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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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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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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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DUMMY

*

천 개의 산 조차 우르릉 떠는데 어떻게 인간이 버티겠는가?


하지만 율리납도 로운도 버텼다.

말 그대로 버티어 냈을 뿐, 충격을 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로운은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맞 받아 친 뒤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숨도 못 쉴 것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때론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법.

로운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율리납의 일월신주를 받아 올리고 있었다.


- 꽈릉! 꽈앙!


율리납도 다를 바 없었다.

내장이 모두 끊어진 것만 같았다. 목구멍까지 피가 솟구치는 걸 눌러 앉혔다,

그 역시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고통이 온몸을 점령한 그 순간에도 교주는 일월신주를 휘두르며 로운을 몰아쳤다.

백탑옥 위에서 매일처럼 수련했던 일광개천, 그 초식을 머리 아닌 몸이 펼쳐내고 있었다.


- 콰앙-- 쾅---!


이어 두 번의 벼락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일월신주와 단봉이 다시 부딪힌 것이었다.


처음보다 더 큰 폭음, 더 큰 진동, 더 큰 충격이 터졌다.

두 사람이 있는 설산 중턱은 설산이 아니라 활화산처럼 뜨거운 열기가 폭죽처럼 터졌다.

설산의 다른 이면에는 바위처럼 엉겨 있던 눈들이 부서져 눈사태를 일으키며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첫 번째 격돌은 서로가 의도한 바였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의도보다 몸이 알아서 반응한 것이었기에 위력과 충격이 훨씬 강했다.

첫 격돌에서 위기를 감지한 육체가 본능적으로 더 강한 공격을 펼친 것이었다.


도합 세 번의 격돌은 교주와 로운 둘 모두한테 치명적이었다.


“커헉!”

“윽!”


세 번째 격돌에서 둘 다 신음을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

착지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 다 손으로 땅을 짚고 겨우 멈춰 섰을 뿐이었다.


교주의 입꼬리로 한줄기 선혈이 흘러나왔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로운은 아예 한 웅큼이나 피를 토했다. 거기에다 검무룡과 일전에서 입은 가슴 상처 부위가 터져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아! 오라버니!”


취소연이 놀라 로운한테 달려왔다.

로운이 달려오는 소연을 향해 한 쪽 손을 단호하게 들어 올리자 웅혼한 기운이 뻗어 나와 소연을 막아 세웠다.

달려오던 소연은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네가 끼어 들 자리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속이 바짝바짝 탔지만 소연은 물러 설 수 밖에 없었다.


무너진 듯 주저앉아 있던 로운이 먼저 무릎을 일으켰다.

교주도 일월신주로 땅을 찍어 누르며 겨우 일어났다.


로운이 팔뚝으로 입가를 슥 닦고 나서는 단봉을 들어 교주를 가리켰다.

교주도 일월신주를 들어 로운을 향해 뻗었다.


둘 다 치명상을 입은 게 확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내상을 돌 볼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이 싸움은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는 걸 단 세 번의 격돌로 두 사람 모두 너무나 명확하게 확인한 거였다.


- 지잉징징---


로운의 단봉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 지이이이잉---


교주의 일월신주도 울음으로 화답했다. 울음과 함께 다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일광개천의 그 붉은 광채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로운의 단봉 역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월신주와 똑같이 붉은 광채였다.


로운의 단봉이 일월신주보다 훨씬 작기에 오히려 붉은 빛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붉게 타오르는 단봉을 바라보는 교주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 심중에 찰나지간 스쳐가는 의심이 눈빛을 흔든 거였다.


- 타앗--!


로운이 먼저 도약했다.

단봉에 응축되어 있던 붉은 광채가 수십 개의 빛선이 되어 교주를 노리고 덮쳐 갔다.


- 탓-!


교주 역시 튀어 올랐다.

일월신주에서도 붉은 빛선들이 폭사 되어 단봉의 빛선을 봉쇄하였다.


일광개천과 일광개천이 어우러졌다.


놀랍게도 로운의 단봉이 펼쳐내고 있는 것은 낙장불입도 생의선의 검법도 아닌 교주의 일광개천이었다.

배우지도 않은, 방금 이 자리에서 처음 겪은 일광개천을 로운이 똑같이 펼쳐내고 있는 것이었다.


교주의 눈빛을 스쳤던 의심이 현실이 되었다. 그것이 교주의 평정심을 흔들어 놓는다면 승산은 로운에게 기울 것이다.


하지만 교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신에 대한 신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견뎌 온 치욕의 세월 때문일까.

교주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도 금세 마음을 눌러 앉혔다.

일교의 교주답게.


오히려 일순간 평정심이 흔들린 건 로운이었다.


‘우웃! 이거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건 교주가 방금 쓰던 그 무공인데? 내가 왜 이걸? 내가 어떻게 이걸?’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흉내를 내고 있는 거였다. 흉내라고 하기엔 교주 못지않게 훌륭한 일광개천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뭐든! 쓸 수 있으면 내거지, 무공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냐!’


