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자 출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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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파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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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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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75화 광동으로

DUMMY

175화 광동으로



"대사형,

소제가 광동으로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우형도 그러는 것이 맞을 듯싶어 소문주님께 전언을 드리기는 했습니다. 황가요에서 나흘 전에 출발했으니 아직 장강을 건너지 못했을 겁니다."


황가요를 나간 표행을 잡기에 그리 늦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은창 유성은 황가요의 당삼채를 싣고 움직인 천룡표국과 낙수채 수적을 치는 일을 말한 것이었지만, 시운학은 그런 꼬리도 못 되는 놈들을 쳐 내는 것은 염두에 없었다.


"대사형,

천룡표국주 양단육을 죽이지 못해 놔두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회천맹과 황가요에 있던 자들이 어떤 관계인지를 먼저인지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본문을 친 원흉이 회천맹이 아니니라, 그놈들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회천맹은 이미 사라진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천룡표국이 여전히 조정 위세를 등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 까닭은 회천맹의 뒤에 광동의 효친왕부가 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효친왕부가 비록 황실에 반하려 들지 않고 있다 해도, 광동은 경사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광동에서는 효친왕부의 힘이 절대적이기도 합니다. 소제가 화화방이나 하오문을 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놈들과 효친왕부의 관계가 어찌 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염방은 절강에 있어 효친왕부의 힘이 미치지 않아 쉽게 처리할 수 있었고, 광인곡은 운이 좋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금정산에 모였던 회천맹 놈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 아닙니까? 소제의 생각으로 그놈들이 숨을 곳은 광동의 무수한 섬들 가운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모습을 보인 놈들이 그놈들과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사해련에 속해 있던 무리인지 알아내려고, 소제가 광동으로 가겠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황가요의 일은 소제의 생각에 회천맹보다는 효친왕부나 사해련이 벌인 일로 여겨집니다."


"이수채나 낙수채를 움직인 것이 그놈들 아닙니까? 효친왕부나 사해련이 관련된 일이라면, 굳이 이수채나 낙수채 같은 놈들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겠는지요?"


"그 대병이라는 물건이 급했던 게지요. 쓰고 버리기 좋은 것도 있겠지만 조정과 강호의 눈을 가리기에 적당하다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당삼채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명품입니다. 당삼채를 만들어 내는 곳도 수십이나 되고요. 반드시 장가요가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겠습니까?"


이수채가 움직이고 그 일로 장가요가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나, 장가요를 지원하는 과정에 시운룡이 함께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긴 운룡 사제가 함께하지 않았으면 알기 어려웠을 겁니다."


"천룡표국주 양단육이 회천맹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셨겠지만, 회천맹 대표 넷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사해련을 대표했던 놈이 본문을 도모하는 일을 주도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염방과 광인곡을 지웠어도 사해련주라는 놈은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놈들에게 지워 버린 염방이나 광인곡뿐 아니라, 하오문이나 화화방도 곁가지에 불과한 듯 여겨지니, 천룡표국이야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소제의 의문은 나름 큰 피해를 입고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공자 시운룡은 대사형 은창 유성과 형 시운학의 말을 듣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형님,

꼬리가 되었든 머리가 되었든 드러나는 놈들을 모두 지워나가면, 놈들도 견디지 못하고 실체를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용아,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리하다 보면 많은 피를 흘려야 하고, 흘린 피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무공만으로 모두 해결된다면 그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래서야 본문이 강호에 어찌 얼굴을 들고 자리 잡을 수 있으며, 강호 동도들이 본문을 어찌 보겠느냐?


하오문은 찾아내기도 어렵지만 찾아내 쳐 낸다 해도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화화방이야 작은 무리에 불과하니 다시 만들면 그만이 아니겠느냐? 말했다만 천룡표국주 양단육을 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위군자 놈을 베고 나면 강호 무림은 본문이 강호를 지배하려 든다 오해하게 될 것이다.


천룡표국이나 사해련 놈들의 뒤에 있는 누군가는, 오히려 본문이 네 말대로 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본문이 강호로 나오지 못하고 숨어 지내게 하는 일이야말로, 사해련 무리들이 되었든 다른 원흉이 되었든 간에, 놈들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형님,

이도 저도 안 된다 하시면 어찌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찾아내야지. 지우려면 강호 동도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을 만한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뿌리까지 지워내야 본문을 도모한 것에 대한 벌이 아니겠느냐?"


