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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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US
작품등록일 :
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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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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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DUMMY

‘조(朝), 명(明), 일(日) 삼국지?’


[신군주를 등록하십시오.]


신군주? 근데 상태창이 뭐 이렇게 초라하지?


그냥 가로 안에 글이 전부다. 그게 더 현실과의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픽은 익숙한 저해상도의 게임인데, 그 너머로 보이는 배경은 실사에 가깝다.


______________________

[성명: ] (+60)


-통솔:70 (±)

-무력:70 (±)

-지력:70 (±)

-정치:70 (±)

-매력:70 (±)

_______________


(+60)은 능력치 조정이 가능한 수치인가?


뭘 올리지? 만능캐를 만들고 싶지만, 60으로는 불가능하다.


무력에 몰빵할까?


아니다. 군주가 직접 전장에 나가는 것보다 무력이 높은 장수를 영입하면 된다. 그래도 이 시대면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테니.


무력: 90 지력:90 매력:90


무력과 지력 그리고 매력. 세 개의 스탯에 힘을 줬다. 생각을 하다가 인재등용을 위해 매력에도 20포인트를 더했다. 통솔이나 정치는 더 높일 필요는 없다. 군주라면 그냥 밀어붙여도 되니까. 그래도 말 안 들으면 유배 보내 버리면 된다.


_______________

[성명: 이 정]


-통솔:70

-무력:90

-지력:90

-정치:70

-매력:90

_______________


몽롱한 상태에서 버릇처럼 이름을 말하고 스탯을 조절했다. 통솔과 정치는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후천적인 것보다는 선천적인 능력치에 힘을 줬다.


[국가를 선택하십시오.]


----------------------

-1540년-


1. 조(朝) Lv1. [농업, 가내수공업]

-인구: 8,237,320명

-병력: 47,820명

-식량: 20,000,000석

-금 : 1,298

-은 : 38,290


2. 명(明) Lv5. [상업, 농업, 제조업, 무역업]

-인구: 138,221,246명

-병력: 3,287,100명

-식량: 465,715,000석

-금 : 29,870

-은 : 78,409


3. 일(日) Lv3. [무역업, 상업, 농업]

-인구: 15,793,490명

-병력: 577,300명

-식량: 54,790,000석

-금 : 5874

-은 : 119415

---------------------


1540년?


연도는 고정인가? 임진왜란 50년 전이다. 전력 차이가 컸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선, 이건 뭐 그냥 황건적 수준이다.


명은 기울어가는 시기이긴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단연 압도적이다.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군이 300만이 넘는다니, 인해전술의 창시자답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명에 비해 수치는 작지만 전력면에서 탄탄하다. 100년에 걸친 내전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만렙의 장수들에, 병력의 훈련도 역시 최상일 것이다. 더군다나 치트키도 있다.


‘은광 이와미(石見銀山)’


당대의 화폐인 은을 무한 생산할 수 있는 치트키.


조선은···,


할 말이 없다. 게임을 할 때는 주로 약자를 선택하는 편이지지만, 이건 기울어져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애증의 조선이지만 지능을 높인 탓인지,

선택은 명확해졌···,


[조선을 선택하셨습니다.]


‘뭔 개소리? 선택 안 했는데!’


[설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조선이 선택되었다고? 아무리 둘러봐도 되돌리는 기능이 없다.


‘옘병, 다시 죽어야 하나?’


이 시대엔 환생 트럭이 ···없다. 혹시 환생 달구지가 있다 하더라도 즉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소에 밟힌 멍청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남은 생을 반 병신으로 살게 되겠지.


‘···가내수공업. 할 말이 없다.’


아니 왜란 때 속절없이 일본에 밀렸던 거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크게 난다. 자원도 없고 병력도 터무니없이 적다. 더군다나 발전 상태도.


로고와 상태창이 사라지고 지도가 점점 클로즈업되며 구름을 뚫고 다시 내려갔다. 조선으로.


다시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인트로가 나타났다.


[조선은 평화롭지만 가난한 나라입니다. 사방에 왕을 꼭두각시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정님께서는 나라를 바로 세워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세요.]


'이런 씨X'


방언 터지듯 튀어나온 내 욕설은 이내 옹아리가 되어 귓가에 가득해질 때까지 끊이질 않았다.



***



얼마나 옹아리를 쏟아냈을까. 시야에 낯선 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목도 못 가누는 아기로 태어난 것도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여긴 궁이 아니다. 신군주로 등록했는데 0살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잘못됐다.


“참 귀하게도 생기셨네.”


다시 눈을 떴을 때,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긴 수염을 가진 노인이 날 어르고 있었다.

얼굴이 밝고 반듯하며 눈썹이 진한 분이다.


목을 가눌 수 없어 눈알만 굴려 주변을 둘러보니, 고가구들에 한지로 된 창이 보였다. 깔끔하긴 하지만 전혀 화려하지 않다. 게다가 문풍지는 군데군데 덧되어 있다. 확실히 여긴 궁이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


“응애~ 으애, 응애!”


답답한 마음에 목청껏 소리쳤지만, 내 입에선 아기 울음소리만 계속 터져 나왔다. 실성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난 지칠 때까지 울어 젖혔다.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현실도 현실 나름이다. 군주는커녕 몰락한 가문으로만 보이는 형편. 부모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내 부모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 *




세살 때, 난 한성부 건천동으로 보내졌다. 손((孫)이 없는 큰아버지 댁 양자로.


큰 아버지 댁은 한마디로 진짜 이상한 집안이지만, 처음 태어난 곳보다는 형평이 나았다.


“그나저나 일은 잘 보고 들어 온 거요? 이 양반 요새 귀가가 갈수록 빨라져.”


