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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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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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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서울 용산구 백범로에 위치한 6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

193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이 올리온그룹의 본사다.

건물 6층에 자리한 부회장실.

50대 나이에 접어든 이화윤 부회장은 여전히 팽팽한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지 미간에 골이 패였다.

올리온그룹의 모태인 풍국그룹의 창업주는 딸만 둘이다.

창업주가 작고한 뒤에 시멘트와 금융 등 주력사업은 풍국그룹에 남기고, 식품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올리온그룹으로 분리시켰다.

현 풍국그룹 회장의 부인이 검사 출신의 첫째 딸이고, 샐러리맨 출신과 결혼한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둘째 딸이다.

분리된 올리온그룹은 둘째 딸 부부가 공동으로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남편이 그룹을 총괄하고, 이화윤 부회장은 외식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는 체제다.

한국 재계에는 몇 명의 여걸이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이화윤 부회장이다.

그녀는 1975년 사원으로 풍국제과 구매부에 입사한 뒤로 차근차근 업무역량을 키워 26년 만에 풍국제과 사장까지 올랐다.

특히 초코파이에 정(情) 마케팅을 입힌 것으로 유명했다.

이후 2001년 올리온그룹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CEO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최고경영자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2년 설립한 영화 투자·배급사 역시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한때 한국 영화 점유율 면에서 4위, 관객 동원에서는 BS를 따돌리며 2위 배급사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올미디어를 케이블TV 채널 점유율 30%대를 웃도는 기업으로 일궈낸 성과도 있다.

그녀와 라이벌 혹은 비교선상에서 자주 거론되는 여성 CEO가 바로 BS그룹의 이희경 부회장이다.

이름과 나이 뿐 아니라, 재벌가 딸이라는 성장배경까지 비슷해서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희경은 이화윤보다 늦은 2005년 BS그룹 엔터테인먼트 사업 담당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영화제작 투자·배급업체인 BS엔터테인먼트와 극장업체 BGV, 케이블TV BS미디어 등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를 맡아 지금까지 무난하게 이끌어 왔다.

두 여성 CEO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둘 모두 창업주의 후손이란 사실이다.

한명은 풍국그룹 창업주의 딸이고, 다른 한 명은 오성그룹 회장의 손녀다.

언론에서 두 사람을 자주 비교하는 것은 두 여성 CEO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맞수’라는 점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영화 배급(미디어플렉스 vs BS엔터테인먼트), 극장체인(메가무비 vs BGV), 케이블TV(올미디어 vs BS미디어)에서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 외식사업(베리건스 vs 핍스)에서도 겨뤘다.

케이블TV 분야에선 올리온이 우위를 보였다.

올리온의 자회사인 올미디어의 강점은 케이블TV 채널 가운데 1위가 많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채널, 영화 채널, 여성 채널이 시청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에 BS미디어는 음악과 음식 채널에 강했다.

작년까지 영화 투자와 흥행, 그리고 영화관 사업 면에서는 BS그룹이 우세했고 케이블TV 분야에서는 올리온그룹이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희경 부회장은 케이블TV에서 업계 선두를 확보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등 출혈 경쟁까지 불사했다.

그런데 최근 올리온그룹이 케이블TV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낌새가 감지되고 있다.

올미디어 인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다름 아닌 ‘맞수‘라고 불리는 이희경의 BS미디어.

국내 통신 3사도 간을 보고 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가온까지 눈치를 보고 있다는 찌라시가 여의도 증권가에 돌고 있기도 하고.

가장 적극적인 곳은 BS미디어다.

인수금액이 맞지 않는다며 매몰차게 매각 의사를 철회하는 액션을 취할 정도로 이화윤 부회장은 맞수의 애를 태우고 있다.

때마침 호주계 투자회사까지 인수전에 뛰어들 태세다.

올미디어 M&A를 두고 혼전 양상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화윤 입장에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삐이-


이화윤 부회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가온그룹 회장과 미팅 스케줄 잡아 봐.”

