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종(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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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US
작품등록일 :
2022.02.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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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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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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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DUMMY

아산 염치읍.


미끼를 문 송익필을 데리고 아산으로 왔다. 상단의 사람들은 당진에서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상단의 본거지를 당진으로 옮기겠다는 이지함 선생의 뜻을 따라 그곳의 터를 조사해야 했으니까. 아무래도 운송 물량이 많아지다보니 육지 이송은 불편함이 많았다.


“여긴 누구 집이오?”


내가 멈춰서자 무예도보통지를 계속 보며 걷던 송익필이 물었다. 난 대답 대신 문을 열어젖혔다.


“어머니, 이정이 왔습니다.”


“어머니 안 계시오. 그때 나만 내려왔소.”


“잘 있었는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소?”


대청에 앉아 활을 만지고 있던 순신이가 환한 얼굴로 다가와 내 몸을 아래위로 살폈다.


“옥살이가 체질에 맞나보오. 군살이 많이 빠졌소.”


“아, 여기는 송익필이라는 분이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순신이라 하옵니다.”


“송익필이옵니다.”


난 그저 미끼다. 여기까지 데려오는 게 나의 역할. 비범한 자는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난 그저 고기가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눈만 가리면 된다.


“여기서 하루 묵어도 괜찮지?”


“괜찮기는 하오만 누추해서”


“누추하긴, 내 옥에서도 지낸 사람이네.”


“시끄럽소. 짐승한테 한 말이 아니지 않소.”


“아, 저도 괜찮습니다. 한형께서 이 병서를 같이 의논할 사람이 있다고 해서···.”


송익필은 걸을 때도 무예도보통지만 보더니, 이곳까지 와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순신이도 궁금한지 대청에 앉아 서책을 보는 송익필 옆에 다가가 앉았다.


“흐음, 다 좋은데···. 이게 쫌”


“뭐가 이상하오?”


“이리 조직적으로 움직이려면 적어도 5년 이상 숙달된 병사가 필요할 것 같소. 그리고 조총이란 게 뭐요?”


“아, 그거 왜인들이 만든 작은 총통같은 거요. 숙달된 병사야 뭐, 당장이라도 준비하면 되지 않겠소? 각 고을마다 훈련소를 설치하면···.”


송익필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혀를 차기 시작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총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아서. 그냥 왜에도 총통같은 것이 있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쯔쯔쯧, 왜 이리 수세에 몰리는 생각만 하는 것이오? 왜가 그렇게 강하단 말이오?”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송익필에게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가 만든 병법서는 아니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뒤 왜를 상대로 한 파해법을 만들어낸 것이니, 방어 위주의 전략이 대다수였다.


“자, 같이 생각해봅시다. 아무리 방어가 유리하다고는 하나, 항상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만 싸울 수는 없는 법이오.”


“참고 기다려서라도 원하는 곳으로 끌어당겨야지요. 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야지요. ”


송익필의 물음에 드디어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송익필이 고개를 들어 묘한 눈빛으로 이순신을 바라봤다.


“그게 뜻대로···.”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야지요.”


단호한 순신의 대답에 송익필은 팔짱을 끼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보고 웃었다. 왜 이곳으로 오자고 했는지 알겠다는 웃음이다.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한데, 만약에 10년 이상을 준비할 수 있다면이 전재라는 말이지요.”


“어디 고견을 좀 들어봅시다.”


“나 같으면 이 땅에서의 싸움은 최소화 하겠소이다.”


“계속해 보시오.”


“왜가 쳐들어온다면 부산포로 향하지 않겠소? 물길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주력은 그곳으로 올 것이오.”


“그리고 서쪽으로 향한 뒤 올라오겠지요. 보급을 위해.”


순신이가 맞장구를 치듯 말했다. 난 둘을 번갈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왜 웃소?”


“생각이 같은 것 같아서 웃었소이다. 미안하오.”


“푸흡 ···생각이 같다니. 그럼 어디 먼저 말해보시구려.”


송익필은 내게 별 기대를 안 한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순신이가 바늘을 걸어줬으니, 이제 당겨야지.


“큰 배를 띄우자는 것 아니오?”


“큰 배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아니오. 내 생각은 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는 큰 배 이름이 뭔지 아시오?”


“······”


“대마도요.”


순신이는 고개를 휙 돌리며 나를 쳐다봤고 송익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신 내게 삿대질을 했다.


“절대 침몰하지 않는 거대한 배.”


난 작대기를 집어 들고 마당에 대충 지도를 그렸다.


“이게 대마도요? 대마도가 이리 길쭉하게 생겼소? 마치 조선을 방어하기 위해 있는 것처럼 생겼소.”


“맞소. 두 개의 섬처럼 길쭉하다 들었소. 조선 입장에서도 왜의 입장에서도 대마도 그곳이 양쪽 모두에게 화점이요. 누가 먼저 그곳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공수가 바뀔 수 있는 곳.”


순신이의 질문에 송익필이 손가락으로 대마도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 근데 명나라가 이렇게 생겼단 말이오? 뭐가 이렇게 다 직선이오?”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대충 그려져 있는 지도를 보고 순신이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난 인상을 쓰며 순신이를 노려봤다.


“그냥 이렇게 생겼다고 치자고. 대략적인 위치는 맞게 그린 걸세. 여기가 부산 그리고 대마도 여기가 왜일세.”


