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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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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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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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DUMMY

세자 책봉례는 이미 3년 전에 거행되었지만 사후 승인 개념인 명나라 황제의 고시를 받는 날이다.


명나라 사신들은 본인들이 상국(上國)이라며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본인들이 머물고 있던 태평관에서 세자에게 고명을 전하겠다고 전해왔다.


어쩔 수 없이 익위사는 몸이 안 좋은 세자를 모시고 태평관으로 가야만 했다. 세자가 태평관에 들었는데도, 그들은 일어서지 않았다.


동쪽에는 문관들이 위치했고 익위사는 문신들과 서쪽에 나란히 도열했다. 난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문제는 사신들이 더 무례한 요구를 하며 벌어졌다. 황제의 고시를 무릎을 꿇고 받으라는 것.


어린 세자는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이를 앙다물고 무릎을 꿇어 고시를 받들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처참한 광경에 사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상국이라 해도 세자를 모시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마음이 상했으리라.


부들부들 떨며 칼집을 움켜쥐고 있는 세마들 뒤로 다가서며 속삭였다.


“그래. 뽑아. 사내가 칼을 잡았으면 뭐라도 썰어야지. 어서 뽑아서 저 양갈래 머리를 한 변태 새끼들을 베어버려라.”


“······”


“저놈의 관모는 또 왜 저렇게 생겨가지고, 쯔쯔쯧! 축 늘어진 말 불알 같지 않은가?”


“흐읍······”


한복을 한푸라고 우기는 놈들이 근거로 삼는 게 명나라의 복장이라 비꼬고 싶었다. 한복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초가 녹아내리듯 늘어진 옷차림이다.


“새끼들 모가지 봐라. 아주 그냥 빳빳하게 섰네. 저게 말 불알이면 저건···, 에휴”


“···흐응, 저리 좀 가십시오.”


우세마가 살짝 고개를 돌려 쏘아보며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 머릿속에 심은 씨앗은 이미 발아 직전이니까.


“새끼들 몹시 흥분한 거 같아. 그지? 곧 머리에서 땀이 그냥 뻥!”


동시에 좌, 우향우를 한 두 세마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이 시끼들 서로 마주 보고 말았으니까.


“흐으응”


“웃지마. 웃으면 뒤져.”


한동안 끙끙거리다가 좌, 우향우를 한 번 더한 두 세마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피를 흘리며 흐느끼는 두 놈을 보며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욕할 때는 같이 욕하고 피 흘릴 때는 같이 흘리는 것, 그게 전우애다.






* * *






퇴근 후 성균관 기숙사에 들려 최립에게 술을 두 병 몰래 전해주고 귀중한 정보를 들었다. 성균관 동기 최립은 당대 문장가이며 허준과, 한석봉을 절친으로 둔 자이다.


순회세자의 습증 문제로 허준을 소개해달라고 찾아갔던 것이었는데, 아직 어린 허준보다 이지함 선생이 더 뛰어나다는 말을 했다.


‘이지함은 내가 알기론 피부 전문인데.’


토정 이지함 선생은 그의 호처럼 마포 일대에 흙집을 두고 전국을 유랑한 기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친한 친구였던 안명세가 을사사화 때 죽음을 맞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사셨다고 알고 있었다.


‘유랑하는 기인을 찾으려면 조직을 활용해야지.’


순회세자를 살리고 반드시 왕위에 앉혀야 한다. 변덕스럽고 판단 못 하는 인간이 다음 왕이 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어떤 사람이 될지 아직 모르는 세자가 낫다고 생각했다.


‘곧 봅시다. 임진왜란을 예언한 토정비결 선생.’






***





명종 16년, 1561년 기미년, 1월 17일




일전에 만들었던 향낭은 장안에 화제를 몰고 오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막대한 이문을 남기기 시작한 상단은 전국망을 구축하기 위해 본거지를 중원(충주)으로 옮겼고, 팔도 주요 고읍에 파견된 인원만 500명을 넘어섰다. 다단계 형태로 갖춰진 조직망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 힘으로 한 달도 안 돼서 이지함 선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장통방 도자전-



“아니 임형, 잘 모셔오라 그리 부탁했거늘, 왜 팔다리를 다 묶어 오셨소.”


“이 노망난 인간, 곱게 데려오려 했더니만, 저 지팡이를 들고 아주 개지랄을 하네.”


“그렇다고 머리에 솥뚜껑까지 씌우셨소?”


