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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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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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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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천검의 핏줄 (3)

DUMMY

“한설총. 네놈이 지금··· 감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이 정천호 진량을?!”

“그렇습니다.”

“무, 뭐라?!”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협박보다는 권유지요.”


설총은 검을 한 바퀴 휘돌려 큰 원을 그리고 화려하게 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따닥!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게 걸쇠를 걸었다.


챙!


전조의 손에 들린 칼이 반토막으로 갈라지더니 검극이 있는 앞부분이 그대로 땅에 떨어져 거꾸로 꽂혔다.


“···!”

“한현보의 소가주로서, 만약 누군가 한현보를 힘으로 침범하고, 그 식솔들의 목숨을 해하려 한다면─ 응당, 그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이 소가주된 자로서의 도리이지 않겠습니까?”


전조는 식은땀을 흘리며 진량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진량의 표정이 살짝, 얼어붙었다.


‘최소, 공력을 개방한 절정고수 이상’이라니. 한설총이? ‘그 한현보’에서?


강호의 무인과 군문의 무인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 두 부류는 무예를 갈고닦는 목적과 방식이 판이하니까. 다만, 군문세가가 무과 입시의 지름길로 득세한 이래 상당수의 강호인이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군문에 투신한 덕에, 군에서도 나름 대략적인 판단기준이 잡혀 있었다.


삼류라면 군문의 일반 병사보다 약하다.


이류라면 활을 쏘는 궁병을 제하고 근접전에서 열 명의 병사를 홀로 상대할 수 있다.


진기를 발출할 수 있는 일류고수부터는, 병사로는 상대가 힘들다. 역시 무공을 수련한 장수와 병사가 맹수를 사냥하듯 몬다면, 잡을 수 있다. 장수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백인장과 백 명 정도의 병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력을 개방한 절정고수─


강호에선 문을 열었다는 뜻으로 ‘개문고수(開門高手)’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수준의 무위를 뽐낸다. 그냥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는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몇 날 며칠을 싸워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체력도 강하다.


‘처음부터 군대를 이끌고 왔어야 했나···?’


진량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현보엔 절정고수는커녕, 일류고수도 없다. 그런 줄 알았다. 그렇기에, 일류고수의 끝자락에 있는 전조라면, 한현보 전체를 다 뒤집어 엎고도 남을 만한 전력이라 여겼다.


‘지금은 물러나고, 이후에 군대를 이끌고 다시─.’


“가족 간의 일에, 사사로이 군을 동원하시렵니까?”

“···?!”

“그렇게 된다면, 더는 가족의 일이 아니라··· 피를 피로 씻는 전쟁이 되겠군요.”


설총은 검을 치켜들었다.


키이이잉···!!


맑은 검명(劍鳴)과 함께, 설총의 검이 묘한 반사광을 발한다. 아니, 이건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광이 아니다.


“거, 검기(劍氣)···!!”


곁에 선 전조가 진량을 감싸듯 물러서며 중얼거린다. 진량은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감이 마치 구 층의 석탑만큼이나 크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피를 피로 씻는 전쟁을 원하십니까?”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량은 전조를 밀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검 앞에 목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디, 한 번 해보아라!! 감히 대명제국의 정천호인 나를! 이 진량을!! 해하고도 네놈과 네 아비가, 한현보가!! 이 중원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있을성 싶으냐?! 감히 천자의 군대를, 황제 폐하의 대명군(大明軍)을 능멸해?! 이 노오옴!!”

“황제 폐하의 대명군을 능멸하시는 것은, 제가 아니라 정천호 대인이십니다. 감히 황제 폐하의 대명군을 사사로이 일으켜, 황상의 충성된 양민(良民)을 짓밟고, 그 목숨마저 해하려 하는 것은, 엄연히 국법에 어긋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정천호다!! 나의 군대는 나의 지휘권 아래에 있느니라!!”

“숙부님.”


진량은 자신을 숙부라 부르는 이 애송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그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수면 아래의 깊은 물처럼 냉철히 가라앉은 그 눈을 보고 있자니, 감정에 휘둘려서 상대했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와 한현보의 무사들은 바로 올해 봄까지, 황하의 수비들을 여럿 토멸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관료분들도 제법 있지요. 혹, 숙부께선 황철웅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알고 계십니까?”

“···!!”


그야 모를 턱이 없다.


