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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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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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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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수면 아래는 은은하며 (2)

DUMMY

그때 누군가 나무 위에서 킬킬, 웃음소리를 냈다.


“거참 보기 좋게 차이셨구만, 그래!”

“무허자.”


무허는 실실 웃으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곧장 악귀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설총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쥐고서 그를 짤짤 흔들어댔다.


“이···! 아우님아!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면 어떻게 찾으라고! 엉?! 한참을 헤맸잖아!”

“진정, 음, 이것 좀, 놓고 진정하, 시지요.”

“진정은 개뿔! 으아! 열 받는다!”

“더 흔들어요, 더! 아주 그냥 막! 모가지 뿌라지게 흔들어버려!!”

“으아아아!”


옆에서 부추기는 득구 덕에 한참을 더 흔들고서야 진정을 한 무허는 긴 한숨을 내쉬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힘들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데, 힘을 빼십니까.”

“우와이씨···!”


괴악한 감탄사를 내뱉은 무허는 설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득구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사람 열 뻗치게 만드는 양반이었더냐?”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건데요.”


딱!


“뭐, 어찌 되었든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된 것 아닙니까?”

“찾는 동안도 진짜 열 받았었는데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이게 깨달음인가?”


무허는 마치 참선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총은 무허 앞에 주저앉아서 물었다.


“보고는 잘 드리고 오셨습니까?”

“보고?”

“예.”

“그런 걸 어떻게 말해? 누구한테?”

“그야 뭐···.”


그러고 보니 무허는 한 번도 자신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말한 적이 없었다. 설총은 어림짐작으로 물었다.


“현현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걸 봐선 현현진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양반이야 내가 여기 나온 것도 모르지.”

“그럼, 무허자를 이번 회동에 참석시키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흐흐, 궁금한가?”


무허가 묻자, 설총은 고개를 저었다. 무허는 김샌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튼 한 번을 안 넘어오는군.”

“필요하면 스스로 밝히셨을 테니까요. 연화신산께서 그러신 것처럼.”


연화신산의 이름을 듣자 무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걔넨 아직 안 왔군?”

“뭐 보고할 게 많은가 보지요.”

“···그걸 어떻게 보고해요!”


멀찍이서 째지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무허는 양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고개를 떨궜고, 설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화신산, 오셨···.”

“말도 없이! 사라지면! 어떻게! 찾으라고! 그렇게! 어?!”

“이것, 좀, 음, 진정, 하, 좀, 빠른, 데···.”

“으아아! 열 뻗친다!”

“더! 더 흔들어요, 더! 아주 모가지를 기냥, 막!”

“으아아아아!”


옆에서 부추기는 득구 덕에 한참을 더 흔들고서야 진정을 한 제갈민은 긴 한숨을 내쉬고 땅바닥에 털푸덕, 드러누웠다.


“우으음···!”


그리고 옆에 머리를 감싸 쥔 무허를 보곤 똥 씹은 표정으로 데굴, 굴러 옆으로 비켜났다.


“아이고, 힘들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힘을···.”


제갈민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 설총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득구가 입을 열었다.


“근데 그 아줌··· 아니, 누님은 어디 가셨대요?”

“뭐?”


제갈민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득구에게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턱, 짚었다.


“방금 뭐라고요?”

“어디 가셨냐고?”

“그 전에.”

“누님?”

“그 전에.”

“아줌···?”

“푸와하핫! 으아, 아이고! 파! 하하하하!”


제갈민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한참을 웃어대더니 눈가를 콕콕 찍으며 물었다.


“그거 연화 언니 말하는 거죠? 으히히힛!”


아뇨, 당신 말하는 건데요. 라는 대답이 득구의 혀끝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득구는 입을 꾹 다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장난을 쳤다간 죽을 것 같은 쌔한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아, 진짜. 첨 보네. 연화 언니한테 아줌마라는··· 풉! 파하하핫!”


득구 얼굴에 침을 한 바가지 뱉은 제갈민은 또 한 바탕 땅바닥을 굴러댔다.


“으윽, 허리 아파라. 이걸로 한 달은 놀릴 수 있···. 응?”


제갈민은 자신을 쳐다보는 세 남자의 시선에 슬그머니 왼쪽으로 물러섰다. 그래도 눈길이 따라오자 이번엔 오른쪽으로 슬쩍 몸을 옮겼다. 그래도 눈길이 따라오자, 버럭, 소리쳤다


“뭐요! 왜 쳐다봐요!”

“흠, 흠···!”

“사람 웃는 거 첨 봐요? 참 나, 진짜. 흥!”


