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도 막내손자는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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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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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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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가르침

DUMMY

영초가 녹아든 쿠키.

남들은 평생을 가도 얻기 힘든 기연이다.

자리를 깔아줬는데 내숭 떠는 것도 미련한 짓이겠지.

나는 무신이 내민 쿠키를 집어삼켰다.

달달한 맛이 퍼지다가 끝에 이르러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몰아 닥치는데....


“되었다.”


무심한 목소리가 모든 기운을 내 단전에 정제시켰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쿠키를 먹자마자 퍼지려던 기운을 무신의 공력이 파고들어 단전으로 모아버렸다.

뭔가를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내 단전 속에 20년의 공력이 쌓였다.

단 하나의 불순물도 없는 공력은 지금의 만환공으론 불가능할 정도의 정순함을 자랑했다.

이게 무신의 운기법인가.


“급격히 불어난 내력은 너의 통제를 거부하겠지. 하나, 지금 내가 준 20년 공력을 바탕으로 삼아 전체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으로 네 통제 하에 둔다면, 2년 안에 검기를 꽃피울 것이다.”

“거, 검기요?!”


검기는 엑스퍼트의 상징이다.

초급 엑스퍼트가 검운을 만든다면, 중급 이상부턴 운무가 형태로 자리 잡아 검기로 탄생 된다.

즉, 무신은 지금 내가 2년 안에 엑스퍼트 중급에 오를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네가 지금 얻은 내력으로 너 자신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에 따라 시기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엑스퍼트에 오를거란걸 무신은 부정하지 않았다.

검귀 이후로 단호한 평가를 내려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동시에 몇 번 만나지 않았음에도 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무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지금 네가 익힌 심법의 연원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구나. 다만, 그것은 너를 상하게 만드는 심법이 아니니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를 가르친 사람에게 보답토록 하거라.”


그러고 보니 무신을 포함해 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심법을 따로 배웠다는 사실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 걸까.


“괜찮은 겁니까?”


나는 처음에 했어야 할 질문을 이제야 조심스럽게 꺼낸다.


“무엇이 말이냐.”

“제가 다른 심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요.”

“사도의 심법인가?”

“아,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 된다는 거지?”

“가문의 무학이 아닌 다른 무학을 배웠으니까요.”


무신의 표정은 덤덤했다.


“아그네스 안에 수백이 넘는 가문이 속해 있다. 그들 중 일가를 이룬 자들은 높은 서열을 부여받지. 설령, 직계라 하여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럼 아그네스의 무공을 배우지 않은 자들이 직계를 업신여긴다고 호되게 질책해야 할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건 그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룬 성과니까요. 노력을 폄훼하는 건, 재능을 존중한다는 아그네스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순간, 무신의 표정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수백의 가치가 쌓이고, 수천의 가능성으로 퍼져나가, 수만의 무학이 모여드는 곳. 아그네스는 네가 말한 가치를 지켰기에 무학의 종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

“세상 모든 무학을 모으는 방법은 나와 다른 자들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이해하여 내게 부족한 점을 배우는 것에서 비롯된다. 지금 네가 익힌 심법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도의 무학이 아니라면 가문의 다양한 무학과 견주어 서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은데, 어찌하여 그것을 배웠다고 나무랄 수 있겠느냐.”


나는 그제야 내 무공의 연원을 어째서 물어보지 않는지 깨달았다.

무신은 아그네스의 무학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밑에 다른 무학이 치고 올라와도 결코 아그네스를 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

그들의 무학이 아그네스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거라는 기대감.


세계를 아우르는 절대 무신은 다양한 무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밟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함은 반드시 또 다른 무공을 가지고 와서 서로 발전할 거라는 믿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네가 바란다면 가문의 무학을 가르쳐줄 수 있다. 한데, 가전 무학이 지금 네가 익힌 무공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

“아그네스는 명가라서 당연히 최고의 무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신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상승 무학이 최고라고 말하며 집착하지. 아그네스의 무학을 탐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신이 펼치는 무학이야말로 현 시대를 대변하는 최고의 무공이다 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나는 잘못된 말이라 꾸짖어주고 싶구나.”

“어째서 입니까?”

“그들에게 알맞은 무공은 상승 무학이 아니다. 자기 몸에 맞게 쌓아 올린 토대가 그들의 가능성을 끌어올릴 무학이다. 하여, 최고의 무학이란 지금 내게 필요한 무학이다.”

“필요한 무학.....”


검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만환공에 내게 맞는 심법을 채워 넣으라고.

세상 어떤 무학도 네가 직접 골라 배운 무학보다 뛰어날 수 없다고.


