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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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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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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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황제의 의심

DUMMY

82화 황제의 의심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하루에도 온갖 일을 직접 살피려고 드니 일이 많고 정신이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니 해결법이라고 하면 믿을 만한 이에게 일을 나누어 맡기는 것이 될 터였다.


허나 안타깝게도 숭정제 주유검이 보기에 작금 명나라에는 능력 있는 신료들은 많되 믿을 만한 신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폐하, 병부상서 양사창이 뵙기를 청하고 있나이다.”

“양 상서가?”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여겨서 가까이 두는 환관 왕승은의 말에 주유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직접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상소문을 올린 바가 있기에 그가 이곳에 있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양사창은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권을 부여받아 싸우러 나간 자이고, 상소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기에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병부를 맡은 장인 양사창이 글로 전하기 어려운 화제가 있다고 하니 그냥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주유검은 그에게 군은 그대로 민란 진압 및 치안 유지를 위해 그대로 두고 돌아오라 허락하였다.


“얼마나 데리고 왔더냐?”

“호위로 기병이 십여 명이 따랐으며 그 모두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합니다.”

“성 밖이라 함은 자금성 바깥을 말하는가?”

“북경 바깥입니다.”


데리고 온 이들이 모두 북경 바깥에 있다는 말에 주유검은 살짝 마음을 놓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그는 곧 기껏 북경까지 와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을 꺼냈다.


“충직한 병사들이 고생하였는데 박대함은 옳지 않으니 왕 환관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주고 위로하라.”

“그리하겠습니다.”

“양 상서는 이 일을 마친 후에 보겠으니 잠시 기다리라 전하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예, 폐하. 말씀하신 대로 이르겠나이다.”



***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건만 그저 빈말이었는지 아니면 황상의 뜻이 바뀌었는지 양사창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주유검을 만나지 못했다.


절로 마음에 답답함과 조급함이 들 일이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은 무엇이든 익숙해진다고 하듯 이렇게 기다리는 일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익숙했다.


오히려 이렇게 함으로 자신에 대한 의심을 덜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았다.


‘힘들군.’


그래도 지치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양사창은 제 속내를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양 상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황궁에는 어디든 눈과 귀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왕승은이 와서 알렸다.


그에 양사창은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 그저 복색을 살폈을 뿐이오. 폐하를 뵈면서 사소한 실례라도 있다면 곤란하니 말이오.”

“제가 보기에는 괜찮으십니다.”


왕승은이 위로하듯 말했으나 양사창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복색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처지라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곳 황궁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 이는 오직 두 부류뿐이다.


황제이거나, 아니면 그런 걸 신경 쓸 처지가 아닌 신세거나.


죽었다가 깨어나도 전자가 될 수 없는 양사창은 마치 왕승은이 그에게 곧 후자와 같은 신세가 되리라고 말한 것을 들은 기분이었다.


“크흠. 조금 서두르고 싶은데.”

“예법이라는 게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북경 너머에 군세가 보이기라도 하지 않는 한 지켜야 합니다.”


농담인지 놀릴 생각인지 알기 어려운 말이나 이상하게 불편하던 마음이 슥하고 편해지는 걸 느낀 양사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절차를 따른 양사창은 겨우 황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양 상서, 민란 진압으로 인해 고생이 많소. 혹여 어려움은 없으시오?”

“황상의 은혜로 인하여 순조로이 진압 중입니다. 적들은 이미 오합지졸이라 남은 일은 시간 문제에 불과합니다.”


주유검의 부드러운 말에 양사창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다소 낙관적으로 들리는 보고이나 이는 사실이었다.


이미 이자성이 일으킨 난은 진압 단계를 넘어 정리 단계라고 해도 무방했다.


저들의 군세는 흩어졌고 남은 건 수천은커녕 커야 수백, 적으면 수십에 불과한 잔당뿐이었다.


그마저도 서로 연계가 되지 않아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꼴이니 정말로 민란 진압은 시간 문제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으니, 이 잔당에 불과한 놈들이 제법 끈질기게 저항하는 탓에 주모자들을 잡는 일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었다.


‘쯧, 실패했으면 얌전히 포기할 것이지.’


