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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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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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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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최종 결전(2)

DUMMY

게임 오버 화면에는 여러 가지 컨셉이 있다.

주요 악역이 화면에 불쑥 나타나서 비웃는다거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좌절에 빠진 채 화면이 암전된다거나. 대개 이런 고전적인 연출을 즐겨 쓰곤 한다.


하지만 <캡슐 몬스터즈 배틀 – 브레이브 하트>는 달랐다. 실수로 함정을 밟거나, 스토리 분기점을 담당하는 배틀에서 패배하면 항상 화면을 장식하는 건 그 녀석.


점막 같은 베이지 색 피부에 낫처럼 생긴 발톱, 역관절 무릎, 다리보다 길쭉한 팔. 그리고 호박처럼 샛노란 세로 동공의 눈.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

몬스터의 단계를 훌쩍 넘어선 자연재해.

EI-01은 태생부터 그런 존재였다. 애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보스가 아니다. 이 녀석의 잠을 깨우는 순간, 인류의 문명이 석기 시대로 돌아간다는 전제 하에 돌아가는 스토리다.


바알이 1부 최종보스를 맡은 이유도 바로 그것.

그놈만 처리하면 어떻게든 연구 진행을 막을 수 있으니까.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브레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인큐베이터의 전원을 꺼뜨릴 때만 해도 승리를 확신했는데······.


“우우우우우웅―.”


고래의 울음처럼 신비한 소리가 배양액을 뚫고 퍼져나간다. 곧이어 강화 유리가 낫 발톱에 두부처럼 썰려나가고, 연녹색 액체가 콸콸 쏟아져 연구소 바닥을 수영장으로 만들었다.


“우흐, 우흐히헤헤헤헤!”


파리 과학자가 광소하기 시작했다. 둥근 눈을 장식한 그물무늬가 감격과 환희로 움찔거린다. 자기 피조물에 대만족했는지 탄성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그래, 움직여라! 발을 내딛어라! 눈을 굴려라! 마음껏 날뛰어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인가!”


금이 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팔을 벌린 채, 황홀감에 차서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 형용하기 어려운 광기가 소름을 불러일으킨다.


“미적 감각이 어떻게 됐나본데요.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


프리지아가 시니컬한 디스를 한 움큼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EI-01이 승용차만한 발을 들었다. 마치 거슬리는 곤충을 밟아 죽이려는 아이처럼.

그 그림자 속에 갇힌 먹잇감은 다름 아닌,


“후히!”


빠드득.

단말마를 대신한 웃음소리와 함께, 피조물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에게 밟혀 쥐포가 되고 말았다. 검은색과 살구색 살점들이 뒤엉켜 바닥에 널브러지고, 악취가 풀풀 나는 체액이 배양액과 섞였다.


“우아아아악! 미친! 주인님, 쟤 팀킬했어요!”

“······.”


노아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내며 시선을 돌렸다.

너무 리얼한 연출이잖아.


“노, 노아, 방금 그건?”

“끝장이야.”


후회가 장마철의 강물처럼 범람한다.

너무 안일했어. 인큐베이터가 정지한다고 생명활동까지 완전히 멈출 거라 생각하다니. 확인사살까지 했어야했는데.


“일단 후퇴하자. 저놈은 지성이 없어. 우리만 노리고 쫓아오진 않을 거야.”

“후퇴하면 바깥은 어쩌고?”


저벅저벅.

불꽃을 감싼 소녀 기사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나섰다.

날이 선 눈매, 힘줄이 솟은 이마, 꾹 다문 입. ‘각오’라는 개념을 의인화하면 딱 저런 모습이 나올 것만 같았다.


“쟤를 방생했다간 학생, 교직원들까지 떼죽음을 당할 텐데? 내 목숨 하나 건사하자고 자리를 피할 수는······.”

“에델!”


노아가 언성을 높였다.

가까스로 만난 로기아를 사지로 내몰고 싶지는 않았다.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이 만남을 줄곧 기대한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주인으로서.


“그래, 네가 주인이었지.”


소녀는 아집을 버리고 순한 태도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마냥 아쉬운 감정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미안해, 노아. 그래도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없을까? 꼭 증명하고 싶거든. 수백 년간 수련한 성과를.”