은창 유성은 대공자 시운학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천룡표국의 표행을 쳐 내지 않겠다 하면서도, 놈들의 뒤를 쫓아 광동으로 가겠다고 하는 시운학의 생각을 물었다.


"표행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시라면 급하게 광동으로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대사형,

광동은 중원과는 다릅니다. 서역인들과 당삼채를 거래하는 것은, 효친왕부의 묵인이나 허락이 없고서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소제의 생각은 효친왕부의 사업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러니 직접 가서 살피지 않고는, 달리 알아낼 방도가 없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개방의 도움을 받으시지 그러십니까?"


"하오문의 총타가 자리한 곳입니다. 개방도가 없지는 않겠지만 중원과는 사정이 달라, 그곳 개방도들을 신뢰하긴 어렵습니다."


걸개가 없는 곳이 천하에 있겠는가마는, 광동성은 하오문의 총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오문도들 가운데는 걸개도 있었고, 점소이와 광대, 도부꾼들, 시전 상인들일 수도 있었고, 거기에 무수한 주루의 기녀들 역시 하오문도가 많았다.


"무림맹 대원 한 조를 내드릴까요?"


"오히려 번거롭습니다. 소제 혼자 살펴보려 합니다."


"형님,

소제도 가겠습니다."


"아우는 경사로 올라가 교 사형께 말씀드리고, 본문이 옮겨 갈 장원을 세우거라. 신야현 남문 팔십 리 한수 변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연화봉 본문을 참조하면 될 것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대공자 시운학은 불만스러워하는 시운룡에게, 돌아보고 미리 그려 두었던 도면을 내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살피기만 하고 돌아올 것이다. 놈들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놈들을 치겠느냐? 오히려 본문이 하남에 자리 잡으면 사해련 놈들이 움직일지 모르니, 아우가 해야 할 일이 놈들을 살피는 일보다 더 중한 일이 될 것이다."


대공자 시운학은 광동으로 내려가다 천룡표국의 표행을 찾았지만, 그대로 지나쳐 표행에 앞서 호남성 성도 장사에서 기다렸다. 천룡표국 호남 지부 가까이 있는 객잔에 머물며, 표행이 들어오기를 기다린 지 사흘이 지나서야 표행이 들어왔다.


"원 표두.

어찌 이리 늦은 것이오?"


"표물이 뭔지 몰라 하시는 말씀이시오?"


"대병은 갖고 오신 것이오?"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했소이다."


"광동에서 온 사람들은 대병을 갖고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싶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니 언제나 만들어진다는 말씀이시오?"


"그걸 소생이 어찌 알겠소이까?"


"화주 쪽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듣지 못하신 것이오?"


"만나긴 했소이다만 다른 말은 없었소이다."


"곧 들어올 것이니 직접 말씀하시오."


대공자 시운학은 검은 경장으로 갈아입은 채, 천룡표국 사무실 뒤편에 숨어 듣고 있다가, 화주 쪽에서 곧 도착한다는 말이 들리자, 지붕 위로 올라가 기척을 감추고 기다렸다.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오고 화주 쪽 사람들이었는지, 일부는 수레에 실린 물건을 살피러 움직이고, 무인 둘이 사무실로 들어와 표행을 이끌고 온 원 표두와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원 표두,

수고하셨소이다."


원 표두는 이미 여러 차례 표행을 해 왔기에, 화주 쪽에서 나온 사람과 안면이 있었다. 호남성 천룡표국 장사 분타주가 말하기를 화주 쪽에서 실리지 않은 대병을 기다리고 있다 했으니, 이번 표행에 실린 물목이 적힌 표지를 내주며 말했다.


"행수님,

여기 구 사자께서 수결하신 표지와 물목이 적혀 있으니 확인해 주시지요."


행수는 표지를 받아 물목을 살피고는 우려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대병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소이다."


원 표두는 갖고 온 당삼채를 인수 받을 행수의 우려 섞인 말에, 표물이 아닌 대병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표국이야 만들어진 물건만 실어 주는 대로 갖고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생도 대병이 만들어지기를 바랐지만 아직은 어려운 듯 보였습니다. 장가요 도공들까지 붙었으니 머지않아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구 사자가 달리 전한 말씀은 없었소이까?"


"다음 행차 전에 만들어 낼 것이라 하시긴 했소이다."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살피진 못하셨소이까?"


"가마 근처로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대니 어찌 알겠습니까?"


"그랬소이까? 그렇다면 다음 표행은 기대해 봐도 되겠소이까?"