정7품인 감찰어사는 무려 1,200여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정5품의 정천호보다 두 품계나 아래인 직급이긴 하다. 하지만, 감찰어사는 다른 이도 아닌 황제 폐하의 직속인 도찰원(都察院)의 관료이며, 정기적으로 황제 폐하와 직접 대면하여 보고를 올리는 이들이다.


만약, 감찰어사가 직접 진량의 명분을 부정하고, 한현보의 편을 든다면─


“이까짓 전각, 이까짓 현판. 저는 다 버릴 수 있습니다. 숙부께서 전쟁을 원하신다면··· 어디 한번 해보지요. 하지만, 그 끝이 숙부께서 생각하시는 결말로 맺어지진 않을 겁니다.”

“한설총! 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얼굴이 새파래진 한주윤이 소리치자 한설총은 미간을 좁히고 물러섰다. 잠시 눈꼬리를 떨던 설총은 무언가 결심한 듯 짧은 숨을 뱉고 돌아섰다.


“아버님.”

“총아···.”

“혹시, 팔년 전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제가 정식으로 소가주의 위를 받고, 한현보의 신물과 계보를 물려받은 날 말입니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날 제가 아버님께 드린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


한주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과 처음으로 다툰 날이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날의 치기 어린 제 방식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설총은 섬전 같은 속도로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마음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챙!


전조가 입술을 비틀고 이를 드러내며, 칫, 혀를 찼다. 비겁하게 기습까지 했음에도,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니. ‘절정의 벽’이 전조의 가슴을 짓누른다.


수하의 검을 빼앗아 달려든 전조의 검극을, 설총은 검날로 받아내어 지탱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제 뜻을 분명히 밝혀둘까 합니다.”

“총아.”


설총은 검을 짓눌러오는 전조의 경력을 슬쩍 흘려냈다. 힘이 빠져나갈 곳이 생기자 강물이 굽이치듯, 전조의 칼이 빠져나갔다. 전조는 이를 악물고 검의 방향을 틀어 설총의 목을 향했다.


스컥!


차분한 발걸음으로 어느새 걸어간 설총이 전조를 지나쳐 진량 앞에 섰다.


“저는 한현보를 군문세가인 채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뒤늦게 검을 쥔 오른팔이 깊게 베여 흐르는 피를 본 전조가 뒤늦게 절규했다.


“으아아악!”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설총은 검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었다.


“오늘은 이쯤 하시지요. 여송의 일은, 제가 어떻게든 바로잡겠습니다.”

“···.”


진량의 눈이 검을 놓고 몸을 떠는 전조를 향했다. 진량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겠다.”


진량은 전조가 기습까지 하는데도 지켜보고만 있던 다른 호위들을 돌아봤다.


“쯧.”


수하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각각 진량과 진여송, 전조를 부축했다. 수하들의 부축을 받고 발을 옮기던 진량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하지.”

“무얼 말입니까?”

“한현보를 우습게 봤다는 걸.”

“···.”

“솔직히 그 생각엔 아직 변함이 없다. 단지 네놈 하나를 달리 보았을 뿐이지.”


진량은 돌아서지 않고 고개만 슬쩍 틀어 시선을 드러냈다. 마치 악어 같은 눈이다.


“그 의미를 알겠나?”


진량의 지독한 살기에 설총은 오히려 검을 칼집에 다시 꽂아 넣었다. 설총은 답을 하는 대신 가만히 진량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진량은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고 걸어갔다.


“내 아들은 내가 책임질 것이다. 네놈들에겐 맡겨두지 않겠어.”



* * *



“오라버니!”


한현보를 나서는 진량에게 헐레벌떡 뛰어든 이는 진 부인이었다.


“오라버니, 우매(愚妹)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닥치거라.”

“!”

“대화는 끝났다.”


진 부인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진량을 따라 나온 한주윤은 그런 진 부인을 진량의 시선에서 가리듯이 막아서고 말했다.


“진 대인.”

“···가주!”


주약은 대경실색했다. 한주윤이 진량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모든 책임은 가주인 제게 있습니다.”


한주윤의 담담한 어조에, 진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를 드러내고 날카롭게 물었다.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제 목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목은 당신 것이 아닌데.”

“···!”

“고작, 목 하나로 책임을 지겠다고?”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총아···. 총아만은.”


진량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른 걸 걸어봐.”

“무엇을 말입니까?”

“한현보.”


