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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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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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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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DUMMY

-한성 윤원형 대감댁-



향낭으로 이문과 체면을 세웠던 윤원형의 욕심은 토정 상단으로 향해 있었다. 사람들을 풀어 상단의 동태를 감시하던 중 중원의 창고를 알아냈다.


그곳에서 가져온 향낭과 불상을 집어 들었던 윤원형은 냄새를 번갈아 맡아보고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윤원형은 목을 쭈욱 늘어뜨린 채 뒷짐을 쥐고 마당을 오고 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이정이란 놈이 상단의 배후에 있을 것이었다.


그런 미천한 놈에게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수족과 같이 부리는 놈에게 속은 거니까.


“다들 뭘 하느라 그놈 하나 잡아 오지 못하고! 사대문은 모두 봉쇄하였는가?”


“그것이, 아무래도 한성에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 의금부 나관 말로는 일주인 전쯤 왕명으로 암행을 나갔다고 하는데, 도무지 그의 행적을 쫓을 수가 없사옵니다.”


“도대체 그동안 사헌부(司憲府)는 뭘 하고 있었던 게야!”


안절부절못하고 마당을 거닐던 윤원형은 문가에 서 있는 애꿎은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을 질책했다.


“에이씨,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감히 은혜를 사기로 갚아! 한귀상이 집에는 사람들을 보냈느냐?”


“네, 그곳과 사대문에는 이미 소유(所由)들을 보내 놓았습니다.”


당장이라도 왕에게 달려가 한이정의 행방을 묻고 싶었으나, 최근 들어 본인을 멀리하는 왕을 윤원형은 쉽사리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한 이정을 자신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사헌부에 두고 수족처럼 부리려 했는데, 사헌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의금부로 보낸 왕의 의중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절부절 하지 말고 대비마마께라도 가보시구려.”


“이런 멍청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새파란 놈한테 당했다고 자랑할 일 있어! 내 이놈을 당장···.”


“그럼 제가 대비전에 들지요. 주상의 동태는 제가 살피고 오겠소.”


“안 되겠어. 내 당장 사헌부로 가야겠네. 대사헌은 앞장서시게.”


윤원형과 정난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 각자 대비전과 사헌부로 향했다.





* * *





-숙정문(북문, 삼청동 일대) 외곽


멀리 북문이 눈에 들어오자 토정 선생은 걸음을 멈추셨다.


“아깝지만 물건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고, 네 놈 모가지는···. 괜찮겠느냐? 당분간 어디에라도 잠적해있지. 왜 굳이 들어가겠다는 거냐. ”


“허허, 영감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요? 뭐 큰 죄도 아닌데 죽이기라도 하겠소? 의금부 짤리면 뭐 영감이랑 칡이나 캐러 가지 뭐.”


“네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농이 나와? 윤원형이가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네. 내 을사년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지함 선생은 을사사화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하셨다. 가장 절친한 친구, 윤명세와 주변에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때 모두 세상을 떠났었으니까.


“것보단 함께 끌려간 사환들이 걱정이오. 거, 정 내 걱정도 하신다면, 지리산에나 좀 다녀오시오.”


“묘향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지리산이냐! 이놈이 내 생명줄을 갉아 먹으려고 들어. 지리산은 또 왜?”


농담을 하며 날 바라보던 토정 선생의 얼굴엔 근심이 어려 있었다. 난 이지함 선생의 손을 잡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이지함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쉰 뒤, 먼저 발길을 옮기셨다.


칼 찬 선비, 성리학의 거두.


이황의 퇴계학파와 영남지역을 양분하고 있는 실천의 성리학 남명학파의 조식 선생님은 지리산에 은둔하고 계셨다.


조식 선생은 문정왕후를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라고 칭하며 척신 정치를 비판하셨던 분이다. 이지함 선생이 기인 생활을 하실 때 두 분이 막역하게 지낸 걸 알고 있었다.


“한형 난 뭘 어떻게 할까?”


“임형은 이 서찰을 들고 장연 현감을 찾아가시게.”





* * *





두 사람에게 할 일을 일러주고 숙정문으로 들어갔다. 내가 누군지 확인한 포졸들이 신호를 보내자, 기다리고 있던 사헌부 소유(所由) 10여 명이 날 둘러싸았다. 안면이 있었단 사헌부 감찰이 교서를 펼쳐 들었다.


