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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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7.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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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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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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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전운 (2)

DUMMY

一.





“······.”


좌중이 침묵했다. 붉은 융단의 끝자락. 가장 상석에 앉은 절대자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기에. 잘못 입을 놀렸다간 머리통이 그대로 날아갈 것을 느끼며, 융단 위, 목함을 내려봤다.


저마다 느끼는 바가 달랐으나, 각오하는 다짐은 비슷했다. 저것은 패배자의 말로다. 투쟁하다 스러져버린 젊은 무인의 흔적. 머리만이라도 돌아와 흔적을 남긴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백겸.’


싸늘한 표정 속, 조휘는 흑제의 생각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수도 없이 지어봤던 표정이 영감의 얼굴에 맺혀있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전우들을 내버려 두고 홀로 돌아온 막사에서 면경을 보고 얼굴을 매만질 때의 표정이다.


그의 등만 보고 달리는 수하들이기에, 더더욱 보여줄 수 없는 표정을 애써 가다듬었더라지.


조휘만 그 기색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하는 연서도 흑제의 상실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주군······.’


그저 한 발자국 물러난 채로, 사태를 관망할 뿐. 연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흑제가 그에게 말을 걸기 전까진.


“연부관.”


“하명하십시오.”


“군사부를 소집하라.”


따악!

애꿎은 의자의 손잡이를 두드리기를 멈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혁련무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주군의 표정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섬뜩함을 느끼는 연서.


“장로직을 단 놈들도 모조리 불러 모아. 그 허황된 이름으로 부귀를 누렸으면 책임도 져야겠지.”


“그 말씀은······.”


“전쟁이다.”


흑제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허허로운 기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패도적인 기운이 메운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마실 때가 됐지. 감히 본좌의 앞마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흑제가 융단을 걸어 내려왔다. 걸을수록 점점 공기가 무거워진다. 고이 모셔두었던 단전의 군림만야기를 대놓고 드러낸다. 그것만으로 천성맹 전체가 비상에 걸렸다.


멀리서 저릿저릿한 기세를 느낀 관구백위가 전쟁부를 소집하고, 그 휘하의 장수들이 천성맹 전역에 비상 연락을 넣었다.


권태를 연기하는 것을 벗어던진 그는 이토록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니, 그저 변함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터다.


“가자.”


흑제가 앞서고 연서가 따른다. 그리고 그 뒤를 아직은 젊은 무인들이 따랐다. 한 사내가 죽어 빈자리가 생겼지만, 그 빈자리가 공석이 되는 일은 없었다.


조휘는 가장 뒤에서 묵묵히 입을 닫은 채로 붉은 융단을 걸었다. 피처럼 붉은 길. 적들이 걸어야만 할 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조휘가 그리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렇기에 그것은 조휘의 앞에 펼쳐진 길이기도 했다.





二.




“비상! 비상이다!”


“일어나! 개새끼들아!”


천성맹 전체에 불이 붙었다. 밤중에도 그늘진 곳이 없었다. 걸을 때마다 보이는 횃불은 일각의 간격을 두고 위사들이 관리했다.



한편, 포양호와 함께하는 남창의 유흥가는 절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도 유명했다. 비슷한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로 항주와 무림맹이 자리한 한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흥가에 천성맹의 무장 병력이 들이닥치기까지 반 시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창 흑제가 활동할 때, 현역이었던 노인들은 천성맹의 무장병력이 들이닥친 그 순간부터 숨 쉬는 것도 조심했다. 집안을 단속하고 아이들을 단속했고, 절대 불이 꺼지지 않는 남창의 거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휘를 비롯한 묵린십검들은 한적해진 거리를 거닐었다. 그들 정도 수준의 무인이 지니는 감각권은 고작 거리 하나 정도는 우습게 위시할 정도. 그렇기에 강서 곳곳으로 흩어지며 시가전을 준비할 초석을 다지는 역할이 되었다.


