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99 구원 능력자가 전직 천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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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젤리
작품등록일 :
2023.03.07 12:22
최근연재일 :
2024.09.0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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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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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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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결정

DUMMY

마치 꿈속에서 싸웠는 듯 파괴되었던 곳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성의 해자 쪽에서는 녀석의 칼 두 자루가 성수에 둥둥 뜬 채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멀리까지 일었던 파문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프로코피우스가 발걸음을 주춤하더니 발 아래를 보고는 미카엘에게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환계인이 되더니 천기 읽는 법을 잊었나 보군."


앞서 가고 있던 미카엘은 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중상 정도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성수의 표면에서 물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윽고 커다란 형체 하나가 표면을 가르고 공중으로 튀어 올라왔다.

온몸이 검게 그슬려지긴 했지만 단번에 녀석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들을 쳐다보기는커녕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개자식들, 다 죽여버릴 거야! 감히 날 속이다니. 노예 녀석들 주제에 감히!"


그러고 나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가브리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헤헤헤."



포털로 이동해도 끝을 알 수 없는 거리였다.

압축된 공간들을 지나칠 때마다 지난 기억들이 미카엘의 머릿속에서 새록새록 피어 올라왔다.

나빴던, 좋았던 기억의 올들이 얼기설기 교직되면서 시간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곧 그의 현재 아래에 길게 드리워졌다.


다양한 꽃들로 둘러싸인 에덴 동산의 호숫가에서 금발의 여인이 발을 담근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군가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좀체 움직임이 없었다.

어깨에 손을 얹고 싶었지만 여인에게 실례가 될까 싶어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뒤로 물러나 스스로 돌아볼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미카엘 옆에서 누군가가 새근거리면서 잠자고 있었다.

그녀였다.

새하얀 얼굴을 미카엘의 오른쪽 가슴에 올려두고 두 팔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로.

그녀가 깰까 싶어 움직임 없이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에덴 동산의 수호를 위해 한 발자국도 이곳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그녀의 얼굴에서는 고단함보다는 행복감이 넘쳐 보였다.


"그럼 이제 미카엘 님을 매일 볼 수 있는 거네요?"

"이곳을 수호하게 된 이상 여기를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아둬라. 그렇게 할 자신이 있느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미카엘 님을 매일 볼 수 있다면 뭐라도 못할까요?"


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고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그를 올려보다가 냉큼 그의 품에 안겼다.

놀란 미카엘은 피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상할까 봐 그대로 두었다.


그의 잘려나간 한쪽 날개에서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고, 환희 안에 숨은 처연한 표정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왜 인간을 위해, 그것도 하필 우리 남매를 위해 자신의 날개를 희생하면서까지 도움을 주었는지 묻고 있는 듯했다.

미카엘은 그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다만 표정으로 답할 뿐이었다.


갑자기 날개 쪽에서 격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사지를 찢을 듯한 엄청난 고통.

너무 괴로워서 바닥을 뒹굴 정도였다.

한참을 그러다가 통증이 가라앉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빛이라고는 한점도 없는 암흑의 공간.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들리는 거라고는 처절한 비명과 칼가는 소리 뿐이었다.

시체 더미에 눈길이 이르자 그 뒤편으로 거구의 한 사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중식도 모양의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네. 날개를 몽땅 다 자르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좀 너그러우셔야 말이지. 그래서 한 쌍만 남겨줬어. 고맙지? 응? 크하하하하하."


희미한 의식 가운데서도 누군가가 생각났는지 미카엘의 입이 떨어지려는 순간,


"아, 맞다. 같은 대역죄를 저지른 그 년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알고 싶어?"


녀석은 비아냥대면서 그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년은 천군의 노리개가 된 후에 그 맛을 못 잊어서 네가 누군지도 못 알아볼 거야.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두라구. 자기 어미년 기질은 못 버리니까."



"네 놈, 죽여버릴 거다!"


불의 검이 이글거리면서 그의 검을 막아섰다.


"환계인, 지금 뭐하는 짓이냐?"


놀란 표정의 프로코피우스와는 달리 녀석은 실실 웃으면서 다시 앞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그런 녀석의 모습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고, 떨리는 손에서는 소름이 돋아났다.

녀석을 해치지 못 했다는 아쉬움보다 공격했다면 일어났을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서 빛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씩 옮겼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도 알고 있었지만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 일시적으로 몰아칠 때 만큼은 기다림이라는 것은 미래에서의 해결을 위한 요소라기보다는 그 감정을 끌어당길 수 있는 또 다른 현재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어코 실질적인 현재가 될 때는 비극의 시작이 되리라는 걸 어찌 그가 모를쏘냐.

프로코피우스가 막아서지 않았더라도 결국 그는 멈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카엘이 나오자 포털은 우우웅 소리를 내며 하나의 점으로 압축되면서 사라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그들의 눈앞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 드넓게 펼쳐졌다.


그곳의 바닥을 밟을 때마다 끝없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앞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바닥과 그로 인해 떨어질 만큼 떨어진 방향 감각 탓에 반사적으로 발 앞꿈치를 누르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녀석을 제외한 프로코피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하강이라도 하고 있는 듯 등에 매달린 바퀴의 불꽃이 세차게 일렁거렸으니까.


