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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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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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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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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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DUMMY

15.


멸망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먼저 끊기는 건 기존에 갖고 있던 각종 인프라였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망이 단숨에 모조리 차단되고 말았다.

하여 대책 없이 흩어지더라도 서로 만날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두는 게 좋았고.


‘봉원사도 그런 곳이었지.’


각 지역 별로 존재하는 주민 센터 내지 경찰서 등의 관공서, 혹은 유명 관광지는 일종의 피난소였다.

그리고 오늘날 그런 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가능한 한 많은 생존자를 꾸려 더 큰 생존자 캠프로 이주하는 것.’


멸망에 이른 세계의 제 1원칙이다.


“다행히 봉원사 쪽엔 던전이 생겨나진 않았어요. 전생과 마찬가지로 피난소 역할로 제격이었죠.”


골목길을 벗어나 조금 더 걸어 봉원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약간 반파된 건물 안으로 생각보다 많은 시민이 대피해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안전하진 않죠. 좀 더 큰 캠프로 옮겨야 하는데······.”


차도윤은 말을 길게 흘리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을 뻔했던 남자.

스스로를 노지혁이라 밝힌 그가 쓰게 웃었다.


“보다시피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어요.”


현재 봉원사에 남은 사람들은 대다수 노약자나 부상자였다.

이대로 절을 벗어나면 십중팔구 몬스터의 밥이 될 자들.

하물며 철룡파 놈들이 기승을 부려 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일단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가능한 한 많은 인원을 모아 한 번에 움직이면 아무래도 생존 확률은 더 오를 테니까요.”


차도윤은 노지혁의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봉원사의 안쪽으로 진입했다.

더 안쪽은 임시 병동처럼 꾸려놧던 지라 사람들이 곳곳에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차도윤이 걸음을 멈추어 서게 된 건 실시간으로 심폐소생술이 진행되는 현장이었다.


“제세동기는 아직이에요?”

“잠시만······ 준비됐습니다.”

“물러나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내의 가슴을 수십 번 들썩이며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른 번의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여자는 남자의 호흡을 확인했다.


“······호흡 돌아왔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 사이를 오가는 하얀 블라우스의 여자가 눈에 이었다.

차도윤은 바로 알았다.


“저 사람이······.”


노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 선생님이십니다.”


유능한 치료 스킬로 수많은 사람을 살려 전생에서도 꽤 알려졌던 위인.


“백 선생님! 여기 응급환자입니다! 목에 자상이 있어요!”

“빨리 이쪽 테이블로 옮겨 주세요!”

“백 선생님? 이쪽도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환자가······!”


말 한 마디 건네기 무서울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도윤은 그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많이 바쁜 모양인데 제 말만 일단 전해주시겠어요?”


잠시 몸을 돌린 그는 노지혁에게 말했다.


“강지석 소위의 전언이 있다고.”


*


전쟁터를 방불케하던 봉원사 내부의 소란은 한참이 지나서야 잠잠해졌다.

유일한 의사였던 백 선생이 몸이 부서지도록 치료하길 얼추 한 시간이 지났다.


“절 찾으셨다고요?”


그새 인근의 던전을 하나 공략하고 돌아온 차도윤은 피로한 안색의 여자를 발견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

백 선생, 그러니까 백지현은 차도윤을 흘깃 살펴보더니 금세 반색하며 말했다.


“그 가운······ 셀브란스 병원?”


히든 피스로 쟁여든 하얀 가운이 그의 신분을 오해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전 의사는 아닙니다.”


차도윤의 이어진 말에 백지현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역시 그렇겠죠.”


피곤한 눈으로 이쪽을 살펴보던 백지현이 힘없이 물었다.


“그럼 절 찾으신 이유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한달음에 다가온 백지현은 차도윤의 손목을 짚어 진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로부터 미증유의 기운이 뿜어져나왔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를 해하려고 꺼내어 든 마력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꺼낸 스킬이다.


“······크게 다치신 곳은 없는데?”


의문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닙니다.”

“그럼 왜······.”

“못 들었나요? 강지석 소위의 전언이 있다고요.”


차도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강지석의 전언을 하나씩 전달해줬다.

강지석이 예견했고 머지않아 찾아올 빌어먹을 미래.

그 참사를 막기 위해선 백지현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백지현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 파수꾼이란 게 내려오면 어떻게 된다고요?”

“파편만 내려와도 수천 명이 죽을 겁니다.”

“흐읍.”

“그것도 최소로 산정한 수치죠. 더 심할 거예요.”


파수꾼은 오직 인류를 절멸시키고자 친히 탑에서 내려오는 재앙이었다.

놈을 막아낼 유일한 방법은 내려오기도 전에 탑을 올라 그 멱을 따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탑을 오르기까지의 약간의 유예 시간을 버는 것.

모름지기 눈앞의 백지현은 그 일을 진행하기에 가장 중요한 조커 카드였다.

한데, 백지현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요.”


그녀의 시선은 아직도 끙끙 앓고 있는 봉원사의 생존자들에게 향했다.


“이곳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씩 부상자가 들어와요. 제가 여길 비우면 그들은 누가 치료하죠?”

“······지금 움직이질 않는다면 언젠가 저들도 모조리 죽고 말 텐데요.”

“아뇨, 그건 단순한 비약이죠.”


백지현은 차도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저는 수많은 카드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절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건······.”

“강지석 소위의 전언이라면서요? 그 사람은 분명 대체 카드도 준비하고 있을 텐데요.”


백지현은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대로 여긴 저 말고는 대체할 인원이 없죠. 그렇게 되면 이곳의 사람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해요.”


그리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무엇보다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일 리가 없는 걸요.”

