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99 구원 능력자가 전직 천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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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곰젤리
작품등록일 :
2023.03.07 12:22
최근연재일 :
2024.09.09 22: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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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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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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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8. 기억해야 될 자들

DUMMY

현재 시각 14시 56분.


차창에 낀 서리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 더딘 속도로 차를 몰던 다니엘은 순간 희멀건 빛이 차창으로 쏟아들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불길한 예감이 든 다니엘은 영희에게 다시 무전을 송출해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아니면 전과 같은 원인 불명의 오류로 인해 아직도 무전이 되지 않아 그런 것일까?


다니엘은 제발 후자이길 바랐다. 팀원 누구 하나 잘못돼서는 안 되지만 특히 중대한 임무를 맡긴 영희는 더욱 그랬다.

던컨의 아버지가 부득이하게 희생당한 것도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있는 다니엘은 이미 팀원들에게 커다란 부채를 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자의에 의해 팀원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 아닌가? 특히나 영희는 자신을 대신해 대장 노릇을 하며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기에 그에 따른 부채감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캠프와 이제 가까워질 무렵, 하늘에서 둥글게 떠돌고 있던 화조 무리가 보였다. 다니엘은 내심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는 없었다. 언제 어떤 일이 당장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해가 중천에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자 녀석들이 무엇에 반응했는지 미친 듯이 아래를 향해 사선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안 돼. 제발......'



그 시각.


레오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이 자신에게 쏘라니.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더라고 모두의 희망인 다니엘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자기가 다니엘의 현재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살아남아도 모두를 구원할 능력은 되지 않았으니까.


"안 돼. 그럴 수 없어."


화조 무리가 그런 레오나를 지나 뒤편의 팀원들에게 날아가자 영희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했다.


"이건 대장의 명령이야. 쏴. 얼른!"


레오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남은 페로몬 탄환을 영희에게 발사했다. 그녀의 감은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적시고 있었다.


"안 돼. 멍청아! 안 된다구!"


일순 팀원들의 코앞까지 다다른 화조들이 급선회하더니 페로몬이 풍겨오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화조 떼를 본 영희는 캠프 반대쪽을 향해 바이크를 몰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렸다. 최대한 팀원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는.


잠시 후.


끼이익, 츠으윽.


급하게 도착한 트럭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이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들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 모든 흉계를 계획한 던컨.


'뭐, 뭐야. 다, 다니엘 저 년이 어떻게 어떻게......'


던컨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저 멀리 사라져가는 또 다른 다니엘이 누군지 궁금했다.

이를 곧 알게 되었으니 공교롭게도 다니엘을 통해서였다.


"영희 언니!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다니엘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바닥에 짚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다들 새끼들을 트럭에 싣고 떠날 채비를 해. 더 이상의 희생은 언니가 바라는 게 아닐 거야."


그러더니 다니엘은 트럭 대신 바이크에 올라탔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가 가려던 길을 막고 서더니 그중 제인이 나서서 다니엘의 양어깨를 잡은 채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 봐! 다니엘. 난 지금 이 상황을 잘 몰라. 하지만 영희 언니가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어. 왜냐고? 넌 우리의 희망이니까! 너마저 잘못된다면, 너마저 잘못된다면...... 영희 언니가......언니가......"


제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이윽고 팀원들의 울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자 다니엘은 더는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다니엘은 트럭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후방에 있던 던컨이 마지막으로 뒤칸에 탑승하자 차량은 그곳을 떠나 레스티아가 세운 제국을 향해 이동했다.



그 시각.


영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집채 만한 암석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희는 이 정도면 됐을 거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두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

늘 뒤처졌지만 팀원들은 그녀를 질책하기는커녕 동일선상에서 함께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줬고 이끌어주었다. 특히 리더였던 다니엘은.


