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99 구원 능력자가 전직 천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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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젤리
작품등록일 :
2023.03.07 12:22
최근연재일 :
2024.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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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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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DUMMY

"뭐어? 다시 말해 봐."


영희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다니엘은 주변을 쓱 둘러보고 나서 잡고 있던 영희의 손목을 무의식적으로 풀며 읊조린 듯이 말했다.


"언니 말고는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언니는 누구보다 이곳을, 사람들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하나 더 말할 게 있는데......"


다니엘로부터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는 컨트롤러 조작을 던컨에게 맡긴 배경에 대해서도 듣게 된 영희는 그제서야 자신에게 주어질 임무의 무게감을, 사명감을 알게 됐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내각에서 기각해버린 다니엘의 출정은 이곳 사정을 고려하자면 누구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리더인 그녀의 존재 유무는 임무의 성공 여부를 떠나 팀원의 심리적인 부분을 조율하며 장기적인 대책을 꾸려 나가는 힘이 되었기에 영희로서는 아무래도 다니엘의 부탁을 듣고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던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시각.

존 월은 안토니오와 차를 마시며 향후 벌어질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천계인이 되면 다니엘 그 년부터 작전 실패의 책임을 물어 참수형에 처해야겠군. 어차피 여기 일은 더 이상 내가 알 바가 아니니."


안토니오는 찻잔 너머로 지도자를 응시하면서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차를 윗입술로 조금씩 흡입하듯 빨아 마셨다. 이윽고 미묘한 웃음을 띤 채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학 기술국의 던컨 대위가 중요한 일이 있어 찾아왔답니다."


존 월과 안토니오는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문틈으로 던컨의 모습이 보이자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던컨은 반쯤 감긴 눈에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자세로 그들 앞에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그는 지도자의 물음에도 답변 없이 몇 걸음 더 다가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신경을 집중해보지만 그럴수록 걸음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뜻밖의 상황에 존 월과 안토니오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던컨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창백한 안색, 그리고 부르튼 입술에서 보이는 머뭇거리는 기색.

마침내 던컨의 성대를 꽉 조르고 있던 의구심이 날숨과 함께 튀어나오자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번 화조 작전 때 대장들에게 하달된 문서 원본을 보고 싶습니다."



#



수만 명의 피로 만들어진 태양의 신전.

태양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500m 높이로 지은 탑 형식 건물로 로마 전역에서 강제로 끌려온 백성들의 수많은 희생 끝에 불과 일 년도 채 안 되어 완공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곳에서는 비명 소리 비슷한 게 끊임없이 들렸는데, 강제 노역 중에 죽어간 자들의 억울하고 원통한 영혼이 승천하지 못하고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로마 시민들은 생각했다.

그만큼 칼리굴라의 폭정에 대한 로마 시민과 주변국 백성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이에 곳곳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나 곧 진압되어 수많은 자들의 피로 땅은 얼룩지게 되었다.


"집정관이시여. 여기에 묻힌 제 가족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장님으로 보이는 한 노파가 황제의 마차를 엄호 중인 근위대를 가로막고 서있었다.

그러자 병사 몇몇이 태양의 문양으로 된 붉은색 방패를 들고서 그녀를 바깥쪽으로 밀쳐냈다.

그 충격으로 풀썩 쓰러진 노파는 주저앉은 채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집정관 네르바가 탄 마차에까지 그 소리가 전해지자 그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는 바로 옆에서 엄호 중인 병사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이에 병사는 곧장 칼을 빼들고 노파에게로 달려갔고, 이내 금속성의 미세한 절삭음과 함께 짤막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노파는 입에서 왈칵 피를 쏟으며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고꾸라졌다.

땅바닥에 처박힌 고개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녀 주변의 땅이 피로 물들자 모여있던 백성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짝 짝 짝.


네르바가 탄 마차 뒤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


이어 음흉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고, 네르바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깥 상황을 내다보았다.

다행히 병사들 외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만약 노파의 죽음에 동요된 백성들이 난동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그들의 목숨은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다시 출발하려는 찰나 칼리굴라가 탄 마차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이상히 여긴 네르바는 마차에서 내려 칼리굴라에게 가보기로 하였다.


칼리굴라는 매서운 눈빛으로 네르바를 쏘아봤다. 당황한 네르바가 입을 열려는 순간 칼리굴라의 질문이 먼저 떨어졌다.


"왜 노파를 죽였나?"

"태양신이신 황제의 신전으로 가는 걸 방해해서입니다."

"정말 그것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흠...... 그러면 왜 다른 녀석들은 붙잡지 않았나?"

"......"


일순 네르바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나머지 백성들도 방해한 거나 다름없었고 네르바는 그의 말마따나 그들 또한 즉결 처형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미처......"


칼리굴라는 손을 들어 네르바의 말을 끊고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3일 간의 말미를 주겠네. 녀석들을 포함한 일가 친척의 목을 효수해서 태양의 제단으로 가지고 오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네르바는 알고 있었다. 황제가 이곳에 들를 때마다 바쳐야 하는 제물은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의 목이었던 것이다.

보통은 주변국 노예나 반란을 일으킨 시민들의 목을 제물로 바쳤으나, 공교롭게도 네르바의 선의가 외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꼴이 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백성들이 제물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네르바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의심 많은 황제의 눈에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그 또한 제물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네르바는 잠깐 눈을 의심했다.


칼리굴라 옆에 있던 금발 머리의 어린 소녀가 그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안토니에타......'



