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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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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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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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전(3)

DUMMY

‘이거 설마······.’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정면승부로는 여전히 승산이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아니 솜사탕으로 다이아몬드를 치는 행위나 마찬가지.

등을 감싼 갑각은 물론이고, 점성 때문에 연해보이는 피부에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귓가를 맴도는 노아의 목소리를 따르자, 유효타를 가하는데 성공했다. 아니, 따른다는 표현이 되레 어색할 지경이다. 그저 편하게 받아들이고 신뢰하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통하잖아?’


노아 역시 희망을 마주했다.

결코 범접할 수 없던 영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대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던 적과 주먹을 주고받았다.


반드시 이길 거란 확신까진 들지 않는다. 총을 든다고 해서 모든 맹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듯이.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하다.

난 최고의 명사수니까.


“그르르르르.”


겨우 몸을 일으킨 EI-01이 균형을 잡았다. 곧이어 쉬지도 않고 다음 공격이 날아온다. 덩치에 비해 굉장히 잽싼 움직임이 세찬 돌풍을 만들어낸다.

역방향으로 꺾인 무릎 관절.

그게 시야에 비친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통증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장이 뒤틀린다. 반사적으로 벌린 입으로 피가 한 되 쏟아진다.

에델은 변변한 비명조차 못 내지르고 고속으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망치로 두드린 초콜릿처럼 콘크리트 바닥이 쩍쩍 갈라진다.


“언니―!!!”

“에델―!!!”

“쿨럭, 쿨럭.”


비참하게 나동그라진 소녀가 악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쇳내 나는 액체가 분홍빛 입술을 빨갛게 적셔간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뭐, 뭐야? 속도가 엄청 빨라졌는데?”

“【와일드 도핑】.”


노아가 에델을 부축해주며 설명했다.


“종족치 일부를 지불해서 속도를 높이는 야수족 기술이야. 큰일 났군. 이러면 내가 반응해서 대처하기엔 너무 빠른데.”

“역시 너였구나.”


붉은 머리 소녀는 주인에게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엔도르핀이 온천수처럼 샘솟는 덕분일까. 관절과 근육이 비명을 내지르는데도 입 꼬리가 올라간다.


“싸울 방법을 일일이 코칭해준 게 너였어.”

“그게 들려?”

“푸후훗, 시치미 떼지 마. 들판에서 외치는 것처럼 아주 생생히 들리던데.”


이상하다. 너브 링크의 효과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너브 링크라면 몬스터가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못해야 정상이다. 프리지아처럼.

어디서 비롯된 차이일까.


“제법 신기한 능력을 가졌네. 내 주인으로 딱이야. 그나저나 저 망할 속도 버프는 계속 유지되는 거? 까다로운데.”

“그래, 약점이라면 힘과 방어력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거지만, 우릴 뭉개놓기는 충분하겠지.”

“좋아~ 그럼 반격 개시······ 우아아악!”


등에서 홍염을 분사하려던 에델의 기세가 단번에 꺾이고 말았다.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바닥을 적신다. 내장이라도 다쳤는지 검붉은 빛깔이 영 불길하다.


“허억, 허억.”

“무리하지 마! 일단 퇴각하자. 메디컬 센터에 가서 치료부터 받고.”

“글쎄, 우리가 퇴각하면 메디컬 센터가 남아있을까?”

“······.”


날카로운 질문에 마땅한 대꾸가 떠오르질 않는다.

아무리 피해를 적게 잡아도 이 일대는 초토화되겠지. 인명 피해는 최소 수백. 인프라를 재구축하는데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될 거다.

최선은 여기서 막는 것. 당연히 노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 손에 넣은 로기아가 피떡이 되는 꼴만은 피하고 싶었다.

몬스터의 주인으로서.

아니, 서로를 구한 은인으로서.


“에델, 이젠 내가 도와주기 힘들어. 육안이 EI-01의 움직임을 못 따라가거든.”

“나 스스로 알아서 하란 거네?”

“아니, 얼른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훗날을 기약하자고! 몸도 이미 너덜너덜하잖아!”

