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지금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그때도 지금도 너는 여전히 돈이 많구나. 미안, 비꼬는 건 아니고 뭐.. 그렇다고."
사실 비꼰 게 맞다. 심술 궂은 소녀가 소년을 골리고 싶은 마음처럼 내가 내뱉은 말이 그를 기분 나쁘게 했으면 한다. 내가 받았던 상처의 천만분의 일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제길. 내 바람과는 다르게 그가 오히려 빙그레 웃는다.
"기억나? 너 보려고 네가 알바하던 고깃집에 자주 갔었는데 나한테 학생이 그렇게 돈이 많냐고 물어봤었잖아. 그때 나보고 재수 없다고 했나? 그랬던 것 같은데. 하하."
기억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잘것 없는 내 처지와는 정반대로 행복한 가족, 고등학생인데도 비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을 누리고 있는 그를 질투했다.
잘 나갔을 때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추락한 연예인이 된 지금. 그때와 지금, 비슷한 처지가 됐다. 구렁텅이 빠진 나 그리고 여전히 잘 난 서은우.
음식이 나온다. 아무 말 없이 가지런하고 예쁘게 썰어준 스테이크를 내 앞에 둔다.
"어서 먹어봐. 여기 음식 잘해. 맛있어."
"응."
사실 입맛이 별로 없다. 중요한 얘기를 꺼낼 것만 같은 분위기에 입맛이 없다. 하긴 우리 사이에 가벼운 얘기만 할 수는 없지.
"그동안 잘 지냈어?"
"글쎄, 그냥 그렇게 지냈어."
"데뷔했을 때부터 쭉 지켜봤어. 내가 알고 있던 차미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연기 잘하더라."
"그랬구나. 열심히 했지 뭐. 비록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지만."
"너는 꼭 재기할 수 있을 거야. 너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말이라도 고맙네."
"저기 미연아... 혹시... 우리 아기는..."
그가 한방이 얘기를 꺼내자 단단하게 굳어 있던 상처 섞인 분노가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안간힘을 써서 꾹꾹 누른다.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하고 싶다.
"죽었어."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렇게 됐구나. 혹시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을까?"
"네가 날 버린 날 이후로 잠도 잘 못 자고, 울고, 제대로 식사를 못했어. 그랬어 떠나보내게 됐어."
"미... 안... 해..."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며 나를 미치게 한다.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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