햇빛을 상징하는 황금의 계단으로 쭉 올라가면 마찬가지로 황금으로 지어진 태양의 제단이 그 장엄한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층계를 밟고 올라갈 때마다, 먼발치에서 태양의 머리 부근에 홍염을 형상화한 조각 부분에서 그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외눈으로, 코와 입으로 시선이 옮겨가다가, 턱 아래 부근을 둘러싼 홍염 조각이 보이자 네르바는 입구에서부터 품고 있었던 황제에 대한 증오심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누그러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고한 백성들을 무참히 도륙하고도 이를 오락거리로 여길 뿐인 황제의 극악무도함에 대한 저항심보다, 황제의 최측근이자 충신인 자신의 어린 딸을 성적 노리개로 삼고 있는 패륜적인 모습에 대한 분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리라.

누구나가 네르바가 겪은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분노를 하겠지만, 이루기 위한 대의와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면 사사로운 감정에 불과할 뿐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즉,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싫든 좋든,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대부분의 인간들, 심지어 천사들마저도 사사로운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걸 감안한다면 지금의 네르바는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외눈으로 조각했나?"


제단 앞에 서있던 칼리굴라는 주변을 향해 노기 띤 음성으로 물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여러 개의 눈을 새겨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제가 조각가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묵직한 음성이 들려오는 쪽으로 칼리굴라가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서 근위 대장 카이레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갈기로 정수리 부근을 장식한 황동색 투구를 쓴 카이레아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유가 뭔가?"


경직된 표정을 지은 채 칼리굴라가 되물었다. 이에 카이레아는 망설이기는커녕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두꺼운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어찌 잡스러운 눈 여러 개가 유일한 하나의 눈을 대신할 수 있겠나이까. 태양의 신이신 황제의 유일함을 표현했을 뿐이오니 부디 이 점 헤아려 용서해 주시옵소서."


고개를 숙인 채 한쪽 무릎을 꿇어 앉은 카이레아의 모습을 본 칼리굴라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고개가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어댔다.

칼리굴라는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우며 흡족한 표정으로 제단을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마음껏 즐기세. 태양의 신이 모두에게 끝없는 쾌락을 안겨줄 것이니......하하하하."


황제의 웃음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주변의 원로원 의원들도 따라 웃었고, 이윽고 피리와 리라를 든 악사들이 제단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음악이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할 무렵, 신전 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세워진 기둥들 뒤편으로 붉은색 비단 장막이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우오오......"


그 광경에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한 후,


짝, 짝, 짝.


칼리굴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세 번 크게 울릴 정도로 박수를 쳤다.


이에 악기는 더욱 격렬하게 연주되었고, 분위기에 취한 의원들은 게걸스럽게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들과 달리 네르바는 집었던 빵을 내려놓고 장막 너머로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흐느끼는 듯한 이상야릇한 소리.

혹시 신전 밖 원혼들의 비명 소리가 악기 소리와 섞여서 들려온 것은 아닐까?


혹시나 하여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고통으로 얼룩진 비명 소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극도의 쾌락에 절은 인간들의 신음 소리.


"아, 아, 아으흑, 좋아."

"더 세게, 세게 해 줘."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일제히 요동을 치며 어지러이 가슴 속을 돌아다니자 네르바는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았다.

쓰러질 것 같았던 네르바는 한손으로 식탁보를 움켜잡고 황제 옆에 앉아 있던 자신의 딸 안토니에타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을 잡아먹어 버린 쾌락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풀린 두 눈에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듯 했고, 벌어진 입에서는 연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칼리굴라는 네르바의 표정을 살피며 비릿한 웃음을 흘리다가, 안토니에타의 머리채를 잡고 다시 자신의 사타구니로 그녀의 머리를 밀어넣었다.

이후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에 네르바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우웁, 여기 말고 다른 데도 넣어 줘요. 도저히 못 참겠으니까."


신음 소리는 이제 또렷해졌다.

장막이 걷히고 알몸의 남녀들이 엉켜있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여자들 모두가 의원들의 아내와 딸이라는 사실이었다.


극도의 쾌락에 젖어 있던 그녀들에게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로마를 대표하는 의원 따위가 보일 리 없었다.

칼리굴라라는 존재가 주는 위압감이 방탕한 쾌락을 좇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 그녀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었으리라.


그 모습을 보고도 의원들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하던 식사를 시작하였다.

멈출 경우에는 그 누구도 제단의 제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네르바만은 달랐다.


저편에서......


검을 든 채 황제에게로 다가가는 카이레아가 보였으니까.


카이레아의 온몸에서 거뭇한 오라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가 발을 뗄 때마다 오라는 거세게 일렁거렸다.


그 모습에도 동요 없이 바라보고 있던 네르바는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았다. 물론 자기 스스로가 한 예상이 아니라 저번부터 언뜻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에 의해서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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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악 중의 악 24.09.07 1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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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기억해야 될 자들 24.09.05 15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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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선택받은 자 24.09.03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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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선택받은 자 24.08.29 21 0 13쪽
» 10.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8 19 0 13쪽
10 9.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7 18 0 14쪽
9 8.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6 13 0 12쪽
8 7.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5 14 0 12쪽
7 6. 결정 24.08.24 14 0 13쪽
6 5. 결정 24.08.23 26 0 13쪽
5 4.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2 13 0 13쪽
4 3.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1 24 0 14쪽
3 2.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6 0 13쪽
2 1.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7 0 13쪽
1 프롤로그-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0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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