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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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US
작품등록일 :
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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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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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DUMMY

순신이의 붓을 따라 눈길을 옮기던 송익필과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기울였다.


‘미친!’


충무공은 역시 충무공이다.


“대마도는 화점이 아니라 패요.”


송익필도 놀랐는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순신이를 지켜봤다. 동해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붓은 어느새 다시 대마도로 향해 있었다.


“본토로 공격을 감행한다면, 나는 대마도를 패감으로 쓸 것이오. 아까 말했듯이 본대는 아직 이곳에 있소.”


“이렇게 되면 왜로 공격을 단행했던 조선군은···,”


“···전멸이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원산으로 향했던 것은 한성을 위협할 수도 있고 또 조선군의 보급로를 끊겠다는 미끼. 순신은 두 가지의 수를 모두 담아냈다.


이건 외장 중에 이순신과 같은 자가 없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송익필조차도 쉽사리 붓을 들지 못했다.


“···그럼 이에 대한 방책이 따로 있느냐?”


“의외로 간단하오. 경상 좌수영은 동으로 넓게 펼쳐 왜의 북상을 견제하고, 경상 우수영과 전라 좌, 우수영은 대마도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허허허, 그물을 쳐서 가둔 뒤 전멸시키겠다는 것이오?”


순신의 말이 끝나자. 송익필이 흥분에 들떠 연신 바닥을 두들겨댔다.


하루만 있겠다던 일정은 삼일이 거의 다 지나도록 이어졌고,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전시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대마도를 얻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의 조건과 목록 또한 작성되고 있었다.


주로 순신이가 왜의 입장이 되어 빈틈을 찾아냈고, 송익필은 소수의 조선군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끊임없이 왜를 괴롭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빈틈을 메꾸자 송익필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그저 탁상공론으로 그치는 것은 아닌지. 난 이 조정의 무능함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소. 자신 있으신 게요?”


“자신 없소. 그래서···, 송형이 필요하오.”


“허, 아무튼 왜는 지금 전쟁 중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그사이에 여진을 먼저 해결해야 하지 않겠소?”


송익필은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여진도 준비를 해야겠지요. 좀 더 분석을 한 뒤에. 부락 단위기는 해도 만만치 않은 자들이 아닙니까. 지형지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대규모의 기병을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실제 역사에서도 승승장구하던 가등청정, 가토 기요마사의 본대가 함경도를 차지하고 북상하여 여진으로 향했었다. 하지만 기병으로 이루어진 동해여진의 노토부락에게 둘러싸여 참패를 당하고 발길을 돌렸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안방에서 그들 방식대로 싸우는 것은 막심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기병을 기병으로 상대할 수는 없고 이참에 개인 병기를 보강해서라도···.”


“그렇지요. 그것 때문에라도 송형이 꼭 필요하다는 거요.”


“크으음!”


송익필은 다소 언짢다는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제 그만 ···등 돌리지 마시고 맞서 싸워주시오. 우리가 힘이 되어주겠소.”


“······”


“실력이 출중함에도 불가항력적인 외부요인에 의해 그게 좌절되었다면, 본인을 갈고 닦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오. 애써서 외부요인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지.”


“왜 자꾸 그러시오. 사람 불편하게···.”


“누차 말했잖소. 장예원을 그리한 이유의 5할이 송형 때문이라고. 현 상황이 답답하다고 조선을 버리지는 말아 주시오. 그따위 외부요인 내가 모두 제거할 테니. 믿어주시오. 나를 못 믿겠다면 여기 이 자를 믿으시오.”


난 손가락으로 이순신을 가리켰다.





* * *





송익필과 나는 다시 당진으로 향했다. 송익필에게 금을 생산하고 있다는 얘기와 새로운 방어구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의 병력 규모가 계속 마음에 걸리오. 아무리 수비가 유리하다 해도 결과적으로 적어도 열 배가 넘는 적과 싸우게 되는 것 아니오? 현 상황에서 말이오.”


“잘 보셨소. 일당 십을 할 수 있는 병사를 훈련으로 배출한다 해도 일방적으로 밀리게 될 것이오. 뭐 뾰족한 수라도 있소?”


