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OTUS
작품등록일 :
2022.02.24 22:20
최근연재일 :
2022.03.11 11:5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25,435
추천수 :
685
글자수 :
103,782

작성
22.02.28 12:20
조회
1,222
추천
29
글자
12쪽

007

DUMMY

‘이놈 나보다 더 미친놈이다.’


아예, 장사를 할 모양새다. 아니면 그만큼 발이 넓은 건가? 뭐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나도 이참에 하나 더 얻어내자 싶었다.


“······천 개라. 제가 최선을 다해 구해 보겠습니다만, 그게 원래는 물 건너온 것이라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행수가 명에서 구해온 것이기는 한데, 유구국(류쿠)이라 했던가 아마 그럴 것입니다. 원래는 그곳에서 난 것이라 들었사옵니다.”


“구할 수 있기는 한데, 물 건너온 거란 말이지? 음, 유구국이라. 그곳에서 가져오면 명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더 싸게 구할 수도 있겠구만.”


“네, 그러하옵니다. 명을 거쳐오기 때문에 비싼 것으로 아옵니다. 만약 운항허가권과 값을 삼(蔘)으로 내어주시면 제가 그 상단을 움직여 보겠습니다. ”


“그래? 윤가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재인의 기운이 넘치는구나. 그렇다면 내 한번 알아보겠네. ”


당대의 사람도 후세의 사람도 윤원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척신 정치, 을사사화, 탐관오리의 끝판왕.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굳이 별로 섞이지도 않은 혈연으로 날 엮으려는 거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굽신거리는 이유는 나 또한 이 자가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

아주 단물까지 쪽쪽 빨아 먹을 계획이다.


“저.. 대감 저도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어디 말해보시게. 뭐 자네 부탁이라면야 뭐든지 괜찮네.”


“세자 저하의 건강 문제이옵니다.”


“건강이라니? 안 그래도, 우리 저하께서 요즘 영 힘을 못쓰셔. 그래도 자네 덕에 웃음은 많아지셨다고 하니. 그건 고맙네.”


“저하께서 몸이 안 좋으신 이유가 심열증이 아니라 습증인 것 같사옵니다.”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싫은 예전에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이웃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당연히 구라였지만 그냥 질렀다.


“어허! 불경스럽게 어디···.”


“그게 아니오라 약을 구해서 건강해졌다는 것이옵니다. 분명히 차도가 있었습니다.”


“허허, 미안하네. 내 성격이 좀 급해서. 그런데 습증이라고 했는가?”


“그렇사옵니다. 삼습탕이라는 것을 드셔야 차도가 생기실 것이옵니다.”


“삼습탕이라. 그럼 내 어의한테 알아보라 하겠네.”


알아봐도 모를 것이다. 삼습탕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것인데, 허준이 아직 그 책을 쓰기 전이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윤원형은 나를 다시 찾을 테고, 그때 또 한 가지를 얻어내야겠다.





* * *





“어이 익위사 양반, 실실 쪼개고 어딜 가는 게요? 집에 가는 게요?”


또 성룡이? 고개를 돌려본 나는 그대로 보자기를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아, 아니! 자네가 어떻게 여기 있나?”


“거, 뭔 뒷배라도 쓴 게요? 벌써 정 8품이라니. 그간 잘 지내셨소? 형님.”


이순신이 갓을 만지며 날 보고 멋쩍게 웃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안 그래도 꿈에 나와서 보고 싶었는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니.


“날 기다린 게야? 네가 여기 어떻게···.”


“거, 이것 좀 놓고 얘기하시오. 뭔 놈의 힘은 이렇게 쌔가지고는, 그만 놓으시오. 어깨 뿌러지겠소.”


순신이는 1년 새 키가 10cm은 더 큰 것 같았다. 상체도 좀 더 옆으로 벌어졌고. 턱선에 각이 잡힌 게 제법 이제 어른 같았다.


“어머니 심부름 때문에 큰 형이랑 며칠 올라왔소. 이참에 형이랑 술이나 한잔하려고.”


“너 아직 나이가···.”


“거, 형님까지 날 애로 보시오? 지가 술 가르쳐놓고 애 취급은···.”


“그, 그래 우선 주막으로 가세.”


팽개쳐놨던 짐을 다시 챙겨 걸음을 옮겼다. 순신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주막은 뭔 주막이요. 그냥 집으로 갑시다. 내 안 그래도 성룡이 형한테 맛있는 것 좀 싸가지고 집으로 오라 했소.”


“뭔 집?”


“형 집! 왜 싫으시오?”


“아, 아니! 싫을 리가 있나. 내 동생이 왔는데.”


순신이의 안부를 물으며 집으로 향했다.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뭐 이 성격에 못 지낸다고 할 사람도 아니지만.


-삐거걱!


대문을 열어젖힌 집은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의 날씨. 달빛만이 집에 온기를 주고 있다.