제갈민은 품에서 작은 손거울을 하나 꺼내더니 후다닥, 몰골을 정리하고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언니는 제갈세가로 돌아갔어요. 곧 다시 오기로 했지만.”

“담하 선생님께 알리러 간 거냐?”


무허가 묻자, 제갈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설총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알릴 줄 알고서 말한 겁니다만?”

“그런 건 잘못 말하면 강호가 완전히 뒤집힐 텐데, 어떻게 말해요?”

“뒤집히라고 말한 겁니다.”


그 말에 제갈민과 무허는 동시에 눈을 빛냈다.


“천검의 행적을 찾기 위해 십오 년간 물밑에서만 요동치던 강호의 암중 행사를 수면 위로 드러낼 가장 좋은 미끼 아니겠습니까?”

“소가주 님의 목숨이 위험할 텐데요?”

“각오한 바입니다. 애초에 지금 당장도 천호대인이 제 목을 노리고 있는데요.”


제갈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그렇긴 하지요.”

“우선은, 당신을 지켜보기로 했어요. 아직도 말하지 않은 게 넘쳐나는 것 같으니까···.”


제갈민이 곁눈으로 흘깃 득구를 쳐다보았다.


“궁금한 게 많아서.”

“편하신 대로. 저야 그동안 준비를 할 셈이니, 서두르지 않으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준비요? 무슨 준비?”


설총은 씩, 웃을 뿐 말하지 않았다.



* * *



“뭐, 이런···.”


밤늦게야 산채로 돌아온 달구는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웬 객식구가 자신의 소중한 달구채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꺼져!”

“거,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빽, 소리를 지른 것은 계집이었다. 그때 제갈세가의 계집.


“뭐야, 이것들은 진짜···?”

“우오옷!”


홍두가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오오··· 쓴, 아이, 큼! 선녀님 아니심미까?”


홍두의 말에 제갈민이 눈이 계란만큼 커졌다.


“선···! 그렇죠. 후후. 제가 좀 선녀죠.”


그리고 콧대를 세우고 침상에 주저앉은 세 남자를 향해 말했다.


“방금 들었어요? 다들?”

“뭘?”

“선녀! 선녀라고! 나! 말이야!!”

“난 못 들었는데?”


딴청 피우는 무허를 보고 빠득, 이를 간 제갈민이 설총에게로 눈을 돌렸다.


“···전 들었습니다.”

“이제 좀 알겠어요? 흥! 선녀를 모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시라구요!”

“알긴 뭘 알아. 너 마빡 넓은 거?”

“야, 이 말코 자식아!”


그 촌극을 멍하니 지켜보던 달구는 드디어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나! 가! 나가라구! 이것들이,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냐!!”


달구가 윽박질렀지만 들은 척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득구는 배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야, 배고파. 밥 좀 가져와.”

“···!”


달구는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들 오늘 다 뒤졌어.”



* * *



탁, 탁!


“혹시 처맞으면 기분이 막 좋고, 어? 막 그러냐? 너? 왜 깝쳐?”

“끄으···윽.”


득구는 괜히 손을 더 티 나게 탁탁 털어대며 말했다.


“배고파 죽겠네, 씨!”

“때리는 솜씨가 제법이군그래?”


무허의 말에 제갈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달구가 주먹을 세 번 휘두르는 동안 득구는 정확히 여덟 대를 후려쳤는데 그게 전부 급소에 정타로 박힌 것이다. 이 정도로 깔끔하게 초식을 구사하는 사람은 강호에서도 드물다.


설총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앓는 소리를 내는 달구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너도 좀 때려보고 싶지 않느냐?”

“우그으이씨···!”

“얻어맞고만 살기도 좀 그렇잖아?”

“끄··· 꺼지라고.”

“뭐, 알겠다.”


설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나서 고무래에게 손짓했다.


“···나요?”


설총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무래가 우물쭈물하며 다가왔다.


“우선 이 근방에 석굴사의 고아원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위치를 좀 알려다오.”

“고···아원요? 거기 곽가 놈들 때문에 문 닫았는데.”

“알고 있다. 바람 피할 벽이랑 비 막을 지붕만 좀 빌려 쓰려한다.”

“거긴··· 왜요?”

“한현보에서 쫓겨났으니, 우선은 이슬이라도 피해야 할 것이 아니냐?”

“···?!”


고무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무래의 표정을 읽은 설총이 선수를 쳤다.


“길게 머물 생각은 없다. 알다시피 쫓기는 몸이 아니냐. 너희에게 해를 끼치진 않으마.”

