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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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3.06.02 10:11
최근연재일 :
2024.01.03 18:0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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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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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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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0. 마지막 탈출로 Ⅲ

DUMMY

#120. 마지막 탈출로 Ⅲ


통제과장의 예상이 맞았는지,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아까 나와 전임님이 제압한 직원들 외에 어떤 다른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전임님, 그리고 통제과장은 숨을 고르며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양 옆에 나란히 난 문들을 경계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라? 저, 저 녀석이에요! 아까 말한 2, 2번! 그런데 상태가 왜 저렇죠? 피가 잔뜩··· 히익!”


복도의 중앙, 계단에 다다를 때쯤, 통제과장이 아까 나와 전임님이 제압한 직원들을 가리키며 뒷걸음질 쳤다. 전임님이 제압한, 마취제를 맞은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반면에, 내가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직원은 조금씩 피를 토하며 바닥에서 들썩이고 있었다.


“저 사람이 키를 가지고 있는 거죠?”


전임님이 그런 피 토하는 직원을 가리키며 말하자 통제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하지만 저 녀석 괜찮은 걸까요?”


통제과장의 떨리는 눈동자가 핏자국에 이어 나와 전임님을 향했다. 전임님은 그를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예요. 저 정도 증상이면 죽기까진 시간문제죠. 여기선 별다른 응급조치나 의료지원도 없을 테니까···”


“바이러스, FOD말하는 건가요? 어, 어떻게 여기서?!”


통제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은 꿈틀거리며 피를 토하더니 눈만 간신히 굴려 서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개··· 자시··· 익··· 들. 크윽!”


피를 토하면서 우리를 원망하는 그의 음성에, 알게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그저 자신의 일을,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이렇게 까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해밀아 정신 차려!”


“아··· 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전임님이 어깨를 세게 두드리며 내게 나무라듯 말했다.


“유진이를 구해야지! 이제 물은 이미 엎질러졌어! 여기서 주저하면 너도, 유진이도, 나도··· 그리고 다 끝이라고!”


나는 전임님의 말에 숨을 크게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뒤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아픈 유진이를 구해서, 여기서 모두와 함께 탈출하는 길만이 남아있었다.


“우선, 저 사람에게 통제과장님 수갑 열쇠가 있는지 확인해 줄래? 아무래도 저 사람 상태가 이상하니까 나랑 통제과장님이 직접 확인하긴 힘들 것 같아.”


“알겠습니다.”


나는 붉은빛이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바이러스에 처참히 갈려나가는 그의 몸 위를 둘러싼 옷가지를 뒤졌다.


“저, 저 사람은? 피시험체 인가요? 보균자?”


통제과장의 놀란듯한 목소리가 그런 내 등뒤에서 들려왔다.


“맞아요. 그래도 우리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 하지만, 어떻게 직원 옷을?”


“설명하자면 길어요··· 우선 여기 탈출하는 것에 집중해요.”


전임님은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모습의 통제과장을 침착하게 달래며 말했다. 나는 가운을 뒤지고, 바지까지 다 뒤져본 끝에 겨우 찾아낸 수갑 열쇠를 찾아 덜덜 떠는 모습의 통제과장에게 건넸다.


“히익!”


통제과장은 열쇠를 든 내 손을 보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사래를 쳤다. 마치 못 볼 걸 본 듯한 모습이었다.


“소독, 소독을 해야죠!”


“··· 과장님, 제가 일단 풀어드릴게요 저희는 지금 시간이 없어요.”


전임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직접 열쇠를 받아 들어 그런 통제과장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수갑이 떨어지고, 통제과장은 수갑 자국이 선명한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마치 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디어! 자유가! 하하하!”


정신이 나간 듯한 그의 모습에 순간 전임님의 손이 마취제가 남아있는 주머니로 가는 것이 잠시 보였다.


“과장님 이제 움직여요, 시간이 없어요.”


전임님이 이제는 아예 광인이 된 것 같아 보이는 통제과장에게 말하자, 통제과장은 한 걸음 또 뒤로 물러서며 그가 아낀다는 별 무늬 가방에서 낡은 랜치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지 마! 너희도 결국 나를 다시 가둘게 분명해!”