“죄인, 한 이정을 사헌부로 압송하라는 대비전의 명령이오. 뭣들 하느냐 어서 이자를 포박하라!”


“죄명이 뭐요?”


“뭐, 뭣들 하느냐? 이놈을 포박하라니까!”


“이놈?”


-쫘악!


뺨대기를 후려 패자 사헌부 감찰이 휘청거리며 칼을 놓치고 주저앉았다.


“어디 정6품 나부랭이 감찰 새끼가, 어명으로 움직이는 의금부 도사님한테 이놈이라니! 네놈이 죽고 싶은 게냐? 그래 내 죄명이 무엇이냐?”


“아니, 이 미친놈이!”


주저앉았던 사헌부 감찰이 일어서며 칼을 꺼내 들자, 나머지 소유들도 칼을 꺼내 내 목에 겨누었다.


“ 풍문거핵 (風聞擧劾: 소문 만으로 탄핵할수 없다), 불문언근 (不問言根: 근거를 대지 않아도 무방하다)의 의금부 도사에게 지금 죄명도 대지 않고 칼을 겨누는 게야!”


“뭣들 하느냐! 어서 이 자를 당장 포박하라!”


“내 죄명이 무엇이냐 물었다!”


타고난 목청으로 핏대를 세우자 함부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체체체 쳉!


“도사 나리를 보호하라!”


한참을 사헌부 놈들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내 목에 겨눠진 칼들을 쳐내며 검은 관복을 입은 의금부 백호와 나장들이 끼어들었다.




“뭐냐?”


“늦었사옵니다. 도사나리”


“뭣하러 자네들까지 나오는 게야. 다들 칼 거두시게. 네놈들도 칼 거두거라. 내 직접 사헌부로 가도록 하마.”


“도사나리 그래도···.”


“괜찮네. 별 문제없을 것이네. 들렸다가 내 곧 의금부로 가겠네. 염려들 마시게.”


걱정하는 의금부 나장들을 돌려세우고, 칼을 내린 사헌부 소유들을 따라 사헌부로 향했다.


사헌부에 들어서자 윤원형과 사헌부 대사헌, 게다가 의금부 수장 판의금부사 병조판서까지 함께 나란히 서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뭘 잘했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들어오는 게야!”


“무슨 문제 때문에 이러시는지요? 부원군 대감.”


“지금 네놈이 여기까지 와서도 오리발을 내미시겠다? 네 놈이 날 능멸해놓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제 덕에 이문을 취하신 건 부원군이신데, 왜 저를 탓하시는지요?”


“네 이놈!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거짓을 고하겠다는 것이냐!”


“아직 고하지도 않았소.”


“네 이놈! 개새끼를 키워놨더니, 이제 주인을 물어?”


“어느 개새끼 말이오? 부원군께서 키운 거요?”


난 판의금부사와 대사헌을 훑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쨍그랑!


씩씩거리던 윤원형이 옆에 있던 도자기를 내게 집어 던졌다. 내 머리를 맞고 박살이 난 도자기가 흩어지며, 우리 관계의 끝을 알렸다.


“이노옴! 뭣들 하느냐? 이자를 밀위청에 당장 가두거라!”


“거, 내 죄명이나 좀 알고 갑시다. 그리고 당직청으로 바뀐 지가 언젠데···,”






* * *





궁궐 정문 옆, 당직청(當直廳)



일주일 째, 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갇혀 지냈다. 옥사 여섯 칸에 죄인은 나 혼자였다. 그동안 내게 덮어 씌워진 죄명은 사기관사취재(詐欺官私取財: 사기), 사후수재(事後受財: 뇌물).

사헌부 감찰을 때렸다는 이유로 투구(鬪毆) 죄가 보태져 있었다. 별다른 심문 없이 정해진 죄명은 왕의 윤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큰아버지, 한 귀상에게도 죄를 물으려 한성의 집을 털었으나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곱단 아범을 포함한 하인들은 이미 자유인으로 만들어 상단에 취직시켰고, 집안의 재물은 모두 내가 팔아먹은 뒤였으니까.


큰아버지가 불법적으로 모아둔 재산은 한온을 시켜 모두 내다 팔았었다. 백금산을 매입하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그리했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그곳을 조사했던 사헌부 관리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큰아버지에게 청백리란 말까지 했었다고 한다. 덕분에 큰아버지는 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일주일 째, 아무런 상소도 먹히지 않던 내게 야음을 틈타 왕께서 찾아오셨다. 예상보다 늦긴 하였지만, 친히 행차하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 심각한 얼굴을 한 명종이 옥사에 들어서 내 앞에 섰다.