초월자들이 바라보는 경치에서 모든 무학은 동일하다고 보는 걸까.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지금 내게 딱 맞는 무공이 내 몸에 필요한 무학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가전 무학은 직계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무혼식도 끝났으니 총관에게 열람을 희망하면 얼마든지 가져가 쓸 수 있지. 하나, 그렇게 배운 직계들의 무공은 모두 다양한 색을 띄게 된다.”

“자기에게 맞춰 바꿔나가기 때문입니까?”

“그래. 시작은 가전 무학이었지만, 수많은 자들과의 대련으로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무학을 새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 하여, 아그네스의 가전 무학은 토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토대.....”

“네 토대는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자유로움으로 느껴지는구나. 우선 그것부터 온전한 네 것으로 만들거라. 그리고 다른 무공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길 때, 가전 무학으로 너만의 무학을 만들어 내거라.”


검귀는 무학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대종사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었다.

아그네스는 어려서부터 무학의 창의성을 기르고 가전 무학을 토대로 자신만의 무학을 만들어 내도록 가르친다.

사실 처음에 난 직계들이 무신에게 쩔쩔 맸을 때, 무학의 성취가 정체된 사람들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무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각자, 자신만의 무학을 만들어 낸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다.

어째서 아버지가 재능이 없다고 좌절했는지 조금은 이해되었다.


“결국, 무관에서 2달 배웠다는 말은 거짓이었구나.”

“.......!”


무신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난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다른 무학을 오래전부터 배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놀랄 필요 없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하긴, 무혼식에서 우승했으니 무관에서 2달이란 말을 누가 믿겠는가.


“사람들의 평가엔 한 방울의 독이 섞여 있다. 그자들은 분명 너를 게빈과 저울질 하겠지. 그리고 게빈 보다 네 재능이 더 위라고 판단 된다면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할 것이다.”


무신이 나를 응시했다.


“이런 가문에 들어온 너의 꿈은 무엇이냐.”

“저는......”


막연하게라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난 그냥 무공을 배우는게 재밌었다.

아그네스에 온 것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강해지고 싶습니다.”

“왜?”


그 한마디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목적으로 강해지고 싶은지 명확한 이유를 이제부터 찾아가거라. 그곳에 네가 바라는 답이 있다.”


그제야 나는 무신이 어째서 나와 함께 이곳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무신은 내게 단순한 무공 뿐만이 아니라, 아그네스에 흐르는 기류, 나를 평가하는 자들의 시선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목적에 대해서 명확한 방향을 함께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공과 사를 구분토록 해라.


그건 아마도 공적인 자리에서 할 수 없는 조언을 사적인 자리에서 하고 싶은 가족의 마음이 깃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할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설명보다 무신이....아니, 할아버지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무신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시선 한 줄기에 따스함이 깃든 것 같았다.


“영초도 온전히 소화 시켰으니, 이제 다음 장소로 가자꾸나.”

“네!”


어느새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날아가는 이 상황이 즐겁게 느껴졌다.


***


블레이크는 자신의 흔적을 더듬어갔다.

언제나 혼자 왔던 길에 아들이 아닌 손자가 함께 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와 내 추억을 떠들어 본적이 언제였던가.’


여유가 생겼을 땐, 가문에 체계와 위엄이 잡혔다.

자식들마저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경외의 대상으로 여겼다.

누구도 자신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겠다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각자 일가를 이루며, 능히 대륙에서 종사의 기질을 가졌노라고 부를만한 강자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루인과 함께 젊은 시절의 격렬한 추억을 되새겨보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검기로 새겨진 흔적은 이렇듯 가늘어지게 된다.”

“좁아질수록 경지가 높다고 보는 건가요?”

“그건 세간의 평가일 뿐이다. 검기는 너의 무기와 무공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좁아질 수도 있고, 폭넓게 뒤집어버릴 수도 있지. 망치로 가늘게 자르지 못한다고 해서 망치에 두른 기운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명석한 손자는 한 번에 말귀를 알아듣는다.


“아닙니다. 무결처럼 얼마든지 형태를 바꿀 수 있다면, 설령 검으로 긋는다 해도 둔하거나 거칠게 검기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기의 자유로운 운용 방식은 심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단전과 손끝이다.”

“시작과 끝이란 말입니까?”


단순히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핵심을 정확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다면 발끝에서 타고 오르는 기운을 정제시키며 외부에 발산하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굳이 검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조작 방식에 따라 적을 치는 무기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호신강기라고 부르지.”

“호신강기....”


배운 것을 응용해서 머릿속에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 빠르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단전에서 바로 기운을 뽑지 않고, 항상 신체의 일부를 거쳐야 하는 겁니까? 바로 기운을 사용할 수 있다면.....”


