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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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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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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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DUMMY

포구에 다다르자 한눈에 담아지지 않는 대궐 같은 집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유구국의 거상, 카나쇼란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는 고려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중국어와 일본어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우린 고려인 후손과 일본어로 말해야만 했다.


“고려 인삼을 은과 바꾸고 싶어서 왔소.”


“고려 인삼이요? 진짜 그것을 가지고 왔어? 나 그거 뭔지 압니다.”


통역으로 데려온 상단의 서리가 일본어로 말하자, 카나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려 인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거래는 실랑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양의 은을 인삼과 바꿀 수 있었다.


윤원형이 향낭 값으로 준 삼을 넘기고 200관이 넘는 은을 확보했다. 공짜로 은을 얻은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윤원형에게 줄 향낭은 중원에서 아주 똥값으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여송(필리핀) 루손섬으로 가는 항로를 알아보고 우린 출항을 준비했다. 우린 많이 파손된 배 한 척을 카나쇼 상단에게 무상으로 넘겨주고 다음 거래를 기약했다.


나머지 배 두 척에 나눠탄 뒤, 우린 1차 목적지, 대두왕국(대만)으로 가기 위해 배를 정비했다.


“아니 도대체 여송인지 거기는 뭐하러 가는 거요? 대두 왕국은 또 뭐고”


“거기에 임형처럼 코 큰 오랑캐 놈들이 있소. 내 그 놈들이랑 거래를 좀 트려고.”


“코 큰 사람? 양인들 말이오?”


임꺽정의 얼굴을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인 사람들이니 당연히 임형보다는 작을 테지만, 코는 더 클지도 모르겠소.'


유구국에서 남동쪽으로 대두왕국까지 700km. 다시 600Km 남쪽으로 내려가면 여송의 루손이 나온다. 그곳을 무역의 본거지로 삼으려는 스페인 놈들이 있을 것이다. 난 그놈들에게 빤스만 입은 채 포박되어있는 왜구 50두를 선물로 넘기고 그 대가로 거래를 트려 한다.


그렇게 된다면 토정 상단만의 밀수출 교역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거래는 중요하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명의 간섭을 피해 서방과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이라 생각했다.


“한형, 출항하기 어렵겠는데?”


“왜요?”


“여인 한 명이 좀 이상해”


임꺽정을 따라서 타고 왔던 배의 상장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스무 살쯤 되는 여자가 누워있었다.


이 한 무리의 조선 사람들이 내가 왜구들을 사람 취급 안 하는 이유였다. 주로 15세에서 20세 사이의 조선 여인 일곱 명. 그들은 기력은 회복했지만, 아직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 곧 출산할 것 같은데. 우리 마누라 애 날 때랑 비슷해.”


왜구 상인들 중에 사람 장사를 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사람 장사는 당시 최고의 이문을 남기는 수단이었다. 그들의 지시로 해적들은 조선인을 납치해 새끼줄로 목을 묶은 후, 여럿을 줄줄이 옭아매 주로 포루투갈 노예상들에게 파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잡은 왜구들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악질이다. 그들을 제압하고 노획한 배 2척을 뒤지던 선원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을 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팔아버린 상태였고 이 어린 조선 여인들은 끌고 다니면서 성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것.


시간이 부족했지만 우린 다시 닻을 내리고 카나쇼에게 부탁해 의원을 배로 불러드려야만 했다.


“내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 도대체 몇 년 동안 끌고 다닌 거야!”


보다 못한 임꺽정이 칼을 들고 갑판으로 내려가려는 걸 막아서며 내가 가겠다고 했다.


갑판으로 내려오니 온몸을 포박당한 왜구들이 열과 오를 맞춰 무릎 꿇려져 있었다. 이틀을 굶겼는데도, 이 새끼들 악을 써대며 소리를 지른다. 난 허리춤에서,


-딱! 딱! 딱딱딱! 딱딱딱딱! 딱딱!


