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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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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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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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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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검의 여인

DUMMY

눈물샘과 함께 터져버린 자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솟구치고 있었다.

하지만 있는 힘껏 매달리는 연수에 의해, 결국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마존을 애타게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언니, 마존이 다쳤다고. 많이...!"


울먹임 속에 자운의 목소리가 잠기고 있었다. 연수가 결연하게 자운을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그를 살릴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 ! 마존께 네가 필요한 순간까지, 조금 더 기다려!”


믿기지 않을 만큼 연수의 표정은 단호했다.


원신이 찢어지면서 마존의 기에 균열이 생겼지만, 이명검의 의지는 더욱 강렬하게 마존의 의식을 자극하고 몰아세우고 있었다.


지옥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오는 기운과 이명검의 기운이 합쳐지면서 드디어 세상이 천천히 멈춰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움직임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하자, 이를 감지한 귀왕이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귀진검을 휘두르기 위해 검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이 시간을 거스르는 힘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건, 세상의 어떤 커다란 무게를 이기고 버텨내는 것보다도 더 엄청난 힘이 가능해야만 했다.


보천귀장의 시간의 역행 속에서, 마존에게 맞서려고 했던 모든 존재들은 작은 움직임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채 찢어지고 파괴되고 깨끗이 섬멸되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역행의 살기 속에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 귀왕의 일그러진 얼굴이, 깊은 심연의 물속으로 빠져드는 힘없는 영혼처럼 외마디 비명의 흔적 조차도 없이 아련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저주의 힘은 한줌의 재로 흩어져 버린 귀왕의 뒤를 이어, 잠시 후 귀진검의 존재 또한 그의 주인의 운명처럼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보천귀장의 진법 안에서 시간을 돌린 자는 결국, 그가 파괴해 버린 무수한 마의 기운들이 떠받드는 그들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그들이 남긴 무수한 마기의 기운은 마존의 마성안으로 스며들어 그들이 가진 마기의 힘을 드세게 뿜어내려고 하였다.

마기의 집착을 멈출 수 있는 건, 단지 이명검의 반쪽을 채워줄 정심검의 힘이었다.


계속해서 이명검의 반월검이 멈추지 않고 마존의 머리위에서 더욱 빠르게 시간을 돌리고 있었다.

검을 멈추지 못하면, 이제 마존은 세상의 유일한 절대 악귀로 주화 입마가 될 것이었다.


만황지 일대가 거대한 지옥으로 변해갈 즈음, 연수가 자운의 손을 움켜잡았다.


“자운, 정신 차려! 네가 나서야 할 때인 거 같아. 전에 내가 해 준말 기억하지? 네가 바로, 마존이 선택한 진정한 정심검의 주인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자운이 혼란한 듯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난,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내가 기억을 찾을 때, 언니가 지난번 마존의 보천귀장을 멈춘 걸 봤어. 언니... 언니가 나서서 얼른 마존을 좀 구해줘! 부탁이야!”


거센 바람 속에서 말을 잇기가 힘든 연수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운에게 남은 온 힘을 짜내 말을 건네고 있었다.


“바보야 ! 이 정도의 힘은 나도 감당 못해. 나보고 죽으러 가라는 거야! 마존이 거들떠도 안보고 튕겨 낼 텐데.”


몇 번 더 숨을 헐떡인 뒤에 연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넌 괜찮을 거야! 마존이 네게 부탁하고 가셨잖아. 아마 지금쯤.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몰라. 그때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냥, 정심검을 소환하려고 해봐!”


더는 무리라는 듯이, 연수가 한손을 내 흔들며 자운에게 빨리 가라는 손짓만 연이어 하고 있었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방법은 모르지만, 저렇게 고통 속에 갇혀있는 마존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하다가 마존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도 살아갈 체면이 없지... 같이 죽지 말고, 같이 살아요. 마존!"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허공으로 치솟은 자운이 청룡의 원신과 현빙화의 원신을 함께 발현하면서, 거센 회오리의 한 중간에 서있는 마존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했다. 거센 회오리는 마치 칼날이 싸고 도는 듯이, 한 치의 다가섬도 용납할 기세가 아니었다.

현빙화와 청룡이 회오리 바로 앞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존께 죽는 거라면... 받아 들일게요. 몇 번을 죽다가 살아났으니, 이젠 여한이 없을 때도 된 거죠. 하지만 나중에 당신이 슬퍼하지나 않을지... 그게 좀 마음에 쓰이네요.”


자운이 마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동안 한참을 회오리 앞에서 몸부림치던 청룡과 현빙화의 원신이, 어느 순간 자운의 미소와 함께 망설임 없이 칼날 같은 회오리 속으로 스스로의 몸을 던져 들고 있었다.


‘마존, 정말 후회 없어요... 나의 원신을 던져, 그래서 이제 나도 당신을 한번은 살릴 수 있다면... 그건, 그냥. 정말 다행인 거예요!'


자운이 평안한 마음으로 회오리 속으로 몸을 던지자, 역시나 그녀의 몸은 칼날 같은 바람결 안에서 아주 잘게 부서져 가기 시작했다.


바람을 맞으며 온통 찡그린 채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던 연수의 얼굴이, 겨울 고드름처럼 찬찬히 굳어가고 있었다.


“자운... 이게 무슨...”