블레이크는 자신이 거쳐 온 시행착오를 똑같이 되짚는 손자에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알려줬다.

마스터에 이르는 흔적을 더듬으며 앞으로 닥칠 루인의 벽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불과 반나절 만에 이 모든 걸 루인은 머리에 새겼다.


‘하나를 알려주면 반드시 그 하나를 파고들어 이해한 순간, 열 개, 백 개로 상상을 펼쳐나가는 재능.’


심상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현실에 뜻한 바로 구현해내는 것이, 지금 루인이 배우는 밑바탕이다.


‘더 알려줄 게 없나.’


이미 마스터에 이르는 길을 모두 알려줬다.

흔적을 되새긴다면 반드시 자신의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 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자세도 모두 교정을 끝내놨으니, 루인은 이제 세상에 나가 익시드 1급의 완숙한 모습을 선보일 것이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무엇을 빼놨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블레이크가 루인에게 필요한 또 다른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 아이는 지금 경험이 부족하다.’


이제 곧 12 무객들을 따라 세상에 나서야 한다.

다양한 자들을 맞닥뜨렸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지 중요하게 판단할 것이다.


‘무혼식에 참여한 자제들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안전장치가 된 상태에서 맞닥뜨렸다. 목숨을 거는 전장은 다르지. 규칙 없는 곳에서 기습적으로 덮쳐오는 다양한 무기에 적응할 방법도 알려줘야겠군.’


블레이크는 세상 대부분의 무기를 극성으로 연마했다.

적어도 루인이 과하게 생소한 무기가 아니라면 세상에 나서기 전, 어느 정도의 익숙함을 새겨줄 순 있다.

결정한 블레이크가 기운을 일으켜 주변의 바싹 마른 나무를 베어버렸다.

금세 다양한 형태의 무기들이 만들어졌다.


“흔적을 새겼으니 이젠 경험을 쌓아야지.”


종종 직계들에게 해주던 대련을 응용했다.


“나는 지금부터 12가지의 무기로 너와 대련 할 것이다.”

“제, 제가 할아버지와요?!”

“내 수준은 결코 익시드 1급에서 벗어나지 않을 게다. 만약, 내가 익시드 1급을 벗어난 힘을 쓴다면 네게 좋은 옷 한 벌을 하사하마.”

“옷이요?”

“내 기운은 잘 흐르게 하고, 상대의 기운은 어느 정도 면역이 있는 좋은 소재의 옷이다.”


루인의 눈이 초롱초롱 해지자 블레이크는.


‘역시, 아이군.’


이라고 생각하며 직계들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읊었다.


“오늘 하루 네게 새겨질 경험은 다양한 각도에서 치고 오는 변수를 파악하여 대처하는 무론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겠지. 나는 이것을 수를 놓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지금껏 많은 아이들이 지금 같은 과정을 거쳐갔지. 그러나 통과한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첫째 아버지신가요?”

“게빈이다.”


순간, 루인에게 흐르는 승부욕의 기질을 블레이크는 놓치지 않았다.


“게빈이 익시드 4급이었던 당시에 똑같은 4급으로 상대해줬었다. 그리고 녀석은 내게서 3급의 기운을 뽑아내는데 성공했지.”

“감사히 대련하겠습니다!”


승부욕과 달콤한 보상.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이 두 가지가 바탕이 된다면 아이들은 무척 잘 따른다고 블레이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네가 원하는 무기를 고르거라. 여러 가지 골라도 상관없다.”


줄곧 블레이크의 가르침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망령이 승부욕을 자극받았다는 사실을.


***


[끌끌끌끌끌끌.]


무신지로엔 나오지 않을 거라던 검귀는 다시 본인의 말을 철회하고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평소와 조금 다르다.

기이한 열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니,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저 노인네가 마침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수련을 시켜주려 하지 않더냐.]


다양한 무기로 경험을 쌓게 한다는 거?


[내 분명 저 자의 가르침이 내 가르침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다음 단계의 무론을 논함에 있어 감히 ‘수 싸움’을 거론하는 이상, 내 가르침을 침범하는 방식은 허용할 수 없지.]


검귀의 입가에 서슬 퍼런 미소가 맺혔다.

세상 천지에 무신을 앞에 두고 가르침을 논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터무니없는 자신감에 걸맞은 스산함을 흘리며 검귀가 씨익 웃었다.


[마침 잘됐군. 안 그래도 만병지신이라 불리는 자의 병기술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한 번 견식 해보고 싶었다.]


이건 내 대련....