“이거 방이 차겠는걸. 잠시 기다리게 내 불 좀 지피고.”


“왜 아무도 없소? 곱단 아범은 우수영에 간 거요?”


“곱단 아범? 부모님 안 계시는 김에 좀 쉬고 오라고 며칠 평택에 보냈네. 안 그래도 곱단 아범이 자네 소식 없냐고 묻더만.”


아랫사람에게 늘 다정하게 대했던 순신이를 곱단 아범은 좋아했었다. 순신이가 이사갈 때도 서운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었다. 순신이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웬 목검이요? 것도 두 개씩이나. 맨날 짝대기나 들고 놀더니만, 이제 검법도 연습하시는 게요?”


“그냥 뭐, 흉내만 내는 거지.”


“어디 익위사 나리 칼맛 한 번 봅시다. 자 덤비시오.”


순신이가 목검을 내게 던졌지만 받지 않았다. 내 몸을 스치며 떨어진 목검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날도 추운데 뭔 대련이란 말인가.


“안 추워? 불부터 피우고, 뭐라도 좀 먹고 하시게.”


“허허허, 지금 내빼는 게요? 내 이미 값을 치루지 않았소.”


“뭔 값?”


“얼굴 보여 드렸잖소.”


순신이가 검 끝을 내게 향하며 걸어오며 말했다.


“불은 좀 있다가 피우고, 시간이 있으니 실력이나 한번 봅시다. 익위사 우시직 나리.”


“뭔 달밤에 칼춤은, 그냥 술이나 드세. 성룡이도 곧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 성룡이형 굼벵이처럼 느린 거 알면서 그러시오. 안 들어오시면 제가 갑니다.”


-휙!


갑자기 날아든 검을 몸을 뒤로 누이며 피했다.


“오호, 제법이오. 이제 허리가 뒤로 젖혀지는 게요? 그러고 보니 몸이 좀 홀쭉해지신 것 같소. 볼도 패이고.”


“제법이라니, 형한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순신이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목검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젠장, 오늘 또 대가리 깨지겠구만’


나도 그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무력을 아무리 90으로 설정 했어도 상대는 이순신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실력도 향상되었는지 한 번 해보자 싶었다.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약속된 대련만 했었으니.


‘본국검법, 그래, 본국검법만 생각하자. 하나한 자세에만 신경 쓰는 거야.’


“뭐요? 지금 비웃었소?”


순신은 목검을 두 손으로 말아 잡고 어깨너비로 발을 비비며 보폭을 넓혀 갔다. 흙먼지가 일었다. 이게 뭐라고 흥분되는지. 나이는 어려도 상대는 성웅 이순신이시니까.


“갑니다.”


-스솨솻!


순식간에 순신의 검이 같은 초식에서 바람을 세 번 베며 날아들었다.


따가각!


“크윽!”


검세가 부드러워 몰랐는데, 순신의 검이 묵직하게 내 검을 짓누르며 얹혔다.


“뭐요? 벌써부터 약한 척이요?”


약한 척이 아니다. 무력은 아직 내가 위일 텐데. 살을 너무 뺏나? 간신히 막긴 막았는데, 휘청거리며 한 발 뒤로 밀리고 말았다.


-본국검법, 직부송서(直符送書)


다시 칼을 뽑으며 몸을 오른쪽으로 180도 회전, 그리고 명치 찌르기.


슈익!


따각!


순신이는 가슴팍으로 향하는 검을 한 발을 뒤로 빼며 회전시켜 쳐냈다.


“호오올! 그간 뭘 한 게요. 역습도 할 줄 아시오?”


“퉷! 감탄은 아직 이르네. 잔말 말고 들어오시게.”


“침은 왜, ···망나니 같소.”


손에 침을 뱉고 검을 다시 말아쥐었다. 다시 반격을 노리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자세에서 이순신의 검이 Z자로 획을 그었었다.


따각!


예상과 다르게 반대편으로 날아드는 검을 날의 방향을 돌려막았다. 파르르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보폭을 다시 벌렸다.


-금계독립(金鷄獨立)


머리 위로 팔을 뻗으며 칼을 높이 들고, 오른발을 축으로 180도 돌아 왼 무릎을 직각으로 들며, 오른발 하나로 후면을 향하여 섰다. 카운터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촤앗!


순신의 검이 달빛을 빠르게 가르며 사선으로 내리쳤다.


슈슉!


따다각!


들어오는 검을 빗겨내듯 쳐서 흘려보냈다.


‘다시 공세로, ···흐앗!’


검을 찌르려 자세를 바꾸는데, 순신의 유연함이 칼의 방향을 숨긴 채 재차 날아들었다.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크게 한번 휩쓸어 피로써 산과 강을 물들인다. 충무공의 도(刀)에 적혀있는 문구가 또렷하게 이해되는 일격이 내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건 못 피한다.


쫩!