"소생이야 물건을 내주시면 탈 없이 갖고 오는 것이 소임이지요.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원 표두 같으시면 걱정이 없을 겁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 이번 행차의 물건에도 탈이 없을 듯싶구요?"


행수라는 사람과 함께 들어왔던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와 말했다.


"물목과 물건 상태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물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바로 나갈 것이니 준비하거라."


"예, 행수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옮겨 싣도록 하겠습니다."


"물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르거라."


"예, 소인이 살피겠습니다."


대공자 시운학은 어떤 말이 더 오가는지 기다렸지만, 물건을 옮겨 싣자 바로 나가는 것을 보고 움직였다. 장사를 나온 수레는 예정된 광동으로 가려는지 남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대공자 시운학은 수레가 너무 느릿하게 움직였기에, 광동성 성도 광주와 동관을 지나 수레가 멈춘 선진 포구까지, 수레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고 앞서가 기다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선진 포구에는 어선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그런 어선들 사이로 어선들이 조각배처럼 보일 만큼 거대한 배가 정박해 있었는데, 하늘 높이 솟아오른 돛을 세 개나 세운 범선이 서역인들이 타고 온 배로 보였다.


당삼채를 실은 수레가 포구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범선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지더니 서역인들이 내려왔다. 한눈에 봐도 중원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한 사람도 보였고, 심지어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허리에는 중원의 칼과 달리 가늘고 긴 칼을 차고 있었고, 요대에는 말로만 듣던 화승총을 차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서역인들이 포구로 올라오자 행수라던 사람과 호위 둘이 서역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서역인들의 모습이 특이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듯 보였는데, 그럼에도 서역인들을 신기해하며 구경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대공자 시운학은 그런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천지지청술을 펼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했다.


하지만 행수와 서역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서역 말로 주고받아, 그들이 뭐라 말하는지 대공자 시운학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행수와 서역인들 사이에 말이 오가더니, 서역 사람들은 수레에 싣고 온 당삼채를 일일이 풀어 확인하고 다시 감싸기를 반복하고는, 범선 쪽으로 뭐라 소리치자 범선에서 내려온 서역인들이 뭔가를 담은 상자들을 갖고 내려왔다.


그들이 내려온 상자들이 당삼채 수레 옆에 놓여지자, 행수는 상자를 열어 확인했다. 제법 거리가 있었고 낙수채 놈들이 가리고 있어, 포구에 늘어선 사람들이 살피기 어려웠지만, 대공자 시운학은 그 상자에 든 물건이 은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행수는 당삼채를 수레에서 내려 범선에서 내려온 서역 사람들에게 내주고, 서역 사람들의 배에서 내려온 은괴를 당삼채를 싣고 왔던 수레에 실었다.


당삼채를 모두 서역 사람들의 범선으로 올리고 나자, 행수는 낙수채 놈들에게 포구에 몰려든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라고 지시하며, 은괴를 실은 수레를 끌고 움직였다.


은괴를 실은 수레가 도착한 곳은 효친왕부 정문이 아니라 서문이었다. 서문 앞에서 번을 서던 위사는 은괴를 실은 수레가 보이자, 수레가 들어갈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었다.


대공자 시운학은 효친왕부로 들어가 살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레를 호위했던 낙수채 놈들이 희희낙락거리며 나오는 것을 보고는, 낙수채 놈들의 뒤를 쫓았다.


어차피 은괴는 효친왕부의 정해진 곳으로 들어가고, 결과 보고만 전해질 것이라 여겨진 탓이었다.


조정에서는 정화의 원정을 끝으로 해금령(海禁令: 해상 무역 금지령)을 내리고 있었으니, 효친왕부가 서역 상인들과 한 거래는 밀무역이었다.


효친왕은 황제의 숙부로 한왕의 반정 때도 움직임이 없었고, 황실과 조정에 막대한 은자를 건네고 있어, 황실과 조정으로서도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황실과 조정이 효친왕이 밀무역으로 왕부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용인하는 만큼 바라던 것보다 많은 은자를, 황실과 조정으로 보내오기에 눈감고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대공자 시운학은 당삼채를 건네고 받은 은괴를 생각하며, 정사에 무관하다 여겼던 효친왕의 평가를 다시 해야 했다.


신선루주 하려려가 전한 천하정세도에서도, 효친왕부는 그저 광동을 지배하는 왕부로 적혀 있었고, 천하 은자 유주도에도 효친왕부의 축적된 부는, 중원 상계의 은자 흐름에서 빠져 있었다.