“쯔쯔쯧, 몸이 많이 상하였구나.”


“아니옵니다. 괜찮사옵니다. 전하”


칼을 찬 상태여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명종은 안쓰러운 듯 그런 날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다. 앉아있거라. 내금위들은 다른 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문을 지키거라.”


명종이 명하자, 내금위 겸사복들이 사헌부 인원들을 감옥 밖으로 내보내고 모든 출입구를 막아섰다.


“저자들이 말하는 게 사실이냐? 자네가 서원 부원군에게 그리 한 게야?”


“네, 저하.”


“허허허, 지금 변명도 안 하고 맞다고 하는 게냐? 뭐 조사해보니 따로 재산도 없고 무슨 연유로 그리한 것이냐?”


“네, 소신 사기관사취재를 한 것이 아니오라,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부원군으로부터 이문을 취하였나이다.”


“정상적인 거래로 이문을 취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이문은 어찌하였느냐? 조사해도 나온 게 없다 들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일으킨 상단의 배후에 귀공이 있다 들었네만.”


지난 일주일간 명종은 내금위를 통해 따로 조사를 명했던 게 분명했다. 아직은 나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 이문으로 상단을 통해 백성들을 돌보았고, 전하를 위해 땅을 매입하였나이다.”


“그래. 그 상단이 백성들을 돌보았다는 것은 나도 들었다. 그건 그렇고 ···날 위해 땅을 매입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더냐?”


“송구하오나 소신 이 자리에서는 밝힐 수 없고 이곳에서 나가는 대로 소상히 보고하겠나이다.”


“허, 허허허, 나오면 말 하시겠다? 나보고 힘을 쓰라는 것으로 들리는구나. ······미안하구나. 내게 힘이 없어서···, 후우”


웃음기가 사라진 명종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본인도 답답한지 한숨까지 내쉬셨다.


“그 힘, 이제부터 제가 모아드리겠사옵니다.”


“허, 지금 옥에 갇혀있는 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구나. 아무튼 내 다시 대비전에···. ”


“전하, 일전에 신에게 편이 되어 달라고 하셨던 것은, 이제 외척세력과 선을 그으시겠다는 전지(왕의 의지)가 아니셨는지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던 명종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


“그럼 이제 신이 그들을 몰아내도 괜찮다는 것으로 알겠사옵니다.”


“허허허, 몸 상하지 않게 각별히 신경쓰라 내 이르겠네.”


멈춰 섰던 명종은 걸음을 다시 옮겼다.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럼! 윤허하신다는 말씀으로 알고, 신, 한 이정 이제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자신 있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원래는 의금부의 나장들도 이곳 당직청에서 근무를 섰었는데, 사헌부와 마찰을 빚은 일 때문에 출입을 통제당한 상태였다. 그게 계획에 차질을 줬다.



* * *



옥사에 갇혀 지낸 지 3주가 지나갔다. 아닌 척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있었지만, 온몸이 욱신거리고 쑤셔왔다. 엉덩이 밑으로는 이미 내 몸이 아닌 듯 감각이 없었고, 뒷목은 칼의 무게에 짓눌려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장형이나 추국이라도 당하고 싶었다. 그리하면 잠시 이곳을 나갈 수 있을 텐데.


육체적인 고통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정신적인 질병이 다시 도져서, 미치고 팔짝 뛸 정도의 심리상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폐소공포증'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에 신경이 꽂히기 시작하면 그 답답함은 좀 잡을 수 없이 마음을 갉아먹게 된다.


이번 생에서는 한 번도 발병한 적이 없어서 그만 잊고 있었다. 답답한 옥사는 눈을 감고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면 잊을 수 있었지만, 목제 계구의 무게와 5자 5치나 되는 길이에서 오는 이물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 괴롭혔다.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무 널판에 새겨진 25근이라는 숫자가 눈을 통해 머리에 새겨진 후, 나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편하거나 어찌할 수 없는 작은 부분 하나에 꽂히기 시작하면, 모든 생각은 그것으로 가득 들어찬다.


폐소공포증은 결국 죽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마음이 온몸을 지배한 상태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흰자가 눈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정신 줄을 놓아가고 있을 때, 처음 본 사헌부 사람이 옥사로 들어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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