실핏줄이 다 터진 듯한, 충혈된 눈동자와 함께, 발톱이 뽑힌 고통은 이미 잊은 듯한 모습으로 랜치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 나와 전임님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죠 전임님?”


“젠장··· 여긴 진짜 정상인은 없는 건가.”


전임님은 주머니에서 마취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걸 본 통제과장은 마치 불에 달려 느는 불나방처럼 순식간에 전임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역시나! 똑같아 너희도!”


그는 기름때 묻은 손으로 랜치를 전임님을 향해 휘둘렀다. 나와 전임님 모두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고, 통제과장은 이번엔 주머니에서 드릴을 꺼내 나머지 한 손에 들고는 나와 전임님을 보며 아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유! 나의 것! 더 이상 누구도 가져가지 못해!”


“여기서 잡혀있을 수 없는데···”


전임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취제를 든 손은 어느새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랜치와 드릴을 들고 미친 듯이 소리치는 통제과장에게 순식간에 마취제를 꽂아 넣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해밀아. 미안하지만···”


전임님은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끝에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괜찮아요.”


통제과장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유진이를 구하고 모두와 탈출해야 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결심이 선 나는, 우선 피를 토하던, 이제는 죽어버린 직원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바이러스를 움직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붉은빛이 그의 몸에서 뽑아져 나왔다.


“뭐, 뭐 하는 거야!?”


통제과장은 그런 내 모습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지 ‘윙윙’ 소리를 내는 드릴과 함께 한 걸음씩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해밀아!”


전임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제과장은 이제 두 걸음 앞이면 바로 닿을 거리였다. 나는 온 집중을 다해 붉은빛을 그의 눈과 귀에 꽂아 넣었다. 머리부터, 가슴의 중앙부까지 소용돌이치며 내려가는 붉은빛은 맹렬한 기세로 그의 몸속에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억! 가, 갑자기··· 크엑! 카악!”


통제과장은 손에 들고 있던 공구들을 떨구고, 멈추지 않는 기침을 멈추기 위해 자기의 목을 억누르며 쓰러졌다. 그러더니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쓰고 있던 더러운 마스크는 어느새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는 그를 평생 옥죄었던 수갑, 그리고 아끼던 가방 옆에 누워 피를 토해냈다.


“정말···”


전임님은 그 끔찍한 모습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그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전임님의 팔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전임님! 시간이 없어요. 어서 기하 전임님을 찾으러 가세요! 저도 유진이를 찾으러 가볼게요!”


나의 말에 전임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손으로 자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유진이와 네 친구들 모두 여기서 아래 2개 층에 있는 방에 갇혀있을 확률이 높아. 만약 거기 없더라도 1층까지 빠르게 방을 다 확인하면서 내려가면 돼.”


“알겠어요!”


“일단 아래층에도 실험실이 있으니까 거기까진 같이 이동하자.”


“네!”


나와 전임님은 어느새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통제과장을 뒤로하고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전임님이 있던, 그 방이 있던 층이었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복도는 어느새 뒤엉킨 직원들과 다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몇은 쓰러져 있었고, 몇몇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각자 진압봉이나 기타 여기저기서 주운 무기들, 그것도 아니면 이빨로 물어뜯어가며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고 있었다.


“전임님 혼자 가실 수 있겠어요?”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 중간에 서서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묻자, 전임님은 이 정도일 줄은 예상은 못한 건지, 아니면 그저 너무 충격적인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은 건지, 떨리는 눈동자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일단··· 하···”


전임님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았다. 같이 움직이는 게 안전할 테지만, 그렇다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특히 이렇게 아수라장이 된 곳에서, 아픈 유진이가 위험에 노출돼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었다. 모든 문은 열려있었고, 그렇다는 건 누구든지 유진이를 해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저것들은 뭐야!”


그때 주황색 옷을 입은 보균자들, 내게는 낯익은 불량배 무리 중 두 명이 계단 중앙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직원들이다! 죽여!”


“젠장···!”


그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넘으며 동시에 그들을 가로막는 직원들을 진압봉 등으로 패면서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며 우리에게 까까워지기 시작했다. 전임님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언제든 마취체제를 꺼내 주입할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전임님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임님··· 저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내가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하자, 전임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바이러스가 있던 보균자한테 바이러스가 통할리 없지. 하··· 직원들 뿐만 아니라 여기 갇힌 사람들 중에서도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으리란 걸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불량배들은 어느새 세 걸음, 아니 두 걸음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피칠갑을 한 얼굴로, 마치 좋은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듯한 모습으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여자는 그래도 좀 봐줄 만 한데?”