로운도 금세 마음을 눌러 앉혔다.

낙관주의자 로운답게.


똑같은 붉은 빛이 서로를 노렸다. 길고 큰 붉은 빛과 작고 선명한 붉은 빛의 접전이었다.


- 우르릉---

- 휘리리릭---

- 쉬이익---

- 쐐액---


어디서 어떻게 나는 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굉음이 공간을 채웠다.

단봉과 일월신주가 어우러졌다.

로운과 교주의 신형이 순식간에 교차하고 회전하며 합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처음 세 번의 격돌처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다.

만약 또 그렇게 부딪힌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서로의 봉에 동시 격살 되고 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세 번이 내공과 위력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무공과 초식의 싸움이었다.


단봉과 신주가 부딪히기는 했지만 비껴 내고 스쳐가는 것이었고 그 흐름과 흐름 사이의 빈 틈을 타고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모든 공격이 서로의 숨 줄을 끊어 낼 듯 했지만 모든 방어가 그걸 막아냈다.


똑같은 무공이 겨루어 승부가 나뉘는 건 시전자의 능력 차이가 결정하는 법.


그러기에 지금의 로운과 교주는 나눌 수 없을 만큼 평수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교주의 일광개천이 로운의 일광개천보다는 매끄럽고 날이 서 있지만 로운은 그 차이를 낙장불입으로 메꾸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어우러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끝이 나지 않았다. 한나절이 다 가도록.


설산 기슭의 두 개 붉은 빛은 여전히 서로를 노리며 휘달렸지만, 호수 위에 붉은 빛을 깔아주며 해가 기울었다.


어둠이 서쪽에서부터 슬금슬금 기어와 호수를 삼키고 백탑성을 삼키고 설산으로 기어 올랐다.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 까당--!


결코 물러날 것 같지 않던 교주가 단봉을 피해 일월신주를 쭉 밀었다.

로운도 받아치지 않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검무룡과의 일전, 거기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다시 교주와 접전을 벌였다.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서녘 숲 속으로 사라질 때 까지.

초반 세 번의 격돌만 아니었다면 한나절이 아니라 열흘이라도 지치지 않을 것 같지만 외상과 내상이 심각한 상황인지라 잠시 서로 물러나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로운은 선 채 숨을 고르고 생의선이 하던 대로 내공을 운용했다. 벌어진 가슴 상처를 누르고 뒤틀렸던 속을 안정 시켰다.


코 끝까지 차올랐던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교주도 똑같이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동귀어진은 최후의 방법이다. 율리혁이 목숨을 버리며 내게 보여준 게 그것이다. 함께 죽으려 했고, 함께 죽으려 했으나 저 자가 그걸 바꾸었다. 잴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가진 자. 반드시 저 자를 말살해야 한다. 균열을 메꾸어야 한다. 그것이 일월의 길이다. 일월의 신이 내게 준 신명이다.’


교주가 기다린 것은 어둠이었다.

밤, 월광이 깃드는 음의 시간.


호흡을 안돈한 교주가 다시 일월신주를 들어 올렸다.


- 지이이잉----


신주가 다시 울었다. 그리고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아니라 은백의 광채를.


월광세천(月光洗天)


일광개천으로 철검을 부순 뒤 취학명의 심장을 꿰뚫은 바로 그 초식, 월광세천이었다.



*

‘끄아아악---!’


비명소리가 장원을 울렸다.

끔찍한 비명이었다. 온 세상의 고통을 비명 하나에 다 실은 듯한.


소림사 인근 도시 정주에 있는 일월교 하남교단이었다.

로운과 조우했다 중상을 입은 냉면귀가 눈을 뜨고 몸을 추스린 게 겨우 닷새 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자 그 사이 온갖 사건들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이로운이라는 사내, 자신을 몇 일 간이나 혼수상태에 빠뜨린 자라는 걸 알고 이를 갈았다.


운기조식을 하고 내상을 치료하며 곧 일어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만 회복이 되면 하남교단에 모여 대기중인 백령기를 이끌고 본교로 돌아가 이로운을 척살하는 데 일말의 힘이라도 보탤 생각이었다.

교주라면 당연히 이로운을 격살할 것이고, 거기에 힘을 보탠다면 자신이 로운한테 받은 치욕을 조금이라도 갚는 셈이 될 거니까.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의문의 사내.


아직 칠 할 밖에 회복하지 못했지만 단 한 명의 침입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의 뒤에는 몇 백의 정예, 백령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백령기 전원이 몰살 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식경도 되지 않았다.

그 사내는 인간이 아니었다.

악귀, 아니 지옥의 염라왕이었다.


단 일 초에 무릎 뼈가 박살나고 주저앉은 냉면귀의 머리에 그 사내가 손을 올렸을 때 까지도 몰랐다.

고문이라도 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서야 겨우 깨달았다.


이로운이라는 인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니,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지옥에서 온 염라왕이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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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0 2 10쪽
»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3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9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7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9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4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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