영희는 헬멧에 있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동안 차마 말 못 해왔던 것들을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다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엉뚱하고 둔한 날 챙기느라 너무 힘들었지? 아 제인 너 생각나? 천계인 놈들이 버려둔 과일을 내가 챙겨왔을 때 네가 그거 가지고 뭐라 그랬잖아. 그 안에 든 벌레는 네가 다 먹을 거라고. 이 욕심쟁이야! 하하하. 그리고 또 누구더라. 랄프, 넌 언제까지 제인한테 꿀밤 맞을 거니? 너도 너무 엉뚱해! 아 나머지 너희에게도 할 말이 많은데 이제...... 우리 리더에게만 말할 시간 밖에 없네. 미안. 헤헤헤. 다니엘! 넌 우리의 희망이야! 반드시 반드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줘! 그리고 다들 고맙고 미안해!"


영희는 눈물로 바짝 마른 얼굴을 들고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빛이 살포시 얼굴에 내려앉자 다시 눈물이 흘러나왔고, 팀원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화조들이 영희에게로 날아들었고 그녀는 화염에 휩싸인 채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영희는 죽는 순간에도 어떤 노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대한민국 서울의 어느 한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 듯이 모여 있었고, 이윽고 학생 몇 명이서 폭죽을 터뜨리더니 얼굴에 하얀색 크림으로 범벅이 된 누군가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내저으면서 그 사이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야야, 너네들. 노래만 하면 됐지 뭐 하러 이런 깜놀 이벤트를 하는 거야? 눈물나게시리."


영희가 얼굴에 묻은 케익을 닦아내면서 먹자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한 번 스승의 노래를 불렀다.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했던 선생님.

급식비가 없는 학생을 위해 대신 돈을 내주었고,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으면 그들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한 때 어떤 학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까지 생각하려고 했을 때도 영희는 그 학생과 함께 먹고 자면서까지 하면서 설득을 하여 결국 명문대에 진학시켰을 정도니까.


늘 자신의 시간을 타인의 시간으로 채웠다. 누구는 힘들다고 불평하겠지만 영희는 타인을 위하는 삶이 너무나도 좋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날씨도 화창한 어느 날, 영희를 포함한 15명의 선생님과 300명의 학생들을 태운 제주행 여객선이 목포와 완도를 지나 청산도 부근으로 진입할 무렵이었다.


쿠쿵, 쿵.


선체 밑바닥에서 암초에 긁힌 듯한 소리가 몇 번 들려왔고, 그로 인해 동일한 유속에도 미세하게나마 여객선의 이동이 느려졌다.

기관장이라면 당연히 이를 감지해야 할 터, 평소에도 종종 있던 현상이라 노후화된 선체에서 일으키는 어쩔 수 없는 잔고장이라고 안일하게 넘겨짚었다.

그래도 배는 유유히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해역을 벗어나 청산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선미 쪽에 위치한 3층 객실에 머무르고 있던 영희는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깨우는 통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 같아 애써 피곤한 기색을 누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하나같이 들뜬 표정이었다.


"선생님! 같이 갑판으로 가욧!"


갑판의 난간 쪽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학생 하나가 쌍안경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곧 그 자리를 떠나자 학생들이 저마다 영희의 등을 떠밀며 전망대로 가보라고 친근하게 말했다.


"와...... 대박이다."


멀어졌지만 한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청산도.

그곳 사이사이에 둘러 쳐진 돌담과 그 너머에 보이는 노란색 유채꽃과 푸른색의 청보리밭이 묘한 대조를 이룬 채 번갈아가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저기 저 길이 뭔지 아세요?"

"뭔데?"

"슬로길!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 코스래요."

"그으래? 역시 미래의 지리 선생님 황정연 님께는 못 당하겠네요."

"그리고 영화랑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구요. 얼마 전에는 블랙팬더의 찌수가 저기서 영화를 찍었대요!"

"와, 그렇구나. 좋았겠네. 찌수 본 사람은."


영희는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의 푸른색이 바다의 표면 여기저기에 나무의 옹이처럼 깊게 박혀 있었다. 그 주위로는 물결이 이는 게 잘 보일 정도로 그 색이 연했고, 선미 쪽 가까이로 시선을 옮기자 배의 양현에 달린 프로펠러 뒤쪽으로 하얀색 물거품이 좌우로 길게 길을 내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좌현의 프로펠러에서 일어나는 물보라의 길폭이 두드러질 정도로 눈에 띄었는데, 이동하는 중에도 우측과 균형이 맞춰지기는커녕 점점 좁아지더니 그 주위로는 물거품이 전보다 오래 유지되다가 사라졌다.