“그건 우리가 한 게 아닐세, 원래부터 저걸 머리에 쓰고 다니더라고. 지켜보니 저 솥을 다시 씻어서 밥도 해 먹고. 도대체 정신 이상한 자는 뭣에 쓰려고 데려오라 한 거요?”


나는 황급히 다가가 손을 묶은 밧줄을 풀고 솥뚜껑을 벗겨냈다. 이지함 선생은 명상을 하시는 듯 눈을 감고 계셨다.


“어르신,···어르신”


“···일 없으니 내가 있던 곳으로 다시 데려다 주게.”


“네, 잘 모셔다드릴 테니, 제게 한 시진만 허락해 주시지요.”


몸이 자유로워진 이지함 선생은 그제야 눈을 뜨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편안한 얼굴에 총기 있는 눈동자가 날 꿰뚫어 보는 듯 했다.


“네놈 눈에 야망이 그득하구나. 나 같은 늙은이에게 뭐 구할 것이 있다고 얘까지 잡아 온 게야?”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모셨습니다.”


“보아하니 부족함이 없는 자 같은데 무슨 도움? 욕심이 그득한 관상이야. 부족한 걸 찾기 전에 먼저 그 욕심이나 내려놓거라.”


“욕심과 의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딱!


허리춤에 있던 숟가락을 전광석화처럼 빼내 내 머리통을 때리셨다.


“쯔쯧,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먼 놈이군.”


아오, 하필 숨골 있는 데를 ···. 온몸에 전기가 오는 걸 보니, 이놈의 늙은이가 숟가락을 세워서 때렸나보다.


“아니 이 인간이!”


꺽정형이 손을 쳐들며 다가왔지만 내가 막아서면 괜찮다고 했다. 세자에게 줄 약을 구해야 하니까. 습증에 필요한 약에 뭐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르신, 사람이 죽어갑니다.”


“개소리 말고 네놈 이름, 생년월일부터 말해보거라.”


“네, 한 이정이라 하옵고 경자년 경인월 계유일 을묘시 이옵니다.”


이지함 선생은 눈을 감고 검지, 중지, 약지, 소지를 엄지에 붙였다 땠다를 반복했다.


“한 이정? 네놈이 한 가라고? 어디 거짓부렁이를···.”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찬 뒤, 솥뚜껑을 다시 머리에 쓰고 일어나시려는 선생을 붙잡았다.


“진짜요. 내 제대로 말했소.”


“흠, ······그건 그렇고 날 어떻게 찾아낸 게야?”


상단 얘기를 바로 해드려야만 했다. 이지함 선생은 늘 빈곤한 백성들과 함께하셨던 분이니까.


“네, 저희 상단이 전국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문을 취해 빈곤한 자들을 구제하려다 보니 그리 사람이 늘었습니다.”


“네놈들이었구나, 그 향낭을 팔아서 죄다 접붙인 놈들이. 음, 그렇다면 내 일각은 내어주지.”


“접붙이다니요?”


“향낭, 그건 참 기특하더만. 허허 그건 궁금했었어. 그래 그 이문으로 무엇을 하려 하느냐? 그냥 구제만 하려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장사치는 없을 테고.”


“임형, 미안한데 자리 좀 피해주시게.”


내 부탁에 임꺽정이 무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임꺽정이 들을 얘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란을 막으려고 합니다.”


“전란? 뭔 또 뜬금없는···. 자네 따위가 ···설마 국운이라도 볼 줄 아는 게야?”


“네, 처사님. 음, ···별을 보니. 30년 뒤쯤, 이 땅에 피바람이 불 것입니다.”


“···그, 그걸 어떻게 네놈이. 천문도 볼 줄 아는 게냐?”


뭐라 돌릴 말이 없었다. 그냥 더 물어보시면 별자리 몇 개 설명해 드리려 했다.


“그래서, 반드시 세자를 살려내야 합니다.”


“아니, 그것과 세자가 무슨 상관이라고. 오히려 그 대가 빨리 끊어져야 백성이 편안할 거네. 크음, 퉷!”


“선생님의 마음은 잘 알고 있사오나, 그 다음 왕이 어떤 자가 될지도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놈이나, 그놈이나겠지. 흐음··· 세자는 왜? 이놈도 보아하니 세자를 ···쥐고 흔드시겠다? 네 놈도 그리하면 안 돼! 사람이 원래 명대로 살아야지, 거스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너야말로 그러다 제명에 못 죽어.”




“제가 제 목숨 하나 구걸하고자 했으면 선생님을 찾았겠습니까? 운명을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그건 선생님 아니십니까! 딱 봐도 멀쩡하시구만 부랑자 행세는···.”