사실상 그냥 굶어 죽기 대 뭐라도 해보고 죽기라는 극한 양자택일에 이어서 이제는 얌전히 처형되기 아니면 발악이라고 해보고 죽기라는 또 다른 극한 양자택일이 내밀어진 게 지금의 반란군이었다.


이제 악밖에 남지 않은 이들이 순순히 항복할 리가 만무하건만 양사창은 그 단순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저 코웃음이나 한번 치고 넘겼을 것이다.


편히 죽을 기회를 놓친 머저리들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면 금주로 병력을 돌려도 되겠나?”

“지금 당장 말입니까?”

“당장은 아니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불이 꺼진 것처럼 보임에도 불씨가 남아있다면 마저 처리하고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양사창은 이 지극히 당연한 일을 입에 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주유검이 그의 말을 곡해하여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원하시는 날이 있다면 그에 맞추어 토벌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민고민하던 양사창은 에둘러 말을 꺼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주유검은 쉬이 꿰뚫어 보았지만 딱히 무어라 하지 않았다.


“아직은 금주도 산해관도 멀쩡하니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필요하다면 그대에게 다시 연락하겠다.”


방금 전에 한 말과 대치되는 대답이었다. 급한 듯이 말하더니 괜찮다고 하는 말을 들은 양사창은 이것이 주유검의 떠보기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 떠보기에서 무사히 살아남았음을 안도하기도 전에 주유검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어떤 연유로 이렇게 시간을 내어서 보기를 청하였는가?”

“참으로 입에 담기 껄끄러운 일이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 어떤 소문?”

“청이 조선과 함께 산둥반도로 넘어올 것이라는 소문입니다.”



***



‘청이 조선과 바다를 건너온다?’


양사창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고만 하고 일단 물린 주유검은 한참 생각에 잠겨있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선은 충실한 번국이나 지금은 청에 당해서 그들을 섬기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은 그 땅의 협소함이나 인구가 적음을 생각하면 그 힘이 대단치 않으나 수군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사실이라면 곤란한 일이다.’


명나라가 조선에 수군으로 앞서는 것은 오로지 물량뿐이었다.


보통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수군의 싸움이 숫자가 중요치 않음을 이르고 있었다.


또한 전에 가도에서 청으로 도망한 배반자들이 이번에 배를 몰아 가도를 떨어트렸음을 생각하면 숫자에서 확실하게 우위에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조선인들은 배를 타고 잘 싸우지. 배도 크고 말이야. 만약 그걸 이용해 청나라 놈들이 산해관을 돌아서 넘어온다면......’


주유검은 산해관이 무용지물이 되고 화북 지방 곳곳이 불타는 상상을 쉬이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한번 새겨진 광경은 좀처럼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쯧.”


답답함에 황제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신경질적으로 혀를 찬 주유검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나마 믿는다고 할 수 있는 왕승은이 거기에 있었다.


“과연 정말로 양 상서가 말한 일이 일어날까?”

“저는 군무에 무지하고 외교에도 부족하여 반 사람 몫을 간신히 합니다. 이런 부족한 자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생각은 있겠지. 말해 보거라.”


주유검의 재촉에 왕승은은 그제야 품은 말을 늘어놓았다.


“소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저 낭설에 불과한 것이 있고, 연유가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있으며,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 일부러 말함도 있습니다.”

“재밌구나.”


그저 호사가들이 그럴듯하게 우려하여 꺼낸 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그러한 징후가 있어서 도는 소문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누가 꾸는 것일 수도 있었다.


“흔히들 소문을 당사자에게 물으면 된다고 하지.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합리적이나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내 생각도 그와 같다.”


주유검은 왕승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묻는 것이 도움이 됨은 확실하지. 조선에서 사절들이 오는 대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해라. 최대한 빠르게 말이다.”

“황상의 뜻대로 빈틈없이 준비하도록 하겠나이다.”



***



“너무 빠른데.”



북경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박미가 의심을 가득 담아서 중얼거렸다. 가까이에 있던 임경업은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물었다.


“빠르다? 무엇이 말입니까?”

“절차 말입니다.”


박미가 하는 말을 임경업은 이해할 수 없었다. 벌서 며칠이고 기다렸으니 그가 생각기에 이 일은 전혀 빠르지 않았다.