어느새 다들 마당으로 내려와 땅바닥에 쪼그려 앉았고,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잘 보시게. 왜의 주력군은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네. 이 포구들 외에는 대규모의 함선이 정박할 수 없으니까. 그럼 어디서 출발하든 대마도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 적은 우선 이곳에 모든 병력을 집결할 걸세.”


“그냥 무시하고 대마도를 통과하자니, 훗날 보급에 문제가 될 것을 두려워할 테고. 결국 이 섬이 양쪽 모두에게 화점이자 단수가 될 수 있다는 소리지요.”


송익필이 간단명료하게 대마도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다시 설명했다.


“맞소. 대마도가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전력으로 대마도부터 공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조선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대마도주에게 신하의 예로서 섬길 것과 조공을 맹세 받고 자치를 허락했었다는 것이다. 대대로 왜를 무시한 결과, 지금 왜가 화점에 먼저 돌을 올려놓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이 한 줌도 안 되고 더군다나 부산에서 이리 가까운 곳을 조정은 왜 왜구가 마음대로 설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오? ”


“나도 그게 이해가 안 되오. 그걸 조정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아직도 대마도를 그냥 놔두고 있는 것인지.”


순신이와 송익필이 내 대답을 바라듯 날 쳐다봤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을 걸으며 말했다.


“세 가지의 이유가 있소. 첫 번째는 여진. 대마도까지 병력을 보내 점유하려면 현재 조선의 상태로는 버겁소. 북방을 수비하는 병력들까지 동원하자니, 호시탐탐 함경도를 노리는 여진이 항상 마음에 걸릴 수밖에.”


“조선이 길쭉하니 그게 또 문제겠군···.”


“두 번째는 명이 허락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명이? 그건 좀 납득이 안되오. 명과는 거리가 먼 곳인데 왜 허락을 안 한다는 것이오?”


“지난 수십 년간 왜구의 활동무대가 가난한 조선보다는 노략할 것이 많은 명의 연안을 따라 이어졌네. 그러다 보니 명은 직접 왜를 치겠다고 생각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 제주를 자신들의 땅이라 생각하는 명도 왜를 칠 발판으로 대마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을 걸세. 그러니 견제할 수밖에.”


설명은 했어도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 왜구로 인한 피해를 받는 명의 입장에서 조선이 견제해 주는 것을 왜 싫어한단 말이오?”


“조금 복잡하기는 하나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도 여진과 관계가 있다고 보네. 과거에 조선이 대마도를 정벌한 후 암암리에 여진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려 했었으니까.”


“아니 그것도 명 입장에서는 좋은 것 아니오. 여진까지 견제해 준다면 명이 왜 싫어한다는 건지.”


“이상하겠지.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네. 명의 입장에선 부족 단위의 여진을 견제하는 것이 편하겠나, 아니면 왜를 통제하고 여진까지 흡수한 조선과 바로 국경을 맞대는 것이 편하겠는가?”


“그럼 조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송익필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세 번째는 조정이 명의 바람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네. 그간 조정을 장악한 자들이 사리사욕만 채우고 그저 평화로운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만 바랬다는 거지.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네.”


열띤 토론을 하다 보니,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다. 순신이가 대청으로 초를 가지고 나와 불을 밝혔다.


“배고픈데 뭐라도 먹고 하십시다.”


“집에 먹을 게 마땅치가 않은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밥만 있으면 되지 뭐. 밥은 있지?”


순신이는 식은 밥과 무절임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토론을 계속 이어갔다. 송익필은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앞뒤로 넘기며 다시 살펴봤다.


“한형의 걱정대로 왜의 다음 목표가 조선이라면, 어떻게든 대마도를 점령해야 하오. 그래야 예상이 가능한 전쟁을 할 수 있소.”


“내 생각도 그러하외다. 그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 생각하오.”


내가 개입한 뒤, 역사는 변하고 있을 거다. 조선에서 왜의 세작을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왜에 닿았으리라. 어쩌면 그들의 시선은 이미 조선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 전체를 성곽으로 두르고 포를 둔다면, 만약 점령당한다 하더라도 왜는 이미 치명타를 입은 뒤가 될 것이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송익필에게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한 뒤, 순신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순신아 만약 네가 왜라면 대마도를 뺏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왜? 왜요?”


“네가 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난 어떤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순신이는 한지에 다시 그린 지도를 한참을 지켜보더니 붓을 들었다. 순신이가 뱃길을 그리자 송익필과 나는 밥알 씹는 것을 멈췄다.


이순신이 그린 뱃길은 대마도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북상했다. 대마도에 설치된 포를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올라간 붓으로 그려낸 뱃길은 동해안을 타고 계속 올라갔다.


“오히려 산맥이 방패막이 될 테니, 나 같으면 일부 병력을 먼저 보내서 이곳으로 길을 잡을 것이오. 그리고 한양으로···.”


송익필과 나는 한동안 멍하니 순신이 그린 뱃길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송익필이 붓을 들었다.


“···그러면, 발길을 돌리게 만들어야지요.”


“팔을 내주고라도 목숨을 위협하시겠다? 그렇지.”


송익필은 부산과 대마도에서 나가사키 쪽으로 선을 긋고 나를 쳐다봤다. 공격을 감행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웃으며 다시 순신이를 쳐다봤다. 이러면 어찌할 테냐? 하는 표정으로.


순신이는 송익필에게 붓을 건네받아 다시 선을 그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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