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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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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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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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DUMMY

14.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손에 쥔 강지석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기쁜 건지 짜증이 난 건지 혹은 그냥 어이가 없는 건지.


“여전하네. 차도윤.”


나지막이 평을 내리는 그를 향해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외상값은 톡톡히 받을 거야. 떼먹을 생각은 하지도 마.”

“······검성을 상대로 누가 그러겠냐.”

“당연히 그래야지. 죽고 싶지 않으면.”

“하여간 돈독이 올랐다니까.”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차도윤을 향해 치솟았지만 그는 뭘 더 어찌하진 않았다.

탑에선 3만 코인이면 구하는 물건을 약 10배에 가까운 29만 코인에 구한 건 그였다.

구매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강지석은 결코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이나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유용했다.

차도윤은 이죽이며 말했다.


“합리적인 가격이잖아. 이 시점에 누가 어디서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구하겠어.”

“······알아.”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너니까 파는 거야. 원래는 내가 먹을 거였어.”

“안다고.”


만드라고라는 막상 찾아낸다면 쓰러트리기 어려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찾는다는 것부터 지독하게 난해한 난이도를 가진 놈이다.

강지석은 다 피우고 남은 꽁초를 발로 비벼 끄더니 또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칙!

그리고 차도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셀브란스 병원에서 할 일은 일단락된 건가?”


자잘하게 볼 일은 남았지만 만드라고라의 뿌리보다 더 큰 이득을 볼 건 없다.

하루가 지나면 코인 상점을 또 이용할 수 있겠지만 그만한 가치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가성비였다.

같은 시간에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게 훨씬 더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내 예상대로라면 넌 안산도시 자연공원 쪽으로 가겠지?”

“대장간을 들러야겠지만······ 맞아. 그곳에서 얻어야 할 게 있으니까.”


강지석은 길게 담배연기를 불어내었다.

하얀 연기는 아스라이 떠오르는 햇살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왠지 얄미운 사람 욕보라는 듯이.


“뺑이 좀 치겠네.”


강지석은 힘을 주어 말했다.


*


이후로 병원을 이 잡듯이 뒤진 차도윤은 목적으로 해둔 히든 피스를 전부 찾아내었다.


[아이템 ‘우황청심환’을 복용했습니다.]

[마력이 2 올랐습니다.]


약국의 구석진 위치에 보관되었던 아이템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가져갔을지 몰라 약간은 노심초사했던 물건.


[장비 ‘당직의의 가운’을 착용했습니다.]

[체력이 3 올랐습니다.]


의국의 의류보관함을 뒤져서 찾아낸 장비였다. 전생의 차도윤이 갈아입을 옷을 찾다 발견했더랬지.


[‘1,000코인’을 습득했습니다.]


식당 구석 자판기에서 코인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강지석은 가늘게 뜬 눈으로 물었다.


“너······ 전생에 자판기 밑도 뒤져 봤냐.”


차도윤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너도 자판기 밑을 잘 찾아 봐. 종종 코인이 숨겨져 있어.”

“······대체 왜.”

“그걸 나한테 물어서 뭘 해? 신이 한 짓인데.”


헛헛하게 웃으며 강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떠날 시간이 되자 차도윤은 그를 향해 말했다.


“담배는 끊어. 몸에 암 덩어리를 키워서 뭘 해?”

“회복 물약이 있는데 암은 무슨······.”

“그러다 ‘니코틴 중독자’ 특성 얻으면 어쩌려고.”


지금이야 버프를 챙겨주지만 나중엔 담배 없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훗날엔 담배조차도 구하기 힘들어진다.

그땐 ‘니코틴 중독자’ 특성을 없애기 위해 더욱 고생해야 할 건 빤한 일.

강지석이 말했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해줘.”

“······이런 사람이 무슨 전략가라고.”

“그러니까 차도윤. 넌 이런 거 하지 마라.”


얄궂게 웃던 강지석은 이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다음에 만나는 건 한 달 후가 되려나.”

“계획대로 이어진다면 아마도 그렇겠지?”