하지만 곧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포탈에서 나왔을 때부터 이미 가브리엘과 대면하고 있었다는 걸 미카엘과 프로코피우스는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녀석은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 웃으면서 그들이 걸어 다니는 꼴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박수를 치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바보들이다. 그쵸, 가브리엘 님?"


10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소녀가 그들을 놀리고 있는 거 아닌가.

이에 부아가 치밀었는지 프로코피우스의 등 쪽에서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왜 여기에 가브리엘과 같이 있는 거지?'


소녀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들고서 미카엘에게 내밀었다.

미카엘은 내심 당황했으나 짐짓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


"야, 바보야. 내가 누군지 몰라? 그리고 왜 여기에 왔는지 알려줘?"


미카엘은 놀란 표정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대천사장이라지만 현계의 인간을 제외한 계의 존재들에 대한 미래나 그들의 생각은 유일신 외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쥐어진 손의 바깥쪽으로부터 이물감이 느껴졌다.

소용돌이 모양의 무지개색 막대 사탕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이자 소녀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헤헤헤헤. 역시 나는 천재라니까. 바보~ 바보~ 뿡뿡이나 먹엇!"


미카엘을 떠보기 위해 사탕을 쥐어준 것이었다.

일순 미카엘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한때 대천사장이 한낱 꼬맹이에게 농락당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드는 창피함과 분노보다, 한창 배울 나이 때의 아이가 맑은 눈빛을 하고서 자기를 가지고 놀았다는 영악함을 보았을 때 드는 괴리감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는 여전히 그를 빤히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때 성난 프로코피우스가 등에서 불의 검을 뽑으려고 하자 그 녀석이 검게 그슬린 얼굴을 소녀에게 내밀며 짜증 내듯이 말했다.


"레스티아 님, 대체 노예 녀석들을 어떻게 관리하시는 겁니까? 화조 가죽으로 만든 거라면서요? 불에 탔을 때 냄새를 맡아보니까 고블린 가죽이던데요? 이거 오백만 달란트나 주고 산 겁니다."


'레스티아?'


프로코피우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며칠 전에 본 그녀는 50대의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저 사자 대가리 녀석이 시비를 건 것도 그렇고.'


가브리엘의 계획대로 이 모든 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 존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그의 성향에 비쳐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만남을 어렵게 할 이유가 없었다.


프로코피우스가 다시 불의 검을 바퀴의 형상으로 돌려놓은 것을 본 미카엘 또한 레스티아라는 이름을 듣고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가 본 레스티아는 80대의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때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따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어린 소녀가 자기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멍청아. 나한테 따지는 거야?"


레스티아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에 녀석 또한 지지 않고 응수하였다.


"환계 놈들도 겨우 화조 한 마리 때려 잡았을 뿐인데 어떻게 인간 놈들이 그걸 잡습니까? 그래도 레스티아 님을 믿고 구매한 건데 이건 아니지요."

"아앙, 그러셔? 그건 그렇고......"


비릿한 미소를 흘리던 레스티아가 가슴께까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녀석은 잠깐 주춤거렸지만 할 말이 더 있는지 입을 떼려고 하는 순간, 그를 향하고 있던 그녀의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 손가락에서 따악 하는 마찰음이 들려오자, 거센 광풍이 휘몰아 치더니 순식간에 낚아채듯 그를 덮쳐버렸다.

이에 녀석은 대처할 틈도 없이 반대편 공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이 모습을 본 그들은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천사장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미카엘은 새로운 대천사장들의 힘이 자기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이번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루시퍼의 여러 차례 침공 그리고 대역 죄인이 된 자기와 자기 형제들 때문에 공석이 된 대천사장 자리로 인해 더 강력한 자들이 대천사장이 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근데 의문이 하나 있었다. 레스티아를 포함한 그 세 명은 아버지의 부름을 직접 받은 게 아니라 가브리엘이 그의 전령사 신분으로 그들을 대천사장으로 임명한 것인데 천계에서 이들을 미카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으레 눈에 띄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미카엘은 황급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 모습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라구. 까불면 저렇게 되니까. 이참에 서열 정리를 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거든."



가브리엘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유의지에 맡기기에는 이제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는 거 아닌가?

미카엘의 가슴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어떻게든 인간들을 살려내야만 한다. 그들의 미래를 본 이상 더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근데 어떤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의 미래를 왜 레스티아는 구현했을까? 아니 그보다 더욱 궁금한 건......


왜 죽은 자들을 환계로 보내지 않고 레스티아 임의로, 그것도 그들을 어처구니 없게도 갈라 놓고서 싸우게 만들고 한쪽은 악으로 규정해놓고서 노예로 부려먹는 것인가?


환계의 신이자 책임자로서 넘어갈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지혜의 대천사장이 세운, 묵시론적인 세기말 상황에 대비한 특단의 대책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꺼림칙하고도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

묵인했거나 방조했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미카엘은 들고 있던 막대 사탕을 그녀에게로 던지며 말했다.


"그들을 다시 환계로 돌려보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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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기억해야 될 자들 24.09.05 15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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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7 19 0 14쪽
9 8.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6 13 0 12쪽
8 7.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5 14 0 12쪽
7 6. 결정 24.08.24 15 0 13쪽
» 5. 결정 24.08.23 27 0 13쪽
5 4.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2 13 0 13쪽
4 3.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1 25 0 14쪽
3 2.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6 0 13쪽
2 1.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8 0 13쪽
1 프롤로그-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0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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