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8,135
추천수 :
764
글자수 :
270,102

작성
22.06.07 18:05
조회
324
추천
16
글자
12쪽

탐사 선발전(1)

DUMMY

짧고도 긴 주말이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월요일. 나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우와, 세상에.”

“웬일이래?”

“뭐야, 쟤네.”


경악. 의문. 공포. 그리고 남학생에 한정해서 약간의 시기.

찌릿찌릿 스파크가 사방에서 튀어 피부가 아플 지경이다.


“호프에선 수박이 나무에서 열리니까, 떨어지는 열매에 맞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피해간다고?”

“그래.”

“완전 코코넛이네.”


「몬스터 생태」 강의 5분 전.

나는 윤나래와 바짝 붙어 앉아 1대1 과외를 진행하고 있었다. 모르는 걸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깨닫는다. 사이비 교주 자식들, 은근히 빡센 삶이었네.


“야, 노아. 좀 웃어.”

“웃는 순간 내 이미지 나락 간다.”


쓴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푹푹 쉬는데, 동정 어린 시선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쟤 어떡해? 불쌍하다······.”

“주말에 억지로 끌고 갔대.”

“쭉 호프에 대해서 가르쳐야한다는데.”

“뭐? 그럼 휴일도 없는 거야?”


네, 없습니다.

마음씨 고운 여학생들은 마치 군대 끌려가는 아들을 보는 엄마처럼 날 걱정하고 있었다. 목숨 걸고 망망대해를 건넌 이국의 소년이 겨우 꿈을 이루려는 찰나, 무개념 재벌2세 때문에 모든 일이 꼬여버린 비극. 안타까움을 자아낼 만하지. 내 연기력 의외로 쓸 만할지도 모르겠군.

정작 고민거리는 따로 있지만.




* * *




「죄송해요.」


은보라가 면목 없다는 투로 사과했다. 무려 절반이나 해독하고도 찝찝함이 남은 모양새다.


「‘창천에 어둠이 내릴 때, 악마의 피가 온몸을 적시고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메아리치네.’ 이 구절은 도저히 모르겠네요. 해석할 여지가 너무 많아서요. 대충 넘겨짚을 수도 없고.」

“아니요, 날짜라도 안 게 어디입니까? 감을 도저히 못 잡고 있었거든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분도 자존감이 참 바닥이로군. 기를 좀 살려드려야겠다.


“보라 양은 정말 똑똑하세요. 감탄이 나올 만큼.”

「제가요?」

“지금까지 쭉 도움만 받았잖아요. 전 머리 쓰는 데는 꽝이라.”

「글쎄요. 이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잿빛 머리 무명 가수는 씁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꼭 계산기나 컴퓨터 같다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걸요. 병 때문에 화도 안 나고.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눈에는 아닌데요.”

「네?」

“오빠 때문에 곤란에 처한 학생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 도저히 해독을 못하겠다며 사과하는 겸손. 계산기나 컴퓨터에 이런 기능이 있던가요? 보라 양은 그냥 머리가 좋은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귀담아듣지 마세요.”


알파고 소녀는 눈을 끔뻑이며 날 뚫어지게 바라봤다. 확실히 정적이고 차갑다. 그러나 표정에 미묘하게 서린 생기로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을 못할 뿐이란 걸.


“3월 14일은 확실하겠죠?”

「네.」

“첫 구절은 제가 어떻게든 해독해보겠습니다. 보라 양은 푹 쉬세요.”

「······.」

“왜 그러시죠?”

「쉰다는 건 잡념을 잊고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


꼭 ×무위키 항목을 읽는 듯한 말투. 그러나 뒤를 잇는 한 마디에선 생명력 넘치는 온기가 퍼졌다.


「저는 노아 씨랑 얘기할 때만 그런 기분이 드네요.」




* * *




훈훈한 회상은 여기까지.

이제 할 일을 하자.


3월 14일. 앞으로 3일이면 용기의 로기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군. 108번의 클리어 경력으로도 막히는 구간은 처음인데.

창천과 어둠, 악마의 피, 소리 없는 아우성······.


“반갑네, 여러분.”


열심히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는데, 강의실 앞문이 열리며 젊은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금발과 깔끔한 연구복, 조각 같은 얼굴. 여학생 몇몇이 설레는 마음을 주체 못하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결국 왔군. 저 녀석과 강의실에서 대면할 때가.

아카데미 위험인물 1순위.

광기의 생명공학자.

그리고 <브레이브 하트> 1부 최종보스.


“아달베르트 슈페어라고 하네. 앞으로 여러분과 「몬스터 생태」 강의를 함께 할 사람일세. 잘 부탁하지.”


기껏해야 서른도 못 채운 총각선생님인데, 말투는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장년. 그 갭에 학생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하고 박수를 보냈다. 이래서 잘생기고 봐야한다니까.


“오호, 이게 웬일인가.”


아달베르트는 학생들의 호응을 받다가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자기를 노려보는 금발 영애를 확인하고.