숟가락을 꺼내 세로로 세워 숨골만 골라 때리기 시작했다. 이지함 선생의 필살기.


그렇게 시작한 매질은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닥엔 숟가락을 맞고 기절한 왜구 50마리와 부러진 숟가락 30여 개가 함께 너부러져 있었다. 내 손바닥도 숟가락 손잡이에 까졌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아기를 순산할 수 있었다. 대신에 여송(필리핀)으로 가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산후조리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사람 거래까지 마다하지 않는 양놈들과는 어떤 거래도 하기 싫었다.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으나 이것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꼼짝없이 묶여있었던 사흘 덕분에.


지금 대만으로 가봤자 고산족이라는 원주민밖에 없다는 것.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사탕수수밭을 일구는 시점은 지금보다 뒤였다. 고생한 선원들 앞에서 난 내 입으로 ‘이산이 아닌가벼’ 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를 뻔한 것이다.


여송도 갈 필요 없어졌다. 주어진 3일 동안 우린 카나쇼 상단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친해질 수 있었다. 카나쇼 사람들에 의하면 필리핀에 있는 스페인 상인들과도 이미 거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삼은 생산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으니, 어떻게 금도 거래할 수 있겠소?”


“금이라고 했어? 고려에 금이 있어?”


은이 기축통화이자 국제화폐의 기능을 했던 시기이기는 했지만, 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금의 값어치가 떨어져서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포토시 은광과 이와미 은광에서 넘쳐나온 물량은 그 가치를 계속 떨어지게 할 거다.


카나쇼 상단은 앞으로 어떤 건이든 중계무역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파트너를 이용한 중계무역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3일 뒤, 산모의 몸 상태는 좋아졌고 말을 잃었던 조선의 여인들도 조금이나마 몰골이 좋아졌다. 우리는 그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배는 조류와 북풍을 거슬러 오르면서도 빠르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우리에겐 최고의 격군들이 있었으니까.


딱! 딱!


모두 때릴 필요는 없다. 왜구들은 숟가락만 꺼내도 움찔하며 미친 듯이 노를 저어댔으니까. 난 숟가락 한 묶음을 통에 넣고 흔들고 다녔다.


대마도에 대마도 출신의 처자 1명을 내려주고 우리는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이참에 대마도를 정탐할 계획이었지만, 집에 한 시라도 빨리가고 싶을 여인들을 위해 다음으로 미뤘다.


잠시 쉬는 줄 알았던 왜구들은 쉬지 못하고 또다시 노를 저어야만 했다.





* * *





조선인 처자들은 경상우수사로 계신 큰아버지 한귀상의 공으로 만들어주고, 중원 상단에 왜구들을 넘긴 뒤, 향낭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왔다. 왜구들은 따로 쓸 데가 있었다.


“이건 더 냄새가 좋구나. 물 건너 바로 온 것이라 그런가? 암튼 수고가 많았네.”


향낭을 종류별로 코에 갔다 댄 윤원형의 안면에 화색이 돌았다. 물 건너오기는 했다. 비록 남한강이지만.


“아주 수완이 좋아. 그래, 자네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느냐?”


“황송하오나 지금은 세자저하의 옥체가 염려되어 그리 못하겠나이다.”


“그래 그렇지. 빨리 호전되셔야 할 텐데.”


어디 호랑이 새끼가 개 밑에서 일하겠는가? 중추부에서 일한다는 것은 막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난 중추부를 부릴 생각이지 그 밑에서 일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윤원형의 흡족한 표정을 뒤로하고 난 동궁으로 향했다.


동궁에 들어서자 세자가 울상을 지으며 팔을 벌리고 버선발로 내게 달려왔다.


“다시는,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말거라.”


“네. 저하”


“저자들 하나도 안 웃긴단 말이다. 얼굴만 봐도 내 병이 또 도지려고 한다.”