이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음을 직감한 영희는 곧바로 조타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선장을 포함한 3인의 사관들은 영희의 의견을 묵살했고,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단독 행동을 통해서라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하였다.


영희는 선수의 좌측 객실에 머무르고 있던 남선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들 또한 학생들이 있는 곳을 돌며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 위에서 대기하라고 일러뒀다.


하지만 갑판에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걸 본 선장은 방송을 통해 아무런 문제 없으니 객실에서 대기하라고 했고, 혹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30년 경력의 무사고 베테랑인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계속 모이게 되면 외려 무게가 한쪽으로 치우쳐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시도하였다.


그 방송의 영향 때문인지 이미 올라온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각자의 객실에서 대기하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 수다 떠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과자 봉지 소리와 이후 들려오는 바삭거리는 소리.


찰칵.


그리고 들려오는 폰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 소리. 무릎을 포개 세운 채 거기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영희를 학생 중 한 명이 찍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영희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학생들이 앞다퉈 그녀에게로 몰려들었고, 주변의 웅성거림에 고개를 든 영희를 본 학생 하나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브이자 모양을 만들어주었다.


"3학년 2반 아자아자! 올 수능 다들 대박나자! 그래야 우리 선생님 인센티브 많이 받지!"


다들 녀석의 주책없음에 웃음을 터뜨렸고 영희 또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기는 해 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너무 기특해서 나온 미소.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아직 세상 물정에 길들여지지 않아 다들 순진무구한 표정이었지만 그 안에는 자못 진정성이 담겨있었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영원하지 않은 이 순간을 기억에 붙잡아두기 위해서일까.

찍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애들은 영희 곁에 머물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갔고......


갑자기 선미 쪽에서 모터 꺼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배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에 다들 소리를 질렀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교사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학생들을 갑판 위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임산부 먼저, 그리고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 순으로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구조 함정이 오기 전까지는 미처 올라오지 못 한 사람들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영희는 다시 한 번 프로펠러가 있는 선미 쪽을 내려다 보았다. 좌현의 프로펠러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지 어떠한 현상도 관측되지 않았다.

역시나 자신의 예감이 맞았던 것이었다.


영희는 나머지 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부리나케 아래층 객실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몇몇 학생들은 주변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혼잡한 상황 가운데 구명조끼를 구하지 못한 것이었다. 영희는 자신의 것을 벗어 한 아이에게 입혔고, 따라 내려온 선생님들도 자신의 것들을 아이들에게 입혀주기 시작했다.

근데 한쪽 구석에서 학생 중 하나가 다른 학생에게 입혀주는 게 보였다.


"나 너 좋아했어. 헤헤. 이제 고백하게 되네."


여자 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바보야...... 너도 살아야지! 살아서 우리 같이 손잡고 에버랜드 가야지! 가서 회오리 감자도 먹고 아마존 익스프레스도 타야지...... 이 바보야......"


학생 반장이었던,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던 지우였다. 지우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훔치고서 걱정 말란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선생님, 같이 가요."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손을 맞잡았다. 영희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구조 함정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들의 안위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더 걱정되었으니까.


몇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위급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몇 대의 군경 함정 그리고 하늘 위로는 응급 헬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전에 사고 현장에 도착한, 조업 중이었던 어선들은 갑판에 올라와 있던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는 데도 불구, 군경 함정에서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되었는지 사이렌만 울릴 뿐 그와 관련된 안내 방송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바깥 상황을 모르고 있던 아래쪽 3, 4층 객실 쪽의 사람들은 구조대가 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판 문을 열고 누군가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구조대가 왔다구! 다들 올라오라구!"


이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먼저 올려 보냈고, 반장인 지우 또한 여자 친구를 비롯해 나머지 아이들을 하나둘씩 갑판 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꼭 에버랜드 가는 거야. 꼭! 그리고 나도 전부터 널 좋아했었어! 이 바보야!"


여자 친구는 지우의 손을 놓지 못했다. 지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런 여자 친구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똑같은 말들.