“······.”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구하고자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을 외면할 순 없어요.”


딱 잘라 거절하는 말투엔 대단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들어본 가닥이 있는 터라 무어라 말을 잇기 뭣했다.

애초에 백지현이 ‘이런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찾아오지도 않았다.


‘거기다 대체 카드가 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사실이고······.’


차도윤은 쓰게 웃으며 백지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단호하게 꽂히는 시선엔 남다른 고집이 묻어났다.

말 몇 마디로 꺾을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을 빛낸 차도윤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건 그가 할 일이 무언지 명확했으니까.


“과연 듣던 대로네요. 백 선생님이 예상했던 그대로라 안심했습니다.”

“네?”

“근데 선생님은 절 따라오게 될 겁니다.”


차도윤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물론 그녀의 고집을 꺾을 생각은 아니었다.

꺾이질 않는 고집을 꺾으려 해봤자 부러지기만 한다.


‘내가 할 일은 그게 아니지.’


문득 차도윤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했다.

광신도보다 못한 수준으로 은폐하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녀석이 노지혁과 그를 쫓아왔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요점은 봉원사의 사람들이 걱정된다는 거죠.”


그러고는 백지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빠르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백지현의 시선이 그를 따라왔다.

개의치 않고 내달린 차도윤이 검을 뽑아든 건 그때.


“이익!”


숨어있던 놈이 당황하며 일단 칼을 뽑아들었다.

성난 눈초리의 사내는 눈가에 칼집이 나있었다.


“······어떻게 알있지?”


나지막이 묻는 질문에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걸 어떻게 몰라. 빤히 보이는데.”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가 없다는 걸까.

상대는 냅다 차도윤의 목을 노리고 공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통할 리가 없는 기습이다.


채애앵!


날카롭게 번져나가는 건 퍼펙트 패링의 화려한 이펙트.


“······크윽!”


가뿐하게 녀석의 공격을 튕겨낸 차도윤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넌 길 좀 안내해야겠는데.”

“뭐?”

“너라면 가이드로 충분할 것 같거든.”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에 차도윤은 더더욱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백 선생을 노리는 놈들을 찾고 있어. 이름이 뭐더라? 철사파? 철도파?”

“철룡파다!”

“하여간 촌스럽긴.”


혀를 끌끌 찬 차도윤은 빠르게 녀석의 간격으로 접어들었다.


“요구는 간단해. 철도인지 철망인지 모를 네 보스를 만나게 해줘.”


하지만 녀석은 대답도 않고 검을 휘두르는 걸로 응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려한 이펙트만이 번질 뿐이었다.

두 번의 퍼펙트 패링, 한층 가속한 차도윤은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우리 쉽게 쉽게 가자.”


복부를 걷어차인 녀석은 멀리 벽면으로 튕겨나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녀석은 침을 질질 흘리며 독기 가득한 눈을 치켜 떴다.


“왜, 더 하게?”

“크윽······!”

“말리진 않아. 근데 명심해 둬. 다음번엔 봐주지 않을 거니까.”


차도윤은 말없이 녀석을 바라보며 눈에 살기를 담았다.

눈빛을 마주한 녀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말았다.

하지만 자존심은 남았는지 이를 박박 갈며 소리쳤다.


“형님이······ 형님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

“감히 우리 조직을 건든 대가는 톡톡히······ 컥!”


더 들어줄 것도 없이 차도윤은 녀석의 턱을 걷어찼다.


“뭔 말이 이리 많아.”


차도윤의 시선은 두려움이 반쯤 섞인 채 이쪽을 바라보는 봉원사 측 사람들에게 향했다.

부상을 당한 수많은 시민들은 힘겹게 신음했고 몇몇은 겁에 질렸는지 몸을 떨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들 대다수의 상처는 몬스터에게 당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몬스터에게 당했으면 저런 날카로운 자상은 생기지 않는다.

뜯어먹거나, 부수어 먹거나, 갈기갈기 찢어먹거나······.

하지만 봉원사의 생존자들은 대개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상처를 갖고 있었다.

아마도 근방을 장악한 걸로 알려진 ‘철룡파’의 소행이겠지.

물론 딱히 그들이 인간을 사냥하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내가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어차피 이런 깡패 놈들이야 애써 박멸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머지않아 각박해진 세상에서 알아서 탈락하고 사라질 놈들이다.

1회 차에서도 철룡파 놈들은 알아서 자멸했을 거다.

몇 층에서 전멸했는지는 몰라도 철룡파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으니까.


‘이런 놈들을 상대로 드잡이를 벌이는 내 시간이 아깝지.’


근데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다를 것이다.

문제는 철룡파가 이곳에서 저지르는 악행이 그에겐 방해가 된다는 점이다.

근방을 틀어막아 더 큰 생존 캠프로의 이동 자체를 어렵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뭘 하면 될까?


“아무래도 저 사람 걱정을 좀 덜어줘야겠거든.”


차도윤은 백지현이 기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아니다.

또한 강지석이나 다른 누구처럼 말 한 마디로 설득해낼 정도로 뛰어난 언변을 갖춘 것도 아니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그의 특기라고 할 건 다름 아닌 사냥이라 부를 행위다.

그는 헌터였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하나야.’


차도윤의 검은 녀석의 목덜미로 향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 거야.”


그건 마치 불과 얼마 전 괴한이 노지혁에게 했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히 인과응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차도윤이 생각하기에도 당장 이것보다 빠르게 정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너희 보스는 어디에 있냐?”


던전 공략에 방해가 되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19년을 살아온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작가의말

내일은 21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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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2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8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1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90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2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2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5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7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3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1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3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7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5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6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5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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