- 예!

“래리 킴 회장 말고, 류지호 의장.”

- 예. 용건은 뭐라고 할까요?

“올미디어.”

- 알겠습니다.


이화윤 부회장으로써는 가온그룹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올미디어가 M&A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다솜미디어가 접촉할 것으로 예상했다.

헌데, 인수조건을 떠보는 것 외에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최근에는 아예 다솜미디어가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가 인수조건을 문의해 오긴 했지만.


“아쉬운 소리 해가며 만나고 싶진 않지만... 도대체 류 의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 시원하게 들어는 봐야겠어.”


기왕에 미디어 사업을 정리할 바에 최대한 인수금액을 많이 받아내는 것이 좋다.

그 지렛대로 가온그룹을 이용해도 좋고.

가온그룹에 올미디어로 넘겨도 좋고.

재계에서 현금 등 유동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그룹이 가온이기에.

어떻게 협상하는가에 따라 기대 이상의 금액을 받아낼 수도 있다.


❉ ❉ ❉


지난 7월이었다.

BS그룹 회장이 돌연 자회사 주식을 300억 원어치를 매각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그 돈의 용처에 대해 궁금해 했다.

일각에서는 올미디어 인수자금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300억 원은 올미디어 주식 772만여 주(지분율 6.54%)를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BS그룹 산하 홈쇼핑이 단독으로 올미디어를 인수하기 무리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인수금액에 프리미엄이 상당히 붙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BS오쇼핑은 지속적으로 종합유선방송사업을 인수하면서 상당한 자금을 지출했다.

증권가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 올미디어를 집어삼킬 여력이 없을 것으로 봤다.

따라서 그룹 차원에서 어떻게든 지원을 하지 않을까 전망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회장이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했으니 타이밍이 매우 공교로웠다.

7월 말 종가 기준 올미디어의 매각금액은 대략 2,300억 원.

프리미엄이 추가될 것이 확실하기에 대략 4,000~5,000억 원을 상정해야 했다.

때마침 회장이 현금을 마련하고 얼마 안 있어서 BS오쇼핑이 올미디어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각 언론에서는 그동안 미디어 콘텐츠산업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3강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 공시에 나온 대로 올미디어 인수를 추진 중이다. 어떻게 진행 될지 알 수 없지만 콘텐츠 사업 확장은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사안이다.


BS그룹 측의 설명이었다.


- BS그룹의 올미디어 인수에 대한 얘기가 돌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직까지 우리 내부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


올리온그룹은 다소 애매한 답변으로 최근 매각설 이슈에서 빠져나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인 시기에도 한국 미디어 업계는 3대 통신기업의 콘텐츠 확보 경쟁과 맞물려 업종 간 융합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BS그룹이 대형 케이블업체 올미디어를 인수하게 되면 그 파급력은 방송·통신·미디어업계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강 체제를 깨트릴 수도 있을 것이란 섣부른 예측을 내놓는 자칭 전문가도 있었다.

그렇게 관련 업계가 안팎으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올리온그룹 부회장 이화윤이 상암동 가온타운을 방문했다.

뜬금없게도 본사가 아니라 게임 대회가 한창인 E-스포츠 스타디움을 찾아왔다.

표면적으로는 게임 채널 올게임넷 생방송 점검 차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류지호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올미디어 매각설로 시끄러울 때 가온그룹 오너를 만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여러 억측을 불러 올 수 있어서 연막을 친 것이다.

비서가 다과를 서빙하고 집무실을 빠녀 나간 직후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BS와 접점을 찾은 거 아니었습니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랍니다. 최종 서류에 누구의 사인이 들어갈지는 예단할 수 없죠.”


대수롭게 화답한 이화윤 부회장이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리고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커피를 다시 확인했다.


“커피의 고향이라는 에티오피아 생두를 가져와 로스팅한 겁니다.”

“Yirgacheffe?”

“예.”