"사랑해."


영희와 선생님들 그리고 지우와 나머지 학생, 몇 명의 외국 관광객과 대부분의 선원들은 4층으로 나머지 인원을 구조하기 위해 내려갔다.


그러나......


선체는 좌측으로 급격하게 기울어 버렸고, 그 여파로 인해 아래로 내려가던 이들이 좌측으로 힘없이 쓸려 나갔다.

엄청난 통증 속에서도 그들은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불굴의 일념 하에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 칸에도 학생들이 많이 모여있었고 일반인 관광객도 다수 보였다. 그들은 재빨리 사람들을 갑판으로 통하는 문 쪽으로 인솔했고, 사람들 모두가 올라가자 그제서야 그들도 따라 올라갔다.


쿠쿵, 쿵.


다시 한 번 선체가 기울었고 이번에는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배가 좌로 완전히 누워버린 까닭에 통로였던 공간이 협소해지면서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갑판 쪽으로 기어서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깨진 선창으로부터 유입되는 바닷물이 일으킨 부력으로 인해 그마저도 가능하지 않았다.


몇 시간 뒤.


여객선은 뾰족한 선수만 바다 표면에 남긴 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망 256명, 실종 15명.

그중 선생님 15명을 포함해 학생 220명이 희생되었고, 10명의 학생이 실종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서울의 어느 한 사립 고등학교의 3학년 2반 교실.


칠판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위로 빔프로젝터가 복원된 휴대폰에서 받아온 어떤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번에도 술래예요. 헤헤."

"야, 너네들 너무 재빠른 거 아니야?"

"요번에 선생님이 또 술래되시면 과자 사주세요."


영희와 아이들이 객실에서 술래잡기 하는 영상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또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자......


"선생님 얼굴 봐봐."

"하하하."

"야, 김연진. 다음엔 너 차례야!"

"와 선생님, 연진이 생일 아세요?"

"알다마다. 2월 13일이잖아."

"그럼 저희들은요?"

"너는 5월 6일, 희연이는 7월 9일.

"어떻게 그걸 외우세요?"

"응? 누군가를 사랑하면 알게 돼. 자연스럽게."


이내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저마다 꽃과 그들이 평소 좋아했던 과자와 음식, 음료수, 연예인 사진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보낸 영면을 기원하는 편지와 다른 반 생존 학생들이 쓴 롤링 페이퍼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영희의 교탁 위로는 스승의 날 때 받은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분홍색 꽃이 선인장 꼭대기 부위에 커다랗게 피어있었다.

수많은 꽃잎들 위로는 이따끔씩 벌들이 내려 앉았다가 다시 날아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 그 향기로운 냄새에 끌려온 것이리라.


햇살은 따사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영희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다니엘을 위시하여 모든 팀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희생이 온전히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 다니엘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거칠게 숨을 쉬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해야만 하는가? 그게 과연 영희가 바라는 것일까?


다니엘은 이번을 계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반드시 영희의 유언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라는.


차량은 맑은 하늘 아래 거침없이 달려갔고, 이윽고 제국을 둘러싼 구 모양의 결계가 그 삼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희.

향년 26세.

타인을 위해 다시 희생을 하다.

아름다운 그녀의 영전에 노란색 리본을 올립니다.

모두가 그녀를, 그리고 나머지 희생된 분들도 기억하기를.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산 자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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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억해야 될 자들 24.09.05 16 1 19쪽
18 17. 선택받은 자 24.09.04 11 0 16쪽
17 16. 선택받은 자 24.09.03 14 0 12쪽
16 15. 선택받은 자 24.09.02 13 0 13쪽
15 14. 선택받은 자 24.09.01 13 0 13쪽
14 13. 선택받은 자 24.08.31 1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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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결정 24.08.23 27 0 13쪽
5 4.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2 13 0 13쪽
4 3.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1 25 0 14쪽
3 2.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6 0 13쪽
2 1. 멸족 후 천지개벽이냐 부활 후 구원이냐 24.08.20 28 0 13쪽
1 프롤로그-인간 이하의 이하의 것 24.08.20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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