자운의 원신이 칼날의 회오리 속으로 사라진 후, 회오리 안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반월검인 정심검이 허공위에서 사납게 돌아가던 이명검을 향해서 망설임 없이 가까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명검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이 회검은빛의 검 앞으로 찬찬히 다가 선 정심검은 두개의 반월검으로 맞물린 후, 이제 함께 아름다운 만월을 이루며 사납던 기운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자운은...어떻게 해! 이게 무슨 방법이야! 애 한테 제대로 방법이나 미리 알려주던지!"


자운의 몸이 부서져 가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던 연수가 또 다시 거세게 울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뿌연 눈앞이, 눈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더 희뿌예지는 주변의 모습 때문이라고 느낀 연수가,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변하고 있었다.


보천귀장의 진에 파괴된 귀왕의 군대는 이미 모두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만황지의 넓은 벌판으로는 마계의 병사들과 희생된 그들의 시체들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직은 흐릿한 세상 속에서 세상의 모습이 온전히 자리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역 주행된 시간 속에서 흩어졌던 자운의 몸 또한 다시 돌려지는 시간 안에서 조금씩 다시 생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갈가리 헤어지고 뜯겨진 검은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서있는 마존의 가슴 앞으로, 밝은 빛 조각들이 넘실넘실 날아들고 있었다.


빛 조각들은 투명한 모양의 여인의 형상으로 잠시 빛나는가 싶더니, 다시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비현실적이던 여인의 형상은, 이제 조금씩 생명이 깃든 구체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마존의 두 팔 안에 포근하게 담긴 채로 숨결이 돌아오고 있었다.


자운이 살아나고 있었다.


한동안 마존의 머리위에서 만월의 모습으로 어우러진 채 경쾌하게 돌아가던 한 쌍의 반월 검이, 이제 자운의 모습이 온전히 그의 품으로 돌아오자, 다시 마존의 내력 안으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참담함이 가득한 전장위에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마계의 병사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넋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존과 자운을 발견한, 연수와 진소와 당당이 쏜살같이 그들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의 가슴에 깊숙이 안긴 자운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마존의 두 눈이 촉촉해 지는가 싶더니, 그의 차가운 눈물이 떨어진 감촉에 놀란 자운의 짙은 눈썹이 살며시 움틀거리고 있었다.


자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마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원신이 완전히 찢겨지는 충격을 겪은 터라, 정신이 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마존이 진소를 향해 짧은 몇 마디를 남긴 후, 자운을 가슴에 품은채로 순식간에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



부운대.


한동안 엉망이 된 세상을 굽어보며 바람 길을 다시 만드느라, 선풍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얼른 돌아보지 않았다. 모른 척 보이지 않게 미소만 가득 머금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자랑스럽게 느껴져야 할 남자에게 그녀가 무얼 해줄지, 기대하는 마음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그녀가 다가오기 전에 자신의 심장이 먼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귀먹었어요?”


운우답다고 생각했다. 부질없는 생각을 떨치고, 선풍이 놀란 척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아, 운우 왔소! 전쟁의 영향으로 세상이 너무 엉망이 되었소. 인간들이 더 괴로움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당신이 왔다고 도와주던 태자도 나타나지 않으니...

다행이오. 운우 당신이 이렇게 와주어서!"


멋쩍은 듯이 선풍이 몇 마디를 바람처럼 날리고, 얼른 다시 돌아서 바쁜 척을 하고 있었다.


“선풍, 제가 미혼 약에 취해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죠?”


선풍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돌아서며 부운대 한쪽 그녀를 위해 준비해 놓았던, 찻물이 끓고 있는 탁자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앉았다.


익숙한 걸음으로 운우도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따라주는 찻물을 받는 그녀의 눈빛만큼은 어떤 말보다도 깊고 따스했다.


선풍이 한 손으로 운우의 하얀 매듭 끈을 불러내어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운우가 매듭 끈을 잡아들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게 바람을 타고 왔었지”


선풍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를 거야. 당신은... ”


운우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제 것인지."


“바보, 어떻게 당신 걸 모를 수가 있어? 내가 알기로는 이 구중천에서 이런 매듭을 만드는 건 당신밖에 없을 걸.

그리고 그 매듭 안에 전음부가 들어 있었어. 딱 한번만 볼 수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녕이 어린나이에도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귀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들을 철저하게 없앨 계획을 세웠다니. 마음을 얼마나 졸이면서 지냈을까?”


“그런데 아녕이 그 매듭 끈을 어떻게 당신에게 보낼 생각을 했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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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2.02 00:05
    No. 1

    해품글님. 오늘도 정말 기쁘게 한 편 읽고 갑니다.
    자운.. 에라 모르겠다...ㅎㅎ 너무 멋졌고요 정말 좋았어요.
    아녕의 대반전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2.02 01:02
    No. 2

    오늘도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 즐겁게 읽으셨다니,, ㅎ..기분이 짱 좋아졌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조금 덜 추워졌습니다.
    편한밤 되시고, 이쁜꿈 꾸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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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선택 +2 22.10.07 4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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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무진옥 22.10.05 52 5 11쪽
90 아녕의 과거 +2 22.10.04 49 5 12쪽
» 만월검의 여인 +2 22.10.03 43 4 12쪽
88 보천귀장 +2 22.10.02 38 4 11쪽
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4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8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9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5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9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4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4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9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2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4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3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9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5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9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8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5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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