“가온이 에티오피아에서 외국인 최초로 커피농장 면허를 땄다고 하더니... 혹시 커피 농장이 Yirgacheffe에 있어요?”

“협력 커피 조합 중에 Yirgacheffe 농장조합도 있긴 합니다.”


잠시 대화를 멈춘 이화윤 부회장은 한동안 커피맛을 음미했다.


“향과 맛 모두 일품이군요.”

“그룹 비서실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소지한 비서만 다섯 명이에요. 일부러 그런 직원은 뽑은 것은 아니랍니다. 모두가 입사 후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더군요.”

“그 직원들은 회사를 그만둬도 걱정이 없겠네요.”


류지호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비서들이 커퍼, 로스터, 바리스타 업무를 돌아가며 수행하고 있다.

비서진들이 직접 생두 고르는 것부터 커피 추출까지 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오너와 회장에게만 서비스하지 않는다.

매월 본사 부서 중에 한 곳을 선정해서 로스팅한 커피를 선물을 하고 있다.

임원뿐 아니라, 본사 직원들에게도 비서실에서 가공한 커피의 인기가 매우 좋았다.

부서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은 엿장수 마음이었다.

엄격한 기준이나 선정방식 따위는 없었다.

자기들끼리 내키는 부서나 임직원에게 선물 할 뿐이다.

류지호가 인수금액에 대해 넌지시 찔러보았다.


“최근 증권거래소 종가 기준 두 배를 생각하시나 봅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에 매각되겠죠.”


이화윤 부회장은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너무 무리하게 인수금액을 올리면 역효과를 낼 텐데요.....”

“글쎄요. Hill Samuel 펀드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어요. 우리로서는 재밌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에요.”


정확한 상황 파악이다.

칼자루는 올미디어가 쥐고 있으니까.


“작년만 제외하고 3년 정도 흑자를 유지했던 것으로 아는데.... 굳이 매각을 해야 하는 겁니까?”

“지난 멀티플렉스 사업 매각 때도 그렇지만, 가온그룹을 도저히 따라잡을 자신이 없어요.”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사실 재작년까지 매년 23%이상 성장을 했지만, 아무래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시다시피 광고 수입 급감, 환율 상승.... 뭐, 온갖 악재가 중첩되는 군요. 다른 곳들도 그렇겠지만.”

“3년 전에 그룹에서 자본금 50억 규모의 건설사를 설립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올리온이 풍국그룹이 정리한 건설 부문으로 주력 사업이 옮겨가는 겁니까?”

“....”


이화윤 부회장은 대답을 삼갔다.


“들리는 말로는 본사가 있는 용산 부지와 계열사가 보유 중인 도곡동 땅을 주상복합 건물로 개발할 계획이라던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이화윤 부회장의 표정이 산산이 깨졌다.


“정말이지.... 뛰는 국정원, 나는 오성 미전실, 인공위성 가온 비서실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네요.”

“어디 정보수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과 같겠습니까?”

“크게 실적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브랜드를 가지고 계열사의 도곡동 부지까지 연결시키다니....”


이화윤 부회장이 놀라든 말든.


“당연히 영화 부문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건 아니죠?”

“......”

“영화 투자·배급사와 TV프로덕션 부문은 이번 매각에서 빼놓으셨던데....”


옅은 한숨을 내쉰 이화윤이 이실직고했다.


“콘텐츠 사업에만 집중할 생각이에요.”

“투자심사 파트에 제법 선구안이 있는 직원들이 있으니, 나쁜 판단은 아니겠네요.”

“....예.”

“만약에 BS가 공정위에서 허가를 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다음 차례가 가온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수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쉽사리 달려들지 못할 걸요. 그래서 적극적인 BS와 협상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판까지 깨는 액션을 취하면서.”


이전 삶에서는 올미디어와 BS의 거래에 이선택 정부의 입김도 들어가 있었다.