한동안 말없이 바다만 쳐다보던 송익필이 말을 꺼낸 이유는 방법도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궁금했다.


“이건 어떻소? 일 당 십의 군사를 만드는 게 어렵다면, 열 명당 백 이상을 할 수 있는 전술을 운용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소?”


“화포 말이오?”


“단순 무기체계가 아니라 전술을 말하는 것이오. 개인 전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왜구가 그렇게 강하다고 하니, 체계적인 전술과 훈련으로 넘어서야지요. 상황에 따른···.”


나는 말 없이 훈련도감을 쌓은 보자기를 송익필에게 건넸다.


“그러니 이걸 완성시켜 달라는 말입니다.”


“아, 그 책자는 필요 없소. 이미 내 머리에 넣어놨소. 자금은 충분히 있는게요?”


“아직은 천 단위의 군사를 부릴 수 있을 뿐이지만 곧 만 단위, 십만 단위까지 병사를 훈련 시킬 수 있게 될 것이오.”


“아니, 내게 지급할 돈 말이오.”


“아, 당연히 있소.”


“일행도 좀 붙여주시오. 왜놈 말이 익숙한 자로. 내 직접 왜를 보고 와야겠소. 아, 상선도 한 척 내주시고.”


“왜에 가신다는 말이오?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소. 선생.”


뜻밖의 결정이었다. 과정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생각이 끝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위험하지 않겠소?”


“위험할 게 뭐 있소. 호의적으로 대하게끔 만들면 되지.”


“뭔 작당들을 하느라 또 그러는 게야? 어떤가? 이놈 이거 생긴 거랑은 다르게 머리가 좀 돌아가지?”


이지함 선생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끼어드셨다.


“덕분에 저도 간만에 머리를 좀 쓰고 있습니다.”


구봉 선생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깐 놈이 뭐라고 앞날을 바꾸려 하는지. 쯔쯔쯧.”


“나 말이오? 늙은이들이야 뭐 곧 ······. 에이, 아니오.”


딱!


“곧 뒤지니까 걱정이 없을 거다? 이놈이 아주 날 뒈지라고 고사를 지낼 모양이네.”


“······변명하진 않겠소.”


난 말을 뱉으며 동시에 일어나 도망쳤다.





* * *





“황해도는 왜 가는 거요?”


“문화현이란 곳을 가야 하오. 집안에서 부탁한 일이 있어서.”


임꺽정과 예정에 없던 길을 나섰다. 밤사이에 뜬 상태창 때문이었다.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어서 집안일이라는 핑계를 갖다댔다.



[황해도 문화현에서 신분은 낮으나 용맹한 심장을 가진 자가 태어났습니다.]



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출생 년도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 자를 나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황해도 문화현에서 천민으로 태어난 이 영웅을.


‘비운의 용장,


한 명련.’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의 특천으로 오위장에 오른 인물. 조선의 4대 장수로 알려진 이순신, 권율, 정기룡, 그리고 한명련.


그의 초창기 생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만나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지만 나는 초반부터 이 영웅의 삶을 바꾸려 한다.


“이 쪽에 장이 어딨소?”


“장은 문화현으로 가는 길에 있소만. 오늘 이 어디보자. 오늘이 며칠이요?”


“저건 뭐요? 왠 사람들이 저리 많이 모여있소? 저거 장 아니요?”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있을 리가 없는데. 어디 가봅시다.”


다가가서 보니, 사람들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길 양쪽으로 끊임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누구 행차하시는 거 같은데?”


“그러게요. 누가 여기까지···.”


아무리 봐도 민가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부 이 동네에서 살 리는 없고, 해서 지방의 큰 사람이라 구경나온 것 같았다. 임꺽정도 궁금한지 마을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누구요? 누가 오시는데, 죄다 나와서 이러시오?”


“형조판서께서 이번에 우찬성으로 영전하시게 되었소.”


‘형조판서?’


