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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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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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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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3

DUMMY

임 거정의 부하들이다. 임거정은 한 명 한 명 그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줬다. 그들 중에 서림이라는 자도 있었다.


“시간 딱 맞춰 왔구나. 이 바구니들 좀 다 수레에 실어라.”


“네, 형님.”


시간 맞춰 온 게 아니다. 아까 전부터 반대편 능선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있었다. 아마 이 네 명 외에도 이 일대에 더 많은 부하가 있을 거다. 사람들이 이쪽으로 못 다니게 막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손이 이래서 악수를 할 수는 없고, 우선, 이거 한 점씩들 입에 넣어보시오.”


“이게 뭡니까?”


한 명씩 입에다가 두툼한 우둔살 덩어리를 넣어주었다. 육사시미다. 임거정은 이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어머니! 이정이 왔습니다.”


“아이고 이게 다 뭐냐? 순신아! 이리 좀 나와봐라.”


집 앞에 있는 수레를 보신 순신이 어머니, 변부인께서 아연실색 하셨다.


“내일 이사하시려면 사람들 부르셔야 할 것 같아서···.”


“헉, 이게 다 뭡니까?”


이순신이 급하게 뛰어나오다가 문지방에 멈춰섰다.


“그리 서 있지 말고 자네는 이리 좀 나와보시게. 내 소개할 사람이 있어.”


문지방에서 수레를 보고 있는 순신이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두 위인의 만남, 임꺽정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성웅의 미친 매력이 필요했다.


“여기가 이순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이오.”


“저, 임가라고 하옵니다.”


“네, 전 이순신이라고 하옵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이시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피 칠갑을 한 백정을 보고, 저리 인사는 안 할 거다. 하다못해 인상이라도 쓸 텐데, 이순신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계곡에서 씻고 대충 빨았어도 무명옷에 핏자국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머니, 아궁이에 솥좀 올려주세요.”


“그래,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제일 큰 솥으로 올리면 되지?”


순신이 어머니께선 놀란 눈을 거두지 못하시며 집 안으로 서둘러 들어가셨다.


“헤엑, 이게 다 고기요? 뭔 고기를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소? 이거 말이요?”


“소. 걱정마시게, 다 절차 밟은 거니까. 반만 들여가게. 반은 이 사람들 거니까.”


임거정의 부하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귀한 쇠고기 반이 자신들 몫이라고 하니 말이다. 집에 한 바구니씩 가지고 들어가면 가족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아무리 큰 솥이라 해도 이 많은 고기는 다 들어가지 않는다.


가세가 기울어서 이사 가는 순신이네는 짐은 많은데, 도울 손이 부족했다. 마을 잔치라도 하면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소를 잡아 온 거다. 고깃국이라도 준다고 하면 너도나도 돕겠다고 할 테니까.


소 맛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대충 다른 잡고기라 둘러대면 될 것이고, 떠나는 동생 든든히 먹여 보내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애쓴 임거정의 동생들에게 고기와 내장을 한 바구니씩 안겨 집으로 보내고, 임거정과 주막으로 향했다. 순신이는 짐 정리 중이라 함께하지 못했다.


“임형, 오늘 죽도록 달립시다.”


“거, 술도 못하게 생긴 양반이 그러다 진짜 디집니다.”


우린 큰 사발에 술을 부어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임형은 어디 출신이오?”


“전 본디 양주 사람인데, 황해도 봉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황해도라 하면, 그쪽 갯벌도···.”


어느 시대건 밟히는 사람들은 당연하다 받아들이게 만들고 밟고 있는 놈들은 그걸 누린다. 날이 갈수록 먹기 힘들어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임꺽정은 도적이 된 것 뿐이었다.


결정타는 황해도의 간척사업, 그나마 갈대로 만든 공예품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연명해주던 갈대밭마저 힘 있는 놈들에게 빼앗겼다. 그에겐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말씀 마십쇼. 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 열불이 터집니다. 그 개ㅅ···”


-쾅!


“이런 버러지 같은 개새끼들! 지들 재산 좀 늘리겠다고···. 망할 새끼들 같으니라고. 내 힘이 생기면 사지를 다 찢어발기겠소.”


일부러 상을 내리치며 화를 냈다. 임꺽정이 내 앞이라 차마 욕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찰지게 욕도 박아 주었다. 연기 반 진심 반으로.


갯벌과 갈대. 천민들에겐 유일한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양반들에게 줄 땅이 부족하단 이유로 나라가 메워버렸다. 난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꺼냈던 거고.