삼십이 넘는 낙수채 놈들이 시전으로 몰려들자 사람들이 분분히 비켜났다. 대감도 하나씩 허리에 차고 있었으니, 놈들이 활개를 펼치고 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객잔으로 몰려 들어가자 점소이가 화들짝 놀라 맞아들이면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대공자 시운학은 낙수채 놈들이 모두 들어가고 잠시 기다렸다, 낙수채 수적들이 들어간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한꺼번에 들이친 낙수채 놈들로 가득 채워져 빈자리가 없었다. 객잔 안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낙수채 놈들의 눈치를 살피며 서둘러 나온 음식을 먹었고, 몇몇은 그마저 불안했는지 음식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가 만들어지자 낙수채 놈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서둘러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공자 시운학은 놈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나자,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서는 사람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점소이들이 낙수채 놈들의 주문을 받느라 시운학이 자리에 앉고서도 한참이나 다가오지 않았는데, 주문을 마치고 줄줄이 음식을 내오고서야 점소이가 시운학의 식탁으로 다가와 먹다 남긴 그릇을 치우자, 시운학은 여전히 낙수채 놈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점소이에게 주문했다.


"삶은 돼지고기 한 근하고 죽엽청을 내오거라."


"예, 공자님.

돼지 고기 한 근에 죽엽청이지요?"


"소면도 내거라."


"예, 공자님.

잠시만 기다리시면 바로 내오겠습니다."


대공자 시운학은 구석진 자리였기에 낙수채 놈들과는 탁자 두세 개 사이가 있어 그런지, 낙수채 놈들은 시운학이 주문을 하고 자리를 차지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점소이가 삶은 돼지고기와 죽엽청을 내오자 시운학은 잔을 채우며 낙수채 놈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염 두령,

천룡표국 놈들이 어찌 포구까지 안 가는 것이오?"


염 두령이라 불린 놈이 물은 놈의 이마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두령이라니, 말조심하지 못하겠느냐."


"하하

염 대인,

그렇다고 칠 것까지는 없질 않소이까?"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봤으니 알 것 아니더냐?"


"그러니 하는 말이 아니오? 그놈들이 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어찌 장사까지만 표행을 하는지 몰라 묻는 것 아니오?"


"난들 자세히야 알겠느냐마는 네놈도 봤으니 알겠지만, 아마도 밀무역이라 그런 것이겠지."


"밀무역이란 말씀이시오?"


"쉿! 조용히 하거라."


"이렇게 쉬운 일에 보표비까지 넉넉하니 궁금해 물었소이다."


"앞으로 한두 번이면 없을 일이니 더는 알려 들지 말거라."


"대병을 이번에 만들지 못했다 했으니, 다음 행차에는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면 다시 보표로 나서는 것도 그리 멀지 않은 것 아니오?"


"그게 마지막이지 싶다."


"하긴 이렇게 무시당하며 끌려다니느니, 마음 편하게 수채에서 지내는 것이 좋긴 하지요. 그나저나 한두 번이 끝이라니 그건 또 어찌 아신 것이오?"


"멀지 않아 수련 중인 무인들이 돌아온다는 것 같더라."


"은자도 은자지만 이곳에 오면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건 좀 아쉽게 됐소이다."


"낙양에도 서역 계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까지 차지가 올 계집들이 아니니 그건 네놈과 다르지 않구나."


"이번에 며칠 죽치다 가면 안 되겠소이까?"


"은자를 모두 계집 사타구니에 털어 넣고 나면, 수채로 돌아간들 살아남겠느냐?"


"행수께서 따로 주신 것이 있지 않소이까?"


"저놈들은 어찌하고?"


"하긴 저놈들도 모르지 않으니 계집 속살 맛은 보여야겠지요."


"저놈들은 색주가로 보내고 우리는 아향루로 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하하하

그만해도 저놈들은 충분히 만족해할 것이오."


대공자 시운학은 두 사람의 말에서 더는 쓸만한 말이 안 나오자 졸개들이 모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낙수채 졸개들은 연신 음식과 술을 입안에 쓸어 넣고 있었는데, 염 두령이라는 놈의 탁자를 살피는 것이 뭔가 서두는 듯 보였다.


"서가야,

지난번 계집이 그리 좋았다며?"


서가라 불린 놈의 표정이 환해지며 잠시 뜸을 들이다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놈도 가보면 알게 될 일이지만, 중원 계집들하고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머리카락이 금색이거나 붉고 피부는 눈처럼 하얗거나 시커멓다. 검은 계집은 안 그런데 다른 계집들은 눈알이 시퍼러니 놀라지나 말거라.


