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만났어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응, 오랜만에 일 해서 좀 힘들었나 봐."
"수고하셨어요. 근데 안색도 안 좋아요. 혹시 진짜 무슨 일 있었어요? 솔직히 말해봐요."
"무슨 일은..."
머릿속을 꽉 채웠던 서은우 때문에 우리 연우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 나에게는 연우가 있다. 연우... 나의 치부였던 과거를 이해하고 감싸준 연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도리일 것 같다. 그라면 이해해줄 것 같다.
"서은우, 너한테 말했던 10년 전 그 사람 있잖아..."
그동안 묻어두려 제대로 말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이 내 입에서 뜬금없이 먼저 나오자 연우가 놀란 표정이다.
"정말 나쁜 놈이야."
그가 놀란 표정을 지우고 덤덤하게 묻는다.
"누나를 떠나기 전에도 나쁜 놈이었어요?"
그건 아니다. 나를 배신해 문자만 달랑 남겨 놓고 말없이 떠나기 전까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아껴주고 배려해주고 안아주고 사랑해줬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몰라, 오래돼서 까먹었어."
"..."
"오늘 그 사람 만났어. 오늘 내가 찍은 광고 회사 상무로 있더라."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많이 놀랐겠네요."
"조금. "
"그러면 광고 계속 찍고 싶어요? 누나가 불편할 것 같은데."
"찍고 싶어. 나 돈 벌고 싶어. 그리고 광고 찍는 거 재밌어."
"누나가 좋다면 계속 해야죠."
이것저것 꼬리에 꼬리를 물 것 같았던 서은우에 대한 대화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 차라리 나에게 화를 내지. 10년 전 그 남자랑 엮인 광고를 왜 찍으려고 하냐고. 미친 거 아니냐고. 본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거냐고. 정말 나쁘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다만, 이 질문은 하지 않았길 바랬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요? 그 사람이 보고 싶었어요?"
그 질문을 받았다면 날 뭐라 답을 했을까? 진실을 말했을까? 거짓말을 했을까? 그 전에 내 답의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
------
인터넷 검색창에 'TP전자 상무'라고 치고는 다시 지운다. 또 다시 쳤다가 지운다.
굳이 내가 검색 못 할 이유는 없잖아. 나한테 광고 일 준 사람 정도는 누군지 알아볼 수 있잖아.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