이인 일조로 흩어지기로 했다. 일검과 십검. 이검과 팔검. 이런 식이었다. 가장 효율이 좋은 조합으로 짜기 위함이었으나, 조휘에게 이들은 짐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칠검인 막이호 역시, 조휘와 함께 순찰을 돌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송이.’


그것이 표정에서 대놓고 티가 나는 놈. 그렇기에 조휘는 막이호를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영감의 제자 비슷한 거라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제자 교육을 똑바로 못 하셨군.’


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할 줄 아는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못하는 것보다도 더 못난 일. 저러다 재수가 없으면 칼맞고 뒤지는 곳이 강호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 진데.


‘과연 자신감의 말로인 것인가. 천성이 그러한 것인가.’


뭐가 되었든 조휘의 알 바는 아니었다. 다만, 임무를 시작하기 전,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치울 필요가 있었다.


“이봐. 자꾸 그딴 식으로 보면 눈깔을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


“뭐?”


막이호의 눈이 부릅! 떠졌다.


“너 나 본 적 있잖아. 절강에서······. 그때는 몸 상태가 말도 아니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인사나 제대로 할까? 광화신검, 조휘다.”


“이 새끼가!”


막이호도 성깔로는 지지 않았다. 조휘가 강하게 나오자 되려 눈을 뒤집어 까고 조휘의 멱살을 틀어 잡는다.


“구량이 아니라 조휘셨구려? 난 또, 우리 형님이 내게 와서 새로운 사제, 구량에 대해서 온갖 칭찬을 늘어놓길래 조휘라는 이름을 버리고 구량으로 사는 줄 알았지!”


“······뭐?”


“형님은 너를 진짜 아끼고 좋아했다. 못난 사형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뜩이나 열심히 살던 사람이 잠자는 시간을 또 줄여가며 무공 수련을 했어. 네가 그 모습을 봤어? 봤냐고!”


“이호. 그만해라.”


관구위지가 막이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님도 적당히 하십시오! 저놈은 백겸 형님을 우롱한 겁니다! 형님이 건네는 호의를 낼름 받아 처먹고 모르쇠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적어도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백겸 형님한테 정체라도 이야기했어야지요! 직접 말하기까지 기다려주자고, 모두가 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막이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적어도. 적어도 백겸 형님은 진실은 알고 죽었어야 했습니다. 형님께서 아끼고 마음에 들어 했던 사제가! 당신께서 증오해 마지않던 백도의 사람이란 것을!”


막이호의 목소리가 텅빈 남창의 거리에 울려퍼졌다. 공허한 메아리가 이리저리 부딪치다 조휘에게로 향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후벼파는 절규. 조휘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누가 알아준단 말입니까! 우리가 여기서 죽어도! 누가 알아준다고!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답했다.


내가 알아주겠다고.


그러나 감히 함부로 이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부인하지 않겠다.”


조휘가 막이호를 또렷이 바라봤다.


“내가 그를 속이고 우롱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어. 그는 내게 좋은 친우였고, 좋은 사형이었지만. 나는 그를 속이고 거짓으로 이용해 먹은 나쁜 놈이다.”


“그걸 알면!”


“내게 사죄할 기회를 다오.”


조휘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여태까지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섞일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과연 백겸이라고 내가 광화신검이란 사실을 몰랐을까 싶더군. 그가 우직한 사내긴 하지만, 멍청한 사내는 아니잖나.”


“······.”


“그는 내 정체를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만난 그 직후에 깨달았겠지. 그러나 백겸은 사부의 선택을 믿었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보여줬겠지. 나는 그의 선의를 읽었음에도 모른척하고 있었다.”


“······!”


“이미 저지른 죄를 돌이킬 수 없어졌다. 놈은 죽어버렸으니까. 그러나······ 그를 대신해서 그가 사랑했던 이곳을 지킬 기회를 다오.”


조휘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을까. 묵린십검이 모두 침묵에 잠긴 와중, 맏형이 조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구량 공자.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맙소. 맏형으로서 진심으로.”


“······.”


“못난 동생을 잘 부탁드리겠소.”