“일정이 어그러져 동지사와 정조사까지 맡게 되긴 했으나 본디 주청사 일이 먼저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빠르다고 하긴 어렵지 않나 합니다.”

“나 역시 사절 일에 밝은 것은 아니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 이보다는 더 많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수일로 황상을 알현하다니, 내가 들은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우려가 가득 담긴 얼굴과 목소리로 제 감정을 표현한 박미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더니 낮게 속삭였다.


“어쩌면, 어쩌면이긴 하지만 그리 환대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환대받지 못한다?”

“예. 그러니 각오를 단단히 해두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박미의 말에 임경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자신이 전할 내용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렇게 차이가 없는 거 같기도 한데.’


환영받다가 나중에 그러지 않을지 모르는 것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럼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싶었다.


“계십니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에 임경업은 생각을 멈추고 박미와 눈을 맞추었다.


“조심하십쇼. 무슨 말을 듣더라도 경거망동하여선 아니 됩니다.”

“부사께서도 마음을 단단히 하십쇼.”


서로 충고를 나눈 두 사람은 곧 바깥에서 그들을 찾은 목소리의 주인을 안으로 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자의 얼굴을 살피니 지난 며칠간 몇 번이고 얼굴을 마주했던 사례감 환관이었다.


지난 며칠과 다르게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게 고저가 없는 목소리에 설마하니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두 사람은 당황했다.


그러나 환관은 그런 당황함 따위 관심 없다는 듯이 임경업과 박미를 한 번씩 번갈아 살피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조선에서 오신 사절분들은 지금 바로 알현할 준비를 하시오. 황상께서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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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3화 그 아이는 어울리지 않는다 +2 23.01.06 928 38 13쪽
93 92화 정쟁의 불씨 +4 23.01.05 937 37 13쪽
92 91화 심양에서 던진 돌 23.01.04 980 34 13쪽
91 90화 아직 아니십니다 +1 23.01.03 987 33 14쪽
90 89화 덫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1 23.01.02 987 38 14쪽
89 88화 마주할 상대를 알다 +5 23.01.01 1,033 40 12쪽
88 87화 혼인은 어렵다 +5 22.12.31 1,087 35 14쪽
87 86화 소문은 사람보다 빠르다 +2 22.12.30 1,006 35 13쪽
86 85화 의심 많은 자는 제 생각을 과신한다 +3 22.12.29 1,012 50 15쪽
85 84화 가장 듣기 싫은 말 +1 22.12.28 1,039 41 12쪽
84 83화 토목의 일을 경계하라 +2 22.12.27 1,026 39 14쪽
» 82화 황제의 의심 +1 22.12.26 1,030 36 11쪽
82 81화 떠나고 도착하고 +2 22.12.25 1,066 38 13쪽
81 80화 사람의 마음은 재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3 22.12.24 1,066 38 13쪽
80 79화 믿을 놈이 없다 +2 22.12.23 1,051 45 13쪽
79 78화 재수가 없으면 엎어져도 +2 22.12.22 1,070 44 13쪽
78 77화 질시와 선망은 하나다 +6 22.12.21 1,068 47 13쪽
77 76화 불씨 +5 22.12.20 1,094 44 15쪽
76 75화 상나라 사람은 도를 모른다 +2 22.12.19 1,119 45 14쪽
75 74화 선공은 제가 하겠습니다 +5 22.12.18 1,123 46 13쪽
74 73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2 22.12.17 1,093 44 13쪽
73 72화 사람은 송충이가 아니다 +2 22.12.16 1,131 46 15쪽
72 71화 공이 있으면 책임도 있다 +1 22.12.15 1,149 45 13쪽
71 70화 세 사람이 간다 +5 22.12.14 1,153 41 12쪽
70 69화 아는 만큼 보인다 +5 22.12.13 1,206 44 16쪽
69 68화 사문난적 소리 들을 말 +4 22.12.12 1,229 57 15쪽
68 67화 멀고도 먼 길 +4 22.12.11 1,201 37 14쪽
67 66화 충청도 새옹지마 +3 22.12.10 1,243 43 12쪽
66 65화 같은 꼴 +3 22.12.09 1,296 50 13쪽
65 64화 나는 조선의 임금이다 +12 22.12.08 1,406 4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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