“윤나래 학생! 항상 혼자 떨어져 앉는다고 들었네만, 뜬소문이었나?”

“닥쳐, 내 인간관계에 간섭하지 마. 더 귀찮게 굴면 우리 아빠한테 이른다?”

“후후후, 패기가 마음에 아주 드는군. 그게 젊음이지.”


아달베르트는 흡족한 조소를 띠고 넘어갔다. 제3자가 봤을 때는 윤나래의 횡포에 당한 교수가 사람 좋은 척하며 넘어가는 일상으로 비치겠지. 이런 적이 한둘도 아니고.

하지만 이 경우만은 예외다. 갑을관계가 뒤집혀있다. 완벽하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몬스터 생태」. 무얼 배우는 시간인지는 알고 있나? 30점 주겠네.”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일제히 올라가는 손. 30점이라는 미끼에 다들 눈이 돌아갔다. 하루빨리 100점을 채워 와이즈 지부로 진학하려는 일념뿐일 테니.


“거기 남학생. 이름이?”

“최상윤입니다!”

“설명해보게.”

“야생에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장소, 습성, 먹이사슬의 개념을 익히는 시간입니다!”


매우 모범적인 답안.

그러나 아달베르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주 틀린 답변은 아니지만, 그건 초등학생들한테나 어울리는 얘기지. 훨씬 고차원적인 답변 없나?”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학생들의 잔머리가 또 돌아간다.


“거기 여학생. 이름이?”

“전혜지입니다!”

“말해보도록.”

“식물형, 동물형 몬스터 및 그들과 기능적인 단위로 상호작용하는 비생물적 환경의 역동적인 복합체를 연구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바란 대답은 아니로군. 교재를 그대로 읽은 것에 불과하잖나.”


시무룩하게 손을 내리는 여학생.

그 뒤를 이어서 몇몇 학생들이 기회를 잡으려 애썼지만, 끝내 아달베르트는 합격 사인을 주지 않았다. 강의실을 후끈하게 메운 열기는 곧 차갑게 식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군.”


강의실 내부를 쭉 둘러보던 교수의 시선이 문득 멈추었다.


“자네는 점수에 관심이 없나? 노아 라이즈벨트 군.”


으슬으슬.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냉기가 등골에 스며들었다.

꼭 시험하려는 것 같잖아. 내 속내를 알 리가 없을 텐데.


“「몬스터 생태」는······.”


꿀꺽.

녀석의 첨예한 시선과 마주한다.

등등한 살기와 맞선다.

능글맞은 미소를 노려본다.


미끼일 수도 있어.

그러나 30점이다.

이거면 와이즈 대륙이 코앞이야.

지혜의 로기아가 한층 더 가까워진다고.

십수 초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자연 상태의 몬스터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그 결점을 보완해서 완벽한 생명체의 탄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학문입니다.”

“정답! 노아 라이즈벨트 군에게 30점 주겠네.”


삐리리리릭―.

강의실 전방의 스크린에서 전자 효과음이 울린다. 방금 점수를 퍼 받은 남학생의 랭크가 쭉쭉 올라간다.

72점.

신입생 우등반 1위.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답을 알았나?”

“교수님의 강연 자료, 논문을 미리 참고한 덕분입니다.”

“강의에 임하는 태도가 훌륭하군.”


아니, 보스전마다 네가 지껄인 개똥철학이 귀에 박혀서 그렇다.


“방금 노아 군이 말한 대로일세. 몬스터들은 너무 불완전한 생명체야. 서식지와 환경이 다르면 폐사하고, 먹이에 입에 맞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일쑤.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으르렁대기도 하지. 테이머가 극한직업인 이유도 그거고.”

“저기, 교수님.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모두 각오하고 입학한 건데.”


용감한 남학생 한 명이 태클을 걸었다. 그러나 아달베르트는 혀를 차며 검지를 흔들어댔다.


“세상 어디에는 존재할 걸세. 먹이도 필요 없고, 모든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고,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생명체가. 우리 사명은 그놈을 찾는 거지.”


학생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바뀌어간다.

평범한 교수 코스프레하면 의심을 살 일도 없을 텐데, 어지간히도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왜? 아예 그게 네 지하연구소에 있다고 노래까지 불러보지.


“아, 전달사항이 하나 있네.”


자기애에 취해서 실컷 떠들어대던 빌런이 곧 헛기침을 했다.


“학생 여러분이 꽤나 반길 소식이라네. 다들 존경하는 테이머가 하나씩은 있겠지? 조만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네.”


쫑긋.

학생들의 귀가 엘프처럼 섰다. 자기 학교 축제에 유명 아이돌이 섭외됐다는 소식을 접한 대학생들처럼.


“‘사파리 월드’는 알고 있겠지? 파트너가 부족한 학생들이 자유롭게 야생 몬스터를 포획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원외 녹지.”

“네!”


세렝게티 국립공원 몬스터 버전이랄까. 파트너 늘리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어차피 학생들은 아카데미에서 멀리 나갈 수도 없기에 선택지가 이곳뿐이기도 하고.