관구위지가 울먹이는 막이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호는 구량 공자를 따라가고 나머지도 위치로 간다. 해가 뜨기 전까지 허락하는 한 최대한 순찰하고 다시 이곳으로 모인다. 적과 마주치면 그대로 도망쳐라. 함정일 가능성이 높으니.”


관구위지가 능숙하게 동생들을 챙겼다. 냉철해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이 관구위지의 역할이었다. 그 역시도 사람이다. 어찌 조휘의 목을 조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성정은 중심을 무겁게 잡아줄 맏형이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도 죽지 마라. 죽으면 다 의미 없다. 먼저 죽은 백겸의 제사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죽지 말자.”


그것은 동생들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백겸에게 하는 부탁이었다. 아무도 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가자.”


관구위지를 필두로 일행이 흩어졌다. 막이호는 그렇게 울분을 토한 직후, 되려 이전보다 훨씬 침착해졌다. 싸늘하게 가라 앉은 눈동자가 묵묵히 앞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바람이 밀려온 구름이 달빛을 가린다. 불이 꺼진 남창의 거리를 비추는 빛이 모조리 사라진 직후. 묵린십검이 신공을 개방했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암흑을 수놓는다. 그 사이에 낀 조휘의 암청빛 군림기는 이지러지기를 반복했다.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것마저도 불꽃이기에.


조휘는 묵묵히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줄기 푸른빛 알갱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창백한 청광은 그 어느 밤보다도 짙고 어두웠다.





三.





“커억!”


조휘와 막이호는 마교도 하나를 잡아 죽였다. 아주 은밀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바람 가르듯 접근해 목에 그대로 구멍을 뚫어버려서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지리상, 복건성과 호남성의 정중앙에 위치한 백운산(白云山) 근교. 두 사람은 마교도의 흔적을 발견했다. 막이호가 품에서 꺼낸 전서구(傳書鳩)가 발목에 서신을 묶고 천성맹을 향해 날아갔다.


척!


조휘가 손을 들었다. 정지의 수신호를 뒤로 보냄과 동시에 속도를 줄인다. 신호를 확인한 막이호도 속도를 줄였다.


나무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널찍한 공터를 바라봤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모닥불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는 광경.


일견, 한가롭게 모닥불이나 쬐며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듯했지만, 저것이 함정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물며, 저리도 명징하게 피워내는 살기가 그들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둘 수준으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가 내려간다.’


조휘가 막이호에게 수신호를 남긴 뒤,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수풀을 해치며 불빛을 향해 다가가며, 조휘가 얼굴의 형태를 매만졌다.


축골공이 펼쳐지며 또렷한 얼굴선이 흐릿해지고, 구조도 이리저리 뒤바뀐다. 무척 잘생긴 얼굴이 괴팍한 중년인의 그것으로 바뀌기까지 일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손으로 죽인 마교도로 변장을 끝마친 조휘가 수풀을 쳤다.


바스락.


일부러 소리를 내며 다가가지만, 공터의 여덟은 관심도 주지 않는다. 가까워질수록 조휘의 단전에서 군림기가 요동친다. 마치 맛난 먹이를 보기라도 한 듯, 군림기가 게걸스럽게 침을 흘렸다.


바스락.


수풀을 치며 나타난 조휘. 모닥불의 빛이 그를 비췄다. 짙게 진 음영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여덟 중 맏이로 보이는 한 사내가 조휘게에 물었다.


“어디 갔다 왔나. 가뜩이나 천성맹의 핵심 인물을 하나 죽여서 감시망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단독으로 행동하다 걸려서 좋을 게 없어.”


“화장실을 좀.”


“······그래?”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변함이 없었기에 의심을 지웠다. 마인이 아니고서야 발현할 수 없는 마기가 또렷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풀썩.


맏이의 곁에 주저 앉은 조휘는 말없이 모닥불을 노려봤다.


“너 왜 그래? 잘 앉지도 않는 큰 형 옆에 앉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


“······.”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기까지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조휘의 맞은 편에 두 팔을 뒤로 뻗어 몸을 지탱하고 있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허리춤의 단검을 꺼냈다. 스르릉.


