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99 구원 능력자가 전직 천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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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젤리
작품등록일 :
2023.03.07 12:22
최근연재일 :
2024.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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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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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선택받은 자

DUMMY

어스름이 지배한 이곳.

그와 대비된 화조의 붉은 화염은 자세히 보면 푸르스름하기도, 하얗기도 했다. 불의 세기가 가장 강한 머리 부위에서는 연청색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두 눈에서는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의 검은색 불꽃이 안구 운동을 하듯 나선형 모양으로 하염없이 돌고 또 돌았다.

가장 강한 화염의 색을 상징하는 검은색이 두 눈에 아로박혀 있다는 건 다른 신체 부위에서 타오르고 있던 화염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리라.


레오나는 둥지 쪽을 바라보다가 우연찮게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두머리 화조를 제외한 나머지는 저마다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자신들의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다니엘이 다 온 거라고 했어. 저 녀석도 둥지를 지키고 있는 걸로 보아 짝이 있을 건데......'


그때 중앙에 있던 우두머리 녀석이 날개를 커다랗게 펼치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화염 속에 드러난 화조의 새하얀 골격이 어둑한 배경과 대조되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 모습에 일행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후방에 있던 던컨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사태를 주시하였다.


"다음 해가 뜨기 전에 결착을 봐야할 건데 말이야. 언제까지 저렇게 감상만 하고 있을 거지? 멍청한 놈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변화무쌍한 이곳에서 일어나는 변수로 인해 아무리 고된 훈련을 해왔다 해도 인간의 몸인 이상 버티긴 무리였을 거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던컨의 조바심은 더욱 커져갔다.


잠시 후.


"다들 들려? 영희 언니도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이제 한 번 시작해보자고!"


전과 다른 다니엘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팀원들은 웬지 모를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물론 영희는 다니엘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풀린 긴장감 탓에 고양된 흥분에 이끌려 말한 것이지만.


'그래, 들린다. 들려. 곧 죽을 녀석의 목소리가.'


그러나 단 한 사람, 던컨 만은 그 말을 듣고 비아냥을 해댔다. 그의 손에 쥐어진 컨트롤러에서는 새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었다. 소매 끝으로 서리를 닦아내 보지만 이내 다시 서리가 내려 앉았다.


그 시각.


존 월은 대책 회의실에서 안토니오 외 각 기관 각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새끼로 퉁치는 게 가능이나 할까?"

"아마 힘들겠지요."

"그렇다면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거군."

"그 또한 그렇겠지요."


이미 예정된 일을 사후처리라도 하는 마냥 존 월과 안토니오의 대화가 이뤄지자 좌중에서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들의 말허리를 끊고 들려왔다.


"100명이나 되는 자들의 무고한 희생을 지켜만 볼 수는 없소이다! 차라리 떳떳하게 싸우다 죽는 쪽을 택하겠소."


구레나룻부터 턱까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갈색으로 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한 중년 남성이 두 눈을 치켜뜬 채로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던 안토니오를 노려봤다. 안토니오는 이에 멋쩍은 웃음으로 대신했고, 그 남성은 여전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총리라는 작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겨우 그딴 거라니. 녀석은 무작위로 100명을 희생시킨다고 했소. 그중 총리의 가족이 포함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 가서도 그런 소리를 하시겠소?"


정곡을 찌르는 말에 좌중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누구 하나 그 남자의 눈과 마주치지 못했고 심지어 존 월조차 자기 앞의 탁상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탕한 웃음 소리가 장내의 침묵을 깨고 들려왔다.


"으하하하하하. 이보시오, 엥겔스 장군. 그대의 충정은 못 헤아리는 바가 아니나 우리의 상대는 다름 아닌 대천사장 가브리엘의 수호천사요. 어찌 우리 같은 노예가 천계인보다 윗 존재인 그에게 대적한단 말이오? 그대의 말처럼 전쟁이라도 한다치면 그로 인한 희생이 더 클 게 뻔한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이오? 장군이? 아니오. 우리 모두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멍에가 될 게 뻔하오."


더는 할 말이 없는지 엥겔스는 탁상을 손으로 세게 내려친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안토니오는 미묘한 웃음기를 얼굴에 띄우며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신들린 듯한 어조로 모두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악마나 다를 바 없는 수호천사는 구원자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때까지만은 최소의 희생이라도 모두가 감내해야되는 것이지요. 언제까지나 천계인 놈들에게 핍박당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자가 오는 그 날, 모두가 해방될 것입니다."


존 월을 위시하여 모두가 넋이 나간 듯이 안토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안토니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에 비친 건 얼굴에 세 개의 혹이 달린, 그가 말한 전설의 현자였다.


한편 엥겔스는 단독 행동을 하기 위해 군단을 호출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 카를을 중심으로 군단을 재편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후에 있을 지도 모를 존 월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재고해보십시오. 이건 반역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들 카를은 아버지와 달리 세상 물정에 대해 어두운 이론가에 가까웠고, 자신이 상상만 하고 있었던 것들이 이제 눈 앞의 현실이 되려고 하자 두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냐? 아니면 네가 생각해 온 것들이 허황된 것으로 밝혀질까봐 두려운 것이냐?"


학자에게는 자신이 쌓아온 지식이 냉엄한 현실의 벽에 막혀 무너져 내릴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법이다. 만에 하나 아버지가 말하는 혁명이 실패로 끝날 경우, 이후에도 지속될 지배 계급에서는 그걸 반란으로 규정할 게 뻔했다.