화르르륵.

손끝과 발끝에서 홍염이 기세 좋게 타오른다.

마찬가지로 진홍색 아우라가 코팅하듯이 온몸을 뒤덮는다.


“웬만한 몬스터로는 손조차 대지 못해.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난 웬만한 몬스터가 아니잖아.”


자기 오른뺨을 장식하고 있는 불꽃 문양.

에델은 그걸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차원이 다른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 걸.”

“······.”

“꼭 저지해보일게. 저 긴팔원숭이처럼 생긴 녀석이 이 기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그래, 알았어.”


오랜 고민 끝에 허가가 떨어졌다.


상식을 버리자. 확실히 EI-01은 몬스터의 단계를 넘어선 재앙. 게임 오버 연출에 가까운 코스믹 호러다. ‘이쯤이면 순순히 죽으세요’라고 제작진이 보내는 메시지기도 하고.


그러나 이쪽도 만만치는 않다.

3개의 타이틀을 100회 이상 클리어하는 게 무려 입장 조건. 게다가 2부 보스를 맡았어야 할 소녀를 간신히 지옥에서 건져내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모진 시련들을 거쳤던가. 고작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빈말로도 순탄치는 않았다.


만약 윤나래를 무시하고 자기 챙길 것만 챙겼다면?

신이 나서 티켓을 쥐고 사파리 월드로 떠났다면?

뒤돌아보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함정들이 곳곳에 배치돼있었다.

이걸 모두 이겨내고 쟁취한 전설이라면 당연히 밥값을 해야지.

그런 보상심리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주인으로서 첫 번째 명령.”


노아는 심호흡을 하고 손가락을 뻗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연구소 시설을 과자 집처럼 무너뜨리는 괴수, 보통 몬스터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대재앙을 가리킨 채.


“EI-01을 격파해.”

“알았어!”


산불이 성냥불로 보일 만큼 맹렬한 불꽃이 소녀의 몸을 감싼다. 등에서 분사된 홍염의 나래가 허공을 가른다. 내재된 힘을 모조리 끌어낸 용기의 로기아는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해묵은 편견을 깨준 인간.

숨이 막히는 삶에서 해방시켜준 은인.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주인을 위해.


“쿠오오오오오―!!!”


괴수가 길쭉한 팔을 휘두를 때마다, 금발 소녀들이 잠든 인큐베이터가 하나둘씩 조각나 바닥을 뒹굴었다.

불 꺼진 배양기에서 조용히 비명을 내지르던 살덩이들이 바깥 공기와 접촉한다. 결코 원치 않던 방식으로.


그 원초적 본능과 야성에서 비롯된 파괴 행각은 곧 뜻밖의 방해를 받고 시동이 꺼졌다.


“그만둬!”


소닉붐이 일 만큼 날렵한 비행.

에델은 전력을 오른손 주먹에 담아 EI-01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곧 물컹하면서도 딱딱한 감촉이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무방비한 태도, 정통으로 맞은 급소. 단번에 쓰러져야 정상일 텐데······.


“쿠으으으으.”

“어어?”


노란 동공이 한층 더 가늘어지며 방해꾼을 주시했다. 일그러지는 표정에 고통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불쾌감과 격노만이 주름진 피부를 조금씩 채색해갔다.

꼭 부모한테 잔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머, 멀쩡하잖아?”


당혹한 에델이 순간 멈칫하고 있는데, 곧 반격이 가해졌다. 예리하고 길쭉한 묵색 낫이 파공음을 흩날리며 날아온다.

반응할 시간이라곤 찰나에 불과했다. 마치 투수의 공을 마주한 타자처럼.


“우윽!”


에델은 홍염의 날개를 역으로 분사해서 간신히 궤도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그 대신, 가슴팍을 가려주고 있던 갑주가 날 끝에 걸려 종잇장마냥 찢어져나갔다.

다행히 이중으로 덧댄 구조라, 외부의 보호대만 날아갔을 뿐이었다. 에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뭐야, 이 자식?’


오랜 단련 끝에 최종진화를 이룩하며 차오른 자신감.