“죽지 마라. 괜히 만드라고라를 빼앗은 죄책감을 갖고 싶진 않으니까.”

“뭐래. 넌 진짜 내가 누군지 잊은 거냐?”


차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지석을 일별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면 몇몇 광신도들이 병원 주변을 경계하며 숨어있는 게 보였다.

아무렴 강지석의 위치는 발각되었다. 놈들의 입장에선 최우선 타격 후보를 찾아낸 셈이다.

머지않아 병원을 상대로 광신도들의 습격은 또 다시 이루어지고 말 터.

하지만 차도윤은 혀를 차며 생각을 정리했다.


‘알아서 하겠지.’


세 살배기 아이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강지석이 직면한 문제였다.

제 죽음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는 시한폭탄 같은 녀석이지만, 쉽게 죽을 놈은 아니다.

저런 식으로 살고도 전생엔 무려 76층까지 살아남은 타고난 전략가였다.

거기다 만드라고라의 뿌리마저 남겨놨으니 나머진 강지석이 알아서 할 일이다.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나도 내 일을 해야지.’


차도윤은 부서진 건물을 지나쳐 갈라진 아스팔트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신촌역 대장간을 들를까 고민해봤지만 강지석이 그에게 전했던 말이 떠올랐다.

광신도 놈들이 기승을 부려 빌어먹게도 이른 침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정보들.


‘다들 너무 부지런한 거 아닌가.’


원래라면 별 볼일 없는 아이템이더라도 대장간에 들러 강화 좀 하고 가려 했다.

근데 생각보다 광신도도 그렇고 다들 빠르고 급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잘못하면 따라잡힌다.’


아무렴 놈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면 이쪽도 그에 걸맞게 움직여줘야 한다.

다행히 방법은 안다.

안전하게 가려던 방식을 조금 무모하더라도 지름길을 이용하면 되니까.


‘좋아, 대장간은 패스다.’


차도윤은 차분하게 다음으로 얻어야만 하는 중요한 히든 피스를 떠올렸다.

구해야 할 건, 다름 아닌 한 사람.


‘백 선생.’


이름은 알고 있으나 사실 그 얼굴이나 생김새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회귀 이후 최우선으로 구조해야 할 대상으로 지정해뒀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개사기니까.’


전생엔 부득이하게 일찍 죽어버려 개화하질 못한 불운의 헌터로 분류된다.

단 가지고 있는 스킬의 사기성은 결사대 그 누구도 반론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개화하질 못한 천재였다.


‘무엇보다 놈들이 찾아내기 전에.’


차도윤이 가장 먼저 찾아내어 그 곁을 어떻게든 지킬 필요가 있었다.

그도 아니면 스스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뭐라도 가르쳐 주던가.


‘지금 내 실력이면 어느 정도······.’


그렇게 차곡차곡 생각을 정리하며 차도윤은 반파된 건물을 가로질렀고.


“흠?”


흉흉한 괴한들에게 둘러싸인 웬 피투성이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빌어먹을.’


속에서부터 솟아오른 욕을 피와 함께 삼킨 노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습을 당한 어깨엔 화살이 꽂혀 있었고 독이라도 발렸는지 머리는 어지러웠다.

하나인지 둘인지 잔상이 겹쳐 보이는 인간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는 놈들의 정체를 알았다.


‘깡패 새끼들.’


자연 공원 일대를 주름잡은 철룡파 놈들은 전생부터 잘 알던 놈들이다.

나라가 개판이 나니 날개라도 단 듯 빌어먹게도 활개를 치고 다니는 종자들.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온갖 사이코패스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개새끼들.

회귀를 하고서도 놈들의 횡포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지독하게 늘어나 있었다.

누군가가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말이 뭐라고 했더라?

뭐? 재밌으니까?


‘진짜 개십새끼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빌어먹을 욕만 쏟아붓는 것 말고는 없었다.

기습을 당해 동료는 전부 마비 독에 중독당해 바닥에 쓰러진 지 오래였고.