행렬이 다가오자 난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상대편도 환하게 웃으며 급하게 말에서 내려 내게 다가왔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


“아니,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문화현에 볼일이 있어 예까지 왔사옵니다.”


익위사에 들어갔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었던 형조판서, 권 철.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원접사로 계셔서 반갑게 인사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형판께선 어쩐일로···.”


“이번에 우찬성으로 영전하게 되어 부모님 묘에 다녀오는 길이네. 아, 잠깐만 있어 보시게. 술이, 율이 잠깐 이리로 와 보거라.”


‘술이, 율이? 율이면 권..율?’


뒤쪽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자를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키는 나보다 더 크고 눈매가 서글서글한 청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어서 이리 와서 인사드리거라. 한 이정이라고, 내 일전에 너희들에게 말했던 우시직 나리시다. 아니지 의금부 도사시지.”


“권술이라 하옵니다.”


“전 권율이옵니다.”


“한 이정이옵니다.”


하마터면 다짜고짜 손부터 맞잡을 뻔했다. 마흔이 다 되어서나 과거에 급제하는 인물이라 만남을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왜 모르고 있었을까? 권철이 그의 아버지임을.


당장이라도 둘이 얘기 좀 하자고 붙잡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안면을 익힌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일행이 지나가는 걸 지켜본 후 임형과 다시 길을 재촉해야 했다.


“뉘시오?”


“전하를 잘 보필하고 있는 분이오.”


“스읍, 그건 그렇고. 저 키 큰 자제분은 범상치 않아 보이네.”


“형님도 그리 봤소? 나도 그렇게 봤소.”


“옷차림을 보아하니 아직 관직에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허, 별 보는 늙은이랑 다니더니 형님도 이제 별걸 다 맞추시오. 아직은 아니나 곧 큰 별이 되어 이 세상을 밝히게 될 것이오. 저 얼굴, 잘 기억해두시오.”


권율은 관직이 늦는다. 세상이 무료하다 여기는 대범함을 가진 이 영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뒤늦게 과거를 준비하게 되니까.


____________


권 율


연령: 24세 (1537년 생)


통솔(91) 무력(89) 지력(89) 매력(96) 정치(81)


_______________


‘사기캐다.’


아직 관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 분의 등용을 앞당겨야 한다.




* * *




꺽정형과 나는 쌀 한 섬을 양쪽에서 맞잡아 들고 여러 고개를 넘었다.


“힘들어?”


“아니오. 괜찮소.”


“거, 기집애처럼 비실비실 해가지고는. 이리 줘. 어 놔보라니까. 거, 돼지나 잘 끌고 와.”


괜찮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솔직히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쌀 한 섬의 무게는 144kg이다. 임꺽정은 ‘으쌰’ 하며 어깨에 쌀 한 섬을 짊어지고 앞서 걸어 나갔다. 이 괴물 같은 형은 땀도 흘리지 않는다.


“형님이라도 날 아껴주니 다행이오.”


“크크큭, 남사스럽게 별 미···,”


“큭큭, 끝까지 뱉어보시오. 미친놈한테 미친놈이라 그러는 건 욕이 아니지 않소.”


깔깔거리며 산비탈을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메케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다 썩은 짚으로 덮여있는 지붕만 봐도 가난한 마을.


“여기도 오랜만에 오네.”


꺽정 형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장예원을 불태웠어도 천민의 삶은 나아진 게 전혀 없었다.


“임껏정이다! 다들 나와 보시오. 임 껏정이 왔소!”


사람들이 하나둘 뛰쳐나와 임껏정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기다렸던 아버지가 온 것처럼. 도적질로 이쪽 사람들까지 다 먹여 살렸다더니, 진짜로 그러했었나 보다.


이 시대에 누가 이 미천한 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 이리 환대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꺽정형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천민의 대통령. 난 이 형이 자랑스러웠다. 아니 존경스러웠다.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이 마을엔 요 며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없다고 했다.


“여기 말고 저기 재 너머로 가보세.”


“저기에도 마을이 있소?”


꺽정형이 가리킨 길은 낮은 언덕으로 이어진 좁디좁은 오솔길이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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