미디어법 개정, 특히 종합편성채널 승인 같은 문제와 연결된 정치적 안배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솜이든 됐든 스펙트럼이 됐든. 나와 가온은 올리온과 특수관계자들이 보유한 지분 55.2%를 7월 말 종가 기준의 두 배까지 쳐드릴 수 있습니다. 인수대금도 곧바로 현금으로 치를 수 있고.”

“....!”

“BS는 독과점 논란을 해결하는데 꽤 애를 먹을 겁니다.”

“다솜미디어도 마찬가지에요.”

“올미디어와 BS가 합치면 단숨에 시장 점유율이 32%를 상회하게 되죠. 다솜미디어와 합치면 20% 간당간당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 업체의 점유율이 30%이상이거나 상위 3사가 75%이상일 때 진입장벽, 관련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경쟁제한성 여부를 집중 조사할 수 있다.

BS그룹 산하 쇼핑 부문은 올미디어 M&A를 통해 순식간에 점유율 30%를 넘기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올미디어 합병으로 탄생할 BS그룹 케이블 사업과 다솜미디어, 티브로 등 상위 3사의 점유율이 75%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올리온과 범오성이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앞 서 가는 걸지도 모르지만.”

“......”

“이번 M&A에서 가온과 통신 3사가 들러리를 선다면 기분이 가히 좋을 것 같진 않습니다.”


한국에서 대형 M&A는 그룹 간의 이면 거래나 정치권의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사고방식에서는 적대적 M&A가 일어나면 나쁜 짓으로 몰아 간다.

그래서 기업 간에 ‘백기사’ 역할을 서로 해주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의 재벌 혹은 대기업은 시장경쟁에 실패해서 부실기업이 되었을 때야 M&A를 궁리한다.

그런데 채권단 관리 아래로 들어가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통한 회생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다.

대부분 세금을 들여서 회생시켜주기도 하고.

이런 정서 때문에 한국보다 자본시장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M&A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아 산업발전이 지연되고 있다.


“오성 가문과는 선대의 구원이 조금 있어요.”

“창업주 분들끼리 설탕 가지고 아웅다웅하던 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아닙니까?”

“......”

“오성물산이 건설 일감을 좀 밀어준다던가... BS가 YNTV 지분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하던데. 어쩌면....”

“그만! 거기까지 하세요.”


류지호가 입을 다물었다.

이화윤 부회장의 음성이 절로 딱딱해졌다.


“올미디어 매각과 관련해 의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 찾아온 것이지. 음모론으로 농담 따먹기 하려고 귀한 시간 낸 건 아닙니다.”


달그닥.


류지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


“부회장님....”


류지호가 낮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로 집무실 공기가 서늘해졌다.

드디어 본론이 튀어나올 시점이다.

이화윤 부회장의 시선이 류지호의 눈과 마주쳤다.


“올미디어 플러스 롸이즈올도 따로 250억 원 쳐드리겠습니다. 올리온의 외식사업도 가온에 넘기시죠. 공연기획사 재미로도 함께 파셔도 좋습니다.”


이화윤 부회장이 저도 모르게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얼른 수습했다.

생각도 못했던 제안이었다.


“외식사업도 처분하고 싶지 않습니까? 듣기로 부채가 한 200억 쯤 된다고 하던데. 이번에 올미디어와 재미로까지 묶어서 가온그룹에 넘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올리온 계열사인 롸이즈올은 베리건스, 마켓올 등을 운영하는 외식업체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리건스 매장이 전국 26개, 마켓올 복합 매장이 6개를 운영 중이죠? 몇 해 전만 해도 패밀리레스토랑 산업이 붐을 일으켰는데 말이죠.”


관련 산업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금융위기까지 더해지자 속도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외환위기 시절에도 전국적으로 50개인가 매장을 운영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줄었죠? 아마 순이익는 고사하고 적자누적을 걱정해야 할 상황일 겁니다.”


재기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올리온그룹은 여력이 없었다.

전략을 수정해서 그룹의 주력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잡고 있기도 하고.


