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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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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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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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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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의 (3)

DUMMY

**



“증장천왕이 당했습니다.”


“······.”


“부디 결단을.”


아주 잠시간의 침묵. 그 뒤를 쫓아오는 것은 불어오는 한 자락의 바람이다. 새벽을 쫓아내는 여명. 그것을 닮은 황금빛 진기가 어둠을 밝힌다.


대체 어째서.


밝은 하늘 위 군림하는 천신은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물밑에서 중원 강호를 삼킬 계획은 완벽했다. 그것을 눈치챌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려 400년이다. 그 긴 시간을 준비한 계획이 어그러졌다. 준비만 400년이고 실행은 100년에 걸쳐서 옮기고자 했다.


‘그때인가.’


숭산 아래에 숨겨 뒀던 날카로운 비수가 꺾였을 때. 그때 처음 들었던 이름이 있었다.


‘조휘.’


그날 이후, 강호에선 그의 이름만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 사사건건 대계를 막아섰다. 그의 대적자라도 되는 듯.


“걱정하지 말라.”


그러나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주니 오히려 좋지 않은가?”


무척 오랜만의 나들이다.

빛이 닿자, 보인 얼굴은 무척 늙은 초로인의 그것이다.


전각을 나서자 노인의 얼굴이 바뀐다. 아주 젊은 사내의 그것으로. 그 얼굴은 황궁에서 자주 보이는 초상화의 인물과 무척 닮아있다.


“하늘이 어둡군.”


“······.”


“조금 밝힐 필요가 있겠어.”


별안간 나타난 사내는 초대 황제와 무척 닮았다. 궁녀들과 환관이 눈을 멀뚱멀뚱 뜨며 그를 바라본다.


“불을 밝히기 위해선 연료가 필요하겠지.”


푸─


“그대들이 연료가 되어주게.”


화아아아아악!


한줌 핏물이 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스러진 시체에서 금빛의 서거로운 기운이 스멀스멀 치솟는다.


금빛의 휘장을 곤룡포처럼 두른 그가 하늘로 둥실 떠오른다. 향하는 곳은 황궁 하늘을 범하는 별이다.





一.




‘온다.’


무성십존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존재를 느꼈다. 찬란하고 서거로운 금빛. 하늘 위에 군림하는 존재. 태양이다.


거대한 기운이 기지개를 켜듯 하늘로 치솟는다. 황궁의 중심에서.


그리고 그 중심에 선 한 사내가 있다.


“······.”


가히 압도적이다. 무(武)의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거대한 파도를 만나곤 하는데, 이것은 고작 파도로 치부할 적이 아니었다.


‘재앙.’


강호의 정점인 무성십존이 그렇게 느꼈다. 흑제는 무심코 다른 이들의 기색을 살폈다. 끓어오르던 아군의 사기가 차갑게 식는다. 모닥불에 물을 끼얹어버린 듯했다.


“저거 괜찮은 거 맞나?”


“안 괜찮으면 어쩔 거요. 그래도 잡아 족쳐야지. 이 혈도제의 도신을 박으면 꼼짝 못할 거요.”


“그 전에 니가 꼼짝 못하게 되겠지.”


전왕과 혈도제는 여느때처럼 헛소리를 하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우리의 상대가 아닐세.”


검성이 나지막히 말했다.


“저 노괴를 막을 자는 우리가 아닐세.”


그러자 여덟 개의 별빛이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본다.


“상대가 과거의 천하제일인이라면, 우리도 당대의 천하제일인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녀석도 그것을 원하는 것 같고.”


황제의 형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한때는 차지했던. 그러니 과거의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참 옳았다.


“우리는 설거지나 하자는 말입니까?!”


전왕이 껄껄 웃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태양 빛을 등지고.

거대한 군세가 쏟아져 나왔다.

천신의 군단이었다.


세 명의 장수가 앞에서 군세를 이끈다. 하나 같이 강적이 아닌 이가 없었다. 무림의 군세와 천신의 군세. 둘이 부딪치는 순간, 뭐가 됐든 싱겁게 끝나지는 않겠지.


다만 바랄 뿐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강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으로 신음하지 않기를.


“모두 무기를 들어라.”


연소백의 낭랑한 목소리가 사기를 북돋고.

연소백의 앞에 선 세 자루의 검이 적들의 살기를 베어 넘긴다. 각기 검성, 검존, 검제다. 전왕과 혈도제는 적들을 향해 기세를 쏘아낸다. 벌써 달려나갈 준비가 끝난 셈이다.


사왕과 음제는 그들의 뒤에 자리 잡았다. 그 무엇보다 든든한 뒷배였다.


그들의 위에 흑제가 떠 있다.