“얼굴에 분칠하고 다닐 때보단 훨씬 보기 좋지 않아?”

“에델!”

“후우, 주인의 마음씨가 너무 착하면 몬스터도 할 일이 없어진다니까.”


에델은 제멋대로 해석을 늘어놓다가 힘없이 웃었다. 그 초연한 미소에서 삶의 의욕, 맹렬한 투지, 위대한 의무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표정.


“저 괴물, 역시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겠어.”


첫 합을 주고받을 때부터 느꼈다.

그 강력함을.


“우물 안 개구리였네. 이만큼 강해졌으면 적수 따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령 디아볼로스가 살아나더라도 신나게 두들겨 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부하가 만든 괴물 따위한테 이 꼴이라니.”


EI-01은 여전히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시설을 파괴하기만 바빴다. 지하연구소 내부는 어느덧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낫 발톱에 갈려나간 천장 사이로 위층 도구들이 떨어진다. 실험체들의 체액과 인큐베이터 배양액이 뒤섞인 액체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 참담한 풍경 안에서 소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명을 불태울 각오를 하고.


“프리지아.”

“네, 언니?”


음표 마법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덩달아 심상치 않은 직감이 뇌리를 스친다.


첫째 언니가 날 이름으로 불렀어? ‘우리 막내’가 아니라? 그렇다면 가뭄철의 빗물처럼 장난기를 싹 뺐다는 의미인데.


“노아를······. 아니, 주인님을 잘 부탁해.”

“뭐라고요?”


불길한 소리에 노아 역시 털이 곤두섰다. 지금 막아서지 않으면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가.


“노아, 정말 고마워. 덕분에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 아집과 자만으로 가득 찬 나를 일깨워줘서 고마워.”

“너 무슨 생각이야?”

“말 안 할래. 그러면 말릴 것 같거든.”


희미한 미소로 비밀을 지키려는 소녀. 그러나 은발의 주인에겐 소용이 없었다.

너브 링크 Lv.2.

몬스터의 속내를 돋보기로 비추듯이 훤히 알 수 있는 능력.

그 불온한 속마음을 엿본 순간, 맑은 눈이 충격으로 휘둥그레졌다.


“에델, 너 설마 죽으려고?”

“으휴, 직감이 좋아도 탈이라니까. 살짝 빗나가긴 했네.”


에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정정해주었다.

이 똑똑한 주인 앞에선 뭘 숨길 수가 없네. 사생활 보장은 접어둬야겠다.


“【피닉스 모드】. 내 수명을 불태워서 모든 종족치를 대폭 끌어올리는 전용기야. 성능은 확실하니까 염려 안 해도 돼.”

“수명을 불태운다고? 얼마나?”

“유지 시간 1초에 1년.”

“1초에 1년?”

“쳇, 디아볼로스랑 싸울 때를 대비해서 아껴놓은 기술인데. 데뷔전부터 내보일 줄은 몰랐네.”


화르르륵.

상체에 힘을 주자, 소녀를 감싼 불꽃이 형태를 바꾸어간다. 모든 걸 단념한 표정에 편안함이 스며든다.


“에델, 너 앞으로 몇 년이나 살 수 있는데?”

“글쎄~ 길어야 500년? 아스터가 그랬거든.”

“그럼 8분 20초······.”


터무니없는 모험.

이길 거란 보장은 없다.

설사 이기더라도 1분마다 60년의 수명이 날아간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당장 멈춰.”

“싫어.”

“명령이다.”


너브 링크로 몸을 조종하려는 찰나, 에델의 눈동자색이 서서히 바뀌었다.

루비처럼 새빨간 빛을 잃어간다. 꼭 지우개로 문지르기라도 하듯이. 곧이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은은하고 익숙한 바다색.


“노아, 부탁이야.”


죽은 소녀를 대신하는 꼭두각시.

연구 자금을 마련하려고 제작된 실험체.

아카데미 수석이라는 명함 뒤에 숨어서 울고 있던 소녀.