[지금부터 내 말에 따라 휘둘러보거라. 단언컨대, 그것만으로도 넌 시야가 넓어지고 병기술에 익숙해질게다.]


....내겐 이미 많은 무공이 있다며?

더 배워봐야 의미 없다며?!


[이놈아. 이건 무공이 아니라 경험이다. 네가 다양한 각도에서 원하는 순간에 최선의 무결을 끌어내도록 맞춰주는 숙련 작업이라고 볼 수 있지.]


틀렸다.

검귀는 더 이상 뭐라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요 근래 무신찬양론을 계속 읊었더니, 검귀가 자주 삐졌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하필이면 검귀가 다음에 학습시킬 것을 할아버지가 여기서 먼저 시작하려 했다.

교육자의 자존심인가.


[도화지에 색을 뿌리는 것은 내 특권이거늘.]


어느새 서슴 없이 욕망을 내뱉는 검귀.


[이 대련으로 너에게 수 싸움이라는 가르침과 무결의 자유로운 전환방식, 온갖 무기의 대처법 그리고 저놈이 약조했던 옷가지를 함께 쥐어줄 것이다.]


뭔가 많다.

아주 작정을 한 듯했다.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검귀는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끌끌끌, 본좌가 없는 시절에 태어나 신이라 불리는 시답잖은 재능이여! 그 몸에 본좌의 가르침을 새겨주마!]


아아, 왜 내 깨달음을 빙자해서 자신의 승부욕을 불태우는 걸까.

나야 얻을 것이 많아 좋지만, 결국 움직이는 것도 나잖아?


“네가 원하는 무기를 고르거라. 여러 가지 골라도 상관없다.”


검귀는 이미 내가 쥐어야 할 것에 자리했다.


[한 자루면 족하다.]


내가 검을 들어 올리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익시드 1급에 해당하는 기운만 흘려보냈다.


“선공은 언제나 네가 시작이다.”


새하얀 의복에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몹시 고고한 자태에 틈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익시드 1급이다. 너와 동급에 딱 맞췄다. 하지만 틈을 읽기 어렵지?]


동급으로 실력을 낮췄다고 하지만 어디서부터 치고 들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건 네가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상황만 보고 대응했기 때문이지. 상대가 반응할 겨를도 없이 찍어눌러 왔었지만 그것도 엑스퍼트부턴 쉽지 않다. 단지, 검기만 휘두른다고 엑스퍼트가 아니야. 수 싸움을 통해 네가 원하는 판에 적을 끌어들여야 비로소 자세를 갖췄다고 할 것이다.]


머릿속에 상대의 행동까지 예측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유도하라는 과정이 생각만으로도 어렵게 느껴졌다.


[뭘, 익숙해지면 아주 쉬워. 길을 열고 싶다면 상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곳부터 공략하면 되거든.]


검귀가 할아버지의 몸을 쓱 훑었다.

어디부터 노릴지 탐색하는 강자의 시선이 이내 한 곳에 머물렀다.


[첫 수.]


검귀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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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격돌 +12 23.12.08 7,176 167 16쪽
26 격돌 +14 23.12.07 7,024 157 15쪽
25 격돌 +7 23.12.06 7,172 146 13쪽
24 격돌 +11 23.12.05 7,860 140 14쪽
23 쟁탈전 +9 23.12.04 8,623 148 16쪽
22 쟁탈전 +7 23.12.02 9,126 161 15쪽
21 쟁탈전 +17 23.12.01 9,730 182 17쪽
20 무신의 가르침 +10 23.11.30 9,745 18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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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의 가르침 +8 23.11.28 10,294 197 17쪽
17 무신의 가르침 +16 23.11.27 10,755 216 15쪽
16 무신의 가르침 +23 23.11.24 11,388 242 17쪽
15 깨달음 +14 23.11.23 11,039 240 13쪽
14 깨달음 +11 23.11.22 11,022 246 14쪽
13 백인쟁투 +9 23.11.21 11,014 232 15쪽
12 백인쟁투 +5 23.11.20 11,125 201 16쪽
11 무신지로 +13 23.11.17 11,180 223 17쪽
10 무신지로 +10 23.11.16 11,329 231 15쪽
9 무신지로 +6 23.11.15 11,658 212 14쪽
8 밤하늘 +7 23.11.14 11,707 225 15쪽
7 밤하늘 +6 23.11.13 11,680 238 13쪽
6 자격 +11 23.11.10 11,841 247 18쪽
5 자격 +6 23.11.09 12,163 236 17쪽
4 아그네스 +9 23.11.08 12,716 250 18쪽
3 아그네스 +9 23.11.07 13,225 24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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