임꺽정은 한참 동안 울분을 토해냈다. 난 그저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며 욕설로 추임새를 넣었다.


“한형, 우리 이거 우리 너무 급하게 친해지는 거 아니요?”


“사람이 사람 좋으면 된 거지. 아니지 ···짐승끼리 서로.”


“짐승이오? 하하하하, 이 양반 이거..., 아무튼 참 재밌소.”


짐승이 너와 나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임거정은 껄껄대며 웃었다. 툇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답게 들렸다.


“임형, 우리 의기투합한 김에, 장사나 한 번 같이 해봅시다. 그걸로 우리 백성들 좀 먹고살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데.”


“허허, 이 양반, 왜 육의전이라도 하시게? 그런 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지.”


“그런 조그만 장사 말고···. 그나저나 지금···, 거 보쇼. 서로 말 놓으니까 이리 좋은걸.”





-1559년-




[ 북방에서 큰 별이 태어났습니다.]




[ 서방의 큰 별이 졌습니다.]


.


.


.




'상태창이 뭐 이렇게 불친절해?'


북방의 큰 별이면 아오신기르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근데 서방의 큰 별은 또 뭐지. 어쨌든 다행인 건 임꺽정의 난이 이 해의 사건에서 없어졌다는 거였다. 그 일 때문에 임꺽정은 죽게 되니까.






* * *





1560년, 명종 15년



성균관(成均館) 왕세자, 입학례.



물론 성균관이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지친다. 매일 뭔 놈의 시험이 이렇게 많고, 행사는 또 왜 이리도 많은지.


그래도 오늘 순회세자를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되었다. 세자가 소학을 배울 나이, 8세가 되면 성균관에 입학한다.


순회세자는 성균관에서 입학의(入學儀)를 갖게 되지만, 실제 교육은 종학(宗學)에서 진행된다. 오늘이 아니면 그를 볼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제 8살인 순회세자는 13살에 죽게 되니까.


그의 죽음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성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가 야사로나마 남아 있는 것은, 너무 어린 나이에 궁녀들과 주색잡기를 즐기다가 기가 허해져 죽었다고 한다. 고작 13살에.


“세자 저하 듭시오.”


순회세자, 이곤령이 성균관 학생복을 입고 성균관명륜당 동문에 섰다. 유생들은 북쪽을 바라보고 도열해 있었고 난 그중에서 동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머리를 숙인 채 곁눈질을 해댔다.


‘뭐지? 저 얼굴은···,’


잠깐 쳐다봤는데,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와버렸다. 대충 그려 파는 이모티콘에 나오는 캐릭터 처럼 생겼다. 밀가루 떡처럼 하얗고 통통한 소년이 어찌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표정으로 따분하다는 듯 배만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자꾸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서 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자네 왜 그러는가?”


왼쪽에 서 있던 최립이 옆구리를 콕 찌르고는 하지 말라며 인상을 썼다. 최립은 성균관에 들어와서 친하게 된 벗이었다.


그래도 딱 한 번 만 다시 보자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순회세자도 날 보고 웃고 있었다. 그나마 재밌는 걸 하나 찾았다는 표정으로. 난 다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입학의를 마치고 성균관을 나와 집에들려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한온의 도자전으로 향했다. 한 온은 날 기다렸는지, 점포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한온의 도자전 뒤편에 집이 한 채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물품들을 꺼내오길래 창고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점포 안쪽의 문을 열자 집이 한 채 더 있을 줄이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꺽정이 환한 표정으로 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섰다.


“여, 드디어 오셨네.”


“그간 잘 지내셨소. 임형.”


서슴없이 내민 임꺽정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수레를 끌어줬던 아는 얼굴 네 명 외에도 십여 명이 더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뭔 장사를 하자고?”


한온이 점포와 연결된 문을 굳게 걸어 잠그며 말했다.


“한 형은 향낭 좀 종류별로 가지고 오시게.”


“반갑습니다. 저도 꺽정이 형 동생이고 한 이정이라 합니다.”


“한형이 말했던 대로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 죄다 추려서 데리고 왔네.”


처음 본 임꺽정의 부하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임꺽정은 형이란 말에 멋쩍은 듯 머리를 긁고 있었다.


“자 그럼 시간 끌지 않고 설명하겠소. 말이 좀 길어질 것 같으니, 편하게들 앉으시오. 거, 서 있지들 말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다들 여인네와 이러저러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오. ”


서두를 여자 이야기로 꺼내자, 모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날 쳐다봤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남정네들에게 이런 화두를 꺼내면 집중하게 되니까.