윤나래가 터프한 기세를 잃고 맑은 눈물을 흘렸다.


“말리지 말아줘. 지금 난 태어난 이후로 제일 행복하거든.”

“······.”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어, 가죽 커버 일기장을 건네던 네 모습. 내가 용감하다고 속삭여주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돼주겠다고 했지?”

“어, 어어.”


새삼 민망함이 차올라 머쓱하게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 예전엔 숨만 쉬어도 답답하고, 밝은 미래를 보려고 해도 칙칙한 어둠만이 날 조롱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빠나 브루노한테 잔소리를 들어도 실없이 웃게 되더라. 네 위로만 떠올리면 얼마든지 버틸 만했거든. 이러면 목숨이 하나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또르르르.

뺨을 타고 흐른다.

짭쪼름한 액체가, 삶에 대한 미련이, 그리고 이 남자에게 줄 게 없다는 죄책감이.


아스터도 참 비겁하다니까.

이런 마음을 심어놓다니.

그래도 뭐, 썩 나쁘진 기분은 아니네.


“너한테 받은 목숨이니까 너를 위해서 쓸게.”

“윤나래······.”

“걱정 마.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아. 아니, 솔직히 두렵긴 한데······.”


파아아아앗.

다시 눈동자에 붉은 기가 돌며 홍염이 타올랐다.

첨예하고 불규칙적인 형태로 솟아오르는 플라즈마가 아니라, 소녀 기사의 작은 몸을 품은 한 마리의 불사조가 되어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니까.”


새로운 힘을 두른 에델이 날아오른다.

육안으로는 윤곽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속도로.

소닉붐의 굉음이 귓가를 강타한다.


웬만한 각오로는 마주하기조차 힘든 기백.

콘크리트 벽과 천장을 녹일 듯한 열기.

그리고 수명을 불태워 삶을 얻은 소녀가 돌진한다.

인류 문명에 종말을 선사할 재앙에게.


“바아아아아아알―!!!”


에델은 이를 악물고 EI-01의 얼굴을 강타했다. 사태를 이만큼 악화시킨 흑막의 이름을 외치며.

그러자 강철처럼 단단하던 베이지색 피부가 통째로 뜯겨나갔다. 뺨 위로 흉측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효타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타격이 괴수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아직, 아직이야!’


모자라다. 시간이 부족하다.

저 녀석의 체력은 무한. 하지만 이쪽은 길어야 500초가 한계.

힘이 다하더라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녀석만큼은 길동무로 데려가야 한다. 그래야 체면이 서니까.

용기의 로기아로서.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이 녀석의 약점은!’


파드드득.

발차기에 무릎이 꺾인다.

몸통박치기에 어깨가 탈골된다.

정권에 송곳니가 부러진다.

그러나 EI-01은 그때마다 괴성을 내지르며 피해 부위를 수복했다. 푹 파인 상처에 뼈와 근육, 새살이 돋아난다.

믿을 수 없는 재생력이다. 마치 불사신처럼.


점차 소진되어가는 힘.

반대로 멀쩡한 거구.

초시계가 슬슬 위험 구간에 들어설 무렵, 소녀는 문득 떠올렸다. 아직 한 번도 공격을 가하지 않은 부위를.


“우아아아아악!”


에델은 EI-01의 좌측 하복부에 일격을 날렸다. 흡사 미사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커다란 바람구멍이 났다.

그 검붉은 환부 안에서 꿈틀거리는 보랏빛 살덩이.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에 맞춰서 펄떡이는 박동.

꼭 인간의 심장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찾―았―”


그리고 끌어 모은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았을 경우를 대비해서 남겨놓은 힘.

노아에게 유언을 남길 만한 여력.

그걸 모조리 왼 주먹에 담아 돌진했다.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핵심기관을 뭉개놓기 위해.


“다아아아아―!!!!”


빠직.

단백질 덩어리가 불쾌하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보다 불쾌한 음성이다.

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그러나 에델은 미소 지었다.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패배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사명을 완수해야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은발 소년에게 진 마음의 빚으로부터.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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