“우리는 웃으면서 돌아갈 것이다.”


무림과 명천.

최후의 격돌이 시작됐다.





二.





두 사내의 격돌은 전조 없이 일어났다. 서로가 눈부신 빛을 두른 형국이다. 빛이 번뜩일 때마다 초월적인 공력 파동이 울려 퍼진다. 주먹끼리 부딪친 결과였다.


금빛의 주먹이 곧게 뻗어진다. 소림의 백보신권과 같은 모습이다. 진각을 밟고 허리를 비트는 식의 동작 없이 허리춤에서 뻗어 나온 주먹에 실린 힘은 심히 경탄스러웠다.


본디 주먹이라고 하면, 진각을 통해 지력을 뽑아 올리고 허릿심의 회전력과 더한 뒤, 어깨, 팔, 손목, 주먹 순으로 힘을 실어 체중을 싣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천신의 주먹엔 그러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략’이다.


주먹을 쥔 손에서 검지와 중지만 펴면 검결지가 완성된다. 검을 휘두르는 심상으로 검결지를 휘두르면 검격이 되고, 창을 질러낸단 심상으로 휘두르면 창격이 된다.


그것을 상대하는 조휘는 검을 휘두른다. 검을 휘두르며 기억을 휘두른다.


‘응룡이적(應龍理的).’


‘이건 검황팔세(劍皇八勢).’


‘화련적수(火蓮赤手)인가.’


천신의 모든 동작이 눈앞에 선연했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과거의 한 장면을 억지로 붙잡아 길게 늘린다. 그것이 머리 한 구석에서 일어난다.


그 자리에서 천신의 초식을 해체, 분석한다. 곧바로 빈틈을 찾는다. 빈틈이 없으면 억지로 틈을 만든다.


[이신검허(移身劍虛).]


마음으로 베어 넘긴 사내의 검을 따라 한다. 아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검결을 펼칠 줄 아는 조휘에게 능히 깃든 검이었다.


공간을 비집고 주먹을 쏘아낸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흑백으로 물든 주먹이 천신의 등을 가격한다.


천신의 신형이 주욱 밀려난다.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재미난 것을 봤다는 듯, 호선을 그리는 눈매가 상대를 담는다.


눈이 마주쳤단 느낌을 받은 순간, 천신이 눈앞에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걸음이다. 천하제일쾌였던 신개의 걸음이다.


‘나’가 빠진 걸음. 놀랍게도 천신은 신개의 걸음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따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어떤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행동으로 옮길 따름이다.


조휘가 걷는다. 마치 봉우리를 오르듯. 높고 높은 봉우리는 무척 고독하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흰색뿐이었다. 어째서.


그러나 잊는다. 그리고 잇는다. 앞서가는 거지의 등을 따른다. 걸으면 걸을수록 거지와 거리가 좁혀진다. 거지가 뒤를 흘긋 바라보고 작게 웃는다.


그리고 겹쳐진다. 같은 걸음을 보인다. 발목이 잠길 정도로 쌓인 만년설이 걸음을 막는다. 오르지 말라는 것 같았다. 그곳은 너무 외롭고 외롭다고. 차라리 만년설이라도 있는 이곳이 더 낫다는 식이었다.


신개는 그곳에서 멈췄다. 봉우리를 오르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휘는 등을 떠미는 손길을 느낀다. 그 손은 무척 따스했다.


아릿한 열기가 명문혈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전신에 퍼진 열기는 다시 단전으로 향한다. 하단전에서 시작된 공력의 흐름이 백회혈을 두드리고 회음부로 내려간다. 그렇게 흐름이 생겨난다.


흐름이 그리는 것은 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하게 완벽한 형상. 조금의 일그러짐도, 조금의 흠결도 없이 완전한 원이 체내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걷는다. 봉우리 위로.

그리하여 도달한다. 극한에.


[등봉조극(登峰造極).]


걸음에 담긴 ‘너’를 뺄 수 있겠느냐.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조휘는 답한다.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봤다. 구름이 걷힌 정상에선 봉우리를 오르는 모두를 볼 수 있었다.


정상에 가장 근접한 이는 신개였고, 그 아래로 여러 무성십존이 있었다. 또한 정상에 오른 이가 하나 더 있었다. 천신은 아니었다.


“······당신은.”


“오호.”


늙은 승려가 조휘를 보며 웃는다.


“스스로를 넘어 극한에 닿았는가. 역리인 줄 알았거늘, 순리라는 것인가. 달마를 따라 걸어온 곳에서 마라를 만날 줄이야.”


승려가 씨익 웃는다.

권신, 무허였다.






三.





“무허대사.”