한주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말해봐! 이제 다시는 한현보란 이름이 내 귀에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리하겠느냐?!”

“그건···.”


한주윤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는데, 진 부인이 진량의 바짓가랑이로 달려들었다.


“오라버니! 제발!”


진 부인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오라버니, 제발···. 여기서 이러실 것이 아니라, 맞아요! 집무실, 집무실로 가서 차분히 앉아 말씀을 나누셔요! 우,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잖아요!”

“이야기는 끝났다고 했다.”

“오, 오라버니···.”


진량은 매몰차게 진 부인을 떨쳐냈다. 한주윤은 놀란 눈으로 달려가 진 부인을 부축했다. 놀람은 진 부인이 훨씬 큰 듯했다. 진량이 자신을 밀쳐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진 부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가족의 연은 오늘부로 끊어졌다. 너는 내 동생이 아니고, 저 자는 내 형님이 아니며, 한설총, 그놈은 내 조카가 아니다.”

“···!”

“그리고 난 이미 지휘사사에 연통을 넣었어. 아 참, 가족도 아닌데, 예를 지켜야지.”

“···.”

“한 가주, 위(衛)의 현 지휘사(指揮使)가 누군 줄 아시오?”


한주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짐작하는군그래. 바로 맞혔소.”


진량은 싸늘하게 선고를 내리듯 말했다.


“홍위윤··· 아니, 홍 대인께서 바로 위(衛)의 지휘사시오.”


진량의 말에 한주윤은 저도 모르게 진 부인의 팔을 부축한 손을 꽉 틀어쥐었다.


“십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생각하시오.”

“진 대인···.”

“감히 은혜도 모르고, 뻔뻔하긴!”


진량은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소리를 질렀다. 진량은 고개를 크게 털었다. 그래도 분이 가시질 않는지 핏대 선 이마를 손으로 거칠게 쓸며 말했다.


“이제 한현보와의 인연은 끝이오, 가주.”


진량이 문을 나서자마자, 말과 함께 대기하던 수하가 달려왔다. 천천히 닫히는 문틈 사이로 진량은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화려하게 사고를 치셨군그래.”


무허는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누굴 탓할 처지가 못 되어 보이는군.”


설총은 쓰게 웃었다.


“무허자라면 어찌하셨겠습니까?”

“나? 이래 봬도 난 도사라네. 속세의 일은 잘 모르지.”

“웃기시네. 단칼에 목을 날려버리고 어디 음지 깊숙한 곳에 묻었겠지. 음흉하게 말야.”


제갈민의 말에 무허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 말만 한 처녀가 참, 입놀림에 조심성 없기는. 요 조동아리에 위험수위란 게 없어요.”

“뭐야?!”


둘이 옥신각신 각을 세우는 것을 말릴 기운이 없던 설총은 그냥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로 방을 나섰다. 밖에선 득구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퍼져 있었다.


“···설마 이게 다 저, 때문인가요?”

“그렇다.”

“허···.”


득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 미친 샊···. 큼. 그 미친 분이 왜 그렇게 미친놈처럼 화를 내는지도 이해가 잘 안 가고. 가주님도, 도련님도 진여송이 고쳐준다고 그랬잖아요.”

“그랬지.”

“근데 왜 가주님 싸대기를 그렇게 때려요?”

“···싸대기가 아니라 뺨이라고 해.”

“가주님 뺨을 왜 그렇게 때려요?”

“···.”


설총은 잠시 우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정리가 안 돼서 속 시원히 뱉질 못하겠다.


“도련님. 나는요.”


설총이 우물대는 동안 득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가요.”

“뭐가 말이냐?”

“진여송 같은 샊···. 놈들요.”

“왜?”

“싫다는데 괴롭히고, 안 된다는데 뺏고, 하지 말라는데 하잖아요. 그걸 너무 즐겁게 하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여송이? 언제 그랬는데?”

“설마 모르셨다고요? 뻥 치지 마십쇼.”


설총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다 알잖아요.”

“그래, 알지.”

“나는요, 가주님이나 도련님도 잘 이해가 안 가요.”

“왜?”

“그런 새끼들은 상판을 싹 갈아버···. 큼. 죽을 만큼 패줘야 하는데.”

“뭐 하러?”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죠.”


설총은 피식, 웃었다.


“득구야.”

“예?”

“맞아보니 어떠냐?”

“···아프던데요.”