그걸 떠나 혁명이 성공한다고 한들 구 하나가 가른 태생적 운명을 극복해야 한다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노예로, 천계인으로 각각 존재하는 이들의 간의 경계를 지우는 것.


카를은 그게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에만.

그게 치기어린 상상일수도, 어리석은 공상일수도, 정신나간 망상일수도 있겠지만 이론적으로 접근하자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인간의 법, 종교, 정치 등 모든 조직의 토대가 되는 인간들의 관계 양식을 다양화하여 새로운 의식을 조성, 진전시켜 기존의 적폐적인 구조를 종식시키려는 게 카를이 구상 중인 이론의 골자였다.

이를 위한 대전제는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의식의 지향이 편향적이어도 안 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존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게 필요했다. 유일신의 직접적인 통치? 아니면 다종다양한 존재들의 무한한 접촉?

하나로 묶는 것도 결국엔 또 다른 상부 체계 아닌가? 그렇다고 묶어두지 않는다면 세상은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게 뻔했다.


난제 중에 난제였지만 만약 이게 현실화되면 어떻게 될까?


카를은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하루가 멀다하고 책상과 씨름을 했다. 그러다가 행복한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동갑내기 다니엘과 그곳에서 누구의 간섭 없이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부에 대항하겠다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거지요. 저희가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인 변수를 둔 채 내분이 일어난다면 생각지도 못한 희생을 치르게 될 테니까요."


엥겔스는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아들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혁명에 성공한다면 존 월의 독재에서는 벗어나겠지만 천계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상 그보다 더 한 자가 이곳에 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거기다가 수호천사는 자신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곳의 시민 100명을 무작위로 처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엔 그 전후 관계가 선형적이던 그 반대가 되었던 분명 존 월보다 더 악랄한 자, 심지어 천계인이 이곳을 다스릴 위험이 너무나도 컸다. 불안정한 상황을 수습하려면 천계인이라는 지위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음,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하지만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걸 지켜만은 볼 수 없지 않겠느냐?"

"......! 다니엘, 다니엘이 있잖아요."

"성공한다 한들 녀석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다."

"다니엘이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


엥겔스는 다시 한 번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카를의 말에서 반박할 거리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또한 다니엘을 내심 믿고 있었던 것도 있었으니까.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던 카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희망에 찬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한 번 들뜨게 했다.


'다니엘! 믿어. 넌 우리의 희망이니까.'



#



화조 둥지 너머로 인간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나타났다.

바로 다니엘, 아니 그녀로 위장한 한국인 여성 영희였다.


영희는 하늘 높이 조명탄을 쏴 올렸다. 붉은 빛깔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어둑한 공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에 레오나를 필두로 투입조 랄프, 리사, 꾸잉, 마하이가 한 손에 총을 든 채로 포복 자세를 취하였고, 그 뒤로 포획조 보부아르, 제인, 한나, 이리가레, 스피박, 훅스 등이 지네 괴물의 껍데기로 만든 투망을 등에 짊어지고 자세를 깊숙이 낮춘 채로 달릴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던컨은......


'그럼 그렇지. 겁쟁이 녀석. 오늘로서 네 년도 끝이다.'


던컨의 예상처럼 다니엘은 중간에 있는 새끼에게 페로몬 총을 발사하라고 레오나에게 지령을 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페로몬에 관한 변수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쪽보다는 시간 계산이 비교적 쉽고, 다니엘이 둥지를 우회하여 빠져나올 수 있게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가운데 위치한 새끼에게 발사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았다.


송출이 딜레이 되었는지 치이익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 다른 팀원에게도 지령이 전달되었다. 잠시 후 몇몇이서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너나 할 거 없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특히 레오나는 누구보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페로몬의 특이성질을 분명 다니엘에게 알려줬는데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진심이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구."


다시 한 번 치이익거리는 송출음이 들려왔고, 그 속으로 다니엘의 목소리가 몇 번 부딪히면서 울려오다가 송출의 증폭 구간이 다시 안정화되자 그제야 그녀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최대한 많이 포획해야 녀석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내가 내린 지령대로 움직여 주길 바라."


레오나는 다니엘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앞쪽으로 발사한다면 뒤쪽에 있는 30마리나 되는 새끼를 포획할 수는 있겠지만 앞쪽에 모인 화조 떼에 의해서 다니엘이 제때 빠져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쪽에서 온 녀석들에게 페로몬이 늦게 전달되었다고 해도 앞쪽의 녀석들보다 더 오래 그것의 효과가 그 녀석들에게 유지될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만에 하나 태양이라도 다시 뜨게 된다면.


'다니엘...... 제발 다시 생각해보라구! 넌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제발......'


다니엘은 결심을 굳힌 듯하였다. 그녀로부터 더 이상의 송출은 없었으니까.


모두가 숨죽이면서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던 그때, 조명탄이 꼬리 부분에 연기를 날리며 떨어지는 찰나, 붉은 섬광이 크게 일어나더니 이윽고 한 점의 빛도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들려온 다니엘의 목소리.


"지금이야! 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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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악 중의 악 24.09.07 10 0 14쪽
20 19. 음모 24.09.06 11 0 13쪽
19 18. 기억해야 될 자들 24.09.05 15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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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8 18 0 13쪽
10 9.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7 18 0 14쪽
9 8.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6 13 0 12쪽
8 7. 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5 14 0 12쪽
7 6. 결정 24.08.24 14 0 13쪽
6 5. 결정 24.08.23 26 0 13쪽
5 4.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2 13 0 13쪽
4 3.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1 24 0 14쪽
3 2.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6 0 13쪽
2 1.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7 0 13쪽
1 프롤로그-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0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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