“검패라고 했던가? 강호놈들 째째한 건 알아줘야겠어. 늙은 놈들 눈깔은 옹이구멍인 것인가. 고작 검패라니. 검신, 아니 무신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에게.”


무허가 혀를 찼다.


“그나저나, 아직 오를 이가 나타날 경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강호에 무슨 일이 터진 것이 틀림없군. 열반에 들기 위해 십 년간 폐관에 들고자 했거늘. 한 번 더 강호에 출두해야 하는가.”


‘아.’


조휘는 깨달았다. 명천과의 전쟁이 힘들었던 이유를. 권신은 전쟁의 조짐이 보이기도 전에 열반에 들었다. 죽었다는 뜻이다.


홀로 명천을 막고자 동분서주 뛰어다닌 신개 역시도 수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은둔 고수들이 몇일지는 모르겠지만, 강호의 정점에 이른 이들의 연배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보면 명천이 발호를 늦추고 늦춘 것을 납득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나를 알지만, 나는 자네를 모르는군. 그래. 천마를 닮은 자여. 이름이 무엇인가.”


“조휘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로고.”


“······.”


“그나저나 신기하기도 하지. 풍기는 기질은 천마의 그것인데, 마음속에 품은 뜻은 무척이나 새하얗구나. 백도의 사람인가?”


“백도이기도 하고, 흑도이기도 합니다. 마도이기도 하지요.”


“신기한 친구로군. 백도이며 흑도이고, 백도이며 마도 다라. 공존할 수 없는 색을 한데 포용한 것인가. 그만한 자질이기에 봉우리를 넘을 수 있던 거겠지.”


조휘는 생각한다. 과연, 그가 봉우리를 넘을 수 있던 것이 스스로의 자질 덕인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었다. 혼자서 올랐던 길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림맹주 시절의 조휘는 신개보다도 한참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삶에는 올랐다. 봉우리를 올라 하늘을 보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때문에 대답한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혼자서는 오를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네는 올라서 나와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도움이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아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네.”


“선배들이 앞서 이끌어주셨습니다. 제 등을 바라보는 후배들의 시선이 저를 나아가게 했습니다.”


“······.”


“인연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우연이 겹친 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천마는 말했다. 극한에 이를 가능성이란 것은, 그것의 존재만으로도 극한에 이르렀다는 거라고.


어쩌면 나는 회귀 이전에도 극한에 도달했던 걸지도 몰랐다. 천신의 손에 목이 잘리기 직전,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집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만용이지만, 꺾이지 않는다면 만용이 아니다.



기어코 삶을 거슬러 종착지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조휘는 이미 모든 자격을 충족하고 있었다.


[극월능천(極越能天)]


회귀한 그날부터.

조휘는 극한을 넘어 하늘에 도달해 있었다. 그럴 준비가 끝나 있었다.


미혹을 걷어내고 앞을 바라본다. 소복이 쌓였던 만년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하얗기만 한 눈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인연이 봉우리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武)의 바다에 몸을 던진 이들이다. 배우고 익히며, 상승을 향해 나아간다. 벽에 막히기도 하고, 넘지 못할 절벽이 그들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봉우리를 오른다.


조휘는 팔을 활짝 편 채로 봉우리의 끝으로 다가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손끝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바람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반개한 눈으로 아래를 바라본다.


무림이 눈앞에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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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3 li****
    작성일
    24.01.28 08:44
    No. 1

    단연코 신무협으로 본것중에서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작가님 감사히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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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제일의 (3) +1 24.01.28 424 15 12쪽
157 천하제일의 (2) 24.01.26 452 9 12쪽
156 천하제일의 (1) 24.01.26 404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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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천마 (1) 24.01.23 500 12 12쪽
153 마교 (3) 24.01.22 468 10 13쪽
152 마교 (2) 24.01.21 520 13 13쪽
151 마교 (1) 24.01.19 501 11 13쪽
150 검패 (2) (6권 完) 24.01.17 522 13 23쪽
149 검패 (1) 24.01.16 524 14 13쪽
148 신개 24.01.15 505 14 14쪽
147 천하 (6) +1 24.01.14 546 14 13쪽
146 천하 (5) +1 24.01.09 616 14 12쪽
145 천하 (4) 24.01.08 561 13 14쪽
144 천하 (3) 24.01.07 586 12 13쪽
143 천하 (2) 24.01.05 596 13 13쪽
142 천하 (1) +1 24.01.03 594 13 15쪽
141 핏빛의 연꽃 속에서 (6) +1 24.01.03 533 1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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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핏빛의 연꽃 속에서 (3) +1 24.01.02 556 15 15쪽
137 핏빛의 연꽃 속에서 (2) +2 23.12.30 649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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