그 또한 무기마저 빼앗겨 이다지도 볼품사납게 놈들을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당장 피를 너무 쏟아 흐릿해진 시야로 놈들의 얼굴마저도 잘 안 보이는데 뭘 더 할 수 있을까.


“우리 쉽게 쉽게 가자고.”


뱀처럼 짝 째진 눈을 한 깡패 놈이 노지혁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말했다.


“그년 어딨냐?”


하지만 노지혁은 기다렸다는 듯 놈의 얼굴에 칵 침을 뱉어줄 뿐이었다.


“너희들이 그런다고 백 선생께서 눈이나 한 번 깜빡일 줄 알아? 웃기지 말라 그래!”


그러면서 놈들의 면면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놈들이 백 선생을 찾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설령 목에 칼이 드리워져도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백 선생의 신변에 위험이 생기느니 자신이 죽는 게 낫다.

그게 생명의 은인에 대한 도리였다.


“이래도 말 안 할 거냐?”


실제로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지만 노지혁은 꾹 참았다.

깡패 녀석도 목 언저리를 단검으로 슥슥 긁어대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단검을 회수했다.

근데 포기한 건 아니었을까.


“그럼 이렇게 하지.”

“뭐?”

“네가 대답하지 않으면 한 명씩 죽는 거야.”


살벌한 눈으로 깡패 녀석은 쓰러져있던 한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올렸다.

그에게 했듯 여자의 목덜미에 드리워진 칼날에 실핏줄이 팍하고 터졌다.


“말해. 안 그럼 이년 죽는다?”

“그만 둬! 내 동생에게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기만 해 봐!”

“동생이었나? 이거 잘 됐군.”


놈이 이죽이면서 물었다.


“말해. 바른대로 말하면 이년은 살아.”

“개새끼야!”

“그래. 개새끼라 치고 말하라고.”


서서히 동생의 목을 그어가는 칼을 보고도 더 이상 그가 뭘 어쩔 수 있을까.

말해야 했다.

그래야 동생이 산다.


“배, 백 선생은 지금······!”


근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옆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원사에 있을 걸.”


그것도 바로 지근거리에서.


“너, 너 대체 어디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는 어딘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내가 잘 찾아온 모양이네.”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창졸간에 검을 앞으로 휘둘렀다.

화려한 빛깔이 터져나오면서 기습적으로 날아온 단검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퍼, 퍼펙트 패링?”


당황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뒤따랐지만 남자는 그들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지 이쪽을 돌아보았다.


“들어보니까 당신이 백 선생이랑 아는 눈치인 것 같던데.”

“네?”

“백 선생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사방에서 깡패 놈들이 칼을 들고 다가오는 마당에 이 남자는 뭔 소리를 하는 건지.

하지만 노지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대답하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여기서 쉬고 있어요.”


그로부터 몸을 돌리는 남자를 보며 노지혁은 잠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봤다.

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너무 피를 많이 흘렸나? 지금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냅다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황망한 눈으로 보이는 건 남자의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분위기.

하지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한 명씩 목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흩뿌려지는 건 오직 깡패 놈들의 피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남자는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걷는 것 같은데 왜 뛰는 것보다 빠른 것 같은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깡패 중 한 놈이 미간을 팍 구긴 채 권총을 꺼내들었다.

어디서 길을 돌아다니던 군인이라도 삥 뜯었을까.


“이걸 맞고도 네놈이 살 수 있을······!”


녀석이 방아쇠를 당기고자 손가락에 힘을 줄 무렵.


스거억!


녀석의 손목이 통으로 잘려나가 권총을 쥔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든 장면은 액션 영화라도 보듯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흠.”


이제는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남자는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일곱 명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는데도 상처 하나 입질 않은 채.


“다, 당신은 대체······.”


그는 자신을 차도윤이라 소개했다.


작가의말

다음 편은 오늘 저녁 21시 15분에 연재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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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5 74 13쪽
19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60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4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2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8 77 12쪽
»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2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90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2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3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5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7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3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1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3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7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5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6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5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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