“아, 내가 잘못했다. 뭐 이제부턴 좀 고쳐봐야겠다. 도련님이 오늘 아주 큰 교훈을 주셨구나, 뭐 이런 생각이 좀 들더냐?”

“···아뇨.”

“그럼 무슨 생각이 들더냐?”

“열 받죠. 화도 나구.”

“다음부턴 내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냐?”

“아뇨.”

“그럼, 왜 내가 널 때릴 때마다 꼬릴 내린 게냐?”

“그야, 아프니까···.”

“그래. 그렇지.”


설총은 득구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그럼, 오늘은 왜 얌전하게 구는 거냐?”

“···글쎄요.”


뚱한 표정으로 눈을 피하는 득구는 귀 끄트머리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난 말이다.”

“···예.”

“맞아야 고치는 것들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헤?”

“그건 짐승이지. 사람은 이해하고, 납득해야 고쳐진다.”

“근데 저 만날 쥐어박았잖아요.”

“그러니 내 늘 네놈에게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냐.”

“···제길.”

“아무리 돼먹잖은 놈이라도, 사람이라면 폭력으로 가르쳐선 안 된다. 이건 우리 아버지, 가주님께 배운 것이지.”

“돼먹잖았으니까 짐승 새낀 거잖아요.”

“그럼 너는 짐승들 사이에서 살게 되지 않느냐?”

“···예?”

“다 돼먹잖았으니, 전부 짐승인 채로 내버려 둔다면 네 세계엔 온통 짐승들뿐이잖느냐.”

“···.”

“그리고 짐승들 틈바구니에 사는 너도 짐승이 될 뿐이지.”


득구는 멍한 표정으로 설총을 쳐다보았다. 설총은 쯧, 혀를 찼다.


“사람은 가까이하는 것을 닮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래요? 아가씬 저 안 닮았는데. 이쁘잖아요.”


설총은 득구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으악!”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를 말하는 거다!”

“···그게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보면 알지. 네놈이랑 달구 녀석은 꽤 닮지 않았느냐?”

“뭐라구요?!”

“하지 말라는데 하는 놈들이 미우냐?”

“···네.”

“그런 놈들에게 똑같이 갚아줘야만 직성이 풀리겠느냐?”

“당연하죠!!”

“놈들과 똑같은 짐승이 되어야만 하겠느냐?!”

“···.”

“짐승 새끼가 되지 마라. 하지 말라고 울부짖는데 하는, 개새끼가 되지 마라. 자기 좋고 싫은 건 알아도, 남이 좋고 싫은 건 모르는 미친개가 되지 마라!”

“···.”

“아흔아홉을 빼앗고도 하나를 못 빼앗아서 안달 내는 그런 밑 빠진 놈들을 본받지 마라.”

“···.”

“너는 짐승의 세계에서 짐승의 법칙으로, 짐승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느냐?”


득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달포 전에 만났던 거지 영감이 떠올랐다. 그때 입에 담았던 말이 떠올랐다.


‘개를 잡으려면, 미친개가 돼야지!’


“바꿀 수 있겠느냐?”

“!”

“바꾸고 싶은 게 아니냐? 내버려 두기 싫은 것이 아니냐?”

“···.”

“그렇다면 선함을 알고, 정의를 배워라.”


설총이 득구의 어깨에 손을 얹자, 득구는 처음으로 그 손의 온기가 따듯하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무언가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맛보았다.


“놈들의 법도를 뛰어넘어라. 놈들의 세계를 뛰어넘어라!”

“···!”

“갈 거라면 끝까지 가야 사내고, 사내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

“내가 기꺼이 네 길이 되어주마.”

“도···련님.”

“나를 배우겠느냐?”

“···.”


득구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괴상한 소리가 날까 봐. 남들 앞에선 한 번 내본 적이 없는 소리를.


“앞으론 형님이라 불러라.”

“···예?!”

“너흰 그게 편하잖냐.”

“···그게 무슨.”

“너희 두 놈을 내 ‘패거리’로 들여야겠거든.”


설총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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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화. 들개도, 늑대도 (3) +2 23.10.17 1,310 18 15쪽
11 3화. 들개도, 늑대도 (2) +2 23.10.17 1,399 19 14쪽
10 3화. 들개도, 늑대도 (1) +3 23.10.16 1,497 21 14쪽
9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3) +2 23.10.16 1,540 24 13쪽
8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2) +2 23.10.16 1,651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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