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그리고 창문 앞에 가만히 서서 눈을 감는다. 심란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창문 밖 세상은 참 평온하다.
평온한 세상에 나를 맞추고 싶다. 하지만 그 기회는 너무 짧게 주어진다. 핸드폰 진동 소리가 그 기회를 앗아간다.
"010-XXXX-XXXX"
가끔은 좋은 머리가 불편할 때가 있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 순간, 물건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꼬박꼬박 기억하고 만다. 지금이 그 불편한 상황이다.
핸드폰에 뜬 번호를 안다. 기억한다.
'서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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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미지야. 나야. 서은우. 잘 지냈어?"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어."
"미안.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어떻게 너에게 용서를 구할지 모르겠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 난 쉽게 너 용서 못해."
"알아. 쉽게 용서 못할 거라는 걸. 내가 너였어도 쉽게 그러지 못할 거야. 근데... 미지야... 혹시... 우리... 아니... 만나줄 수 있어?"
"응. 만나자. 그때 제대로 얘기도 못 마치고 나와버렸잖아. 우리 마지막 모습이 그런 모습인 걸 나도 원하지 않아."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은우를 만나는 것 보다는 피하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와의 매듭을 짓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싫다.
나의 목표는 '안녕. 잘 지내.' 라고 말끔하게 끝을 맺고 겉으로라도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물론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자신은 없다. 그래도 마지막 모습은 10년 전 그가 사랑했던 그때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면 한다.
서은우와의 마지막. 끝.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그와 어떤 대화와 감정이 오고 갈까. 잘 모르겠다. 몰라서 궁금하지만 궁금하면 안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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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전자 앞 카페. 그와의 약속 장소다. 사람이 없다. 이번에도 역시나 이 카페를 통째로 빌린 건가.
멋진 양복을 빼 입고 기다리고 있는 그가 보인다. 10년 전 교복을 입고 만난 그때가 떠오른다. 지금 성숙함이 꽤 베어있지만 그때 가지고 있던 어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 그 모습을 소환해 떠올릴 수 있다. 서은우는 나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있으니까.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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