“전국의 매장을 전부 인수하고, 부채 전부를.... 떠안는 조건이라면.”


류지호가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예.”


류지호에게 말려드는 걸 알면서도 이화윤 부회장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롸이즈올 인수가가 올미디어 인수금액에 영향을 미치게 되요?”

“아니요. 올미디어는 올미디어. 외식사업 부문은 별개. 롸이즈올 인수가 올미디어 디스카운트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절대로 BS그룹이 제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올리온그룹만 외식사업이 힘든 것이 아니다.

BS그룹의 외식사업 부문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가온그룹은.....’


이화윤 부회장이 알기로 가온그룹 산하 아네모네 & 컴퍼니의 소주방 프랜차이즈는 유흥업종이다.

다른 대기업의 외식사업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베리건스는 1세대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다.

스테이크와 립 등 육류와 기름기 있는 튀김요리를 메인 요리로 한다.

과거에는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되거나 가족이나 연인이 어쩌다 한 번씩 가는 고급 이미지가 있었다.

이제는 다양한 고급음식점이 많아지면서 차별성을 잃었다.

반면에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사업은 처음부터 서민을 대상으로 했다.


“아네모네의 요식사업은 그룹 내 사내식당과 백화점 식당가 컨설팅 등이 주요 매출 아니었던가요?”

“외식사업에 패밀리레스토랑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하네요.”


비록 한국에서 그 수명이 다하고 사양길에 접어든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할지라도.

오늘의 제안은 충동적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아네모네 & 컴퍼니에서는 대형 외식사업 프랜차이즈 M&A를 모색하고 있었다.

툭하면 그룹 회장실로 관련 안건이 올라왔는데, 래리 킴 회장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창업자 이모들이 나섰다.

패밀리 레스토랑 진출 안건을 다이렉트로 의장실로 보냈던 것.

의장 비서실에서도 회의적이었지만, 오너와 아네모네 창업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직보를 할 수밖에 없었고.

류지호는 관련 사업을 기획한 관계자들을 불러들여 브리핑을 받았다.

아네모네 & 컴퍼니 요식사업부 임원들은 가온호텔의 최고급 주방 식자재 납품부터 가온그룹 계열사 사내 식당 운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민 음식점과 최고급 레스토랑의 중간, 즉 패밀리레스토랑 진출을 줄기차게 원했다.


- 패밀리레스토랑이 본래 고급 음식점이 아닌데 그 전까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서양 레스토랑이 거의 없다보니 고급화돼서 국내 들어왔습니다. 대중화된 뒤에 타깃고객층을 낮추고 변신을 시도했다면 충분히 친서민 음식과 최고급 음식 중간에서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웰빙 시대와 최신 트렌드에 맞춘다면 충분히 리뉴얼할 수 있습니다.


요식업 본부장 한연희 이사의 주장이었다.

전국 102개의 점포를 운영 중인 국내 최대 외식업체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경우, 3,000억 원을 가볍게 웃돌던 매출이 작년 처음 2,700억 원으로 내려갔다.

베리건즈의 작년 매출은 940억 원.

영업이익은 겨우 12억 원에 그쳤다.

그 밖의 TGIF, 미르쉐, 씨즐리 등도 해마다 매출이 줄고 있는 추세다.

핍스, 애슐리 등 국산 외식업계가 나름 선전하고 있긴 했다.

현재 추세로는 패밀리레스토랑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아네모네 & 컴퍼니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봤다.

어차피 새만금간척지에 조성하고 있는 테마파크와 리조트 단지 그리고 기업도시와 배후도시에 각종 업종이 다 들어와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부담 없는 가격대의 퓨전음식점 브랜드를 아네모네 & 컴퍼니가 운영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고견을 들으러 왔다가 복잡한 셈법의 숙제를 안고 가네요.”


의장집무실을 떠나는 이화윤 부회장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숙제라니요. 부회장님은 양 손에 떡을 쥔 겁니다. 비록 둘 중 한 손에 들린 떡만 먹어야 하겠지만.”