“그··· 왜 송화루라든가.”

“쫓겨난 마당에 돈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래도 말입죠. 그···게 말입니다요.”

“잠깐이라도 머무르면서 득구 녀석에게 이번에야말로 무공을 제대로 가르쳐보려고 한다. 허니, 며칠이라도 묵을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

“뭐, 오늘은 이미 밤이 깊었으니··· 내일 묘시부터 수련하려면 어서 가야겠구나.”

“···예?”


설총은 씩, 웃었다.



* * *



“아, 형님! 기회 아닙니까, 기회! 뭐, 훔쳐보면 되잖아요!”

“안 돼!”

“왜요? 형님이 먼저 훔치자 그랬잖아요?!”


고무래는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벌써 인시 말이다. 묘시부터 수련한댔으니, 지금 당장 뛰어가면 딱 맞는다. 무공을 수련하겠답시고 초식이든 뭐든 펼쳐놓으면 그걸 몰래 훔쳐보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안 돼! 절대로 안 된다!”

“왜요?! 이거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고요! 혹시 알아요? 그 무당도사나 제갈세가의 계집이 자기들도 무공수련 한답시고 나부대고 있으면 무당의 무공이나 제갈세가의 무공을 훔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달구는 이맛살을 잔뜩 끌어모은 채로 끙끙대다 말했다.


“고무래.”

“예, 형님! 말씀만 하십쇼!”

“이건 그 미친개 주인의 수작이야. 지금 가면 무공을 구걸하는 꼴밖에 안 돼!”

“아니, 가르쳐달라고 가서 비는 것도 아니고 몰래 훔쳐보는 건데 왜요?!”

“안 돼!”



* * *



설총은 물끄러미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안 왔군.”

“뭐, 제 복인 게죠. 빨리 올수록 제 놈에게 좋은 것을.”

“끝까지 안 올 거라곤 생각 않는군?”


설총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 들었다.


“끄아하아암···.”


득구는 반쯤 감긴 눈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설총은 혀를 찼다. 그리고 우득, 하고 손가락을 풀기 시작했다.


“어이쿠, 시작인가? 무공을 수련하는 장면을 훔쳐볼 수는 없으니···.”

“괜찮습니다.”

“뭐?”

“그런 식으로 가르쳐서 될 놈이 아닙니다.”

“뭐 어쩌려고?”

“뭐, 얻어맞다 보면, 알아서 배울 겁니다.”

“오우···!”


무허는 새하얀 이를 드러낸 설총의 상큼한 미소에서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 댓! 추! 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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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8화. 수면 아래는 은은하며 (1) +3 23.10.18 1,074 17 18쪽
25 7화. 쟁선(爭先) (3) +2 23.10.18 1,049 19 17쪽
24 7화. 쟁선(爭先) (2) +2 23.10.18 1,057 14 15쪽
23 7화. 쟁선(爭先) (1) +2 23.10.18 1,114 12 17쪽
22 6화. 천검의 핏줄 (3) +3 23.10.18 1,094 18 17쪽
21 6화. 천검의 핏줄 (2) +3 23.10.18 1,069 17 14쪽
20 6화. 천검의 핏줄 (1) +3 23.10.17 1,162 14 15쪽
19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4) +4 23.10.17 1,128 14 15쪽
18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3) +4 23.10.17 1,143 15 14쪽
17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2) +2 23.10.17 1,178 15 15쪽
16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1) +2 23.10.17 1,255 16 14쪽
15 4화. 혈연 (3) +2 23.10.17 1,244 18 15쪽
14 4화. 혈연 (2) +2 23.10.17 1,251 19 15쪽
13 4화. 혈연 (1) +2 23.10.17 1,313 19 15쪽
12 3화. 들개도, 늑대도 (3) +2 23.10.17 1,310 18 15쪽
11 3화. 들개도, 늑대도 (2) +2 23.10.17 1,400 19 14쪽
10 3화. 들개도, 늑대도 (1) +3 23.10.16 1,497 21 14쪽
9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3) +2 23.10.16 1,540 24 13쪽
8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2) +2 23.10.16 1,652 25 13쪽
7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1) +2 23.10.16 1,928 26 15쪽
6 1화. 미친개 (5) +2 23.10.16 1,938 33 15쪽
5 1화. 미친개 (4) +3 23.10.16 1,951 31 13쪽
4 1화. 미친개 (3) +2 23.10.16 2,178 32 15쪽
3 1화. 미친개 (2) +1 23.10.16 2,633 36 14쪽
2 1화. 미친개 (1) +2 23.10.16 3,821 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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