그뿐이겠느냐? 젖통은 네놈 머리만 하고 허리는 잘록한데, 튀어나온 엉덩이는 함지박만 하다. 지금이야 네놈이 불만일 것이나 가서 계집들을 보고 나면, 두령이 네놈이 받을 은자를 어찌 모두 내주지 않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년들이 도둑년들이라는 말이더냐?"


"이놈아 은자를 품에 갖고 있으면 그 계집들이 달라 하기도 전에 먼저 내주게 될 것이야. 다 경험에서 그리한 것이니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거라."


졸개들의 말은 대부분 같은 말이었다. 노비로 팔려 온 서역 여인들이 기녀나 색주가에 많은 듯싶었다. 이미 다녀갔던 낙수채 놈들은 처음 온 놈들에게, 서역 기녀들의 모습을 말하며 입가에 침을 흘려댔다.


'호위들이 수련을 마치고 머지않아 온다 했으니, 금정산에 모였던 놈들이 수련을 마치고 온다는 말인 듯싶구나.'


'결국 회천맹이 효친왕부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데···.'


'효친왕부가 벌인 일인지 조정의 뜻이 들어 간 일인지 모르겠구나.'


'조정에서 금정산에 모인 놈들을 모르진 않을 것이고, 결국 효친왕부가 본문을 도모하는 것을 조정이 묵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효친왕부가 아니라 조정이 관여하고 있다면 놈들을 치는 일은 쉽지 않겠구나.'


대공자 시운학은 선전현(홍콩) 포구를 살피고, 남해안을 따라 주해현(마카오) 포구까지 살폈다. 선전 포구와 주해 포구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서역 배들이 오히려 주해 포구로 더 많이 들어온다 하였고, 어디서도 효친왕부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에 복건성과 절강성에는 왜구들의 약탈이 잦아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그럼에도 효친왕부가 관리하는 광동성 포구들로는 왜구들의 약탈이 없다고 했고, 왜구들의 배가 들어와도 서역 배들과 마찬가지로, 왜은을 내주고 중원의 물건을 사들여 왜나 유구로 나간다고 했다.


왜구들마저 선전 포구나 주해 포구에서는 약탈이 아닌 밀무역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왜구들의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 절강성 해안 마을들이라 했고, 근래에는 절강 첨장 척계관이 약탈을 일삼던 왜구들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대공자 시운학은 광동성 어디를 살펴도, 효친왕부가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백성들을 수탈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광동성 백성들은 효친왕부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었다며, 효친왕부를 칭송하고 효친왕부에 충성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대공자 시운학의 생각에 광동은 황제의 땅이 아니라, 효친왕의 강산이었고 효친왕의 나라였다. 그렇다고 효친왕이 반정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효친왕부와 금정산에 모였던 회천맹 놈들이 관련되었다 여겨, 회천맹 놈들의 수련 장소를 찾아 광동성 포구들을 뒤지던 대공자 시운학은,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내야 수천문이 하남에 자리 잡아도, 강호 무림과 조정의 배척을 안 받게 될지 난감해졌다.


수련 중인 놈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했으니, 이양현 장가요와 황가요에 모습을 보인 놈들은, 금정산에 모여 회천맹의 개파대전에 참여했던 놈들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놈들은 회천맹이 아닌 다른 곳에 속한 놈들이라는 말이었다.


그곳이 효친왕부라면 사자나 차사라 부르기보다는, 효친왕부에서의 관직을 썼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니 그놈들의 소속은 사해련이거나 그도 아니면 사해련이 관여된 어떤 무리가 따로 더 있다는 말이었다.


대공자 시운학이 광동성 포구 어디를 살펴도, 효친왕부가 반정을 도모할 의지도 필요도 없어 보이니 답답하기만 했다. 효친왕부가 행하는 밀무역은 단순히 왕부의 부를 축적하기 위함이라 해야 하지만, 이미 효친왕부에 쌓인 은괴가 산을 이루고도 남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으니, 효친왕부의 은괴가 쓰이는 곳이 사해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공자 시운학은 지금까지는 나름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광동성이 하오문의 총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모습을 드러내 이제부터는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금정산에 모였던 놈들이 광동으로 온 것은 분명해졌으니, 곳곳을 뒤져봐도 찾아내기 어렵다 여겨지자, 대공자 시운학은 타초경사의 계책으로 드러내고, 찾아다니기보다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려 한 것이었다.