“그래도 직원이니까 먼저 죽이는 게 우선이야.”


그런 그들에게 우리도 사실 갇힌 처지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전임님은 어느새 입술을 꽉 깨물고, 피가 나는 입술 사이로 나지막이 그들에게 말했다.


“죽일 수 있음 죽여보던가.”


“오~ 당돌한데? 크큭.”


불량배들은 이제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야 유진이를 찾고, 그다음에 모두와 함께 탈출을 해야 했다. 기하 전임님, 민수 아저씨, 성우 씨, 모두와 함께.


“으아아아!”


나는 가까이온 불량배 무리 중 하나에게 발길질을 했다. 계단 위쪽에 있었으니 그렇게 하면 뒤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불량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몸을 숙이더니 오히려 내 발을 잡고 밑으로 끌었다. 머리가 계단 끄트머리에 부딪히면서 그 충격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해졌다.


“이 새끼가!”


전임님은 불량배에게 제압당해 오도 가도 못한 상태였다. 손에 들고 있던 마취제는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불량배는 전임님 위에 올라타서 끔찍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겐 안되지.”


그리고 그때였다.


[퍽, 퍽, 퍽, 퍽, 퍽]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여러 번 들려오고 내 눈앞이 붉은 피로 가려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 새끼는 뭐야?!”


전임님 쪽에 있던 불량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느새 축 늘어져 내 몸을 누르고 있는 불량배를 밀어낸 뒤, 눈을 비벼 상황을 확인했다.


겁에 잔뜩 질린 모습의 전임님과, 끈적거리는 피로 온몸이 뒤덮인, 성우 씨가 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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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30. 회의 : 에필로그 24.01.03 28 1 10쪽
129 #129. 지옥 Ⅱ 24.01.02 22 1 18쪽
128 #128. 지옥 Ⅰ 23.12.29 17 1 12쪽
127 #127. 터널 Ⅱ 23.12.28 24 1 12쪽
126 #126. 터널 Ⅰ 23.12.27 21 1 12쪽
125 #125. 시험대 Ⅱ 23.12.26 20 1 12쪽
124 #124. 시험대 Ⅰ 23.12.22 20 1 12쪽
123 #123. 낯익은 기억 Ⅲ 23.12.21 19 1 12쪽
122 #122. 낯익은 기억 Ⅱ 23.12.20 18 1 12쪽
121 #121. 낯익은 기억 Ⅰ 23.12.19 16 1 12쪽
» #120. 마지막 탈출로 Ⅲ 23.12.15 21 1 12쪽
119 #119. 마지막 탈출로 Ⅱ 23.12.14 17 1 12쪽
118 #118. 마지막 탈출로 Ⅰ 23.12.13 15 1 13쪽
117 #117. 돌멩이 23.12.12 20 1 12쪽
116 #116. 계획 Ⅲ 23.12.08 25 1 12쪽
115 #115. 계획 Ⅱ 23.12.07 18 1 12쪽
114 #114. 계획 Ⅰ 23.12.06 19 1 12쪽
113 #113. 운동장 Ⅲ 23.12.05 20 1 12쪽
112 #112. 운동장 Ⅱ 23.12.01 23 1 12쪽
111 #111. 운동장 Ⅰ 23.11.30 20 1 12쪽
110 #110. 푸른 가운 Ⅲ 23.11.29 19 1 12쪽
109 #109. 푸른 가운 Ⅱ 23.11.28 17 1 12쪽
108 #108. 푸른 가운 Ⅰ 23.11.24 18 1 12쪽
107 #107. 재회 Ⅲ 23.11.23 16 1 12쪽
106 #106. 재회 Ⅱ 23.11.22 18 1 12쪽
105 #105. 재회 Ⅰ 23.11.21 17 1 12쪽
104 #104. 낯선 실험실 Ⅲ 23.11.17 20 1 12쪽
103 #103. 낯선 실험실 Ⅱ 23.11.16 18 1 12쪽
102 #102. 낯선 실험실 Ⅰ 23.11.15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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