“그거 집어 넣어라.”


맏이가 말했다.


“눈치가 빠르네.”


“누구냐. 내 동생은 어디로 갔지.”


“죽었어. 하늘나라로 갔겠지. 실존한다면.”


“어디서 왔나.”


“이 상황에 어디서 왔을 거 같아? 너네도 우리쪽의 한 사람을 죽였으니, 우리도 갚아주러 온 거지.”


“천성맹에서 왔군.”


“그렇게 됐어. 너네는 마교냐?”


“그렇다.”


“대형!”


맏이가 손을 들었다. 한 동작만으로 일행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만큼 병력 통솔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 어쩌면 그들이 그만큼 맏이를 믿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둘 다겠지.’


머리에서 맴도는 쓸데없는 상념을 애써 무시한다. 지금은 그저 솔직한 대담을 원할 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머리를 깨끗하게 비울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머리가 지끈지근 아파왔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지속되면서도, 그보다 몇 배는 거대한 두통이 뇌를 주무르니 제대로 된 행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뭐 좀 물어도 되겠나.”


“물어보시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


“무엇이 말인가.”


“그러니까······.”


무엇이 이상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냐고. 너네가 이곳에 정찰을 나온 것도. 백겸이 목이 잘려서 죽은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잖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사내가 조휘를 바라봤다.


“죽고 죽인다. 우리 선조 때부터 계속 그리해오던 것이다. 우리라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려고 애써보진 않는 거냐?”


“왜 그래야 하지?”


“······.”


“결국 우리는 싸워야만 하는 존재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우리 측이 너희의 소중한 사람을 죽였고. 너네는 그 복수를 위해서 우리를 찾아왔지. 조금 재수가 없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


“마(魔)다. 나는 알량한 도(道)도 그것이 이어진 선(線)도, 그것을 잡아 늘린 법(法)도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마. 마에서 태어났고 이제는 마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뿐이다. 마치 나의 신께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조휘가 사내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비친 것은 공허한 얼굴의 자신. 흑색으로 점칠된 눈동자에 흐릿한 청광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도 두렵고, 무엇이 그리도 어색한가. 자네도 이미 그 자체로 마(魔)를 품었을 진데. 그 방대한 두려움에 몸을 던지기 힘든가? 그것이 어렵다면 내가 도와주지.”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조휘는 천 갈래로 찢겨져 죽은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손으로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뒤로 풀쩍 물러난 조휘. 그리고 그 직후 흐릿한 파공성이 적막한 공간에 울려 퍼진다.


피잉!


“이름은 잊었네. 교인들은 나를 검몽아(劍夢兒)라 부르지. 광명종의 우호법을 맡고 있네.”


검을 꿈꾸는 아이.

그 현학적이고도 운문 같은 이름에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덧씌워졌다. 한 줄기 묵광이 날아옴과 동시에 조휘의 우수가 허공을 부여잡는다.


콰드득!


실체가 없는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쩌저저저적!


일대가 암흑으로 얼어붙음과 동시에 조휘의 눈동자가 푸른 귀화를 토한다. 암청빛 군림기의 알을 깨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리도록 창백한 푸른 불꽃.


아직은 미약한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피워낼 수만 있다면 만야(萬夜) 위, 군림(君臨)할 새로운 절대자의 씨앗이 되고 남겠지.


조휘에게 그것은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검수로서 끓어오르는 강대한 호승심. 이것도 마(魔)라면 마가 아닐까.


언젠가 펼쳤던 악행의 기록을 떠올리며.

조휘가 허공을 쥐었다. 흐릿한 무언가가 어떠한 형상을 취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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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무(武)란 무엇인가 (2) +1 23.12.26 618 16 13쪽
132 무(武)란 무엇인가 (1) 23.12.25 685 14 17쪽
131 전야제 (3) 23.12.23 695 13 13쪽
130 전야제 (2) +1 23.12.22 647 15 15쪽
129 전야제 (1) 23.12.21 658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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