사실 초반에만 이용하고 나중엔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이다. 레어 몬스터가 아예 없으니까.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그보다 좋은 파트너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래서 나도 신경을 아예 끄고 있었는데.


“거기서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이상 현상이요?”

“그래, 전례가 없는 현상이라 아직 조사가 필요하네.”


아달베르트는 곁으로 슥 비켜나서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강의실 전방 스크린에 어떤 기묘한 사진 하나가 출력됐다. 별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금색으로 활활 타오르는 도깨비불 보이나? 자꾸 희미해지고 선명해지길 반복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윤곽이 또렷이 드러나고 있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인간.

낯익은 현상이다. 난 이미 본 적이 있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불과 10분 만에.



[용기의 로기아입니다. 주인이 위기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아이죠. 다혈질이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흠이지만요.]



“······.”


가쁜 숨을 겨우 삼키고 있는데, 곧이어 사진 속 배경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해갔다.


“다들 보이나? 멀쩡하던 하늘에 며칠째 먹구름이 끼고,”


창천에 어둠이 내릴 때.


“비가 내리긴 하는데 그 색이 빨갛지.”


악마의 피가 온몸을 적시고.


“게다가 주변엔 으스스한 비명까지 울린다더군. 무슨 공동묘지도 아니고.”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메아리치네.


“꽤 불쾌하긴 하지만, 현직 테이머들은 오히려 상서로운 조짐이라 여겨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네. 새로운 몬스터의 탄생일지도 모르니.”

“현장에서 뛰는 테이머들이 아카데미에 온다고요?”

“그래.”


그러자 학생들이 설렘과 흥분에 차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한 우상들을 직접 만날 기회라니. 기쁘고 흥분되겠지.


“우리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현장학습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겨, 혹시 학생들은 탐사에 참가할 수 없을까 제안을 해봤네. 그러나 위험하다며 단박에 거절하더군.”

“에이······.”

“그러나 너무 실망하진 말게. 실력이 검증된 학생 한 명까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으니. 그 학생을 어떻게 선별할지는 따로 회의를 하고 있지. 지금은 선발전 방식이 유력하네.”


한 명. 선발전.

학생들의 눈동자에 불길이 치솟는다. 훈훈한 우정, 선의의 경쟁 따윈 이미 망각한지 오래. 옆자리 친구를 벼랑으로 밀어내고, 저명한 테이머들과 합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들떠있다.

역시 우정, 노력, 승리는 소년만화의 이상향에 불과하다니까. 최소한 우정은 빠져야한다.


“교수님.”

“왜 그러나, 노아 군?”


나는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손을 들었다.


“혹시 탐사는 언제입니까?”

“아, 그걸 잊었군.”


아달베르트 슈페어는 어깨를 으쓱하고 뜸을 들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시일을 입에 담았다.


“3월 14일, 목요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4 22.07.03 516 0 -
공지 25화 원고 일부를 수정했습니다.(17:41) 22.06.13 36 0 -
공지 어머니 교통사고 + 병행작 준비로 인한 하루 휴재입니다. +2 22.06.12 184 0 -
공지 매일 18:05에 연재됩니다. 22.05.24 311 0 -
43 사건 종결 +3 22.07.02 174 12 13쪽
42 최종 결전(4) 22.07.01 158 6 13쪽
41 최종 결전(3) +2 22.06.30 172 7 12쪽
40 최종 결전(2) 22.06.29 177 7 11쪽
39 최종 결전(1) +1 22.06.28 208 11 12쪽
38 용기의 로기아 +1 22.06.27 226 9 13쪽
37 실패한 작전 +3 22.06.26 198 8 15쪽
36 수상한 소년 +2 22.06.25 229 11 11쪽
35 너한테 받은 용기니까, 널 위해서 쓸 거야 +3 22.06.24 226 7 14쪽
34 유혹 +1 22.06.23 220 10 17쪽
33 착하게 살면 복이 와요 +1 22.06.22 213 7 13쪽
32 결심 +1 22.06.21 215 9 18쪽
31 챔피언 22.06.20 234 12 15쪽
30 폭발 22.06.19 232 8 14쪽
29 탐사 선발전(10) +1 22.06.17 233 9 14쪽
28 탐사 선발전(9) 22.06.17 219 8 15쪽
27 탐사 선발전(8) +2 22.06.15 241 9 12쪽
26 탐사 선발전(7) +2 22.06.14 251 11 12쪽
25 탐사 선발전(6) 22.06.13 278 12 15쪽
24 탐사 선발전(5) +1 22.06.11 304 12 12쪽
23 탐사 선발전(4) +1 22.06.10 291 15 12쪽
22 탐사 선발전(3) +1 22.06.09 295 15 12쪽
21 탐사 선발전(2) +4 22.06.08 325 16 12쪽
» 탐사 선발전(1) 22.06.07 325 16 12쪽
19 위험한 초대(2) +4 22.06.06 368 20 18쪽
18 위험한 초대(1) +1 22.06.05 376 1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