류지호의 말대로 올리온그룹은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

범오성가라고 할 수 있는 BS그룹에 하나를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다른 하나를 받는 거래를 할 것인지.

계륵 같은 사업까지 세트로 묶어서 가온그룹에 떠넘길 것인지.


“하하. 산수보다 쉽습니다.”

“저희 그룹 사업을 홀랑 벗겨먹으려고 하시잖아요.”


아니다.

올리온그룹의 숙변을 쾌변으로 바꿔줄 수 있는 약을 처방한 것이다.


“건설적인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이화윤 부회장을 배웅하고 돌아온 류지호가 집무실 창가에 서서 개발이 한창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를 눈에 담았다.


‘올미디어를 인수하게 되면, 스타리그 승부조작도 겸사겸사 때려잡아야겠지.’


순간 올미디어 인수를 철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다.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을 건드리다보면 불법 온라인 스포츠 베팅 사이트까지 확장되고, 다른 프로스포츠까지 일파만파 번지게 될 것이 불가피했다.

공연히 나래안전 저작권 모니터팀의 업무만 늘어나게 된다.


‘내년에 출시될 <스타크래프트Ⅱ>의 E-스포츠화 안착을 위해서라도 승부조작 사건을 확실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긴 하지.’


E-스포츠계에 승부조작 문제는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인기게임의 경기를 통해 도박을 하는 불법 온라인 스포츠 토토는 뿌리를 뽑을 수 없는 독버섯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순 없다.

올해 서비스를 시작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위해서라도 미리부터 승부조작과 관련한 엄격한 룰과 처벌의 법제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다.


작가의말

아직도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는 편입니다.

겨울에는 감기예방, 봄이 되니 황사를 신경 쓰게 되네요.
건강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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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46 Légion d’honneur. +4 24.05.03 1,703 71 24쪽
845 남에게 비싸게 파는 것도 비즈니스다! +6 24.05.02 1,652 72 28쪽
844 자기 과시, 거장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 어디쯤. +4 24.05.01 1,604 89 28쪽
843 칸 영화제. (3) +8 24.04.30 1,547 96 26쪽
842 칸 영화제. (2) +5 24.04.30 1,434 74 26쪽
841 칸 영화제. (1) +3 24.04.29 1,567 84 25쪽
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673 72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670 76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649 73 24쪽
837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635 72 28쪽
836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2) +3 24.04.23 1,633 71 25쪽
835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1) +6 24.04.22 1,666 76 23쪽
834 두 배 성장할 겁니다! +6 24.04.20 1,690 74 25쪽
833 불한당(不汗黨). (10) +6 24.04.19 1,591 71 29쪽
832 불한당(不汗黨). (9) +2 24.04.18 1,536 68 26쪽
831 불한당(不汗黨). (8) +8 24.04.17 1,526 78 22쪽
830 불한당(不汗黨). (7) +6 24.04.16 1,536 74 24쪽
829 불한당(不汗黨). (6) +5 24.04.15 1,576 75 26쪽
828 불한당(不汗黨). (5) +6 24.04.13 1,667 71 27쪽
827 불한당(不汗黨). (4) +9 24.04.12 1,679 80 30쪽
826 불한당(不汗黨). (3) +6 24.04.11 1,625 79 24쪽
825 불한당(不汗黨). (2) +5 24.04.10 1,649 80 24쪽
824 불한당(不汗黨). (1) +10 24.04.09 1,740 79 26쪽
823 미래의 성장 동력. (3) +8 24.04.08 1,764 83 28쪽
822 미래의 성장 동력. (2) +6 24.04.06 1,789 78 23쪽
821 미래의 성장 동력. (1) +7 24.04.05 1,844 73 24쪽
820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게임기? +9 24.04.04 1,825 72 22쪽
819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4) +5 24.04.03 1,760 86 22쪽
818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3) +3 24.04.02 1,733 79 20쪽
»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2) +4 24.04.01 1,774 7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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