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김미자님 보호자님 되시죠?"
"네..."
"유감입니다만, 김미자님께서 23년 7월 24일 오후 7시 36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알겠어요..."
무덤덤했다. 알고 있었다. 엄마가 곧 죽을 거라는 걸. 마침내 이번에는.
조그맣던 엄마는 더 작아져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엄마와 품을 나누던 때가 있었을까. 있었을 거다. 있었다고 믿는 편이 덜 비참하다.
따뜻했던 유골함이 금세 식어버렸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1시간도 안 잔 것 같은데 정신을 말짱하다. 또렷하다. 엄마를 안고 가장 가까운 산에 오른다. 오르는 내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산 정상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썩 괜찮다.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다.
숨을 참는다. 몸에 힘을 뺀다. 터벅터벅 앞으로 걷는다. 어느새 한 걸음 남았다. 한 걸음으로 생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음....'
그래 아직은 아니다. 지금... 지금... 이라면 엄마를 또 볼 것만 같다. 조금은 참아야 한다. 엄마와 시차를 두어야 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 사이로 엄마를 보냈다. 하얀 엄마가 허공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엄마 유품이다. 마실 거면 몽땅 다 마실 것이지 왜 한 병을 남겨두었는지 궁금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지막 그녀와 함께할 친구를 남겨둔 것이다. 소주를 뿌린다. 죽어서도 술이 좋은지 묻고 싶지만 엄마가 없다.
어두컴컴한 집으로 돌아왔다. 방 안의 불을 켜지 않았다. 지금 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 때 한 발자국만 더 디뎠으면 지금 여기 있지 않았겠지. 후회도 다행도 없다. 싱크대 밑에 무언가 반짝인다. 초록빛 한 병이다. 이게 정말 마지막 유품이다.
"엄마! 제발 술 좀 그만 마셔."
"꺼져. 이년아. 내가 왜 술을 마시게? 너 따위가 태어나는 바람에 내 인생이 박살났어."
"그럼 낳지를 말았어야지. 뱃속에서 죽였어야지. 왜 낳아 놓고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데?"
"넌 아주 니 애비를 닮았어. 그게 니 죄고 내가 니 년을 힘들게 하는 이유야."
순간 엄마와 함께 했던 지치고 암흑 같던 거지 같은 기억이 스쳐갔다. 엄마의 진짜 마지막 유품을 힘껏 던진다. 쨍그랑 깨진다. 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가 작은 방안을 채운다.
울고 싶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진짜 이별이다.
"안녕, 잘 가, 엄마"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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