“내가 이 놈 얼굴을 볼 생각에 온종일 종사가 손에 잡히질 않지 뭐야. 한 이정, 너도 그랬지?”


“어이구, 이놈 뼈대 굵은 거 보소.”


잠깐, 한 이정?


이름이 이정이라고? 성을 포함한 ‘이 진’이 아닌 ‘한 이정’?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은 이때 무너졌다.


큰아버지의 이름은 한귀상이다.


문관인데, 악역으로 볼 수 있는 외모와 성격을 다 갖췄다. 신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전형적인 탐관오리의 표본, 그 자체.


큰어머니 윤씨는 뭐라 해야 할까? 그냥 딱 어울리는 졸부의 와이프? 부창부수라 하겠다. 큰아버지는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탐욕스러워졌고, 집안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잘 나갔나 보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쌓다 보니, 안 좋은 소문과 따가운 눈총은 늘 내게도 따라다녔다. 이미 씌어 진 색안경은 어린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포자기했던 마음은 상태창이 다시 나타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 시대에 대한 지식에 상태창을 통해 얻은 정보를 더해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군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조선은 생각보다 더 약하지만.

불리한 환경을 받아들이자 담담한 마음이 오히려 스며들었다.


그저 그런 탐관오리 집안의 양자.


어찌 보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편견이 차라리 도움이 될 수 있다. 내 맘대로 살아도 되고 기대치도 높지 않으니, 조용히 일을 도모하기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선 최악의 시기이지만 최고의 인재들이 있는 시대 아닌가.’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 활용할 수 있다면, 이건 삼국지 게임이 따로 없다.

더군다나 건천동 이곳은 당대 최고의 인재, 이순신 장군과 류성룡의 동네.


소설을 집필할 때, 허균이 한 동네에 류성룡, 이순신이 살았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우선 그들과 막역한 사이가 된다면, 원대한 꿈을 시작할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낯이라도 익히면 좋지 않을까?’


다섯 살 때, 드디어 이대감 댁에 금줄이 걸렸다. 금줄이 걷히길 기다렸다가, 순신이네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이건 뭐 스토커가 따로 없었다. 스토킹은 순신이에게만 아니라 이현이 에게도 그리했다. 이현은 류성룡의 자다. 서른 가구 조금 넘는 동네에서 이 둘의 집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순신이는 아기 때부터 나만 보면 울어 젖혔다. 사실 순신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력 90,


이 망할 놈의 선택은 자라면 자랄수록 경계를 필요로 하는 외모로 만들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이목구비는 부리부리 해졌다. 손이 귀한 집 장손이라며 어려서부터 몸에 좋다는 것은 죄다 구해서 먹이셨으니. 뱀, 개구리는 반찬이었고 귀하다는 천문동에 산삼까지 주기적으로 복용했다.


타고난 장대한 기골에 산적 같은 얼굴은 장수로 살기에 장점이 될 거라 생각했다.



***



1558년, 명종 13년.


방년 18세에 그동안의 노력과 지력 90의 이점으로 식년시 소과에 합격했다.


문과 과거를 본 것은 문무를 겸비한 장수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무관이 홀대받는 사회이기도 하고 선조 때의 고위급 장수들은 죄다 문관 출신이었으니까.


이날 순신이와 성룡이 그리고 허성을 데리고 목멱산(남산)에 올랐다. 이때, 성룡이는 16세, 순신이는 13세, 성이는 열 살이었다. 서로 친해진 것은 분명했지만 아직 더 쌓아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순신이가 이틀 뒤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류성룡도 곧 퇴계선생의 문하로 들어간다고 하고.


나이라도 좀 더 들었으면 술이라도 한잔하며 속마음까지 서로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고작 칼싸움밖에 하지 못했으니.


‘젠장, 이 방법밖에 없나?’


생각할수록 낯이 뜨거워졌다. 나보다 어린 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유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했지만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 어디까지 올라가? 거, 칼싸움도 안 할 거면서 우릴 왜 산으로 데려온 거요? 다리 아프게.”


막대기를 허리춤에 찬 허성이 봉수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칼싸움이 그리도 하고 싶은 게냐?”


허성은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룡이 형이 류씨니까 유비하고 관우야 뭐···”


내 의도된 물음에 허성은 성룡이와 순신이를 끌어들였다. 이 시대에도 삼국지는 유명했다. 어느 시대나 장비나 조조를 하겠다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을 재밌게 하고자 난 늘 장비나 조조 역할을 도맡았었다.


“풋, 그럼 뭐 내가 관우하지.”


짧은 나무작대기를 집어 든 이순신이 농담조로 답했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진짜 그러고 보니 성룡이 외모가 유비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허허허.”


난 말해놓고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전혀 안 닮았다. 더군다나 성룡이의 머리는 어느 책사 이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내가 제갈량.”


아직 어린 허성은 허균의 이복형이며 허난설헌의 오빠다.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살아서인지 박식함이 도를 넘는다.


“그래그래, 우리 성이가 제갈량 하시게.”


“진짜 하시게? 형님 표정을 보아하니, 이딴 시시한 놀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 같지는 않고. 대체 뭐요?”


성이가 건네준 작대기를 성곽 너머로 던지며 류성룡이 말했다


“역시 성룡이 자네는 못 속이겠어. 내 그럼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하겠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


가슴에서 백패(합격증)를 꺼내 보였다.


“뭐요. 합격했어? 우와 이거 진짜야? 그럼 이제 성균관에 들어가는 거요?”


허성이 백패를 낚아채듯 가져가며 말했다.


“난 또 뭐라고. 형님이 합격하리란 건 이미 알고 있었소. 그것 말고 난 두 번째가 궁금한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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