딱!


이 망할 늙은이가 깐 대만 골라 때린다. 머리를 쓰다듬는데 아픔이 뇌까지 파고 들어왔다.


“아니, 이놈이 왜 나한테로 화살을 돌리느냐? 뭔 생각인지, 설명해도 부족할 판에.”


“아오 씨, 한 대 더 때리셨으니 일각 더 추가 하겠소. 어떻게 식사는 하셨소?”


토정 이지함선생은 애덤스미스 보다 200년이나 앞서 국부론을 얘기하신 분이다. 그래서 부국안민에 대해 먼저 말씀드렸고 그 다음 강병을 설파했다.


국밥 한 그릇에 배가 차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계획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그래도 표정이 많이 누그러지셨다.


“그래서, 세자를 움직이시겠다. 이건가? 만약 말을 안 들으면 어찌할 것이냐.”


“끊어내야지요.”


따닥!


“허허허, 이놈 이거 아주 겁대가리 없는 놈일세.”


“이각 추가입니다.”


토정 선생은 내 의지를 물어보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일 없길 바라지만 사람은 마음대로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다. 아무리 세자를 모시는 입장이어도, 대의를 위해서라면 난 그리할 것이다.


“선생님도 이제 그만 방랑을 멈추시고 운명에 순응하시지요.”


“······”


휙!


찹!


내려치시는 숟가락을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며 잡아냈다.


“관직을 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저희 상단에 대방 어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미친···놈. ···안 하겠다면?”


“끊어내야··· .”


딱!


이지함 선생을 모시는 이유는 순회세자만을 위함은 아니다. 상업에도 도가 트신 분이고 의약, 복서, 천문, 지리, 음양등에 통달 하신 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향후 향낭을 비롯한 상품을 개발하기에도 큰 역할을 하시리라 생각했다.








* * *






며칠 뒤,



순신이가 꿈에 나왔다. 보고 싶지만, 당분간은 보지 않을 것이다. 순신을 돕고도 남을 재물이 충분히 쌓이고 있었지만 도움도 주지 않을 거다.


그 삶에 주어진 고난과 시간은 온전히 그가 겪어내야 한다. 그 어려움들이 모여서 충무공을 만들어 낸 거니까. 더군다나 그 고매함에 도움을 받을 리도 없지만.


익위사 생활은 늘 똑같았다. 우시직이 개그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개인적으로 임거정에게 활을 배우고 집에서는 본국검법을 익혀나갔다.


본국검법은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을 보며 연습했다. 이 책은 18세기의 정조 때 규장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지함 선생에게 숨골을 맞은 후, 전생에 글을 쓸 때 모아놨던 자료들을 상태창을 통해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하드디스크를 들고 죽길 잘했다 싶었다.


그동안 무를 멀리하여 비대해졌던 몸도 점점 탄탄하게 자리 잡아갔다.


명나라 사신 건 이후로, 두 세마는 나와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됐다. 우린 모두 문관 출신이기는 했으나 매일 군사들과 함께 검을 연마했다.


“자네가 우시직인가? 영중추부사께서 찾으시네.”


“나를? 영중추부사께서 왜?”


“거, 반말은···. 내가 위일세.”


한참 깔깔거리며 무예를 연마하고 있는데 중추부 당후관(정7품)이 날 찾아 왔다. 당후관을 따라 한성부 서부에 있는 적선방(중추부)으로 갔다.



-중추부-


“내가 누군지 알겠나?”


“네, 대감.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이목이 있어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윤원형, 외가에서 상전처럼 모시는 어른이다. 어릴 때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관직을 정8품부터 하게 된 것도 세자 저하의 힘에 이자의 힘이 더해진 것이리라.


“괜찮네. 자네 부친이 인사 왔었네. 다름이 아니라, 내 부탁이 있어서 자넬 불렀네.”


“말씀하십시오.”


“거, 왜 세자저하께 구해드린 그 향낭 좀 더 구할 수 있는가? 안사람이 구해달라는데, 당최 구할 수가 있어야지. 사람을 시켜 품을 팔아봤지만 죄다 절품되었더군.”


정난정이 그 냄새를 맡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지. 그건 그렇고 절품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팔리고 있는 거지?


“네, 대감 필요하신 만큼 구해드리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신지요.”


“역시 집안사람이라 다르구만. 통이 커. 값은 내 충분히 치를 테니 넉넉하게 갖다 주시게. 주변에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종류별로 한, 천 개씩 구할 수 있겠는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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