세자가 가리 킨 곳에는 바보 분장을 한 두 세마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우울한 표정의 두 세마를 밖으로 내보내고, 난 순회세자에게 유구국과 왜구들의 얘기를 해주었다.


궁 밖도 제대로 나가 보지 못한 세자에겐 그저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아니, 그리 못된 자들이 있나. 내 백성을 그리했단 말인가? 허허, 내 이놈들을 당장!”


“저하, 그래서 튼튼해지셔야 하옵니다. 부디 성군이 되시어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모두 벌해 주시옵소서.”


백성들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굶고 핍박받아도 궁 안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른 척하고 있었다는 게 맞는 말이다.


‘눈과 귀가 가려졌고 손발이 잘려있는 왕은 내 조선에 필요 없다.’


“내 약조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하, 이이선생과의 학업은 어떠한지요?”


“죽겠다. 스승님은 조강, 주강, 석강에 소대, 야대까지 하신단 말이다.”


아침, 점심, 저녁 수업에 보충학습까지 받는다는 말이었다. 세자는 또다시 울상을 짓고는 이 건은 못마땅하다는 듯 쏘아봤다. 그래도 기특했다. 군말 없이 이이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달라는 말에 응하신 것이.


“약조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튼튼해 지시기로.”


“내 힘들다는 말도 네게 못하느냐?”


투정을 부리는 순회세자가 귀여웠다. 예전엔 늘 인상만 쓰고 있었는데, 많이 좋아지신 거 같았다.


동궁전에서 나와 익위사에 다다를 때 쯤, 이이 선생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세자의 석강을 위해 입궐하시는 길이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어, 우시직 양반 아닌가. 어디 다녀오셨다고?”


“네, 유구국에 다녀왔습니다.”


“유구국이라면, 음 꽤 먼 길을 다녀오셨겠군. 이제 취서(就緖)하신 게야?”


취서(就緖), ‘일의 첫발을 내딛다.’ 역시 이이 선생님다운 해안이시다. 내가 그냥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아시는 말씀이셨다.


“네, 조만간 찾아뵙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분은 뉘신지요?”


눈빛이 차갑다. 예사롭지 않은 자다. 순신이 나이쯤 되려나?


“내 문하에 있는 아이일세. 정여립이라고.”


“소인 정여립이라고 합니다.”


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여립, 후세의 평이 박하기는 하나 이 땅 최초의 공화주의자다. 정여립의 난과 싸이코 패스 같은 어릴 적 행태 등의 과가 공보다 더 알려진 자. 대동계를 조직해서 훗날 정여립의 난을 일으키게 된다.


“반갑습니다. 한이정이라 하옵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스승님의 벗이신데, 어찌 말을 높이시는지요.”


‘벗이라고? 그리 말씀하셨단 말인가?’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이 선생을 쳐다봤다. 이이 선생은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돌리셨다.


“내 세자저하 석강 때문에 먼저 가야겠네.”


“네. 선생님, 혹시 이분 익위사 구경 좀 시켜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안될 거 없소. 그리하시게 어차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낫지. 그럼 부탁하외다.”


이이 선생님이 동궁전에 드셨고 난 정여립을 데리고 익위사로 향했다. 후세의 평가가 맞는지 궁금했다. 이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이 선생 문하로 있으면 힘들지 않습니까?”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의견충돌이 있을 때는 조금 힘들기는 하옵니다. 저도 웬만하면 뜻을 굽히지 않는 성미라···.”


“정 선생은 고향이 어디신지?”


“전라 전주부 이옵니다. 소인 물을 것이 있사옵니다.”


“네, 말씀하시지요.”


“지난번 파주에 오셨을 때 말입니다.”


정여립이 말하다 말고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파주? 그때 거기 있었단 말인가?


“괜찮소. 계속 말씀하시게.”


“송구하옵니다만, 제가 그때 말씀하시는 걸 들었었는데. 이십만이 필요하압···.”


난 급하게 정여립의 입을 가리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동궁 밖으로 끌고 가듯 데리고 나가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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