그동안 당당한 미소를 지탱해준 원동력이 빛을 잃어간다. 그 대신에 임자 제대로 만났다는 위기감이 등골을 서늘하게 식혔다.


“쿠오오오오오오!”


곧이어 흉측한 괴물이 입을 벌렸다.

이중 구조의 턱과 끝이 갈라진 혀. 그 안에서 연녹색 섬광이 번뜩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하려는 순간, 상냥하고도 포근한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를 간질였다.


‘【아토믹 레이저】. 시르포가 사용하는 기술이야. 필드 캡슐로 저지하는 게 편하지만, 속도 200이상의 몬스터는 전방으로 돌진해서 피할 수 있어. 레이저 코스 중앙에 살짝 갈라졌다가 합치는 구간이 있거든. 그 사각을 노려.’


누구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아니, 그럴 의욕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따르고 싶었다. 이 커맨드에 몸을 내맡기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슈우우우욱.

에델은 홍염을 분사해서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 코스의 연장선에는 타액으로 질척거리는 이중 턱과 송곳니들, 그리고 창백한 레이저가 비쳤다.

당장 옆으로 피하라고 몸이 부르짖었다.


그러나 믿어보기로 했다.

이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를.


“어?”


뒤이어 연녹색 광선이 어둠을 가르며 돌진해왔다. 비단 에델뿐만 아니라 연구소 벽과 지층까지 통째로 쪼갤 듯한 기세. 이미 피하기엔 한참이나 늦었다.


그러나 애초에 피할 필요가 없었다. 형광색 파괴 광선은 에델에게 직격하기 직전, 친절하게도 모세 앞 홍해처럼 갈라져 안전한 사각지대를 만들어주었다.

빈말로도 넓다고는 하기 힘든 영역이다. 하마터면 거무튀튀한 재로 변해 바닥을 수놓을 뻔했다.


“뭐지?”


생전 처음 겪는 현상이다.

처음 보는 기술인데도 명확한 대응법이 떠오른다. 외부에서 누가 자신을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스피릿 소드】와 【할퀴기】 연계! 강화 기술과 공격 기술이 한꺼번에 나오잖아, 어떻게 된 거지? 우선 【할퀴기】는 횡방향 패턴뿐이니까 고공으로 상승해서 피해.’


명령을 거부하거나 의문을 품을 새도 없었다. 꼭 망치로 무릎을 때린 것처럼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지하 25층과 24층을 가르는 천장. 거기 부착된 조명 장치에 머리가 닿을 만큼 높이 날아오르자, 노란 아우라를 두른 낫이 허공을 살벌하게 갈랐다. 잠시라도 지체했다간 두 동강이 날 뻔했다.


‘지금이야. 【스피릿 소드】의 부작용을 노려!’


부작용?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곧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물리 계열 공격의 피해량을 1.5배로 늘리는 대신, 한 번 쓰고 나면 다음 행동 전까지 물리 방어력이 절반으로 줄어. 네 공격은 전부 물리 계열이잖아. 당장 파고들어. 곧 이 디메리트가 사라질 테니까!’


청산유수 그 자체.

기술의 특성과 약점을 도감처럼 줄줄 외고 있다. 마치 내로라하는 베테랑 테이머가 자기 몸을 인형사처럼 움직이는 것만 같다.

육성 명령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효율이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일일이 들을 필요도 없이, 모든 내용이 단번에 머릿속에 입력되니까.


이번에도 믿어보기로 했다.

비행 코스를 틀어 옆구리를 파고든다.

큰 동작 뒤에는 항상 내보이기 마련인 빈틈. 그곳을 미사일처럼 파고들어 강타하자, 집채만 한 몸뚱이가 기우뚱했다.

일그러지는 표정에 드디어 고통이라는 감각이 서리기 시작한다. 이전과 똑같은 강도의 일격인데도 먹히는 피해량이 다르다.


“설마 이거······.”


포근한 목소리.

명석한 두뇌와 재빠른 대응,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을 신뢰하는 태도.

에델은 유일하게 떠오르는 후보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리깔린 바닥에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은발 소년을.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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