객점을 나와 기루 몇 곳을 들려 효친왕부의 사정을 묻고 다녔다. 대공자 시운학이 묻고 다닌 것들은 누가 들어도 의심할 것 없는 말이었다. 그저 효친왕부의 왕자들은 몇이나 되고 공주들은 몇이나 되며, 어느 공주의 미색이 뛰어난지 하는, 광동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물었다.


기녀들이라고 왕부의 사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어도, 나름 이름있는 기녀들의 입에서 왕부의 제법 깊은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효친왕부의 왕자가 모두 아홉이나 되었지만, 일 왕자 주문이 왕세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과, 남은 왕자들은 힘이 없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공자 시운학의 관심을 끈 것은 이 왕자 주고였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무재로 기골이 장대했을 뿐 아니라, 왕부의 빈객들에게 사사받은 무공을 빠르게 익혀내, 효친왕부 빈객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했다.


광동성 사람들은 이 왕자 주고가 왕세자에 오를 것이라 여겼지만, 이 왕주 주고는 약관에 이르자 수련을 핑계 삼아 별궁으로 나갔다고 했다. 별궁으로 나간 이 왕자 주고가 더는 왕부의 일에 관심을 안 보이자, 자연스럽게 왕세자의 자리도 일 왕자 주문에게로 옮겨갔다는 게 중론이었다.


노쇄한 효친왕이 정사에 물러나 칩거하자, 효친왕부의 대소사가 모두 일 왕자 주문 손에서 처리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효친왕부의 왕자들 대부분이 여색을 밝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백성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효친왕도 비빈을 많이 두었기에 왕자 아홉에 공주 스물여덟을 생산했으니, 왕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왕자 주고에 관해서는 소문에 밝은 기녀들조차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왕자 주고는 수련을 위해 별궁에 머문다는 말이 전부였는데, 효친왕부의 수많은 별궁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대공자 시운학은 이 왕자 주고가 어느 별궁에 머무는지 알아보려고 며칠을 더 들여 주루와 기루를 드나들었지만, 어디서도 이 왕자 주고의 거처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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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자 출세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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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185화 입맞춤 +1 24.07.14 896 15 14쪽
184 184화 사천당가 (6) +1 24.07.13 829 16 13쪽
183 183화 사천당가 (5) +2 24.07.12 816 14 17쪽
182 182화 사천당가 (4) 24.07.11 841 13 13쪽
181 181화 사천당가 (3) +1 24.07.10 848 15 12쪽
180 180화 사천당가 (2) 24.07.09 882 14 14쪽
179 179화 사천당가 (1) 24.07.08 814 16 14쪽
178 178화 거처를 마련하다 +1 24.07.07 824 15 14쪽
177 177화 약조 해지 +1 24.07.06 854 13 14쪽
176 176화 무왕자 +1 24.07.05 933 13 13쪽
» 175화 광동으로 +1 24.07.04 982 10 25쪽
174 174화 당삼채 (10) 24.07.03 999 13 13쪽
173 173화 당삼채 (9) 24.07.02 993 13 17쪽
172 172화 당삼채 (8) 24.07.01 993 12 12쪽
171 171화 당삼채 (7) 24.06.30 1,035 13 15쪽
170 170화 당삼채 (6) 24.06.29 1,071 12 15쪽
169 169화 당삼채 (5) 24.06.28 1,076 12 12쪽
168 168화 당삼채 (4) 24.06.27 1,109 13 17쪽
167 167화 당삼채 (3) +1 24.06.26 1,132 15 16쪽
166 166화 당삼채 (2) 24.06.25 1,128 12 14쪽
165 165화 당삼채(唐三彩) (1) 24.06.24 1,226 13 13쪽
164 164화 운남행 +6 23.10.19 2,629 20 12쪽
163 163화 나한진 +3 23.10.18 2,250 26 12쪽
162 162화 소림과 무림맹 +2 23.10.17 2,242 23 13쪽
161 161화 허허롭다는 것 (2) +2 23.10.16 2,296 21 14쪽
160 160화 허허롭다는 것 (1) +3 23.10.15 2,391 22 13쪽
159 159화 우려(優慮) +5 23.10.14 2,341 22 13쪽
158 158화 누구에겐 쉬운 일 +2 23.10.13 2,322 21 15쪽
157 157화 백수촌(白壽村) (2) +2 23.10.12 2,304 24 12쪽
156 156화 백수촌(白壽村) (1) +2 23.10.11 2,300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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