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이제 와 새삼 돌이키기에는
“정녕, 갈 참인가.”
“왜, 말려보게?”
“그럴 수만 있다면···. 허나, 내가 언제 네 뜻을 꺾은 적이 있더냐.”
“내 뜻이 아니야.”
새벽녘. 달도 없는 동녘 하늘 끝자락에 먹먹한 어둠이 서리고, 새벽별이 빛을 발한다. 수탉이 울부짖을 시간.
사내의 시선이 먼 하늘에서 내려와, 마주 선 청년에게 향했다.
“그녀는 어찌할 셈이냐.”
“살아서 돌아오면 생각해보지.”
“허면, 뱃속의 아이는?”
요지부동이던 청년의 눈매가 굽이쳤다. 그러나 이내 질끈 감은 눈은 다시 칼날같이 날카롭게 벼린 빛을 발했다.
“형님. 나는 가야만 해.”
“운아. 그것은 집착이다. 세상 모든 일이 어찌 사람의 뜻대로 다 될 수 있단 말이냐. 때로는, 가혹할지라도···.”
“몇 번을 말해야 해?”
청년은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청명한 검명이 울렸다.
“애초에 쥐지 않았더라면 모를까. 이제 와 새삼 돌이키기엔···.”
한숨처럼 말을 내뱉은 청년은 흩뿌리듯, 검 위에 뜬 별들을 베어내고 검집에 검을 꽂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남자가 청년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아이 이름만이라도 지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녀에겐 무어라 말해야 좋단 말이냐! 죽는 날까지 널 기다릴 그 아이···!”
성큼성큼, 걷던 청년의 발이 멈췄다. 잠시 그렇게 무언가를 씹어 삼키듯 잠자코 다물고 있던 입이 열렸다.
그의 눈은 동녘 하늘의 새벽별을 향해 있었다.
“계집아이라면, 단설(段雪)이 좋겠군. 분명 그녀를 닮아서 눈처럼 희고 고운 아이가 태어날 테니 말이야. 형님만 좋다면, 총아(總阿)에겐 좋은 배필이 될지도···. 후후.”
“···.”
“허나 만약, 사내아이라면···.”
뒷말을 잇지 못하던 청년은 아랫입술을 짓씹더니 베어 끊듯 말했다.
“천검(天劍)에게 아들이 있단 이야기가 강호에는 들리지 않게 해줘.”
“그 무슨 소리냐, 이놈! 설마···!"
"사내라면··· 반드시 칼을 쥐게 될 터. 그런 개 같은 운명은 나만으로 족하잖아. 이 굴레에서 구함을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형님 손으로···."
“운아!”
청년은 답하지 않았다. 끝끝내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걸음에는 흔들림도, 거침도 없었다. 그렇게 청년은 곧게 사내의 눈에서 멀어져 갔다.
- 작가의말
- 안녕하세요. 카할입니다.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선작, 댓글, 추천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극랑전>은 매일 점심 12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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