 들어야 했다.

다만 드라마의 밀도를 높여 줄 있는 이야기를 제법 취재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왔던 범죄의 궤적을 들춰 보면 싸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도 듭니다. 암에도 걸려봤지, 폐병도 걸렸지, 그 전에 자살기도도 해봤지, 사형구형도 받아봤지. 제가 듣기로는 최근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고 합니다. 수하들 말 들어보면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도 보인다고 하고.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에요.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자살을 기도했다고 들었고. 러닝셔츠를 찢어 목을 맸는데 줄이 끊어져 살았다고 하던가. 무력감으로 절망도 했겠고. 그 당시에 동거녀가 아이를 유산했죠, 아마? 너무 오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서 돈이 없어 함께 수감된 동생들 변호사도 못 댔다고 하던 게 기억납니다.”


가장 마지막에 김대천을 수사했고, 또 구속까지 시킨 검사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7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간 세 조직 간에 벌어진 칼부림 사건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올림픽이 열린 해였던가... 그럴 겁니다. 양동이와 대천이가 수감돼 있는 동안 영재가 날로 세력을 확장하다가 칼을 맞았습니다. 그때가 9월이었나... 순천의 양동이파 계열의 작업조가 영재를 습격해 아킬레스건을 끊어 놨죠. 그때 영재가 미국으로 도망치고 대통령이 죽고 신군부가 들어서고... 뭐... 깡패소탕에 첫 타깃이 양동이파와 광진파가 되면서 검찰에서는 소위 3대 패밀리의 피 튀기는 전쟁이 영재가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겁니다.”


조직폭력배 수사의 전설.

하도 많은 주먹을 잡아넣어 조폭들 사이에서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 검사라는 평을 들을 정도인 대검 강력부장의 말이었다.


“이영재는 광주에서 상경할 때에도 조직의 선배에게 린치를 가하고 뭐, 하극상을 저질렀어. 그래서 두목들에게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 김대천이는 선배를 어느 정도 적당히 대접하는 스타일이고, 최양동은 선배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이영재는 걸리적거리면 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래서 김대천 주변에는 여전히 선배가 많은데 비해 나머지 둘은 없다고 보는 거야.”


한때 강남에서 룸살롱을 두 개나 운영했던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창업 멤버 이모 중에 한명이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아네모네 창업자 이모들은 한때 서울과 인천 화류계에서 몸담았던 전적이 있었다.

당시 유명했던 건달들의 매력에 대해 나름 품평을 들려주기도 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아주 좋은 참고가 되었다.

전직 양동이파 지방 두목이 송진한 작가를 통해 류지호를 꼭 만나 뵙고 싶다며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최양동에 대해 실컷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내가 진짜 웬만하면 이런 생각을 하겠습니까마는. 저 혼자 살기 위해 자기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동생을 다 버렸습니다.”


류지호를 만난 전직 양동이파 건달이 과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70년대 말 최양동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응징당하고,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최 회장 때문에 아우들이 산 징역을 합하면 20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 자는 자기가 출소하자 아우들 면회 한 번 가지 않고 저버렸습니다.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겁니다. 옛날에도 이용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내쳤습니다.”


송진한 작가가 간간이 맞장구를 쳤다.


“똘마니들이야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니까.....”

“건달은 공산주의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

“공동으로 돈을 벌고 공동 분배해야 합니다. 돈을 벌면 나눌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인간은 혼자만 챙겼습니다.”

“출소 후에 기존 부하들과 관계를 끊은 것이 새 삶을 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닙니까? 기독교에 심취해 신앙생활에 열중이라던데....?”


류지호의 말에 송진한이 발끈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게 바로 최양동의 두 얼굴이야. 위선적인 모습이지.”


전직 양동이파 건달이 부연설명을 했다.


“작가님 말이 맞습니다. 그 인간은 출소 후 가면을 쓰고 산겁니다. 과거가 부담스러워 아우들과 관계를 끊었다면... 정말 새 삶을 살든가, 아니면 숨어서 좋은 일을 하든가.... 그 사람은 주변에 늘 새로운 깡패들을 데리고 다녔고, 매일 밤 가는 술집마다 과거의 명성을 내세워 위세를 부렸습니다.”


경찰, 검찰, 언론 합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3대 패밀리의 두목의 지위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15년의 교도소 수감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것이 족쇄가 되었다.

최양동이 공언한대로 조용히 신앙생활에 매진했으면 말년은 덜 불행했을지도 모른다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았다.

그런데 그는 불미스러운 일에 계속해서 발을 걸쳐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렸다.


“길거리에 침만 뱉어도 구속이다.”


그 같은 말이 돌면서 한 때 두 사람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1996년에 이어 2001년 해외도박 혐의로 또다시 구속되자, ‘구제불능’ 소리가 나왔다.

선후배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느니 동생들이 다 등을 돌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예전 아우들 중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소하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충직한 동생 두서넛만 곁을 지켰습니다. 최 회장이 출소하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겠다며 결혼도 미뤘던 아우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도 다 떠났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내 젊음을 다 바쳤습니다. 솔직히 옛날 얘기하면 가슴에 멍이 듭니다. 가끔 옛날 동료들 만나면 사람 하나 잘못 만나 인생 망쳤다고 합니다. 솔직히 그는 오야붕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송진한은 깊이 공감하는 모양이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류지호는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없었다.

자신 삶의 결과는 누군가에게 탓을 돌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17살에 건달밥을 먹기 시작해 삶을 깡패 세계에 온전히 바쳤다면, 그 삶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사람 하나 잘 못 만나 인생이 망쳤다는 것은 그 스스로 바보였음을 자인하는 꼴이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과거 조폭생활을 했던 이들을 몇 명을 만나면서 류지호가 느낀 것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나이만 먹었지 정신연령은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10대부터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린 이들이다.

소위 3대 패밀리의 두목은 30대에 수감되어 교도소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또래가 사회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는 연륜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전 삶에서 못난이였던 류지호조차 진실 된 친구가 있다.

전국구 깡패 두목이었던 사람들은 주변에 온갖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반면에 진실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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