하는 수 없이 왼손을 들어 내리치는 목검을 잡아냈다. 이를 꽉 깨물어야 할 정도로 손이 얼얼했다.


“뭐 하는 짓이오. 검을 손으로 잡는 게 어딨소?”


“받아랏!”


쫙!


무방비 상태인 순신에게 검을 휘두르자, 순신도 왼손을 풀어 검을 잡았다. 순신과 나는 엉겨 붙은 체 서로를 노려봤다.


“거봐라. 너도 손으로 잡지.”


“아니 이게 실제 칼이라 생각해야지. 손으로 잡으면 어떡하오? 아, 놓으시오. 뭔놈에 힘은 이렇게 쎄 가지고. 짐승이요?”


“그럼 그냥 대가리 깨지란 말이냐? 한쪽 팔을 내어주더라도 목숨을 취해야지.”


“아, 진짜. 쫌 놔봐!”


“뭔 달밤에 엉켜붙어서 그 지랄들이오?”


한참을 순신이랑 실랑이를 하는데, 류성룡이 끼어들었다.


“어, 형님 오셨소?”


“왔나?”


“아까부터 문간에 서 있었소. 넌 뭐 하느라 그 뚱땡이 하나 제압 못 하느냐?”


“뚱땡이? 아 놔 이 자슥이.”


지금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분위기 깨지게 뚱땡이라니.


“시끄럽고 어서 와서 이거나 드시오. 아, 뭐 했소? 방이 냉골이잖아!”


류성룡이 손에 든 음식 보자기를 내려놓고 아궁이 쪽으로 걸어갔다.


삐거억!


“누가 또 오셨소.”


류성룡이 닫은 문이 다시 열리고 임꺽정이 들어왔다. 매일 밤 임꺽정은 집에 와서 내 수련 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임형! 잘 오셨소. 이 자가 날 해하려 하오.”


“하하, 엄살은. 저 일전에 뵀었던 이순신이옵니다.”


순신은 아직도 내 검을 놓지 않은 채, 임거정에게 인사했다.


“아이고,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어째 이 달밤에 칼을 나누십니까?”


임꺽정이 허리를 숙였다. 그제야 순신이는 잡았던 검을 놓고 다시 정중하게 인사했다.


“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번 이사 때는 제가 정신이 없어서 그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임형, 여기 이 검 좀 잡고 이놈 좀 혼내주시오. 아니 집안이 냉골이라 불을 때야 하는데, 뭔 동네 개 마냥 다짜고짜 덤비지 뭐요. 참나.”


“허, 어이없소.”


“이제 겨우 두 번째 뵙는데, 검을 나누란 말이오?”


“암튼 부탁하오. 내 금세 불 좀 넣고 오리다.”


탐탁지 않은 표정의 임꺽정에게 목검을 넘겼다. 순신이도 어째 망설이는 듯 보였다.


“아, 그리고 여기는 류성룡이라고.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동생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 임가라고 하옵니다.”


“전, 류성룡이라고 합니다.”


가늘게 눈을 뜨고 날 째려보는 류성룡을 뒤로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돌아와 대청마루에 앉았다. 임꺽정과 이순신은 검을 잡고 거리를 벌린 채 서 있었다. 성룡이도 둘의 대결이 궁금한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뭔 사람이 저렇게 크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큰 것 같소. 뭐 하는 사람이요?”


“임꺽정이라고 유기장일세.”


“아니, 저 덩치에 유기장이라니, 웃기오.”


이건 영화다. 진정한 팝콘 각이다. 이순신 장군과 임꺽정의 대련이라니.


서로 깍듯이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은 검을 들어 올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선 말종(末宗)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 안내 (오전 11:50) 22.03.07 450 0 -
20 019 +2 22.03.11 880 29 12쪽
19 018 +1 22.03.10 819 28 11쪽
18 017 +1 22.03.09 846 33 12쪽
17 016 +3 22.03.08 916 37 13쪽
16 015 22.03.07 976 34 13쪽
15 014 +1 22.03.06 1,017 33 11쪽
14 013 +2 22.03.05 1,020 31 13쪽
13 012 +3 22.03.04 1,040 35 12쪽
12 011 +2 22.03.03 1,077 34 12쪽
11 010 +1 22.03.02 1,117 33 12쪽
10 009 +2 22.03.01 1,142 31 12쪽
9 008 +4 22.02.28 1,189 37 11쪽
» 007 +1 22.02.28 1,223 29 12쪽
7 006 +1 22.02.27 1,252 32 12쪽
6 005 +7 22.02.27 1,330 32 12쪽
5 004 +3 22.02.26 1,380 35 10쪽
4 003 +3 22.02.25 1,459 39 13쪽
3 002 +2 22.02.24 1,730 37 12쪽
2 001 +8 22.02.24 2,288 46 12쪽
1 프롤로그 +3 22.02.24 2,717 40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