“왜 양반들이 기생의 치마 품을 못 벗어나는 줄 아시오? 물론 그녀들의 미모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니오. 남자라면 다 비슷하겠지만. 아무튼 기생과 술을 잘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기생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지 뭐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옆에서 코를 고는 부인에게 눈길이 가게 되는데······,”


“···뭐요? 왜 뜸을 들이시오?”


임꺽정의 부하 한 명이 침을 꼴깍 삼키며 재촉했다.


“이게 뭔 냄새지? 허허, 기생에게선 향기가 났었는데, 마누라는 은은한 똥 내가 난단 말이지. 그럼 머릿속에는 이미 부인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아리따운 기생은 인사도 없이 가버렸고, 한낮에 어디선가 보았던 돼지 궁둥이가 생각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어렵게 세웠던 뜻을 꺾을 수밖에.”


“에? 그거랑 장사랑 무슨 상관이요?”


“가져왔나?”


한온이 건네준 향낭을 들어 모두에게 보여줬다.


“자, 이게 돈 많은 집 양반들이 쓰는 사향낭이라는 걸세. 자 이리 나와서 다들 냄새 맡아보게. 이걸 구하려면 적어도 현미 20섬은 넘게 줘야 하네. 이 작은 게 말일세.”


“그렇게나 값어치가 된단 말이오?”


다들 처음 맡아보는 냄새라며 웅성거렸다.


“자, 그럼 이번엔 이걸 맡아 보시게. 이건 백단향으로 만들어진 향낭이네. 이건 아까 맡아본 사향 향낭의 3배. 그러니까 현미 60섬은 줘야 얻을 수 있는 거지.”


“그건 또 뭔데 그리 비싸오?”


“이게 비싼 이유는 백단향을 구할 수가 없어서네. 기후가 틀려서 이 나라에는 백단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까. 그래서 무굴국이란 곳에서 생산된 이것을 명을 통해 들여올 수밖에. 그러니 비싼 것이고. 어때 다들 맡아보셨는가?”


“이걸 팔자는 것 같은데···. 뭐, 이문을 크게 남길 수 있다니 그건 좋소. 근데 그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서림이 향낭의 냄새를 맡고는 말했다.


“서림, 자네가 나온 김에 그 보따리 좀 풀어보게.”


바닥에 놓인 보따리를 서림이 풀었다.


“아니, 이건 불상 아니요?”


“한형, 이거 구하기 어렵소?”


“아니오, 쉽소. 다들 이제 불교를 안 믿으니. 우리 가게에만도 100개는 넘게 있을 거요.”


“이 불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네. 이게 백단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지. 어때 냄새가 비슷하지 않아? 이 손바닥 만한 나무 불상 하나를 부셔서 가루를 내면 이 향낭을 200개는 만들 수 있네. 쌀 4000섬의 값어치지.”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불상을 넘겨가며 냄새를 맡았다.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른 냄새가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봤네. 한 형, 우선 이 불상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모두 사들이게나. 지금 불교를 믿는 자들은 없으나, 집구석 어딘가에 하나씩은 남아있을게요. 절에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고. 다른 냄새는 이 백단향에 두 가지만 더 섞으면 되오.”


“그게 뭐요?”


“하나는 수컷 노루의 복부에 있는 향낭에서 분비물을 얻는 사향이오, 허나 사향은 워낙 귀해서 있더라도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고 비싸기도 하니 우린 고라니의 것을 씁시다.”


“고라니?”


“그렇소. 어차피 농부들 입장에서는 유해한 동물이니, 쌀과 바꿔 준다고 하면 너도나도 잡아 올 것이오. 그들에겐 일석이조인거지. 더군다나 고라니의 냄새는 노루보다 더 진하오. 그래서 못 먹는 짐승이기도 하고.”


“그럼 구하기 쉽겠구만, 또 하나는 뭐요?”


“그건 이것저것 꽃을 말려서 쓰면 되는데, 우선은 매화를 쓰려 하오.”


어느 정도 설명을 맞추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기도 쉽고 제조과정도 쉬운 물건이 비싸게 팔릴 수 있다니, 쉽게 납득이 된 듯 보였다.


“그건 그렇고. 이 동생들은 어디다 쓰려고 데려오라 한 것이오?”


임꺽정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동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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